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계획
비행 차량을 타고 하늘을 날았다.
서울에서 중앙아메리카로 날아갈 때는 태평양을 건너야 해서 한참 걸렸지만 중앙아메리카에서 미국은 바로 위쪽이었다.
물론 미국 땅덩이 자체가 워낙 넓어서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 태평양을 건너는 것에 비하면 금방이었다.
“와, 여기가 뉴욕인가요?”
“응. 국제 헌터 협회는 돌아가면서 의장국을 선출하는데 이번에는 뉴욕에서 헌터 협회가 운영되고 있어.”
“그렇군요.”
슈우우욱.
비행 차량이 헌터 협회에 도착했다.
우리가 가고 있음을 이야기해서 그런지 헌터들이 마중을 나왔다.
“한국의 헌터들이 오시다니, 환영합니다.”
“감사해요.”
“세 시간 후 회의가 잡혔습니다. 직접 발표하실 수 있습니다.”
“고마워요.”
뉴욕에는 우리나라의 헌터 협회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서울 브레이크와 이번에 내가 촬영한 자료를 받아 발표 자료를 멋지게 만들어 두었다.
발표는 내가 하기로 했다.
발표 무대는 마치 연극무대처럼 부채꼴 모양으로 되어 있었고 수십 명의 인원이 듣고 있었다.
그리고 벽에는 수많은 화면이 있었는데 세계 각지에서 나의 발표를 듣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청중들에게 말했다.
청중들은 통역을 위한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A급 던전 브레이크 다섯 개가 동시에 열렸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빠르게 이를 정상화할 수 있었습니다.”
발표 자료에 서울 던전 브레이크 자료를 띄웠다.
브레이크가 터진 위치, 피해 사진, 피해 금액 등의 자료가 보였다.
“A급 던전 브레이크 가지고 뭘 저렇게 유난을 떠나 하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던전 브레이크의 원인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원인을 찾아냈습니다. 수많은 포탈 너머의, 어느 이세계 중에는 마족이라는 집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한 개체가 넘어와 서울 브레이크를 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청중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지금 과학자들이 아주 바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붉은 달, 월식이 될 때 발생하는 레드문이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찾고 있을 겁니다. 레드문의 원인을 아시나요?”
레드문의 원인이라는 말에 청중들이 웅성대었다.
레드문은 현재 헌터 학계의 화두였다.
“서울 브레이크를 열었던 마족은 한국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자를 추적했죠.”
중앙아메리카의 모습이 보여졌다.
“그자와 나눈 대화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은둔자와 나눈 대화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저 달이 붉은 것은 당신, 마족이 한 일인가?
―후후후. 색이 그렇게 중요한가?
―뭐?
―색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닌가?
―내용도 바꾸었나?
―달빛은 널리 행성을 비춘다. 나는 그저 수조에 담긴 물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렸을 뿐이다.
웅성웅성.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 많아 보였다.
이어서 나와 은둔자의 대화가 들렸다.
―그 말은 마족과 인간이 공존해야 한다는 뜻인가?
―저자를 보라. 함께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은가?
화면에서 마정석을 박은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겉보기에는 멀쩡했지만 우리를 적대하는 모습이었다.
―저자는 흑마정석이 주는 힘에 취해 마족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인간을 노예화시키려 하는가? 그건 인간과 공존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다. 은둔자여, 마족은 이곳을 마계화시키려 하는가?
―흑마정석을 박으면 더욱 기나긴 삶을 보장받게 된다. 보라. 이곳의 인간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네가 저들의 삶을 구원할 것인가? 저들은 나에게 기대는 삶을 선택했을 뿐이다.
나는 청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 보셨듯이 마족은 서울 던전 브레이크를 열고, 레드문을 일으켰으며, 흑마정석이라는 것을 박아서 인간을 노예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저런!”
사람들이 분개하기 시작했다.
“물론 인간을 적대하는 세력이 있었던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닐 것입니다. 마족이라는 자가 인간을 적대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저자가 자신이 말한 것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겠죠. 화면을 보시죠.”
화면에는 은둔자의 몬스터들과 우리 팀이 싸우는 모습이 나타났다.
“보시는 바와 같이 저희 팀에는 차지율, 기예라 그리고 카나라는 세 명의 S급 헌터가 있습니다.”
“우와!”
역시 어딜 가나 S급이라는 말은 집중을 이끌었다.
S급 헌터 세 명이 포함된 조사단의 능력을 의심할 이는 거의 없을 것이었다.
“카나야.”
“네.”
내가 말하자 카나가 마계화된 땅을 꺼내 보였다.
“여기 이 흙이 마계화된 땅입니다. 땅 자체에 디버프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차지율 헌터와 카나는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싸워야 했습니다. 다시 화면을 보시죠.”
