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마르바스와의 전투
S급들의 격돌은 화려하고 처절했다.
한 번 한 번의 공격은 거대하고 강렬했다.
하지만 S급에 대한 상성 맞춤식 대응을 하고, 순간적으로 창술사를 일점사로 잡아내자 S급의 수에서 우리 측이 우위를 보였다.
“캬아아악!”
“쿠아아아!”
물론 밀려오는 몬스터의 수는 징그럽게도 많았다.
곤죽이 되어버린 몬스터들의 시체를 밟고 기어 올라와 덤벼드는 모습은 두려움을 모르는 몬스터 떼의 전형이었다.
슈슈슈슉!
파파파팍!
샤샤가 하프를 튕기듯 화살을 쏘고 있었다.
르녹과 꾸얀이 다연발 발리스타를 이용해서 쏟아붓는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천조국과 오일머니의 후원을 받은 장비들이었다.
저쪽이 인적 물량전이었다면 이쪽은 금전적 물량전이었다.
“르녹, 꾸얀. 선물함에 있는 물자들은 다 꺼내놨나요?”
“네. 다 꺼내놨습니다. 20분 정도는 사용할 만합니다.”
“그럼 꾸얀은 계속 쏘고, 르녹이 주기적으로 다녀오면서 물자를 보충하세요. 르녹 소환 취소.”
“팬니르 님은요?”
“저도 물자를 꺼내놨습니다.”
“그럼 팬니르 님도 얼른 다녀오세요.”
파앗!
르녹과 팬니르가 사라졌다.
서모너 영지와 디아론 영지에 가서 각각 다시 물자를 들고 오려는 것이었다.
[다 챙겼습니다.]
[소환해주십시오.]
금세 다녀와서 꾸얀 옆에 무기를 다시 가득하게 쌓아두었다.
나는 한국의 일반 헌터들에게 물었다.
“포병, 기관총 사수 출신! 손드세요!”
몇몇 헌터들이 손을 들었다.
“이쪽으로 와서 배워서 쓰세요.”
무기는 남아돌고 고위급 기사나 마법사는 부족했다.
알타르나 팬니르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보다 본신의 무력을 사용하는 편이 나았다.
디아론 영지에 있던 무기를 가져오는 것은 팬니르만 할 수 있는 일이라 어쩔 수 없었지만 그것의 사용까지 맡기기에는 S급 낭비였다.
“여길 열고, 여기 십자선에 과녁을 맞힌 후 당기시면 됩니다.”
한국말로 진행되는 꾸얀의 설명에 포병 출신 헌터들은 쉽게 알아들었다.
그런데 이미 전방에서는 접근전을 하기 때문에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리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즉석에서 언덕을 만들어야 했다.
“각도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탑을 쌓으세요!”
다들 상위 헌터들이었다.
일반인들처럼 피라미드식으로 쌓을 필요까지는 없었다.
맨 아래 둘, 그 위에 둘, 그 위에 두 명이 발리스타를 조종했다.
여섯 명씩 다섯 군데에서 일회성 공성탑을 쌓고 발리스타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았다.
“점사!”
슈슈슉!
퍼퍼펑!
한두 번 사격을 해보고선 금세 영점을 잡고 몬스터들을 잡기 시작했다.
게다가 맨 밑에서 무게를 버티며 걸어다니니 순식간에 5m급 높이에서 내려찍는 이동용 무기가 생성되었다.
흐느적, 흐느적.
헌터가 세 층이 쌓여 공성탑을 쌓고 흐느적거리는 모습을 보니 마치 길거리 풍선 간판처럼 보였다.
즉석에서 5m급 이동용 발리스타를 제작하는 사이, 창술사를 잡은 팬니르는 다른 곳을 돕고 있었다.
팬니르와 샤샤는 노승민이 맞짱을 뜨고 있는 킹콩에게 다가갔다.
역시 덩치 큰 괴수형은 포위해서 잡는 것이 국룰이었다.
“크워워워!”
“우워워워!”
오성의 켄타우로스와 적의 킹콩은 힘으로 백중세였다.
켄타우로스의 무게와 힘이 엄청났는데 킹콩은 그것을 근육의 힘으로 이겨내고 있었다.
“받아라!”
샤샤가 화살을 킹콩의 얼굴로 쏘아 보내며 시야를 어지럽게 했다.
켄타우로스와 힘겨루기를 하면서 얼굴로 화살이 날아오자 킹콩이 켄타우로스에게 얼굴을 묻으며 레슬링 자세를 취했다.
힘 싸움에도 지지 않으면서 몸으로 화살을 받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시야가 좁아지는 약점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 약점을 간파한 팬니르가 오러가 실린 검으로 킹콩의 발목을 썰기 시작했다.
서걱!
킹콩의 오른쪽 발목이 반쯤 잘렸다.
“쿠어억!”
킹콩이 몸부림을 치며 뒹굴었다.
그 바람에 켄타우로스도 함께 땅을 뒹굴며 주변이 난장판이 되었다.
