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성녀의 큰 그림
민준의 어머니는 주말 저녁, 한가롭게 TV를 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던전 브레이크 전문 기자 조금만입니다. 오늘은 새롭게 샤론 길드에 등장한 S급 힐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어? 샤론 길드?”
아들 길드의 이름이 나오자 집중해서 뉴스를 보았다.
[여러분, 저는 지금 샤론 길드 사무실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데요. 이것이 무슨 줄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조금만 기자는 줄에 서 있는 사람을 인터뷰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디서 오셨습니까?]
[저유? 충남 서천에서 왔어유.]
[충남에서 이곳까지 오셔서 줄을 서고 계신 이유가 있을까요?]
[예. 치유수를 무료로 나눠준다고 해서 왔어유.]
[줄 끝으로 와보았습니다. 한쪽에 사람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조 기자는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서 안내를 하는 사람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자기소개를 해주실 수 있습니까?]
[이번에 샤론 길드에 새로 가입한 힐러 하모스라고 합니다.]
[아! 혹시 그 S급 그분이신가요?]
[네, 맞아요.]
S급 힐러라는 소리에 주변이 웅성거렸다.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여긴 기도원입니다.]
[기도요?]
[네. 치유수를 만들 수 있는 근원은 풍요와 대지의 신이십니다. 저는 이곳에 신전을 짓고 기도를 드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치유수를 받고 기도를 드린다… 거꾸로는 기도하면 치유수를 무료로 나누어준다고 볼 수 있군요.]
[맞아요. 이 치유수는 제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풍요와 대지의 신께서 주시는 겁니다. 신에게 감사해주세요. 여러분들은 치유수를 받고서 신께 감사하고, 그 감사가 다시 모여 신의 가호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지구에서 신의 가호를 나누어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신성력으로 치유수를 베풀면 신자가 늘고, 신자가 늘면 신성력이 세져서 더 많은 신자를 모집할 수 있다. 그런 건가요?]
[네, 맞아요.]
그때 옆에서 어떤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오오오! 나았어! 병이 나았어!!]
조 기자는 얼른 남자를 인터뷰했다.
[병이 나으셨나요?]
[예. 40년간 고생하며 치료하지 못한 병을 낫게 해주셨습니다. 흑흑흑.]
[정말 기적 같은 일입니다. 실례지만… 어떤 질병이셨나요?]
[무좀이었습니다.]
[군대에서 걸린 병을, 무려 40년을 함께해왔습니다. 여보! 이제 나도 식당에 가서 신발을 벗을 수 있게 되었어!]
민준의 어머니는 TV에 나오는 아들의 길드가 무럭무럭 성장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지?”
문을 열어보니 이미 택배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택배를 살펴보니 아들이 보낸 택배였다.
상자를 열어보았다.
방금 TV에서 본 치유수였다.
미소를 지으며 민준에게 톡을 보냈다.
[아들~ 뭘 이런 걸 다 보냈어.][그거 받으러 전국에서 다 오는데 엄마, 아빠도 드셔보셔야죠.]
[잘 마실게.]
[그거 원액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마시는 건 물 탄 거예요. 저도 마셔봤는데 아주 좋아요.]
[고마워.]
“엄마, 뭐 왔어?”
방문을 열고 민아가 나왔다.
“뭐야?”
“어, 오빠가 치유수를 보냈어.”
“어? 나 그거 알아.”
“원액이래. TV에 나오는 건 물 탄 거라네.”
“그래?”
민아는 얼른 한 컵을 따라 마셨다.
꿀꺽.
화아악!
상쾌함이 장난이 아니었다.
“와, 장난 아니네! 이거 상급 포션 저리 가라인데?”
“그 정도니?”
“엄마, 이제 나도 마법사잖아. 내가 이제 마나를 좀 아는데 이건 그거랑 또 달라. 마나만 가지고 만드는 포션이랑 질적으로 다르네.”
“우리 마법사님이 보는 눈이 있으시네.”
“크크크. 근데 어디 가서 마법사라고 하지 마. 1서클이라서 민망해. 나랑 같이 수업받는 유치원생이 있거든? 걔 벌써 2서클이야. 아… 재능…….”
“얘는! 그래도 각성을 했다는 게 어디니?”
