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포탈
잠실 대피소.
민아와 가영이는 구석이 앉아 안내방송을 지켜보았다.
[안녕하십니까? 던전 브레이크 전문기자 조금만입니다. 지금 오백의 결사대가 던전 안에 들어간 지 한 시간째입니다. 결사대는 지금 최선을 다해 던전 내부에서 싸우고 있다고 합니다.]
생방송 화면에서는 거대한 포탈이 일렁이고 있었다.
화면이 포탈 주변을 비췄다.
[지금 전국 각지에서 이곳 하남 B, 이제는 하남 SS가 된 던전으로 빠르게 모이고 있습니다. 잠시 헌터 한 분을 인터뷰해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어디에서 오신 누구십니까?]
[네, 충북 길드에서 온 김지호입니다.]
[지금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십니까?]
[저희는 3선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현재 던전 안에서 최전선을 유지하고 있고, 포탈 100m 이내에서 2선 그리고 반경 500m를 둘러서 3선이죠. 지금처럼 저렇게 포탈에서 몬스터가 나오면…….]
[네?]
인터뷰를 하던 헌터도 자신이 뭔 말을 하나 싶어서 멈칫했다.
기자도 고개를 돌려 포탈 쪽을 바라보았다.
포탈에서 몬스터가 나오고 있었다.
[어!?]
[브레이크야!]
조금만 기자는 안타까운 음성으로 진행을 이어갔다.
[시청자 여러분, 안타깝게도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습니다. 지금 안에 들어간 결사대가 있지만 몬스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족 보행의 동물형 몬스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 검을 든 인간형 몬스터도 있습니다!]
민아와 가영이는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캬아아아!]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수십 마리 수준이 아니었다.
수백을 넘어서도 계속 쏟아져 나왔다.
[공격해!]
[발사!]
쾅, 쾅, 쾅!
불덩이들이 포탈 부근을 향해 날아갔다.
[캬아아아!]
불덩이들을 뚫고, 사족 보행 몬스터들이 2선을 지키고 있는 헌터들을 덮쳤다.
[쿠아아아!]
[막아!]
[탱커! 진형을 갖춰!]
[힐!]
[다 막을 수 없어! 둘러싸지 말고 탱커를 중심으로 뭉쳐!]
[피해!]
[달아나!]
화면 속은 아비규환이었다.
화면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너무 놀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기자와 카메라맨은 화면을 멈추지 않았다.
쾅, 쾅!
치치치칙.
생방으로 내보내던 화면이 끊겨버렸다.
“아…….”
“어떻게 해…….”
하남에서 잠실이면 금방이었다.
대피소 안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민아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평소 들고 다니던 아이템을 점검했다.
일단 실드가 내재되어 있는 가방이 있었다.
가방도 예전 것보다 더 좋은 것이었고 반지, 목걸이 아이템을 차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가영이도 실드를 켤 수 있는 가방이 있었다.
이 정도라면 오크 무리 정도는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이 대피소이기도 하고 아이템도 있으며 그 아이템들을 자신이 마나로 활성화할 수 있으니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다.
웅성웅성.
사람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정보를 얻었다.
“2선이 무너졌대.”
“3선도 무너졌다는데?”
“뭐? 3선이 무너졌으면 그냥 시가지로 몬스터들이 이동하는 거 아냐?”
“어머나, 그러면 어떻게 해? 완전 쑥대밭 되는 거 아냐?”
누가 어떻게 정보를 얻었는지 몰라서 진짜 정보인지, 가짜 정보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불안한 마음이 지속되었다.
시간이 흘렀다.
“어! 조 기자 채널 다시 된다!”
누군가의 외침에 민아도 조 기자 채널을 다시 보았다.
화면이 흔들렸다.
[아아, 시청자 여러분!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면 어디든 간다의 조금만 기자입니다. 지금 안타깝게도 하남 SS던전이 터지는 바람에 잠시 방송이 중단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포탈이 보이는 빌딩에 숨어서 스마트 폰을 이용해 몰래 방송하고 있습니다.]
조 기자는 1인 방송을 하듯 스마트 폰을 들어 창문에 가져갔다.
