220화. 황제
“황궁을 접수했으니 다음은 어디로 움직여야 할까요?”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알파야.”
나는 화면을 띄워 실시간 지도로 활용했다.
“일단 황궁 주변을 보면 성이 다섯 개가 있어요. 이건 일단 접수하고 봐야 할 것 같아요.”
한국으로 치면 서울 정도는 무조건 접수하고 나서 전체 제국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좋아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황궁과 가까운 곳은 어떤 식으로든 제압하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수도가 면적은 조금 넓지만, 성은 다섯 개밖에 안 돼요. 두 시간 후에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1만이나 되는 대군을 움직여야 했다.
준비하는 시간을 주어야 했다.
아직까지는 1만의 대군이 사기가 높았다.
그 대단해 보이는 제국의 황궁을 점령했으니, 프란시아 왕국에서는 물론 샤론 마을 출신들은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나는 병력들이 준비를 잘하는지 한 바퀴 돌아보았다.
꾸얀이 보였다.
“앗, 영주님 오셨습니까?”
“네. 두 시간 후에 출진할 거예요. 성 다섯 개를 접수하고 돌아올 거라서 며칠 걸릴 거예요.”
병사들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는 어떻게 가져왔죠?”
그러고 보니 식사를 어떻게 가지고 왔는지도 몰랐다.
“어제 영주님께서 밤새 병력들을 소환하셨잖아요. 그때 소환수님들과 용병들이 지구에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은 주먹밥이고 점심은 돈가스, 저녁은 불고기덮밥입니다.”
내가 다 신경 쓰지 않아도 여러 인원이 있으니 잘 돌아갔다.
나는 지구에서 창고의 물자를 담당하고 있는 한상일에게 용병을 걸었다.
[상일 씨.]
[네, 사장님.]
[제가 물자를 준비해달라는 말도 못 했네요. 1만 명이나 되는 양의 식사를 준비해 주셨더라고요.]
[네. 어제 연락받고 움직이느라 제대로 된 메뉴를 구성하지 못했습니다. 일단 주먹밥, 돈가스, 불고기덮밥 1만 5천 인분 넘겼습니다.]
[고마워요.]
[내일부터는 급식 공장을 돌려서 반찬 다섯 가지 이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보니 소환수 한 명은 지구에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제국에 있는 포탈을 타고 하남 던전의 내부로 넘어가서 던전을 관통해 지구로 나가는 포탈까지 도착해서 포탈로 나가야 했다.
그리고 물자가 있는 곳까지 이동해서 선물함에 넣은 후 다시 역순으로 이동해야 했다.
[내일부터는 제가 신경을 쓸게요. 양쪽에 소환수가 있으면 용병의 선물함을 채워서 바로바로 이동하면 되니까요. 내일부터는 그런 방식으로 물자를 이동하도록 해요.]
[네, 그러면 편리하고 좋죠.]
1만 명이라면 밥을 먹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 밥심으로 사는 건데 일단 잘 먹여야 했다.
병력 2천은 남기고 8천을 데리고 출진했다.
사실 병력의 수 자체는 큰 의미가 없었다.
두 시간 정도 이동했다.
수도를 둘러싼 성 중 한 곳에 도착했다.
“여긴 어디죠?”
“수도에 마르바스의 형제가 머무는 곳으로, 크림성이라고 합니다.”
“마르바스의 형제요? 그러면 꼭 점령해야겠네요.”
“그렇죠. 마르바스의 형제라면 나중에 쿠데타를 일으키기 딱 좋은 자입니다.”
“갑시다.”
성에서는 이미 수비 진형을 이루고 있었다.
성벽에는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각종 무기들이 우리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전략에 밝은 카나가 말했다.
“이곳 성에서의 승리는 적을 이기는 것이 아니에요.”
“그럼?”
“적에게 마르바스의 형제라는 자가 있다면 그자를 놓치지 않는 것이 승리죠.”
“아하!”
“숨거나 비밀 통로로 빠져나가면 이곳을 접수한다고 해도 큰 위험거리를 남겨두는 거예요.”
흠…….
마르바스의 형제를 놓치는 것이 실패라.