화면에는 디버프를 받아 오러를 방출하지 못하고, 그래서 몬스터들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는 차지율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S급 셋이서 몬스터 50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마족은 지구에 넘어왔고, 서울에 이어 중앙아메리카를 거쳤습니다. 또 어디에 자신의 땅을 만들지 모릅니다. 마족에 대항하는 국제적인 팀이 필요합니다.”
짝짝짝.
내가 국제적인 팀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말하자 많은 이들이 박수를 쳤다.
추가적인 질문도 여럿 들어왔다.
“마족이 달에 어떤 짓을 한지 알고 계신가요?”
“마족이 한때 한국인이었다는데 사실인가요?”
“인간이 마족이 될 수 있나요?”
“마족이 다른 세계에서 살던 곳이 어디인가요?”
나는 내가 아는 바대로 충실하게 답변했다.
다음 날 국제 헌터 연합 회장이 부른다는 소리에 가보았다.
“안녕하세요. 국제 헌터 협회장입니다.”
키와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
협회장은 국제 헌터 협회에서도 마족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기로 하였으며 담당 부서를 만들기로 했다고 했다.
“마족 담당 팀을 소개해드리죠. 여긴 아메리카 대륙에서 마족을 전담할 인원입니다.”
협회장의 소개에 몇 명의 사람들이 나왔다.
그중 한 남자가 있었는데 긴 머리에 멋진 턱수염을 기른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다.
“아! 캡틴!”
캡틴이 웃으며 앞으로 나왔다.
“네. 제가 그렇게 불리기도 했죠.”
미국의 헌터 중에서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었다.
“와, 캡틴을 여기서 뵐 줄은 몰랐네요.”
캡틴은 팀을 소개해주었다.
캡틴뿐만 아니라 TV에서 보던 인물들이 많이 있었다.
“와, 이거 할리우드에 온 기분인데?”
“그러게요. 차지율 헌터만 보다가 이분들을 보니까 한국 드라마 보다가 미드 보는 느낌이네요.”
그렇게 북미대륙에서 마족을 담당할 헌터들과 인사를 나눴다.
다른 세계 각지에서도 네트워크를 이루기로 했다.
* * *
미국 필라델피아의 켄싱턴 거리.
늦은 시간, 클럽에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쿵. 쿵.
길에서도 그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클럽은 특별히 헌터들을 대상으로 하는 클럽이었다.
한 남자가 다가와 입구의 남자에게 물었다.
“헤이, 제임스”
“헤이, 토니! 요즘 어때?”
“좋지.”
둘은 길거리에 울려 퍼지는 클럽 음악을 즐겼다.
“던전에 들어가고, 몬스터를 잡기만 하면 뭘 하나? 인생 즐겨야지! 안 그래?”
“요, 브로. 맞는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내가 아주 좋은 것을 하나 발견했어.”
“좋은 것?”
“그래. 몸에 주입하면 아주 기가 막힌다고.”
“뭐야… 마약이나 그런 거야?”
“헤이. 설마 내가 그런 허접한 것을 권할 리가 있나? 그깟 약들이야 큐어 한 방이면 끝날 것을.”
“하긴 그래.”
제임스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작은 보석 같았다.
검고 작은 흑요석 같은 돌멩이는 빛을 반사하며 예뻐 보였다.
“이 반짝이는 건 뭐야?”
“이거? 이게 바로 내가 말한 죽여주는 것이지.”
제임스는 그렇게 말하며 상의를 살짝 들춰서 자신의 옆구리를 보여주었다.
제임스의 옆구리에는 흑요석이 박혀 있었다.
“오호, 장신구야?”
“노.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야.”
“그럼? 빠르게 힘을 올려주는 보석이지.”
“오호.”
따라와 봐.
제임스가 토니에게 손짓을 하며 클럽으로 이끌었다.
쿵쿵대는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는 지하 클럽에서는 여러 남녀가 춤을 추고 있었다.
제임스가 작은 방에 들어가고 토니가 따라 들어갔다.
방의 가운데에는 온천과 같은 연못이 있었다.
“이거 목욕탕이야? 아니면 온천이야?”
“하하. 생명의 연못이라고 들어봤어?”
“크크. 생명의 연못?”
연못 옆에서는 몇몇 헌터들이 마치 피어싱을 하듯 몸에 상처를 내고 작은 돌을 넣었다.
그리고 그 돌을 몸에 박은 헌터들은 신세계라는 듯 좋아하고 있었다.
쿵쿵.
음악이 흐르고, 분위기에 취한 토니도 작은 돌들을 팔뚝에 박아넣었다.
화아악.
작은 돌에서 흘러나오는 마나를 느꼈다.
“오! 이거 장난 아닌데?”
“그렇지? 내가 뭐라고 했어! 이거 정말 물건이라니까!”
