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입던
카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포탈을 통해 나오고 있는 것은 제국의 황제인 마르바스였다.
그 옆의 몬스터들도 낯이 익은 모습들이었다.
카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스무 명의 헌터들.
자신이라면 어떻게든 달아날 수 있었지만 이들은 아니었다.
몰살.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였다.
“선물함!”
카나는 얼른 비행 차량을 꺼냈다.
“빨리 타요! 전부!”
비행 차량은 스무 명이 타기에는 조금 비좁았다.
하지만 지금 비좁은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헌터들도 상황을 눈치챘는지 얼른 비행 차량으로 탑승했다.
슈우우욱!
적의 마법사가 불덩이를 날렸다.
거리가 적당히 있어서인지 불덩이는 멀리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카나는 얼른 방패를 꺼내 불덩이를 막아내었다.
슈우우욱!
펑!
펑!
“유환! 운전석에 앉아서 오른쪽 손잡이를 위로 올려요!”
카나가 날아오는 마법들을 막아내며 소리쳤다.
“알았어요!”
기우뚱.
쿵쾅!
비행 차량이 꿈틀꿈틀하며 이상한 움직임을 보였다.
타다다다닥!
먼저 나온 몬스터들이 가까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륵.
카나는 칼날 방패를 꺼내 몬스터들을 향해 휘둘렀다.
촤아악!
슈칵!
몬스터들이 칼날에 잘려 피와 고깃덩어리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우우우웅.
그사이 비행 차량은 어찌어찌 몸체를 띄우고 있었다.
“카나 님!”
유환이 카나를 불렀다.
타다닥.
휙.
카나는 점프를 높게 해서 비행 차량 위에 올라탔다.
“올라탔어요! 위로 날아올라요!”
“네!”
꿀렁. 꿀렁.
비행 차량은 장유환의 대답과 다르게 꿀렁거리며 이상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어찌어찌 적들이 나오고 있는 포탈에서부터는 멀어지고 있었다.
스으으으응.
이제 장유환이 감을 잡았는지 비행 차량이 대각선 위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슈우우욱!
펑!
마법들이 계속 날아왔지만 멀리서 쏘는 마법 정도는 카나가 막아낼 수 있었다.
점이 되어 멀어지는 몬스터들과 포탈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안전하지는 않았다.
아직 이곳은 던전 안이었다.
* * *
서울 동부 포탈 감시청.
감시청에서 근무하는 김 대리는 앉아 있으면 졸리고, 서 있으면 다리가 아파서 최근 서서 일하면서 앉았다 일어나기를 해주는 스쿼트 근무에 맛을 들이고 있었다.
“읏차.”
삐삐.
기합 소리에 맞춰 마나 수치 급등을 알리는 알림음이 들렸다.
“잉?”
하남 B 던전에 표시된 마나 수치 그래프가 급상승하고 있었다.
“…뭐야?”
이해하기 힘든 수치였다.
하남 B 던전은 말 그대로 B급 던전이었다.
그런데 이 수치는 S급 던전 브레이크 때보다도 훨씬 높았다.
다급히 팀장을 불렀다.
“팀장님!”
옆에 앉아 있었어야 할 팀장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화장실에 갔다 오는 듯 팀장이 들어오고 있었다.
“왜?”
“하남 B 던전의 수치가 2만을 뚫었어요!”
“뭐?!”
팀장이 다급히 그래프를 보았다.
“오, 이런…….”
사색이 되어가는 팀장의 얼굴 표정을 보니 큰일이 났다 싶었다.
팀장이 소리를 질렀다.
“뭐 해! 헌터 협회, 경찰청, 청와대 핫라인, 싹 다 연락 돌려!”
* * *
사무실에서 함께 화면을 보던 참모들이 의견을 냈다.
“제국군의 수가 조금 줄어든 것 같지 않아요?”
“수가 줄었다고?”
“저기 봐요.”
화면에서는 제국군들이 주로 사용하던 막사를 비추었다.
그곳에서는 빈 막사만 남아 있고 제국군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뭐 어디 훈련이라도 갔겠지.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어디서 나오겠지.”
“그렇겠죠?”
“아이고, 화면만 보는 것도 힘드네. 좀 쉬었다 합시다.”
“그래요.”
내 영지를 보는 것과 제국을 염탐하고, 남의 영지인 디아론 영지를 지켜보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샤론 영지 때나 지금의 서모너 영지를 지켜볼 때는 절로 흐뭇하고 힘이 생겼는데 이상하게 같은 화면인데도 제국이나 디아론 영지는 오랫동안 보는 것이 힘들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그랬다.
“그런데… 카나는 잘 갔으려나?”
샤샤가 팝콘을 챙기면서 대답했다.
“B급 던전인데 문제가 생기기가 더 어렵겠죠.”
“그렇지?”
“이것 드실래요?”
“어, 땡큐.”
그때 카나의 쪽지가 날아왔다.
[민준 님!]
나는 얼른 답을 해주었다.
[어, 카나야. 던전은 잘 들어갔어?]
[마르바스가 나타났어요! 제국군으로 추정되는 몬스터들이 대거 나타났어요! 던전 안에 포탈을 열고 나타났어요!]
