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던전 속 전투 (2)
콰직!
퍽!
1선의 탱커들이 적과 격돌했다.
차지율, 노승민, 팬니르가 최전방에서 탱커 역할을 해주었다.
“홀리 크로스!”
전직 성녀 하모스가 대단위 보호막을 걸어주었다.
“멀티 버프!”
그리고 S급 협회장이 버프를 넣어주었다.
“디바인 프로텍션, 디바인…….”
나도 최전방 헌터들에게 열심히 보호막을 넣어주었다.
“알타르 님! 쏴버려요!”
1선에서 충돌이 일어났다고 해도 적의 수가 1만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무기가 많이 남아 있었다.
나의 주문에 알타르가 무기들을 허공에 띄웠다.
“플로팅!”
무기와 함께 공중으로 날아간 팬니르가 무기들을 난사했다.
허공에서 지면으로 내리꽂히도록 무기들을 발사했다.
다연발 발리스타와 국제 사회로부터 전해 받은 무기들은 상대의 S급들이 방어를 한다고는 해도 피해가 없을 수 없었다.
슈슈슈슉.
퍼퍼퍼펑.
무기의 성능은 무시무시했다.
가까우니까 더 잘 먹히는 것 같았다.
적들의 초인급 기사들도 일선에서 우리의 S급들과 대결하느라고 뒤따라오던 일반 몬스터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좌, 우, 후방 결계 집중하세요!”
전방에서 힘 대결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좌, 우, 후방이 뚫리면 난장판이 될 것이었고, 그러면 수가 부족한 우리가 불리했다.
한쪽 방향에서만 싸우게 한 뒤 무기를 활용하며 천천히 녹이는 것이 디펜스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적들도 그것을 아는지 좌우를 뚫어보려고 애썼다.
S급 탱커 셋이 버티고 있는 곳보다는 옆쪽 구멍을 뚫으려 했다.
전직 성녀 하모스와 협회장은 결계에 집중했다.
“아이솔레이션!”
“방어력 상승!”
마법사의 절반 이상이 좌, 우, 후방의 결계를 만드는 데 투입되었고 하모스와 협회장까지 결계 진형을 유지하는 데 달라붙었다.
“민준 헌터님!”
협회장이 손짓으로 전체를 아우르며 내 이름을 외쳤다.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주었다.
지금 상황에서 인지 공유 스킬을 통해 전체를 지켜보며 통솔할 수 있는 사람은 협회장과 나, 둘뿐이었다.
그런데 협회장이 결계에 투입되자 나에게 전체적인 조율을 하라는 뜻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인지 공유로 들어오는 정보가 나의 시각과 중첩되는 것이 있어서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였다.
마치 눈이 여러 개가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저 멀리 사방에 깔려 있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우선 알타르의 영점을 먼저 잡아야 할 것 같았다.
“알타르 님.”
정신없이 적들에게 원거리 무기를 난사하던 알타르가 내가 부르는 소리에 대답했다.
“네, 스승님!”
“그렇게 난사하지 마시고 서너 발 쏘고 제대로 들어가나 확인하시고, 다시 서너 발 쏘고 하세요.”
“아!”
알타르가 흥분했던 것 같았다.
슈슈슉!
스윽.
알타르가 제대로 들어가는지 확인한 다음 다시 발리스타를 발사했다.
슈슈슉!
퍼퍼펑!
정확도가 확실히 상승했다.
난사보다는 조금씩 끊어서 쏘는 것이 명중률이 높았다.
공중에서 알타르가 지원사격을 하니 확실히 전투가 수월해졌다.
전방을 살폈다.
전방에서는 과연 초인급, S급들의 전투라 어마어마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전방을 보니 왜 몬스터들이 좌, 우, 후방을 뚫으려 애쓰는지 알 것 같았다.
초인급 대결의 근처에 가까이 가면 죽음이었다.
초인급 몇 쌍의 대결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결계를 지었다.
초인들이 대결하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이쪽으로 넘어오려는 몬스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초인급 대결의 여파로 죽거나 큰 부상을 입었다.
그렇다고 결과적으로 전후좌우 모두 큰 틀에서는 결계가 세워져버렸다.
물론 몇 명의 S급이 전방을 모두 커버하고 있지는 않았다.
대략 절반 이상의 영역은 S급들이 차지하고, 나머지는 일반 헌터들과 몬스터들의 접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인지 공유로 상황을 보니 적의 초인급은 다섯 명이었다.
뼈무사, 모래술사, 화염술사, 창술사, 괴수형이었다.
뼈무사는 기예라와 싸우고 있었다.
네크로멘서의 뼈기술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뼈가 순식간에 자라면서 공격과 방어를 하고 있었다.
마치 식물형 스타일의 마법사와 비슷했다.
하지만 뼈 자체의 강도가 단단해서 방어와 공격을 하는 접근형 무투파였다.
“아이스 블레스트!”
기예라의 마법이 뼈무사에게 직격했다.
기예라를 상대하고 있는 뼈무사뿐만 아니라 주변 수십 미터의 범위로 강렬한 우박 샤워가 쏟아졌다.