적의 몬스터도, 우리 쪽 헌터도 주변으로 다가갈 수 없어서 크게 공간이 만들어졌다.
잡을 수 있을 때 잡아야 했다.
“마력 펀치.”
나도 얼른 한 손 보탰다.
“냥!”
헌터들을 돕고 있던 제리도 지금이 기회임을 아는지 달려왔다.
나, 샤샤, 제리, 팬니르, 켄타우로스의 협공을 받은 킹콩이 몸부림을 쳤다.
몬스터들도 이쪽을 도우러 달려왔지만 3층 헌터 탑들도 이쪽을 집중 사격으로 엄호했다.
콰콰콰쾅!
마력이 폭발하고, 오러가 휘날렸다.
시야가 너무 가려져서 차라리 눈을 감고 인지 공유의 시야로 보는 것이 나았다.
오른쪽!
킹콩의 비어 있는 머리통이 있었다.
“마력 펀치!”
뻑!
주먹이 뻐근하게 킹콩의 머리통을 가격했다.
나의 마력 펀치에 맞은 킹콩은 데미지를 입었지만 켄타우로스와 몸이 꼬여 있어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아직도 대부분의 시야가 차단된 상황에서 나는 인지 공유로 노마크 머리통을 맡았다.
기회였다.
뻑, 뻑, 뻑!
마력 펀치로 같은 곳을 계속 팼다.
상대가 S급 괴수였지만 움직이지 못하면 샌드백이었다.
뻑, 뻑, 뻑!
파각!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오! 이번에는 무려 5레벨 상승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S급의 막타를 친 것 같았다.
“캬아아아!”
S급 둘을 잡아내자 적들이 물러났다.
이미 일반 몬스터는 수천, S급은 둘이나 죽었다.
물론 그래도 뼈무사, 모래술사, 화염술사가 남아 있었다.
“헉헉.”
적들이 뒤로 물러나자 헌터들이 숨을 몰아쉬었다.
부들부들.
S급을 둘이나 잡아내었다고 해도 거의 1만 대 500의 대결이었다.
정신없이 전투를 벌였고, 죽은 헌터들도 있었다.
이런 대규모 전투에서 모두를 살리기는 어려웠다.
적이 약 1km까지 뒤로 물러났다.
잠시간의 소강상태.
“저것들이 왜 뒤로 물러난 것이지?”
“오히려 안 좋아. 나아가고 물러날 줄 안다는 것이잖아. 저거, 그냥 몬스터가 아닌데?”
“제국의 정규군이에요. 그냥 몬스터가 아니라 스킬로 변신한 거라고 생각해야 해요.”
“아이고, 몸은 몬스터인데 머리는 똑똑하다고? 만만치 않네.”
적들은 뒤로 물러났지만 우리는 포탈을 지키느라 자리를 지켰다.
전직 성녀 하모스가 열심히 힐을 넣어주었다.
나도 힐을 주며 전력을 보강했다.
“팬니르 님, 이럴 때 디아론 백작성에 얼른 다녀오세요. 르녹, 꾸얀, 알타르 님도요.”
“알겠습니다.”
그때 카나의 연락이 왔다.
[저를 쫓던 몬스터들이 그쪽으로 가는 것 같아요.]
이런, 분리되었던 적들이 합쳐져서 다시 몰아치려는 것 같았다.
[카나야! 적의 수가 얼마라고?]
[1만이에요.]
[마르바스는? S급의 수는?]
[마르바스가 있었고, S급도 서너 명 있는 것 같았어요.]
위험하다.
나는 얼른 협회장 등에게 적들의 규모를 말해주고 작전회의를 했다.
“그럼 SS급 하나에, S급 6~7, 몬스터화된 정규군이 1만 5천인가?”
“감당이 안 될 것 같은데요?”
“포탈 바깥에는 준비가 어느 정도 안 되어 있을까요?”
“방금 나가서 확인해보았습니다.”
“바깥의 준비 상태는?”
“이미 1차 바리케이트는 완성되었고, 2차로 헌터들이 집결하고 있습니다. 지방 헌터들이 빠르게 올라와 준비하고 있습니다. 몬스터 5천 마리 정도는 어찌저찌해볼 만할 것 같습니다.”
“몬스터들을 포탈로 적당히 뺄까요? 바깥 인원들이 감당할 정도만 내보내고 나머지는 우리가 맡고요.”
“내보내고 싶은 만큼 양이 분리될까요? 자칫 잘못해서 다 나가버리면 쑥대밭이 될 겁니다.”
슈우우욱.
작전회의 중에 카나가 도착했다.
“카나, 무사했구나.”
“민준 님, 감사해요. 와주셨군요.”
비행 차량에서 스무 명의 샤론 길드원들이 내렸다.
“길드원들은 포탈을 통해 나가도록 하세요. 그리고 포탈 밖에서 최대한 A급 위주로, 서른 명 들어오라고 해주세요.”
길드원들은 B급 위주였다.
