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210화 (209/230)

210화. 힐러

성녀는 신성교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상황을 물었다.

“제국군이 쳐들어왔다고요?”

성녀를 지키는 기사단장이 답했다.

“제국군뿐만이 아닙니다. 성녀님, 쿠데타입니다.”

“…네? 쿠데타라고요? 어디인가요?”

“어둠의 삼대 신전이 연합해서 들고 일어났습니다.”

“아!”

어둠의 삼대 신전은 죽음의 신전, 몬스터의 신전, 절망과 허기의 신전이었다.

이들은 풍요와 대지의 신전 측의 기세에 밀려났었다.

그들의 세력을 밀어냈기 때문에 성녀가 신성교국의 수장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삼대 세력은 한동안 기세가 꺾여서 보이지 않았고, 지구에서 일부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성녀는 그들이 다른 곳을 개척하려 하는 줄 알았는데, 제국이라는 세력과 함께 돌아올 줄은 몰랐다.

성녀가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하아… 전황은요?”

“극도로 불리합니다. 제국군의 군세는 대략 오만 정도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력이 기사급이며, 마스터급 기사들도 대거 참가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제국의 황제가 직접 지휘하고 있어서 사기가 매우 높습니다.”

“네에?! 황제가요?”

제국의 황제가 직접 친정한 적이 있던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국군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신성교국 전체가 똘똘 뭉쳐야 하는데 어둠의 삼대 신전은 제국군과 한편입니다. 또한 중립을 선언한 신전들도 여럿 있습니다.”

지구에서는 제국군의 침략인 줄 알고 바로 왔지만 이건 단순한 제국군과의 전쟁이 아니었다.

“태양의 신전, 빛의 신전은요?”

두 신전은 전통적인 아군이었다.

“그곳은 제국군과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까지 세 신전이 전부입니다.”

그때 사제 한 명이 달려왔다.

“성녀님, 제국의 황제 마르바스가 몬스터의 신전에 들어갔습니다.”

“뭐라고요?!”

다른 사제 한 명이 달려왔다.

“성녀님, 제국군이 전령을 보냈습니다.”

“들여보내세요.”

잠시 후 전령이 도착했다.

늙수그레한 할머니였다.

“안녕하십니까? 신성교국의 연합수장이신 풍요와 대지의 신전의 성녀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전령으로 온 무라나라고 합니다.”

전령을 맞이한 성녀 및 여러 인원이 살짝 놀랐다.

무라나는 제국이 자랑하는 12명의 초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저희 황제 폐하의 요구 조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신성교국의 연합수장을 몬스터의 신전 측으로 이양할 것. 둘째, 풍요와 대지의 신전이 앞으로 십 년간 신전 봉인을 할 것입니다.”

“이런!”

“뭐라고?!”

성녀는 잠시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연합수장의 자리를 내놓으라는 건 예상 가능한 내용이었다.

어둠의 신전들이 외세를 데리고 들어왔으면 이 정도는 내놓으라고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십 년간 신전을 봉인하라는 것은 십 년 동안 전혀 활동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하아…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알겠습니다. 내일 정오까지 답이 없으면 거절하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무라나가 웃으며 물러났다.

회의장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기사와 사제들은 성녀의 결정을 기다렸다.

십 년간 교단의 문을 닫으면 그동안 어둠의 신전들이 신성교국의 주류로 자리매김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쩌면 풍요와 대지의 신을 따르는 신자들이 사라져 신의 은총이 이 땅에 머무르지 않을지도 몰랐다.

기사 단장이 성녀에게 고했다.

“성녀님, 저희는 언제라도 순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교단을 지키겠습니다.”

한쪽에 있던 사제장이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저들의 세가 강성합니다. 성전을 선택하면 자칫 희생마법, 봉인마법까지 펼쳐야 할지도 모릅니다. 희생마법, 봉인마법을 펼친다면 신전을 십 년간 봉인하는 것보다도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희생마법이라는 말에 좌중이 숙연해졌다.

희생마법은 성녀가 목숨을 대가로 신전의 방어력을 높이는 마법이었다.

“말이 심하오! 희생마법이라니!”

“적들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하루의 시간을 주었을 것입니다. 희생마법과 봉인마법을 펼친다면 결국 교단을 지켜낼 수 있겠으나 신전에서는 새로운 성녀 혹은 성자를 길러내야 합니다. 십 년 신전 봉인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싸워도, 굴복해도 십 년 이상은 포교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성녀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성녀, 성물, 신자. 셋이 모두 있어야 신의 힘이 널리 퍼질 수 있었다.

“고민해보겠습니다. 모두 물러나 주세요.”