하지만 뼈무사는 마치 거북이 등껍질에 숨은 것처럼 뼈무덤 속에 숨었다.
아이스 블레스트가 지나가자 다시 뼈무덤이 갈라지며 큰 뼈로 된 검을 들고서 기예라에게 다가왔다.
그 옆에서는 차지율이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차지율이 특유의 검술인 공간 베기를 사용했다.
슈각!
마치 공간 자체가 잘린 듯한 검술이었다.
하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서걱!
검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곳에는 모래알이 흩어질 뿐이었다.
상대는 모래로 몸을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모래술사였다.
검이 지나가면 지나가게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차지율 앞, 뒤, 옆의 땅에서 뾰족한 모래의 창이 솟아올랐다.
캉, 캉, 캉!
물론 그 정도 기습에 당할 차지율은 아니었다.
하지만 차지율의 공간 베기에 대한 회피 기능이 높은 상대였기 때문에 서로 유의미한 타격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 옆은 화염술사와 노승민의 켄타우로스가 맞붙고 있었다.
켄타우로스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라서 덩치가 맞아 둘이 붙고 있는 모양인데 켄타우로스가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또한 그 옆에서는 던지는 창을 사용하는 기사와 팬니르가 격돌하고 있었고 그 옆은 거대 킹콩형 몬스터가 큰 제지를 받지 않고 일반 헌터들과 싸우고 있었다.
물론 그쪽에도 A급 탱커 네댓 명이 달라붙어 버티고 있었지만 아슬아슬했다.
당장 눈앞의 적과 싸우고 있는 헌터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전체를 조망하는 나는 알 수 있었다.
미스매치였다.
“르녹, 꾸얀! 소환!”
르녹과 꾸얀이 소환되었다.
“르녹과 꾸얀은 알타르의 무기들을 맡아요. S급들 말고, 약간 뒤쪽의 몬스터들을 집중 조준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알타르 님! 차지율의 모래술사를 맡아요!”
“스승님! 알겠습니다!”
알타르가 차지율이 상대하고 있는 모래술사를 맡았다.
모래술사는 몸의 형태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어서 검사인 차지율이 싸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마법사인 알타르의 입장에서는 그럭저럭 해볼 만한 상대였다.
“익스플로젼, 익스플로젼, 윈드!”
쾅! 쾅!
알타르는 가볍게 두 번의 폭발을 일으킨 다음 윈드로 모래들을 멀찍하게 날려버렸다.
물론 그 모래들은 다시 모래술사 쪽으로 끌려오긴 했지만 모래를 모으는 시간보다 폭발과 바람으로 날려버리는 시간이 조금 더 빨랐다.
마치 바람으로 낙엽 청소를 하듯 알타르가 모래술사를 멀찍하게 밀어내고 있었다.
“차지율 님은 뼈무사에게 이동하세요.”
기예라의 주먹만 한 얼음덩어리로 뼈무덤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지율이라면?
장담컨대 저 뼈무덤은 다섯 합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서걱!
차지율이 기예라를 도와 뼈무사에게 가자마자 뼈무사의 뼈로 만든 검이 잘렸다.
이런, 다섯 합이 아니라 단칼이었다.
“기예라는 노승민 헌터의 불덩어리 적에게로, 노승민은 오른쪽의 킹콩 비슷한 괴수형에게로 가세요.”
“좋아요. 아이스 블래스트!”
몸 자체가 화염인 화염술사에게는 기예라가 딱이었다.
네가 화염술사면 우리에게는 얼음마녀가 있었다.
기예라는 자신이 왜 얼음마녀라고 불리는지 화염술사에게 증명해주었다.
극저온의 온도와 눈, 우박에 화염술사의 불꽃이 점점 줄어들었다.
노승민의 켄타우로스는 킹콩과 맞붙었다.
이제야 조금 어울렸다.
괴수는 괴수끼리 싸워야 제맛이었다.
“우아아아!”
“우오오오!”
어느 편 괴수가 지른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덩치 둘이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치이이익!
그런데 켄타우로스가 화염술사와 싸우면서 몸체가 뜨겁게 달아오른 것이 꼭 손해는 아닌 것 같았다.
켄타우로스와 힘겨루기를 하는 킹콩이 뜨거움에 데미지를 입는 모양이었다.
마지막 초인급 대결을 벌이고 있는 곳은 팬니르였다.
적은 작은 창을 던졌는데 창은 끊임없이 계속 생성되었다.
원거리를 선호하는 적과 단거리 검사인 팬니르가 싸우려면 팬니르가 거리를 좁혀야 했다.
하지만 팬니르가 거리를 좁히려 하면 적은 뒤로 물러나버렸다.
그럼 문제는 팬니르가 수천 이상의 적들의 한가운데로 포위되어버린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팬니르라고 해도 수천 이상의 적에게 둘러싸이는 것은 위험했다.
“샤샤 소환!”
화아악!
“기다렸어요!”
상대가 창을 던지는 원거리 공격이라면 우리에게는 창보다 더 원거리인 궁수가 있었다.