[뭐라고?]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그래서? 무사해? 소환할까?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는데? 전투 중이야?]
[저는 괜찮아요. 그리고 길드원들도 무사해요. 지금 비행 차량을 타고 최대한 멀리 달아나고 있어요. 이곳 던전의 크기가 서울만 하다고 해서 달아날 공간은 여유가 있어요.]
“아…….”
던전 안에 포탈?
이중 던전이었던 것 같았다.
방금 전 제국군의 숫자가 줄어 보인다고 했는데 그것들이 카나가 있는 곳으로 포탈을 타고 공간이동을 했을 수 있다.
“이럴 수가…….”
[카나야! 잘 피하고 있어. 금방 들어갈게.]
[네. 고마워요. 저 혼자라면 어떻게든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은데 길드원들은 그러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 알았어.]
지이이잉.
때마침 스마트폰이 울렸다.
스마트폰에 뜬 이름은 협회장이었다.
“네, 협회장님.”
―하남 B 던전에 이상 현상이 발생했네. SS급 던전으로 수치가 올랐어. 자네 길드원들이 들어갔다고 들었네.
“SS급이요? 와, 놀랍네요. 카나에게는 방금 쪽지를 받았어요. 다행히 카나와 길드원들은 무사한 것 같아요. 하지만 바로 구출하러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바로 던전으로 오게나. 나도 가겠네.
“네. 감사합니다.”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컥.
바로 옆의 길드 사무실을 열었다.
여긴 아직 사고가 터진 줄 모르고 있었다.
“동서 형님!”
내가 큰 소리를 지르자 동서 형님을 비롯한 몇몇 헌터들이 쳐다보았다.
부길드장이 놀란 듯 쳐다보았다.
“…어, 왜?”
“하남 B 던전이 SS급으로 등급이 올랐어요. 저는 당장 가볼 테니 뒤를 부탁드려요.”
“뭐?!”
나는 그다음 대답도 듣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하남까지 가려면 여기서 차로 30분 정도는 가야 했다.
위이이잉.
“나랑 가장.”
“뭐?”
언제 왔는지 드론제리가 옆에 떠 있었다.
“민준 한 명이라면 드론으로 태워줄 수 있당.”
옆에는 샤샤도 있었다.
“샤샤는 가서 소환하면 된당.”
“알았어.”
“꽉 잡아랑.”
위이이잉.
나는 드론의 몸체를 잡고 매달렸다.
슈우우욱.
순식간에 드론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어우.”
카나와 길드원들이 SS급 던전에 갇혔다는 소식에 깜짝 놀라 긴장했는데 100m 상공 위를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날아가니 놀랐던 마음이 진정되었다.
아직 카나는 무사했다.
차로 30분이지만 날아가면 금방이었다.
에에에엥!
삐요삐요!
하남 일대에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사이렌 소리가 울려댔다.
다들 난리였다.
나는 카나에게 다시 쪽지를 보냈다.
[카나, 어때?]
[하늘을 날고 있어요. 마르바스와는 제법 떨어져서 그런지 적들이 보이지는 않아요. 민준 님은요?]
나도 하늘을 날고 있긴 했다.
[나도 던전에 거의 도착했어. 협회장님도 오신다고 하니까 제대로 팀을 이뤄서 들어갈 것 같아. 던전 등급이 SS급이라고 떴어.]
[네? SS급 던전이요?]
[그래.]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SS급 던전이 터진 적이 있던가?
한국에서는 S급 던전 브레이크가 최대였다.
내가 아는 바로는 외국에서도 SS급 던전이 터졌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중국의 산둥반도 던전 브레이크, 우리나라의 동해 브레이크를 떠올려보면 S급만 해도 국가 간 전쟁 규모의 사건이었다.
하물며 SS급이 튀어나온다면 대한민국에 아포칼립스가 열리는 것이다.
[민준 님, 제가 안쪽에서 뭔가를 해볼까요? 여기서도 저와 스무 명의 헌터들이 있으니까 미끼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니야. 그러지 마. 협회장과 함께 국가 차원에서 움직일 거야. 마르바스라며? 쟤들, 마족이 이끄는 국가 정규군이야. 쉽게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는 아니야.]
나는 카나에게 함부로 덤비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위이이잉.
하남 던전에 거의 도착했다.
타타타타타.
저쪽에서 헬기 몇 대가 날아오고 있었다.
다들 급한 모양이었다.
“목적지 500m 부근입니다.”
드론제리 위에서 낯선 음성이 들렸다.
내비게이션이었다.
“민준, 잘 매달려 있냥? 거의 다 도착했당.”
“그래. 아직 괜찮아. 나도 나름 A급 헌터야.”
매달려서 싸우는 것도 아니고, 매달려 있기만 한 건데 떨어지기라도 하면 A급 헌터가 아니었다.
슈우우욱.
착.
바닥에 부드럽게 착륙했다.
휘리릭.
제리도 어느새 드론을 선물함에 넣고 착륙했다.
“샤샤는 소환 안 하냥?”