“좋아. 방법이 있지. 알파야.”
―네.
“일단 화면을 저기 안쪽으로 보내봐.”
―네, 알겠습니다.
화면이 성 안쪽을 비췄다.
“성을 공격하기 전에 전령을 보내서 마르바스의 형제라는 자에게 편지를 보내세요. 항복을 권하는 내용으로요. 그자가 편지를 읽기만 하면 항복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의 승리입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원들이 있었다.
“왜죠?”
“일단 편지를 읽어서 마르바스의 형제라는 자를 특정하기만 하면 알파의 화면이 놓치지 않을 거거든요. 알파야, 그렇지?”
―물론입니다.
“아, 장거리 공간이동은 아니고요. 마법사님들이 장거리 텔레포트 방해부터 먼저 하셔야겠네요. 알타르 님!”
“알겠습니다.”
장거리 텔레포트 방해마법을 펼치고, 전령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전령의 편지를 읽은 마르바스의 형제는 어떤 비밀 통로를 통해 달아나려 했다.
“와, 대박! 아까 누가 그랬죠? 얘 도망칠 것 같다고?”
“어흠! 접니다.”
카나가 내 칭찬에 기분이 좋은 듯 으쓱했다.
“지금 화면으로 보고 있는데 비밀 통로로 달아나고 있네요. 대박. 여기서 반대편 쪽으로 지하 통로가 있네요.”
누굴 보내야 좋을까.
“샤샤랑 카나 둘이면 되겠지?”
“맡겨주세요.”
두 소환수가 병력 1천을 데리고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이동했다.
“매번 쫓기기만 하다가 이렇게 공격 진형을 갖는 것도 좋군요.”
“그럼 공격할까요?”
그런데 성을 뚫어야 할까?
“아니요. 기다리죠. 마르바스의 형제를 잡아 오면 성문은 그냥 열리지 않을까요?”
“아, 그렇군요.”
성을 포위한 채 우리는 샤샤와 카나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민준 님.]
[어, 카나야.]
[잡았어요.]
[오케이. 그럼 데려와.]
슈우욱.
비행 차량이 도착했다.
카나가 이십 대처럼 보이는 청년을 포박해서 데려왔다.
“알파야! 용병 걸어봐.”
―용병을 수락하였습니다.
청년은 화려한 옷을 입었지만 군데군데 흙먼지가 묻은 걸 보니 달아나려고 다급했던 것 같았다.
“이름이 뭐지?”
“젤라스다.”
“그대가 마르바스 황제의 형제로군. 제국의 서열 2위던데, 맞나?”
“그렇다. 어떻게 형님이 없을 때를 알고 공격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림없다. 머지않아 나의 형님과 12 초인이 너희를 벌할 것이다.”
“아…….”
이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마르바스와 12 초인은 죽었어.”
“거짓말이다. 그럴 리 없다.”
강하게 부정하는 자를 설득할 필요는 없었다.
“이자를 묶어서 앞세운 다음 진군하면 성문을 열 겁니다.”
“이자가 성문을 여는 열쇠였군요.”
열쇠를 가진 자에게 성문은 너무 쉽게 열렸다.
성벽에서 결사 항전을 준비하던 제국군은 자신들의 대장이 포로로 잡히자 쉽게 성을 포기했다.
그렇게 젤라스라는 열쇠를 앞세워서 이틀 만에 황궁과 가까운 성 다섯 개를 접수했다.
다른 성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S급들이 힘을 쓰자 문은 쉽게 열렸다.
우리에게는 힘도, 열쇠도 있었다.
“성 다섯 개를 접수하는 것이 이렇게 쉬울 줄은 몰랐어.”
“우리에겐 젤라스라는 열쇠가 있었잖아.”
이제 수도를 장악했다.
하지만 수도는 제국 전체의 영토에 비춰볼 때 정말 일부분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제국 장악을 시작해야 할 때였다.
“모두 모이라고 하세요.”
여러 집단에서 많은 인원이 모였다.
지구에서 넘어온 헌터들뿐만 아니라 샤론 마을, 서모너 영지, 디아론 영지, 프란시아 왕국의 핵심 인물들이 모였다.