“샤샤! 팬니르와 협공해!”
“알겠어요. 멀티 피닉스 에로우!”
샤샤는 일찍 불러주지 않고 물자 담당을 시킨 것이 아쉬웠다는 듯 열정적으로 화살을 날렸다.
피피피피핑!
화살이 아니라 기관총처럼 보였다.
노란빛을 내며 섬광탄처럼 날아가는 화살은 창을 던지는 적에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적은 샤샤의 화살을 어찌어찌 피하며 가끔씩 창을 던졌다.
팅!
팬니르가 가볍게 창을 튕겨냈다.
팬니르 탱킹에 샤샤 공격.
이보다 더 깔끔한 조합은 없었다.
전체적인 조율을 완성했다.
비슷한 성향의 전사들끼리라면 개인의 실력, 집단의 수 등이 전투의 승패를 좌우하겠지만 이렇게 다양한 조합의 전투에서는 상성을 맞춰주는 일이 중요했다.
“힐, 힐, 힐!”
힘들어 보이는 헌터들에게 힐을 넣어주었다.
“알파야! 저기 끌려 들어가는 헌터! 용병 걸어서 소환!”
자칫 잘못하면 집단에서 홀로 튀어나와 끌려 들어가서 포위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끌려 들어가고 포위당하면 제아무리 A급, S급이라고 해도 힘들었다.
적들의 수가 어마어마하고 저쪽에도 S급이 다섯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용병 승낙했습니다.
“소환!”
“으어어어어!”
해당 헌터는 얼떨결에 적들에게 끌려 들어가 죽기 직전에 소환된 것이라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디바인 홀리 큐어!”
조금 센 치유를 걸어주자 정신을 차렸다.
“아, 고맙습니다!”
“끌려 들어가면 죽어요. 진형을 지키세요.”
헌터가 넙죽 고개를 숙였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자, 가봐요. 용병 취소.”
죽다 살아난 헌터가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전방의 대결을 지켜보니 팬니르, 샤샤 조합이 2:1로 싸우고 있어서 조금 유리해 보였다.
유리한 쪽에 더욱 힘을 보태주었다.
“르녹, 꾸얀. 발리스타를 팬니르, 샤샤와 싸우고 있는 쪽을 향해 쏴줘요.”
“네! 알겠습니다!”
“팬니르님! 용병 등록해주세요. 바인드, 바인드, 바인드!”
팬니르를 용병 등록한 후 바인드를 날려주었다.
적의 창술사는 샤샤의 화살 공격, 르녹과 꾸얀의 발리스타 공격, 나의 바인드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때 팬니르가 쭉 하고 달려들었다.
그동안 몇 번 비슷한 패턴으로 팬니르가 달려들었고 창술사가 뒤로 물러나면 팬니르가 포위될 것을 피해 끝까지 달려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샤샤, 르녹, 꾸얀, 나의 원거리 견제에 한 타이밍 늦게 뒤로 물러나 팬니르와 가까워졌으며 팬니르 역시 포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바인드, 바인드, 바인드!”
피피피핏!
퍼퍼퍼펑!
나와 샤샤, 르녹과 꾸얀은 서로 이야기하지도 않고도 환상의 호흡을 맞췄다. 나는 팬니르의 좌측, 샤샤는 우측, 르녹과 꾸얀은 후방의 집중 견제했다.
고립된 공간에서 팬니르와 창술사가 맞짱을 뜰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공격력 상승!”
타이밍 좋게 협회장이 팬니르에게 공격력 상승 버프를 일점으로 넣어주었다.
우우우웅!
순간적으로 팬니르의 오러가 어마어마하게 길어졌다.
슈칵!
적은 피한다고 피했지만 길어진 팬니르의 오러를 다 피하지는 못했다.
적인 창술사의 몸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팬니르 소환!”
화아악!
포위되려 했던 팬니르가 내 옆으로 소환되었다.
팬니르는 목례를 하고는 다시 전방으로 나아갔다.
적은 S급이었고 지금 팬니르는 나의 용병이었다.
적과 싸우고 있던 것이 팬니르, 샤샤, 르녹, 꾸얀, 나였는데 샤샤는 소환수였고 나머지는 용병이었다.
버프를 넣어준 협회장도 있었지만 협회장을 포함해도 6명 중 5명의 경험치가 일정부분 나에게 들어오는 구조였다.
현재 용병은 르녹, 꾸얀, 하모스, 알타르, 팬니르였다.
협회장도 용병을 걸까 했지만 한 자리 정도는 남겨둬야 했다.
전황을 다시 한번 넓게 살펴보았다.
원래 한 곳이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것이었다.
창술사가 죽자 그자를 담당하던 팬니르, 샤샤 그리고 나와 르녹과 꾸얀의 공격이 다른 곳을 향할 수 있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레벨 세 개를 올리고 보니 알 것 같았다.
잘하면 오늘 10렙은 찍을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마족을 레벨업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국제 협회 사람들이 어떤 마음인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꿀꺽.
입맛이 당겼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