“그러게. 대단하네.”
쿵쿵.
토니는 음악과 함께 새롭게 흘러나오는 마나를 즐겼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새롭게 흘러 들어오는 마나를 느꼈다.
그렇게 춤을 추는 클럽의 바닥에는 검은 흙이 깔려 있었다.
꿈틀꿈틀.
바닥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인 것처럼 꿈틀대며 면적을 확장했다.
그러더니 지하 클럽을 벗어나 1층 바깥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그때 하늘에서 무언가 날아왔다.
“찾았당!”
드론제리였다.
제리가 나에게 쪽지를 보냈다.
[민준, 여기도 마계화된 지역이 있당.]
[어, 알았어. 바로 갈게.]
비행 차량을 타고 출동했다.
비행 차량 안에서 카나에게 물었다.
“벌써 몇 군데지?”
“세 번째예요.”
“은둔자가 확장하는 속도가 빨라.”
“전 세계 어디나 이렇게 마계화시킬 수 있는 거잖아.”
“그래도 인구가 아예 없는 지역은 하기 어렵다잖아요. 사람이 있어야 그 사람들을 이용해서 노예화도 시키고 하니 원래 범죄율이 높은 지역 혹은 갑작스러운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지역 중심으로 찾아보면 되죠.”
“그냥 사막을 마계화하고 그랬으면 찾지도 못했을 거야.”
“그러게요.”
슈우욱.
켄싱턴 거리에 도착했다.
쿵, 쿵, 쿵.
클럽 음악 소리가 진동했다.
“여긴가?”
“그런 것 같아요.”
“디바인.”
나는 신성력을 끌어올려서 신성력을 주변에 넓게 흩뿌렸다.
치이이익!
“맞네.”
신성력과 마족의 마계화된 땅은 상극이었다.
이곳도 마계화된 지역이었다.
“우리끼리 들어가나요?”
지금은 나와 소환수들만 있었다.
차지율과 기예라는 따로 팀을 이루기로 했다.
커버해야 할 지역은 전 세계였다.
마족을 찾는 데는 기예라가 전문이었고, 나는 신성력을 흩뿌리면 마계화된 지역을 알아볼 수 있었다.
“미국의 캡틴과 신성교국의 성녀님이 오기로 했어.”
타다다다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저기 오나 보네.”
타다다다다.
슈욱.
휘리릭.
착.
“알파야, 용병 걸어드려.”
―네, 알겠습니다.
―용병 승인하였습니다.
헌터 협회에서는 통역이 있었지만 이렇게 현장을 뛸 때는 소통의 문제로 인해 용병을 걸어두는 편이 나았다.
“알파야, 신성교국의 성녀님의 화면 띄워 봐.”
―네.
화아악.
성녀가 화면에 떴다.
“성녀님, 마계화된 땅을 발견했습니다. 소환하겠습니다.”
[네, 좋아요.]
“성녀, 소환!”
화아악!
성녀가 소환되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미국의 캡틴, 신성교국의 성녀가 서로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여기가 마계화된 지역인가요?”
“네, 마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계화된 지역임은 확실해요.”
“그렇군요.”
캡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일단 정리합시다.”
“안에 사람들은요?”
“죽이지 않고 묶어둔 다음에 흑마정석을 빼고, 신성력을 부으면 되돌릴 수 있어요.”
“오케이, 들어갑시다.”
“디바인 프로텍션, 디바인 홀리 큐어!”
나는 신성력을 끌어올리고, 소환수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었다.
성녀가 기도를 했다.
“자애로운 풍요와 대지의 신께 기도드립니다. 이 땅에 평온을!”
화아악!
원조 신성력이 퍼져나갔다.
치이이익!
사방에서 고기 타는 냄새가 풍겨왔다.
이 정도 팀이면 마계화된 지역을 정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은둔자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들어갑시다.”
쿵, 쿵, 쿵.
클럽 음악 소리를 들으며 지하로 내려갔다.
* * *
깊고 어두운 공간
괴수들이 어슬렁거리는 공간에 하나의 궁궐이 있었다.
검은 궁궐.
아득한 어둠과 음침한 안개가 커다란 궁궐을 감싸고 있었다.
궁궐의 중심부에는 거대한 대전이 있었다.
그 대전의 바닥에는 피처럼 붉은 카펫이 길게 깔려 있었다.
카펫의 양쪽에는 왕을 지키는 듯한 거대한 동상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 카펫의 끝, 높고 커다랗고 화려한 의자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자의 앞에 엎드려 있는 인영이 있었다.
“왕이시여.”
엎드려 있는 인영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은둔자였다.
“성녀가 지구로 소환되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 계획대로 되었습니다.”
은둔자가 엎드려 고했다.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의자에 앉은 자의 눈빛이 빛났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