“알았어.”
* * *
샤론 길드의 사무실에 한국 힐러 연합장이 방문했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힐러 연합장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네. 반갑습니다.”
내 옆에는 성녀도 있었다.
“연합장님, 이쪽이 풍요와 대지의 성녀이십니다. 성녀님, 이쪽은 한국 힐러 연합회장이세요.”
“이제는 성녀가 아닌 평범한 신자입니다. 하모스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에 무려 S급 힐러께서 오셔서 영광입니다. 힐러 연합에서는 하모스님을 힐러 연합에 모시고자 합니다. 무려 S급 힐러신데 힐러 연합을 이끌어주셔야지요.”
하지만 하모스는 고개를 저었다.
“거절할게요.”
“왜 그러시죠”
“저는 헌터로서 힐러의 중심에 서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신성력을 주시는 신의 뜻을 따르고 싶습니다.”
옥신각신 서로 줄다리기를 했다.
연합장은 하모스가 대한민국 대표 힐러가 되고, 힐러 연합의 중심이 되어주길 바랐고 하모스는 신의 뜻만 쫓기를 원했다.
결국은 가입 및 기본혜택을 받기만 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다음 날 우리는 국제 헌터 연합의 회의에 참석했다.
힐러 연합의 혜택도 꿀이었지만 그보다 심각한 건 이쪽이었다.
영상 회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화면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이제 마족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마족은 지구를 치는 척하면서 이쪽에 신경을 쓰도록 하고, 글리제라는 곳의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그들이 다시 지구로 넘어올까요?”
“마족이 다시 지구를 넘어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이쪽으로 넘어올 수 있다는 능력을 증명했고, 겨우 마족 한 마리가 넘어와 전 세계를 돌며 여러 피해를 주었죠.”
나는 국제 헌터 협회 임원진들에게 용병을 걸어서 화면으로 제국을 보여주었다.
모두 다 보여줄 수는 없어서 은둔자에 의한 피해 모습을 화면에 띄워주었다.
“이들이 지구로 쳐들어올 수 있습니다. 수동적인 포탈과 던전 브레이크가 아니라 지구에 적대적인 대규모 국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국제 헌터 협회에서는 마족에 대한 공동 대응을 하기로 다시 한번 결의했다.
“경계와 대비를 해야 합니다. 또한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란 말도 있죠. 마족을 선제공격하는 방법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전진기지를 만들어 두는 것도 좋겠죠.”
“마족을 상대할 전진기지요? 어디에, 어떤 기지를 세우자는 말씀이죠?”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 질문을 기다렸습니다. 잠시 모셔볼 분이 있습니다. 알파야, 소환!”
화아악!
프란시아의 국왕, 팬니르, 스피오크가 소환되었다.
“안녕하십니까? 프란시아의 국왕입니다. 지구인들과 만나 반갑습니다. 얼마 전 마족이 지구에 넘어가서 마계화를 시도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유감입니다.”
이세계의 국왕이 한국말로 발표하는 모습이 신기한지 화면을 지켜보는 헌터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지구에도 악의 축이라는 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글리제에서는 마족이야말로 악의 축입니다. 저들의 본거지는 글리제에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쌓인 마족에 대한 경험이 있습니다. 지구의 무기와 우리의 경험이 합치면 마족도 무섭지 않을 것입니다.”
프란시아의 국왕이 여러 화면을 보며 굳게 강조했다.
“프란시아 왕국에 대 마족 전진기지를 함께 세우길 희망합니다.”
프란시아 국왕의 발표에 여러 국가의 헌터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이었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마족을 막아야 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외부 지원을 할 만큼의 여력은 없습니다.”
“그런 건 선진국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내가 다시 발표를 이어갔다.
“네, 문제는 돈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을 보시죠.”
나는 유리관에 담긴 붉은 액체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마족의 심장을 정화한 액체입니다. 지난번 마족의 심장을 정화해서 나온 양의 30% 정도 되지요. 저의 길드에 있는 S급 헌터 카나에게 10% 정도 먹여봤는데 마력 스텟이 5 정도 올랐습니다.”
웅성웅성.
고레벨이 되어서 스탯을 올리기가 참 어려웠다.
