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던전 속 전투 (1)
민아는 친구 가영이와 함께 잠실에 올라왔다.
가영이와 함께 역사 수업을 들었는데 지정된 몇 군데 중 한 곳을 방문하고 답사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답사를 적당히 하고 민아와 가영이는 오랜만에 서울 구경을 하고 핫 플레이스로 유명한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가영이가 민아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민아야… 넌 좋겠다.”
뜬금없는 가영이의 말에 민아가 왜냐는 듯 눈으로 물었다.
“너네 오빠가 이제 우리나라 최고의 길드장 아니야? S급이 둘이라며? 천마도 오성도 하나밖에 없는데 샤론에는 둘이잖아.”
“오빠가 길드장이지, 내가 길드장이냐.”
“그래도 너도 서클 뚫었다며. 어때? 서클 뚫으면 막 힘이 세져? 마법도 막 할 줄 알아?”
“하아…….”
마법사라는 말에 민아는 깊은 한숨이 나왔다.
“없어.”
“뭐?”
“없다고.”
“서클을 만들었다며?”
“응.”
“그런데 마법을 못 써?”
“응. 마법을 팡팡 쓸 줄 알면 내가 답사 보고서를 쓰러 왜 여기까지 오겠니?”
“아…그렇구나.”
오빠 덕분에 자신이 얼마나 마법에 재능이 없는지도 철저히 알게 되었다.
사실 1서클도 스스로 깨달았다기보다는 알타르가 반강제로 서클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사실은 쓸 수 있는 마법이 하나 있었다.
오빠가 준 스킬인데 큐티라는 스킬로, 조금 귀엽게 보이는 스킬이었다.
여자로서 아주 감사한 스킬이었지만 눈을 반짝이며 마법을 묻는 친구에게 자랑할 만한 스킬은 아니었다.
민아는 그저 오빠가 준 마정석까지 포함된 아이템을 활성화할 수 있는 역할만 가능했다.
지이이잉.
민아와 가영이의 스마트폰에 짧지만 강력한 문구가 떴다.
[하남, SS급 던전 발생]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서로를 보았다.
얼른 스마트폰으로 뉴스 속보를 틀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면 어디든지 간다. 던전 브레이크 전문기자 조금만입니다. 저는 지금 하남 B 던전 입구에 나와 있는데요. 보시는 바와 같이 던전의 포탈이 어마어마하게 커진 상태입니다.]
뉴스 화면이 일렁거리는 포탈을 비췄다.
포탈은 비행기도 출입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해져 있었다.
에에에엥!
너른 호수가 보이는 아기자기한 카페에 어울리지 않는 대피 사이렌이 울렸다.
[지금 하남을 중심으로 반경 20km 이내에서는 주민 대피령이 내려진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하남, 성남, 광주, 남양주, 구리 및 용산구 동작구를 포함한 동쪽 지역은 모두 대피하셔야 합니다.]
조금만 기자의 뉴스 화면은 많은 수의 헌터들을 비췄다.
[지금 헌터들이 줄을 맞추고 던전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아도 상당한 수입니다. 제 눈에만 해도 헌터 협회장, 천마 차지율 헌터, 샤론의 김민준 헌터, 오성의 노승민 헌터 등이 보입니다. 대한민국의 대표 헌터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철컥.
척, 착착.
헌터들은 저마다의 무기를 점검했다.
검을 쓰는 자들은 자신의 애검을, 다른 무기를 사용하는 자들은 저마다의 무기를 손질했다.
[마나 포션, 힐링 포션, 마력 폭탄 지급합니다. 가져가세요.]
포션과 휴대용 폭탄류들이 무상으로 지급되었다.
그것들을 챙기는 헌터들도 있었지만 이미 충분히 준비해왔는지 더 챙기지 않는 헌터들도 있었다.
뉴스 화면을 본 가영이가 민아를 보았다.
“너네 오빠…….”
민아는 얼른 오빠에게 문자를 보내보았다.
[하남 던전에 들어가?]
한참 만에 오빠의 답장이 돌아왔다.
[ㅇㅇ]
[SS급 던전에 들어간다고?]
[응. 올 때 피토니 사올게.]
“민아야… 왜 그래?”
“아냐. 이제 들어가려고 하나 봐.”
에에에에엥!
“우리도 대피소로 가야지.”
“그래.”
* * *
“입던하겠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최선의 준비를 했다.
“갑시다.”
“고고”
“들어가!”
포탈의 입구가 커서 위압감이 들었지만 여러 헌터들이 한 번에 여러 줄로 들어갈 수 있어서 편했다.
꿀렁거리는 포탈을 통과하자 보이는 것은 나무였다.
거대한 아름드리 밑동을 가진 높은 침엽수.