제국의 황궁과 수도를 점령했다는 소식에 샤론 길드의 부길드장을 포함한 길드의 운영진도 모였다.
“모두 모이셨나요? 저희가 제국의 황제를 처단하고, 초인급들을 제거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아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의 크기는 어마어마합니다. 아직 황제가 죽었다는 사실도, 우리가 이렇게 황궁을 차지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주민이나 병력이 많을 것이에요. 어떻게 해야 이들을 저희에게 자연스럽게 복속시킬 수 있을까가 이번 회의의 목표입니다.”
회의에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아직 서로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서로 잘 모르실 수도 있어서 회의 멤버들,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십니까? 디아론 백작님을 모시고 있는 라루스 자작입니다. 전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디아론 백작의 머리라고 불리는 라루스 자작이었다.
넓은 영토를 효과적으로 점령하기 위해 큰 도움이 될 인물이었다.
“저는 디아론 백작가의 행정 전문가 차이세 행정관입니다.”
“프란시아 왕국에서 왕실 마법사로 일하고 있는 7서클 마법사 스피오크라고 합니다.”
디아론 백작가와 프란시아 황가로부터 병력뿐만 아니라 행정과 전략을 담당하는 인원들도 파견받았다.
지구 쪽 인원은 이곳과 언어와 문화가 달라서 이곳을 제대로 점령하기 위해서는 글리제의 인원들이 필수였다.
회의는 라루스 자작의 질문으로 시작했다.
“일단 제국의 황실을 점령하고 제국의 12 초인을 모두 제거하셨다니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일단 가장 중요한 무력의 부분은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이 자리에는 차지율, 노승민, 기예라, 하모스, 카나, 스피오크까지 S급이 여섯 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핵심 병력으로는 지구에서 넘어온 오백의 팔라딘이 있었으며 내 영지와 디아론, 프란시아 왕궁에서 빌린 병력이 총 1만이었다.
수는 적지만 단일 전투에서 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무력으로 이곳 제국의 수도를 진압했으니 다음은 제국에 넓게 퍼져 있는 귀족가를 점령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을 모두 무력으로 제압하려고 한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제국이 크니 그럴 수 있었다.
“일단 제국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오가는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시간과 보급의 문제가 큽니다. 그리고 귀족들 몇 군데를 점령한다고 다른 귀족가들이 도망가기 전략을 사용하면 문제가 큽니다.”
“도망가기 전략이라니요?”
“말 그대로 저희가 강하니까 도망을 가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저희는 수가 적고, 영토는 광활하니 도망가는 적을 쫓다가 세월이 다 흘러가는 겁니다. 적이 싸우지 않고 도망만 다니다가 세월이 흘러 비기는 겁니다.”
“허어.”
죽을 때까지 도망을 간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하지만 러시아 영토의 세 배가 넘는 제국이라면 가능한 방법인 것 같았다.
한국에서 넘어온 나의 참모진들도 비슷한 의견을 내었다.
“과거 러시아가 나폴레옹에게 침략당했을 때도 비슷한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러시아는 넓으니까 도망치다 보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지요. 보급선이 길어지고 날씨와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병력은 전투에서 진 것이 아니라 러시아라는 땅 자체에 졌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제국을 점령할 수 있을까요?”
“우선 제국 전체를 단기간에 모두 점령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1만의 병력으로는 이길 수는 있지만 통치할 수는 없습니다. 제국에 거점 지역을 점령하고, 거점 지역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확대되는 방식을 사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무력으로 거점 지역을 점령하고, 그다음에 거점 지역을 안정화시켜 자연스러운 복종을 받자?
“그리고 마르바스가 괜히 신성 황제라고 불린 게 아닙니다. 제국은 넓은데 구심점을 하려면 정교일치가 가장 좋습니다. 글리제에는 신의 힘이 넓게 미치고 있는데 민준 헌터님은 본인이 교주이시니 정교일치를 하기가 아주 좋습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서모너 백작님께서 제국의 신성 황제에 오르시지요. 구심점이 있어야 합니다.”
허걱.
내가?
제국의 신성 황제?
속으로 깜짝 놀란 나와 달리, 다른 이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