S급 정도가 되면 스탯이 거의 정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마족의 심장은 정화 후 섭취하면 부작용 없이 스탯을 올릴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여러 소환수와 용병이 대규모 전투를 자주 하면서 경험치 파밍을 해서 레벨이 쭉쭉 올랐다.
하지만 일반적인 S급 헌터가 일주일에 한두 번 헌팅을 하는 정도로는 몇 년에 1레벨 올리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10%만 먹었는데도 S급 헌터의 스탯이 5나 올랐다?
이건 마족을 보는 프레임을 바꿔주는 말이었다.
즉, 마족은 지구에 피해를 주는 악이라는 틀을 벗어나 마족은 영약이라고 프레임을 바꿔주었다.
악당이 있는 집과 맛집 중에서 어느 쪽에 사람들이 줄을 설까?
반짝.
헌터들의 눈빛들이 달라졌다.
꿀꺽.
화면 너머에서 군침을 흘리는 헌터들이 있었다.
미국 헌터 협회에서 발언권을 요청했다.
“미국 헌터 협회에서는 100조를 투자하겠습니다.”
“허억!”
“에라이!”
천조국이 돈지랄을 시작했다.
내가 슬쩍 흘리듯이 말했다.
“참고로 미국 S급 헌터인 캡틴에게 정화된 마족의 심장이 20% 정도가 할당되었다는데 그의 마력이 얼마나 올랐을지는 모르겠군요.”
여기저기서 발언권을 요청했다.
“아랍 연합에서는 100조 받고 100조 더 투자하겠습니다.”
“중국에서는… 에잇! 체면이 있지! 100조 투자하겠습니다.”
* * *
프란시아 왕국에 지구의 자원이 대거 투입되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샤샤에게 물었다.
“샤샤야, 너 소환수 처음 되었을 때 내가 화살과 활 주던 거 생각나?”
“그럼요. 당연하죠.”
“사실 그 화살, 은행에서 대출받아서 준 거야.”
“아! 그래요?”
샤샤가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라고 말한 건 아니야. 그렇게 내가 몇억 대출받아서 널 지원하다가, 교황님께 대출받아 프란시아 왕국을 지원하다가, 이제는 국제사회를 움직여서 몇백 조 단위의 돈을 움직이니까 새삼 놀라워서 그래.”
“후후. 그만큼 민준 님이 성장하셨다는 거죠.”
“그런가?”
제국을 상대하기 위한 전진기지 설립의 최적의 장소로 선정된 곳은 예전 베이론의 왕성이었던 지금의 디아론 백작성이었다.
“마력 ICBM을 설치하러 왔습니다.”
“요게 마력 사드라고, 메테오 마법까지 요격할 수 있습니다.”
“마력 대전차 2천 기 예정되어 있습니다.”
“반마력장을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적의 마력은 이 일대에서 꺼내지도 못하게 할 겁니다.”
“8서클 함정마법을 준비 중입니다.”
“성벽이 너무 약합니다. 콘크리트라니요. 티타늄 합금으로 전부 교체하겠습니다.”
디아론 백작성은 지구의 마력공학을 사용한 무기 전시장이 된 듯한 분위기였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지구―프란시아 연합군의 디아론 백작성 요새화 작업에 몰두했다.
“어? 성녀님!”
“에이, 민준 님. 이제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이제는 그냥 사제 하모스라고 불러주세요.”
“그래도요.”
“정말입니다. 저는 한 명의 사제로 다시 시작할 거예요.”
하모스의 굳은 의지는 본받을 만했다.
“지금 지구와 프란시아 왕국이 연합해서 마족을 상대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머지않아 신성교국도 되찾을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그런데… 그건 뭐예요?”
하모스는 뭔가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큰 그림은 뭐죠?”
“아, 이거요? 조직도예요.”
하모스는 조직도를 단순한 표가 아닌 커다란 그림으로 그리고 있었다.
“사제 하모스, 성기사 샤샤, 제리, 카나, 신수 꿍이? 이게 뭔가요?”
“뭐긴요. 이곳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조직도가 조금 이상했다.
“그런데 맨 윗부분… 이게 뭔가요?”
“다 지구를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민준 님이 교주세요.”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하모스를 바라보았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