사제와 기사들이 돌아갔다.

* * *

나는 은둔자를 처치한 후 화면으로 성녀를 보았다.

성녀는 홀로 뭔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성녀님?]

[네, 민준 님.]

[상황이 어떻게 되었나요?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용병을 걸어드릴까요? 무기, 식량 말씀만 하세요.]

[음… 그보다, 민준 님은 괜찮으신가요? 신성력을 사용하기 어려우셨을 텐데 마족은 잘 해결하셨나요?]

[저요? 저는 괜찮았는데요.]

[괜찮으셨다고요?]

[네.]

성녀는 의아했다.

[상황이 급해서 사제들이 성물의 신성력을 끌어다 썼어요. 민준 님도 성물을 흡수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민준 님의 신성력도 끌려왔을 텐데요.]

[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요? 이상하네요. 저 좀 소환해주세요.]

나는 성녀를 소환해주었다.

화아악!

성녀가 내 앞에 소환되었다.

“민준 님, 신성력을 써보세요.”

“디바인 프로텍션.”

“아! 멀쩡하군요!”

나는 뭐가 문제인가 하는 눈빛으로 성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성녀는 감동한 듯했다.

“다행이에요. 고마워요.”

나는 뭐가 다행이라는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돌아가볼게요.”

성녀가 돌아갔다.

다음 날 정오가 되기 한 시간 전, 풍요와 대지의 신전에서 성녀가 회의를 소집했다.

기사와 사제들은 긴장한 듯 또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표정으로 성녀를 바라보았다.

“충분히 숙고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희생을 강요할 수가 없군요. 신전 봉인을 선택하겠습니다.”

“아…….”

“성녀님…….”

모두가 침울한 표정이었다.

앞으로 십 년 동안 풍요와 대지의 신전은 봉인되고 기사와 사제들은 신성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저는 성녀의 직위를 내려놓겠습니다. 사제장님!”

“네, 성녀님.”

“새로운 성녀 혹은 성자를 키워주세요.”

“…네? 성녀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런 말씀을 거둬주십시오.”

“저는 새로운 곳에서 최초의 신자가 되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한 번 성녀의 자리에 올라봤으니 두 번째도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아…….”

성녀의 말에 사제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성녀님… 어찌하여 모든 것을 홀로 짊어지려 하십니까?”

“홀로 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신전이 봉인된다면 새로운 곳에서 시작해야죠.”

“하지만 신성력 한 줌도 없이 어찌 홀로 시작하시려 합니까? 저희가 따르겠습니다.”

“아니에요. 신성력을 쓸 수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성녀님께서 최초의 신자가 되신다 해도 성물이 없습니다.”

성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있습니다.”

“성녀님, 설마 타국에 대여해준 성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프란시아 왕국이나 다른 곳에 대여해준 성물 역시 신전의 봉인과 함께 힘을 잃어버립니다. 성물도 없이, 성녀의 직위도 포기하고 홀로 가시밭길을 가려 하십니까? 이 넓은 글리제의 어디에서 새로운 성물을 찾으려 하십니까?”

성녀가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있습니다.”

“네?”

“있어요. 신전을 봉인해도 사용할 수 있는 성물이.”

“그런 성물은 이곳 글리제 행성 안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성녀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 후 한 시간 후 전령 무라나가 다시 풍요와 대지의 신전을 찾아왔다.

“어떤 결정을 하셨습니까?”

“신전을 봉인하겠습니다.”

“홀홀홀. 탁월하신 판단이십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물러납니다. 봉인은 오늘 중으로 부탁드립니다.”

신전을 봉인한다는 공고가 내려졌다.

성녀는 기사와 사제 그리고 신전을 돌보던 사람들을 신전 밖으로 내보냈다.

“흑흑, 성녀님…….”

“이럴 수가…….”

“성녀님, 기다리겠습니다.”

평생을 다니던 신전이 봉인되고, 평생을 사용하던 신성력이 사라진다는 소식에 기사와 사제들은 할 말을 잃었다.

신전을 봉인하면 성기사는 신성력이 없는 평기사, 사제들은 그저 일반인이 될 뿐이었다.

신전 안에는 오직 성녀만 남았다.

성녀는 신전에 있는 성물 앞에 섰다.

크고 둥근 바위처럼 보였지만 이것은 글리제에 있는 모든 성물의 근본이 되는 성물이었다.

성물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풍요와 대지의 신께 기도드립니다. 이곳 신전을 십 년간 봉인하겠습니다. 신전 봉인 실더템플!”

화아아악!

성물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봉인이 시작되었다.

