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팔라딘
다섯 개의 마족의 뿔을 이용해 마르바스를 찌를 준비를 했다.
네 개의 단검 그리고 하나의 화살.
나는 필요하다면 샤샤에게 마력을 왕창 몰아주어서라도 마르바스를 공격할 마음을 갖고 있었다.
두두두두.
다시 마르바스를 선두로 한 뾰족한 대열이 밀려 들어왔다.
“지금!”
대열이 붕괴했지만 맨 앞의 마르바스를 잡는다면 해볼 만했다.
켄타우로스가 정면으로 마르바스와 부딪쳤다.
거대한 근육 몬스터가 되어 달려오는 마르바스를 막는 것은 돌진하는 트럭을 막아 세우는 것 같았다.
쾅!
“크윽!”
켄타우로스가 신음 소리를 내더니 곧 튕겨나갔다.
“노승민 헌터!”
노승민 헌터가 걱정되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켄타우로스는 몇 바퀴를 구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켄타우로스는 튕겨나갔지만 그래도 덕분에 속도가 조금 줄어서인지 차지율과 기예라가 마르바스에게 달라붙었다.
콰직!
“역시 천마!”
천마는 천마였다.
어느새 차지율이 마르바스의 앞다리에 단검을 박아넣었다.
하지만 마르바스는 단검을 박고 매달린 차지율을 무시하며 달렸다.
퍼억!
기예라도 마르바스에게 단검을 박으려 했지만 마르바스의 앞발에 부딪혀서 튕겨나갔다.
어느새 우리의 진형을 둘로 갈라버린 마르바스였다.
“캬아아아!”
결국은 차지율도 단검을 뽑고 멀찍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모험을 던진 수였는데 큰 소득 없이 헌터들이 모인 부대가 둘로 갈라졌다.
헌터들의 부대가 둘로 나누어지고 포탈에 대한 점유권을 잃었다.
그러자 제국의 몬스터 병사들은 절반으로 나뉜 헌터들을 포위한 채 일부는 포탈 바깥으로 나갔다.
“이런!”
“아……!”
지이이잉.
적의 초인급 한 명이 일부러 보란 듯이 오러를 켠 후 우리를 보았다.
그리고 포탈을 넘었다.
S급이 이곳 전장에서 이탈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반가운 일이었지만 이탈해서 그가 가는 장소가 포탈 바깥의 한국이란 점이 치명적이었다.
몬스터들은 포탈 바깥으로 병력을 내보내는 것이 목적인 듯 우리가 다시 차지하지 못하게 경계했다.
약 만 오천 정도의 몬스터 중에서 오천 마리 정도가 포탈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그중 내가 가장 주의 깊게 본 것은 S급의 수였다.
적의 S급은 아홉이었는데 그중에 넷이 포탈 바깥으로 나갔다.
이건 내가 거의 한 달 동안 제국을 정찰하고 있던 것이라 잘 알 수 있었다.
아직 마족과 S급 다섯 그리고 일만 마리의 몬스터가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헌터들은 의욕을 불태웠다.
“와, 이거… 오늘 제대로 한번 놀아버려야겠네.”
“그러게. 내가 오늘 마력 탈진 날 때까지 싸운다.”
헌터들의 머릿속에 패배와 죽음 그리고 파괴되어가는 도시의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헌터들은 단순한 오백 명의 헌터가 아니었다.
각 길드의 에이스급들이 모인 집단이었다.
비록 SS급 마족에게 등급으로 밀리고, 1만 마리의 몬스터에게 숫자에 밀렸지만 기세만큼은 꿋꿋했다.
그때 전직 성녀 하모스가 나에게 다가왔다.
“교주님, 드디어 때가 되었습니다.”
“예?”
내가 교주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급박한 때 웬 교주 타령인가 싶었다.
“이런 절박한 상황을 기다렸습니다. 여러분의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이 스킬을 시전 가능하게 해줄 겁니다. 팔라딘 어워드!”
화아악!
성녀의 보호막이 우리를 감쌌다.
두 무리의 헌터들 모두에게 보호막이 작동되었다.
그 보호막의 기세가 강했는지 몬스터 대군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마르바스도 인상을 찡그리는 모습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사단에 가입할 수 있는 스킬입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마족과 몬스터의 신을 따르는 무리에 맞서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을 지키는 신의 가호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지키는 신?
하모스가 모두를 향해 외쳤다.
“여러분, 시간이 없습니다. 모두 풍요와 대지의 신을 따르는 팔라딘이 되겠다는 맹세를 하세요. 성기사가 되어 신의 가호가 깃들 것입니다. 몬스터의 신을 믿는 마족들에게는 최대의 효과를 낼 거예요! 빨리요!”
지금 당장 팔라딘에 가입하라고?
하모스가 크게 외쳤다.
“가입하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입니다!”
어느 헌터가 외쳤다.
“풍요와 대지의 신을 따르는 팔라딘이 되겠습니다!”
화아악!
신성력이 깃들었다.