그리고 그 침엽수에는 유인원 비슷한 몬스터들이 마치 과일처럼 매달려 있었다.
“캬아아아!”
“쿠오오오!”
“적이다!”
“나무 위야!”
“언덕 너머에도 많아!”
포탈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몬스터로 이루어진 과수원이었다.
“쳐라!”
“파이어!”
들어오자마자 접전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몬스터가 있다고 정신 줄을 놓을 수는 없었다.
“드론 띄워요.”
위이이잉.
관측용 드론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풀썩.
나는 자리에 앉았다.
두 눈을 감고 지금의 상황을 온전히 머릿속에 넣으려고 했다.
여러 방향으로 날아간 드론의 시야는 드론을 조종하는 헌터에게로 넘어가고, 그 시야는 다시 나에게로 넘어왔다.
드론뿐만 아니라 오백여 명의 헌터들의 시야는 공간 전체를 장악하게 해주었다.
지금 이 공격대의 리더는 협회장이었다.
나는 바로 옆에 있던 협회장에게 상황을 전해주었다.
“저쪽에 적이 많네요.”
나는 한쪽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협회장이 모두의 귓가에 또렷하게 들리는 음성으로 지휘를 했다.
“모든 공격대에게 알린다.”
갑자기 전방에서 높이 붉은 빛이 솟구쳤다.
“지금 붉은 빛이 솟구치는 곳이 전방이다.”
“적은 다수, 우리는 소수. 먼저 진형을 만들도록 한다. 몬스터가 모든 방향에서 접근하지 못하도록 마법사들은 좌, 우, 후방에 접근을 막는 마법을 펼친다. 전방은 천마와 오성 길드가 탱킹의 선봉을 맡는다.”
귀에 꽂히는 지휘였다.
도착하자마자 몬스터들이 달려들어서 사방에 괴성이 난무했다.
당장 눈앞의 몬스터를 베고 있으니 다른 이의 지휘가 먹히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S급 커맨더는 달랐다.
오백 명의 헌터들을 물 흐르듯 지휘했다.
“좌측 크리스탈 길드에서 벽을 더 두텁게 쌓도록 합니다.”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에 맞추어 음률이 변하듯 협회장의 지휘에 크리스탈 길드가 빙벽을 더욱 두텁게 쌓았다.
몬스터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즉석에서 제작되었다.
우측에는 불꽃, 후방은 가시덤불 위주의 장애물이 설치되었다.
일부 몬스터들은 장애물을 극복해보려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전방으로 밀집되었다.
“아시다시피 우리의 최후방에 있는 것은 포탈입니다. 우리가 뚫리면 포탈을 타고 저들이 일반 시민들에게 퍼져나갈 겁니다.”
싸워야 하는 이유가 마치 북소리를 울리듯 마음을 울렸다.
“그렇다고 죽어도 막으라는 건 아닙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포탈로 일부 몬스터를 내보내고 해결할 수 있는 만큼만 해결할 겁니다.”
그렇다고 마냥 희생하라는 말은 또 아니라서 더 믿음이 갔다.
전방에서는 치열하게 전투가 진행되었다.
공격대는 벌써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을 썰었다.
인지 공유 스킬로 본 전방의 헌터들은 벌써 피범벅이었다.
“디바인 프로텍션! 힐, 힐, 힐.”
보호막을 채워주고 힐을 넣어주었다.
약 20분쯤 지나니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주변에 몬스터들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 리가 없었다.
몬스터들이 흩어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야. 이거 입던하자마자 빡세네.”
“그래도 할 만한데? 설마 이게 단가?”
“에이! 그럴 리가.”
“이런 대규모 공대는 정말 오랜만이야.”
“아따, 우리 협회장님 지휘가 귀에 팍팍 꽂혀서 좋구만.”
잠깐 짬이 나서 나는 카나에게 쪽지를 보냈다.
[카나?]
[네, 민준님.]
[공격대와 함께 던전 안으로 들어왔어. 어디야?]
[저는 던전 외곽을 돌고 있어요. 쟤들이 자꾸 쫓아와서 뺑뺑 돌고 있어요. 지금도 저를 뒤쫓고 있는걸요.]
[그래? 얼마나?]
[음… 1만?]
카나와 스무 명의 길드원이 무려 1만 마리 몬스터를 데리고 어그로를 끌고 있었다.
[대단하네. 상황은 어때?]
[비행 차량이 빠르니까 접근하지 못하고 있어요. 달아났다가 뒤쫓아오면 또 달아나기를 반복하고 있었어요.]
[그래? 그럼 잠깐 외곽을 돌고 있어 봐. 우린 포탈에서 나오자마자 수비진형을 갖추고 버티고 있어.]