이제 저 봉인이 완료되면 앞으로 십 년간 누구도 신전을 드나들 수 없으며 성물의 힘도 봉인된다.

성녀가 오른쪽 위를 바라보았다.

[성녀님?]

“네, 민준 님. 소환해주세요.”

화아악!

성녀가 사라졌다.

그리고 신성교국의 풍요와 대지의 신전이 봉인되었다.

풍요와 대지의 신전의 완벽한 봉인에 어둠의 신전들은 축제의 분위기였다.

황제 마르바스는 몬스터의 신전에 자리 잡고 있었다.

“폐하, 풍요와 대지의 신전이 지금 막 봉인되었습니다. 앞으로 십 년간은 풍요와 대지의 신의 신성력을 이 땅에서 볼 일이 없습니다.”

“하하하. 그거 잘되었구나! 여봐라!”

“예, 폐하.”

“나, 마르바스가 제국의 황제이자 곧 신성교국의 주인이다! 이제 나를 신성 황제라 부르도록 해라!”

“경하드리옵니다.”

“신성 황제 만만세!”

제국의 황제가 신성교국을 통합해서 신성 황제가 되는 순간이었다.

* * *

샤론 길드의 A급 마법사 장유환은 길드에 출근을 했다.

그런데 유환의 입이 삐죽 나와 있는 모습에 부길드장이 혀를 찼다.

“유환아, 왜 또 투덜거려?”

“아, 이번에 힐링 포션 중고거래 했는데… 사기를 당해서요. 아, 열받아. 아주 걸리면 통구이를 만들어버리려고요.”

“거, 정품 쓰면 되지 왜 중고를 쓰려고 해.”

“정품은 비싸잖아요. 참, 부길드장님.”

“왜?”

“우리 길드장님은 알아주는 힐러잖아요.”“그렇지.”

“근데 왜 포션을 안 만드세요? 치유수 정도만 만들어서 직원 가로 팔아주면 안 돼요?”

띠링!

부길드장은 유환에게 톡을 보냈다.

유환이 톡을 보자 영어로 된 신문에 크게 실린 길드장의 모습이 보였다.

“킬 더 데빌?”

“엊그제 마족 잡고 오신 거 몰라? 국제적인 일로 바쁘셔.”

“에효.”

“그래도 힐러 길드장님을 두고 길드원이 이렇게 힐링 포션 사기를 당하면 안 되겠지?”

“그렇죠.”

“그래서 힐러 한 분을 길드로 모셔 온 모양이더라.”

“그래요? 어디 계세요?”

“길드장님 사무실에 가봐.”

유환은 길드장실로 향했다.

똑, 똑, 똑.

“네, 들어오세요.”

유환이 길드장실에 들어가보니 길드장과 샤샤, 카나 그리고 처음 보는 여성분이 있었다.

“민준 님, 따라 해보세요. 씁씁후후.”

“씁씁후후.”

“좋아요. 아랫배에 힘을 주고 뭔가 깨끗해지는 느낌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정화하는 느낌으로 퓨리피케이션.”

“퓨리피케이션!”

화아악!

길드장의 손끝에서 성스러운 기운이 1미터 정도 퍼져나갔다.

길드장의 손에 들린 물건들은 엊그제 잡아 온 마족이 떨군 아이템인 것 같았다.

마족의 뿔 한 쌍, 마족의 심장, 마족의 이빨이었다.

그냥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어둠의 마나를 정화하려는 듯했다.

“민준 님이 곧 정화라고 생각하세요.”

“예?”

“무언가를 가지고 이것들을 정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민준 님 자체가 정화 그 자체라고요.”

“어렵네요.”

“시범을 보여드릴게요. 퓨리피케이션!”

화아악!

신성력이 터져 나왔다.

유환은 깜짝 놀랐다.

길드장이 할 때는 1미터 정도 뻗어나가던 성스러운 기운이, 새로운 힐러가 사용하자 방 안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방 밖으로 뻗어나가려 했다.

치치치칙.

마족의 아이템에서 뭔가 타는 소리가 들렸다.

유환은 마음까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유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래요. 그놈도 다 이유가 있어서 사기를 쳤겠죠. 용서할게요.”

나는 그제서야 유환을 돌아보았다.

“유환 씨, 길드에 새로 오신 S급 힐러셔.”

“반가워요. 샤론 길드에 새롭게 가입한 힐러 하모스라고 해요.”

“에… 에스급 힐러?!”

힐러는 귀족.

S급은 왕족이라 불리곤 했다.

그러면 도대체 S급 힐러의 계급은 뭐가 되어야 할까?

순간 유환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S급 힐러가 떠올랐다.

“설마… 교황님?”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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