[지금 저기 멀리 포탈이 보이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주변을 지키던 헌터들은 무너진 상태이고, 몬스터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래도 저희의 용감한 헌터들이 상당수의 몬스터에 맞섰습니다.]
일렁일렁.
멀리 떨어진 빌딩의 창문으로 몰래 보는 포탈이었지만 어찌나 크던지 일렁거리는 모습이 멀리서도 보였다.
쑤욱.
그때 포탈에서 또 뭔가가 나왔다.
[시청자 여러분! 또 뭔가가 넘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어디서 본 모습들이었다.
조 기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시청자 여러분! 공격대입니다.]
조 기자는 스마트 폰을 얼른 확대했다.
화면이 조금 흔들렸지만 줌인 되어 보이는 모습은 확실히 익숙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천마, 오성 모두 있습니다. 우리의 공격대가 돌아왔습니다. 국민 여러분, 특히 하남 일대의 여러분! 조금만 참고 기다리십시오. 저희의 S급 헌터들이 돌아왔습니다!]
조 기자의 신이 난 목소리에 대피소 안의 사람들도 함께 신이 났다.
“레이드에 성공했나 봐.”
“그렇겠지?”
“그러니까 나왔겠지.”
“그런데 아까 빠져나온 몬스터들은?”
“다 잡지는 못했겠지. 던전 안에 있던 것들은 잡고 나온 거겠지. 그래도 저들이 왔으니 안심이야.”
“그러게. 이제 두 발 쭉 뻗겠네.”
“하하하.”
그렇게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났다.
쿵, 쿵.
싸늘.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쿵, 쿵.
그 울림소리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었다.
카가가각!
갑자기 엄청난 굉음이 나면서 대피소의 거대한 철문이 대각선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무언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사람 같았다.
“까아아악!”
누군가 놀라 비명을 질렀다.
일반인들은 저런 거대 철문을 종이처럼 자르는 상대에게 대항할 만한 방법이 없었다.
민아도 부들거리는 손으로 아이템 가방을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에 몬스터와 만난다고 해도, 오크 정도의 수준을 생각하고 있던 민아에게 대피소 문을 종이처럼 찢는 적은 생각했던 범위 이상이었다.
카가가각!
카가가각!
끼이이익.
쿵.
두 번 더 철문이 잘리더니 철문 조각이 떨어졌다.
검으로 잘린 커다란 구멍이 생겨버렸다.
저벅저벅.
복장이 이상하긴 했지만 사람이었다.
상대는 철문 안으로 들어와 마치 전시장에 진열된 상품을 구경하듯 대피소 내부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벌벌 떠는 사람들.
칼을 든 자와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주저앉은 발로 뒷걸음을 치며 최대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저 거대한 문을 세 번의 칼질로 열어낸 자에게 수 미터 정도의 거리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천천히 검을 들었다.
적이 검을 들어 올리는데도 이쪽에서는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
민아는 바로 지금이 자신이 아이템을 활성화해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
알타르 선생님께서 억지로 마나 고리를 만들어주신 것은 이럴 때 쓰라는 거겠지 하고 생각했다.
휙!
가방을 던지며 외쳤다.
“그레이트 실드!”
사아아악!
거대한 실드가 발동되었다.
“가영아! 네 가방도 던져!”
“알았어! 실드!”
가영이도 안전 고리를 떼며 가방을 던졌다.
사악!
가영이의 실드도 펼쳐졌다.
그레이트 실드와 일반 실드가 연달아 펼쳐졌다.
그런데 적은 입꼬리를 올리며 흥미를 보이는 듯했다.
왠지 어디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민아는 최선을 다했다.
민아는 반지에 있는 마법을 발사했다.
“매직 애로우!”
지이잉.
민아의 키보다 더 큰 초록색 마나의 창이 머리 위에 떠올랐다.
옆에서 지켜보던 가영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발사!”
슈우욱!
매직 애로우가 민아, 가영이 그리고 대피소의 모든 사람의 염원을 담고 적에게 날아갔다.
휙.
하지만 적은 그저 고개를 젖혀서 피해버렸다.
쾅!
매직 애로우는 대피소의 조각난 문에 맞아 폭발했다.
“매직 애로우, 매직 애로우!”
이번에는 두 발의 매직 애로우가 머리 위로 떴다.