“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샤샤에게 쪽지를 보냈다.
[샤샤야.]
[네.]
[샤샤는 일단 소환을 미룰게. 창고에 있는 무기들을 선물함에 가득 채워줘. 무슨 뜻인지 알지?]
[알겠어요. 자원, 물자 담당이란 뜻이죠?]
샤샤는 한 번에 잘 알아들었다.
이제 샤샤가 창고를 지키고 있으니 대형 창고에 있는 내 무기들은 선물함 공유를 통해 사용할 수 있었다.
나와 제리가 포탈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나도 이제 이 바닥에 나름 얼굴을 알려서인지 갑자기 하늘에서 날아왔어도 경계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서둘러 나에게 보고를 해왔다.
“샤론 길드장님, 던전 수치가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면 24시간 이내에 던전이 터질 것 같습니다!”
던전의 수치가 올라가는 속도가 확실히 비정상적이었다.
원래 평범한 던전들은 이삼 주는 그냥 방치해도 무방했다.
모든 던전을 생기는 족족 바로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급 던전 같은 경우에는 생기고 몇 달이 지나도 터지지 않는 것들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도 채 못 버틴다고 했다.
타다다다다.
휙.
헬리콥터가 스치듯 지나가고, 헬리콥터에서 여러 명의 헌터들이 지면으로 낙하했다.
헌터들은 재빠르게 지휘부를 만들었다.
여기저기 서로 전화를 걸고 있었고 속속 인원들이 모여들었다.
“협회장님, 오셨어요?”
“그래요. 샤론의 S급 헌터가 안에 들어가 있다고요?”
“네. S급 한 명과 B급 수준의 일반 헌터 스무 명이 함께 있어요.”
“으음… 그들은?”
SS급 던전이기에 그들의 생사를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다행히 S급 헌터인 카나에게 비행 차량이 있었어요. 거기에 다 함께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달아나고 있는 것 같아요. 연락됩니다. 아직 모두 무사해요.”
“오호! 그거 다행이군요.”
내가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있던 헌터가 외쳤다.
이곳 던전의 관리를 담당하는 헌터 같았다.
“던전 수치가 3만 이상을 뚫었습니다.”
그 말에 주변 헌터들은 잠시 멈칫했다.
3만?
“수치가 올라가는 속도가 심상치 않습니다. 수치가 일정하게 올라가지 않고, 올라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하루가 아니라 몇 시간 만에 터질 수도 있습니다.”
몇 시간?
몇 시간 만에 터지는 던전이 있던가?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던전에 관한 상식이란 모두 S급 이하였다.
처음 보는 SS급 던전이 내 상식대로 되라는 법도 없었다.
협회장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거 이러면… 우리나라 헌터들끼리 해결해야 할 것 같아.”
마족의 발생과 함께 국제 공조가 비교적 잘되고 있었다.
정치적인 협상에 걸리는 시간을 떠나서라도, 타국 헌터들의 도움을 받으려면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본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차지율 헌터가 도착했습니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돌아보니 차지율이 걸어오고 있었다.
“오성 노승민 헌터와 기예라 헌터 도착했습니다.”
나는 어디까지 용병을 걸어서 데리고 들어가야 하는지 고민했다.
“하모스 님, 소환.”
화아악.
전직 성녀, 현직 S급 힐러가 소환되었다.
그리고 디아론 영지의 팬니르에게도 연락을 했다.
[팬니르 님.]
[네, 서모너 영주님.]
[마르바스가 지구 쪽으로 침투하려고 하고 있어요. 제가 용병을 걸고 유지하고 있을 테니, 지구의 국제 사회가 원조한 무기들을 다시 선물함에 넣고 이쪽으로 넘어올 준비를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서모너 영지 차례였다.
[알타르 님.]
[네, 스승님.]
[지구에 마족 마르바스가 침공했어요. 서모너 영지의 무기들을 선물함에 채워서 넘어올 준비를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스승님.]
협회장, 차지율, 노승민, 기예라, 하모스.
내 눈앞에 보이는 S급만 다섯 명이었고 카나와 팬니르까지 합치면 일곱이었다.
그리고 사무실 창고, 서모너 영지, 디아론 영지까지 세 군데에서 물자를 수급할 수 있었다.
대장전이든 자원전이든 밀릴 이유가 없었다.
척척. 헌터들이 모였다.
약 오백 명 정도의 헌터들이 모였을 무렵 협회장이 외쳤다.
“한 시간 이내에 던전이 터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던전 브레이크를 막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모두 인지 공유를 하고 들어갑니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협회장이 오백여 명의 헌터들과 인지 공유를 했다.
협회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민준 헌터님에게는 인지 공유의 관리자 권한을 드렸습니다.”
끄덕.
익숙한 패턴이었다.
이글이글.
원래의 포탈은 사람 한두 명 정도 들어갈 크기인데, SS급이 터질 때가 되어서 그런지 포털의 사이즈가 어마어마해졌다.
그리고 그 포탈 테두리에 일렁이고 있는 부분은 마치 태양의 코로나처럼 거대하게 변해 있었다.
누군가 외쳤다.
“입던합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