“오오오! 힐을 받는 기분이야!”
“그게 신성력이에요! 원래 팔라딘은 방어력이 주특기죠. 바로 그 힘 때문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30초 남았습니다!”
헌터들은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에잇! 나 불굔데… 부처님 죄송요! 일단 살고 봐야겠어요!”
“괜찮아요! 저흰 다신교예요!”
가장 먼저 가입한 헌터의 말이 인상적이었는지 아니면 다신교라는 말이 방아쇠가 되었는지 헌터들은 빠르게 팔라딘의 맹세를 맺었다.
신의 힘을 따르는 팔라딘은 트롤 기사라고도 불렸다.
재생의 대명사인 트롤처럼 맞아도, 찔려도 계속 회복하면서 싸웠다.
그래서 비슷한 수준의 기사와 팔라딘이 붙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한 것은 팔라딘이었다.
팔라딘 뒤에 사제가 붙기라도 한다면 팔라딘을 죽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족을 포함한 1만 몬스터로부터 둘러싸인 극한의 상황에서 헌터들은 가입을 망설일 수 없었다.
“성물이시여, 팔라딘에게 힘을 주소서!”
내 가슴이 뜨거워지며 빛이 퍼져나갔다.
눈앞이 환해졌다.
그리고 그 빛은 오백 명의 헌터들에게 퍼져나갔다.
오백의 헌터들은 성물과 성녀를 지키는 오백의 팔라딘이 되었다.
“캬아아아!”
몬스터들이 덤벼들었다.
“쳐라!”
“죽여!”
검을 휘두르고, 해머질을 했다.
피가 튀고 무언가가 잘리며 한때 무언가의 신체였을 것들이 하늘을 날았다.
콰직!
콰악!
빠각!
헌터들의 수가 스무 배나 적었지만 거꾸로 말하면 헌터 한 명당 스무 마리의 몬스터만 잡으면 된다는 소리였다.
어느 헌터 한 명의 팔을 재규어 같은 몬스터가 물었다.
재규어 몬스터는 팔을 물자마자 온몸을 흔들며 팔을 뜯어내려 했다.
하지만 팔을 물린 헌터는 몸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자신의 무기를 휘둘렀다.
그의 무기는 짧은 해머였다.
퍽!
팔을 흔들던 몬스터의 흔들림이 멈췄다.
퍽!
물고 있던 입이 벌어졌다.
퍽!
재규어 몬스터의 눈이 뒤집혔다.
트롤 기사.
풍요와 대지의 신에게 맹세한 기사는 마치 트롤과 같은 기사인 팔라딘이 되었다.
화아악!
전직 성녀가 나를 성물로 삼아 기도하고 있었다.
그 기도는 오백 명의 헌터들에게 충분히 효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것이었구나.”
은둔자가 왜 지구를 미끼 삼아서 성녀를 지구로 보내고, 그 틈을 타 신성교국을 탈취했는지 알 것 같았다.
신성교국을 거의 다 차지하고도 힘으로 부수지 않고 봉인할 시간을 주었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성녀가 기도를 할 때 그 앞을 지키고 있는 팔라딘은 트롤 그 자체였다.
심지어 이곳에는 성녀, 성물, 교주까지 있었다.
버프가 끝장이었다.
퍼걱!
서걱!
푹!
저렇게 맞고, 베이고, 찔려도 기사들은 전투를 이어갔다.
어느덧 몬스터의 수가 일만이 아니라 그 절반 이하로 줄었다.
마르바스가 잠시 물러났다.
몬스터 군대도 마르바스와 함께 물러났다.
사아아악.
아직 치유가 덜 된 헌터들은 그사이에 치유가 되어버렸다.
“와… 이거 사기급이네요…….”
“교주, 성물, 성녀가 모인 곳을 지키는 팔라딘은 무적이랍니다.”
“성녀 아니라면서요?”
“앗! 아무튼요.”
얼떨결에 팔라딘으로 계약해버린 헌터들이었지만 효과는 끝내주었다.
“원래는 성물이 한곳에 고정이지만 저희의 성물은 적에게 달려갈 수 있죠.”
“뛰라고요?”
하모스가 미소를 지었다.
내가 헌터들에게 소리쳤다.
“여러분!”
“네!”
“여러분들이 받고 있는 버프 말이죠.”
자신들이 받는 버프에 대해 말하자 다들 나를 쳐다보았다.
“저를 중심으로 발동합니다! 자, 저는 뜁니다!”
나는 한 호흡 쉬며 거리를 두고 있는 마르바스와 몬스터들에게 달려들었다.
“같이 가!”
“뛰어!”
“힐 받으려면 뒤처지면 안 돼!”
오천이 넘는 몬스터들에게 오백여 명의 헌터들이 달려들었다.
수천의 몬스터들은 마치 상위 몬스터 수백이 달려드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다시 S급들의 격돌이 있었다.
웅웅웅웅!
쌍방이 오러를 피어올리고 있는 검사끼리 맞붙었다.