사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실드를 쓰면서 구명줄로 공격마법 세 번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가라!”
슈우우욱!
매직 애로우 두 발이 적의 몸통을 향해 날아갔다.
슈칵! 슈칵!
적은 가벼운 칼질을 하고 민아를 바라보았다.
마치 이제 더 없냐는 눈빛이었다.
민아가 더 준비된 것이 없어 망설이자 적이 칼질을 했다.
콰악!
그레이트 실드가 출렁거렸다.
콰악!
그레이트 실드에 금이 갔다.
콰악!
챙그랑!
그레이트 실드가 터져버렸다.
적은 한 걸음 더 다가와 칼을 휘둘렀다.
콰악!
단번에 부서지는 가영이의 실드였다.
히죽.
적이 민아와 가영이를 보며 비웃었다.
스윽.
적이 검을 들었다.
저 검이 휘둘러지면 수많은 사람이 죽을 것 같았다.
몬스터에 대비해 만든 두꺼운 철문도 베어버리는 검을, 일반인들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민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퍼어어억!
무언가의 충격 소리가 들렸다.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기다렸다.
하지만 밀려오는 고통은 없었다.
살짝 눈을 떠보니 민아가 상대하던 적의 이마에 무언가가 매달려 있었다.
주르륵.
그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아!”
자세히 보니 뒤통수에서부터 뚫고 들어가서 이마에서 튀어나온 화살촉이었다.
그런데 이마를 뚫고 나온 화살은 생각보다 징그럽지 않았다.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오히려 성스러워 보였다.
환한 빛을 내뿜고 있었는데 그 빛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타다다닥.
누군가 달려왔다.
샤샤였다.
“민아 님, 여기 계셨군요! 아이템의 신호를 받고 왔는데 늦지 않아 다행이에요.”
“언니…….”
민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어떻게 실드를 던지고 매직 애로우를 쏘며 적과 상대했는지 몰랐다.
* * *
몬스터 오천 마리와 S급 기사를 잡아야 했다.
하남 SS던전을 빠져나온 적들을 소탕하는 데 이틀이 걸렸다.
마르바스가 잡히고 대부분의 S급들이 잡힌 이상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문제는 얼마나 피해를 적게 하느냐의 문제였다.
그래도 빨리빨리 모여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종특인 한국인답게 헌터들은 문제를 빠르게 해결했다.
적들은 팔라딘화되면서 더욱 강해진 우리 헌터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하남 지휘소에 앉아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차지율이 다가왔다.
“민준 헌터님, 아니 이제 교주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차지율이 날 보고 교주란다.
저절로 어색한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얼떨결에 팔라딘 계약을 해서 당황스러우시죠? 저도 하모스가 갑자기 그럴 줄 몰랐어요. 부담스러우시면 취소하셔도 돼요. 죄송해요.”
“아니요. 죽을 걸 살려주셨는데 하모스 님께 감사해야죠. 그리고 하모스 님이 그러시는데 마나의 맹세라 취소하면 마나가 엄청 깎인다고 하더군요. 아마 S급인 제가 마나의 맹약을 취소하면 B급 헌터가 될 거라고 하던데요?”
“네에!? B급이요? 그런 사기 계약이 어디 있어요! 그 종교, 완전 사이비 아니에요?”
그런데 그 종교의 교주가 나였다.
“괜찮아요. 뭐 이참에 종교를 하나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교주님.”
당황스러웠다.
“교. 주. 님. 그런데 사실 알려드릴 것이 있어서 왔어요.”
“뭔데요?”
“포탈이 살아 있어요.”
“네?”
일렁일렁.
지휘소의 의자에서 건너편을 보면 하남 SS던전의 포탈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저게 살아 있다는 소린가?
내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차지율이 부연 설명을 했다.
“마르바스가 넘어온 포탈이 살아 있다고요.”
“마르바스가 타고 온 포탈이요?”
“네. 저기 보이는 포탈이 아니라, 그 안에 마르바스가 타고 넘어온 포탈이 아직 제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고요.”
“마르바스가 타고 온 포탈… 제국에서 넘어온 포탈…….”
제국과 연결된 포탈이 아직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포탈을 타면 제국이었다.
벌떡!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제가 글리제에 갈 수 있다고요!?”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