지금 전투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던전 내부에는 무한정 헌터들이 들어올 수 없었다.
오백여 명이 들어온 이유도 입장 수 제한을 따져본 것이었다.
던전 수치가 SS급으로 상승해서 이 정도 들어올 수 있는 것이었다.
B급이었을 때라면 오백 명은 고사하고 오십 명 정도가 한계였을 것이다.
전투를 통해 열 명 정도가 죽었고 길드원 스물을 내보내고서 최대 전력으로 서른을 받고자 했다.
길드원들이 나가고 새롭게 인원이 들어왔다.
두두두두.
적들이 다시 도착했다.
만 오천 마리가 넘는 몬스터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내뿜는 이가 있었다.
피부 없이 순수 근육으로만 이루어진 몬스터를 타고 마치 자신이 수사자인 양 화려한 깃털로 장식된 옷을 입은 자였다.
“마르바스.”
그가 손짓하자 만 오천 마리의 부대가 정지했다.
휘잉.
저렇게 일사불란하게 정지하는 모습이 몬스터가 아닌 정규군임을 보여주었다.
양측이 고요한 가운데 작은 바람이 불었다.
적의 초인급 인원들이 앞줄에 섰다.
맨 앞에는 마르바스가 있었다.
우리도 S급들이 전방을 맡아주었다.
마르바스가 도착하기 전 서모너성과 디아론성을 여러 번 왕복해 무기들이 수북하게 쌓아두었다.
조금 전의 전투에서 3단으로 쌓은 인원들이 임시 공성 무기가 되었는데, 이것이 제법 효과가 있음을 깨닫고 무기를 편안하게 쏠 수 있도록 날라주는 인원까지 배치했다.
마르바스가 다시 손짓했다.
“캬아아아아!”
적들이 뾰족한 창과 같은 진형으로 우리의 진형을 뚫으러 달려왔다.
그 선두에는 마르바스가 직접 다가오고 있었다.
“좌, 우, 후방의 결계 인원의 절반은 앞쪽으로 와주세요! 협회장님, 하모스, 전방 합류요!”
저 진형에 반으로 갈라진다면 안 그래도 숫자가 적은 우리가 크게 불리해지게 되었다.
어떻게든 똘똘 뭉쳐서 한 덩어리가 되어야 했다.
“켄타우로스! 30m 전진, 팬니르 20m 전진, 차지율 10m 전진!”
가로로 일자로 서 있으면 우리를 뚫으러 송곳처럼 달려오는 적들에게 뚫려버릴 위험이 있었다.
나는 얼른 헌터들을 이동시켜 적들과 비스듬하게 부딪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뚫리기보다는 비껴낼 가능성이 컸다.
두두두두.
“온다!”
“버텨!”
“디바인 프로텍션!”
“방어력 상승!”
“홀리 크로스!”
“쏴!”
슈슈슈슉!
무차별로 발리스타와 원거리 마법이 날아갔다.
샤샤의 활도 마구 날아갔다.
셀 수 없이 날아가는 화살, 불꽃, 발리스타, 마력을 비웃듯 마르바스가 근육 덩어리 몬스터에서 뛰어올랐다.
“캬아아아!”
그러더니 스스로 한 마리의 근육 덩어리 몬스터가 되어서 달려왔다.
덩치가 대형 트럭만 했다.
쾅, 쾅, 쾅, 쾅!
그 대형 트럭만 한 마르바스는 마치 교통사고가 난 트럭이 길의 옆면을 긁으면서 지나가듯 헌터들을 어깨빵하며 지나갔다.
방어막을 몇 겹을 씌우고, 버프를 받은 S급들이었지만 몬스터형 마족의 육탄돌격을 막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헌터들은 45도의 진형을 유지해냈고 최초 돌격을 비껴낼 수 있었다.
우리를 스쳐 지나간 마르바스를 선두로 해서 몬스터들이 꼬리처럼 이어졌다.
“헌터들 전체 좌측으로 90도 회전!”
S급이 뭉치지 않았으면 마르바스의 돌진은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헌터들은 마치 한 자루의 검처럼 비스듬하게 기울인 진형을 갖추었다.
마르바스와 몬스터들은 우리를 튕겨 나간 다음 기차놀이를 하듯 크게 대회전을 했다.
그리고 조금 전처럼 다시 마르바스가 선두에 서서 덤벼들 준비를 했다.
일촉즉발의 순간.
하지만 마족이 맨 앞에서 덤비는 이때, 잘하면 기회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예라, 차지율, 노승민! 마족의 뿔 단검을 꺼내요!”
은둔자를 죽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단검 세 자루가 준비되었다.
“샤샤, 제리!”
샤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둔자의 뿔 역시 가공되어 하나는 제리의 손에 들렸고, 다른 하나는 샤샤의 화살촉이 되었다.
“캬아아아!”
나는 마족의 뿔 단검, 뿔 화살을 들고 있는 인원과 눈빛을 교환했다.
놈이 다시 달려오고 있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