차지율과 적의 소드마스터는 서로 강력한 검을 휘두르며 합을 겨뤘다.
적의 소드마스터가 오러가 담긴 검으로 차지율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런데 공격을 하며 상대도 약간의 빈틈이 벌어졌다.
평상시라면 차지율이 수비를 하며 넘어갔을 상황이었다.
푸욱!
푸욱!
하지만 차지율은 옆구리에 검이 찔리는 것을 허용하며 상대의 한쪽 팔을 잘라내었다.
상대 소드마스터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하나 남을 팔로 검을 휘둘렀다.
채앵!
이번에는 차지율이 검을 들어 막아냈다.
스멀스멀.
조금씩 치유되고 있는 차지율의 옆구리.
하지만 그와 다르게 상대 소드마스터의 팔은 자라나지 않았다.
“어이, 그쪽도 잘 싸웠지만 오늘 내가 받는 버프가 장난이 아니어서 말이야.”
파파밧!
서걱!
한쪽 팔이 없는 상대를 놓칠 차지율이 아니었다.
상대 소드마스터의 목이 달아났다.
몬스터들은 거의 트롤이 되어버린 헌터들이 몰아붙이고 있었고, S급의 수도 우리가 우위였다.
S급의 수는 한 번 우위가 점해지면 더욱 빠르게 격차가 벌어지게 되어 있었다.
서걱!
시미터를 사용하는 상대 소드마스터가 시미터째로 두 동강 나버렸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때마다 내 귓가에는 레벨이 오른다는 소리가 들렸다.
크아아악!
마족이 열받은 것 같았다.
눈이 붉어지며 몸의 근육이 더욱 팽창했다.
트럭만 한 근육질이 두 배는 부푼 것 같았다.
“마르바스의 페이즈가 넘어간 것 같아요!”
“거대화, 광폭화류 같아요!”
거대화와 광폭화 정도면 보스치고는 흔한 타입이었다.
“단검 들고 다 달라붙어요!”
마족은 거대화되고 강력해졌지만 우린 트롤, 아니 좀비처럼 달라붙었다.
콰직!
주우우욱!
차지율이 단검을 마족의 몸에 박고 죽 내려그었다.
콰직, 콰직, 콰직!
기예라는 마르바스의 등에 매달려 여러 번 반복하며 단검을 찍어댔다.
그 방법이 효과가 있는지 기예라가 단검을 찍을 때마다 마르바스가 몸을 움찔거렸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슬슬 마르바스의 몸이 느려졌다.
이미 몸에는 차지율, 기예라, 노승민, 제리가 단검을 박고 있었다.
“샤샤야! 신성력을 부어줄게.”
나는 샤샤가 건넨 마족의 뿔로 만든 화살에 신성력을 잔뜩 부었다.
“신성력 부여!”
그리고 샤샤에게 내 마나를 건넸다.
“샤샤야, 마나 전달해줄게! 마나 공유!”
쑤욱.
마나가 빠져나가 샤샤에게 전달되었다.
샤샤와 나, 둘이서만 쓸 수 있는 스킬이었다.
샤샤가 자세를 잡았다.
후우우웅.
샤샤는 오러가 피어오르듯 몸에서 아지랑이가 퍼져나갔다.
신성력을 잔뜩 머금어 성스러운 빛을 내뿜는 화살을 활대에 걸쳐 주욱 잡아당겼다.
툭.
살며시 시위를 놓았다.
꾸구구국.
마치 공간을 헤치고 나가는 듯 화살이 앞으로 나갔다.
퍼억!
마족의 이마에서 들어간 화살은 삐죽하니 뒤통수를 뚫고 화살촉 끝부분이 튀어나왔다.
“아직 안 죽었어요!”
마르바스의 머리가 화살에 뚫렸지만 아직 시스템의 알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얼른 다가가 주먹을 휘둘렀다.
“마력 펀치!”
퍽, 퍽, 퍽!
옆에서도 각자 열심히 마족을 팼다.
덩치가 커서 여기저기서 패도 됐다.
“캬아아악!”
마르바스는 끈질겼다.
머리에 화살을 박고도, 이렇게 많은 헌터들이 칼을 박고 있어도 몸을 흔들어 떼어놓으려 했다.
퍽퍽퍽!
마족에게는 물리적 타격보다 신성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디바인!”
신성력이 가득한 손으로 마르바스를 잡았다.
치이이이익!
마르바스가 괴로워했다.
“버텨!”
“조금만 더!”
“디바인!”
거대 트럭만 한 마르바스의 몸이 점점 줄어들었다.
슈슈슈슉.
그러다 결국 사람만 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하아, 힘들었다.
드디어 제국의 황제이자 마족인 마르바스를 제거했다.
하지만 한숨 돌릴 여유는 없었다.
“빨리 나머지를 정리해요. 바깥으로 나간 몬스터들을 잡아야 해요!”
서둘러야 했다.
바깥으로 빠져나간 S급들과 수천의 몬스터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