[알았어요. 조금 더 돌고 있을게요.]
[그래.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네.]
카나가 어그로를 끌고 있다니 함부로 이쪽으로 오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사이 전방에서는 하모스가 힐을 뿌리고 있었다.
전직 성녀답게 회복력이 아주 제대로였다.
S급 힐러의 힐은 어마어마했다.
물론 지금은 초반이고 방금 전에는 일반적인 수준의 몬스터뿐이라서 크게 다친 헌터도 없었다.
잠시 기다렸다.
“왜 안 오지?”
“그러게. 안 와도 문젠데.”
좌, 우, 후방은 마법으로 방해물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 말은 지속적으로 마력이 소모된다는 뜻이었다.
부대의 규모가 커질수록 지형의 요소를 잘 고려해야 했다.
그런데 공격대는 포탈을 지켜야 해서 유리한 지형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마법사들을 이용해 새로운 지형을 만드는 것이었다.
위이이잉.
드론을 더 멀리 뿌렸다.
“전방을 기준으로 3시 방향에서 몬스터 떼가 몰려옵니다.”
“수는?”
“음… 엄청 많습니다. 대략 1만 마리 정도 됩니다.”
조금 전 전투가 입가심이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한판 뜰 때가 되었다.
나는 드론 조종을 하는 곳으로 가서 드론의 화면을 함께 보았다.
“여기, 여기, 이놈은 S급입니다.”
제국을 정탐하며 S급들의 얼굴들은 익혀두었다.
지금 오고 있는 1만 마리는 제국의 S급들이 이끄는 부대였다.
드론이 찍은 화면으로만 보아도 S급이 다섯은 보였다.
제국의 S급들이 샤벨타이거와 같은 맹수류의 몬스터를 다가오고 있었다.
두두두두.
지축이 흔들렸다.
이거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몬스터 1만 또는 소수의 강자가 따로라면 전략은 쉬웠다.
몬스터들만 있다면 튼튼하게 방어하면 개체별로의 체력과 공격력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승리였다.
반대로 소수 강자들이 있다면 이쪽이 거리를 넓게 벌리고 물량전, 차륜전으로 승부를 걸어야 했다.
하지만 상대 쪽에 물량과 소수 강자들이 섞여 있다면 전술을 짜기가 어려워졌다.
튼튼하게 가드를 올리고 뭉쳐서 숨어 있으면 몬스터들에게 쉽게 포위된 후 소수 강자들이 그 틈을 벌려 다수의 몬스터들이 들어오게 된다.
그렇다고 넓게 벌린 후 거리를 두며 차륜전을 걸면 다수의 몬스터들과 개별적으로 싸워야 하니 이것도 안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모르고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선물함.”
샤샤가 다연발 발리스타를 여러 대 넣어두었다.
“팬니르 님, 소환.”
화아악!
팬니르가 소환되었다.
이로써 S급 한 명 추가였다.
“여기다 꺼내면 됩니까?”
그것도 그냥 S급이 아니라 대형 원거리 무기를 들고 온 S급이었다.
“알타르 님, 소환.”
“스승님!”
알타르도 나의 영지에서 가져온 무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 팬니르, 알타르가 도깨비방망이처럼 무기들을 꺼내기 시작하자 주변 헌터들이 놀라기 시작했다.
“자, 준비되었으면 쏘세요!”
원거리 무기들은 너무 접근하기 전에 발사해야 했다.
슈슈슈슉.
다량의 무기들이 불을 뿜으며 하늘을 날았다.
쏘면서 드론을 통해 명중하는지 지켜보았다.
펑, 펑, 펑!
적의 수가 1만이나 되니 대충 쏴도 들어갔다.
지이이잉.
하지만 저들의 S급들이 요격을 시작했다.
팬니르가 가져온 ICBM이 날아갔다.
저거 한 발이 건물 한 채 가격이었다.
기대를 가지고 결과를 지켜보았다.
슈칵!
하지만 적들도 뭔가 감을 잡았는지 무려 마력 ICBM마저 요격에 성공했다.
저래서 소수 강자들이 무서운 거였다.
괜히 한계를 벗어났다고 초인이라 부르는 게 아니었다.
몬스터만 있다면 수가 많아도 싹 녹여버리고 돈으로 때려부으면 끝나는데 저들 때문에 그런 방식의 전투가 불가능했다.
S급들의 비호를 받으며 몬스터 군단이 몰려왔다.
두두두두.
“준비.”
하지만 이쪽도 S급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날아오는 대형 마법을 요격할 수 있는 헌터가 이쪽도 다수였다.
지이이이.
화르르륵!
오러와 마나를 둘러싼 S급들 그리고 수백수천의 헌터와 몬스터들이 격돌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