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204화 (203/230)

204화. 침투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어라?”

“용병이 되면 한국어를 할 수 있게 돼요. 너무 놀라지 말아요.”

우리 나이로 치면 중학생 정도 될 법한 깡마른 남자아이는 우리를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일단 그 빵은 먹어도 돼.”

아이는 우리의 눈치를 보더니 허겁지겁 빵을 먹기 시작했다.

샤샤가 선물함에서 피토니 한 잔을 꺼내 주었다.

“마시면서 먹어.”

꿀꺽.

아이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한국인들도 피토니를 처음 마시면 눈이 번쩍 뜨였다.

이렇게 깡마른 아이에게 피토니를 준 순간 이런 반응을 예상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아이가 배고픔을 지우고 정신을 차렸다.

“우리에게 이곳 상황을 알려줄 수 있니?”

“네. 물론입죠. 묻는 말에 성실하게 답하겠습니다.”

“일단 이곳은 성이네. 바깥에는 몬스터가 있고. 어떻게 된 상황이지?”

“아… 어디서부터 설명을 드려야 할지…….”

“천천히 설명해도 괜찮아.”

“알겠습니다.”

아이의 말에 의하면 10년 전 헌터들에 의한 쿠데타가 발생해 국가 시스템이 무너졌다고 했다. 그리고 강한 헌터가 각 지역을 나누어 다스리게 되었으며, 자신과 같은 일반인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고 했다. 이 성은 이곳 지역을 다스리는 헌터의 명으로 지어진 것으로 헌터의 성이고, 그 일대에 일반인들이 거주하며 살았다고 했다.

“하지만 두 달 전부터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었습니다.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해 일반인들의 거주 지역은 몬스터로 가득 찼고, 간신히 이곳 헌터의 성만이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저도 간신히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랬구나. 그러면 이곳을 지배하는 헌터가 있다는 말인가?”

“예. 저희의 대장은 피노마스 님입니다. 저의 사촌 형입니다. 그래서 저도 간신히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대장의 사촌인데도 이렇게 깡마른 건가?

이곳 식량 수급 사정이 여의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혹시 이곳에서 분명히 죽은 것 같은데도 움직이는 사람들을 본 적은 없니? 언데드나 좀비 같은 것 말이야.”

“시체들은 허다하게 많이 봤지만 다시 움직이는 경우는 못 보았습니다.”

카나의 고유 스킬은 정견이었다.

일반인 수준으로는 절대 카나를 속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인간 거짓말 탐지기인 카나를 보았고 카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뭐 조심스럽게 들어오긴 했지만, 이곳은 몬스터들을 피하기 위한 대피소 정도인 것 같네요.”

“그래요.”

나는 남자아이를 바라보았다.

허겁지겁 빵을 먹던 깡마른 모습을 보니 약간의 연민이 들었다.

굳이 지구 반대편을 도와줄 정도의 오지랖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눈앞에서 굶주리는 모습을 보고 작은 도움을 줄 정도는 되었다.

“우리를 이곳의 대장에게 안내해줄래?”

“네.”

우리는 아이의 안내를 받아 길을 걸었다.

집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슬레이트 더미 곳곳에는 반쯤 눈이 풀린 사람들이 있었다.

“으음…….”

“어떡해.”

“흠.”

중심부로 가자 몇몇 헌터들이 튀어나와 우리를 경계했다.

차지율과 카나가 무기에 오러를 둘렀다.

지이이잉!

저들도 눈이 달린 헌터라면 오러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었다.

뭐라 뭐라 호들갑을 떨며 돌아가더니 스무 명 정도의 인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얘, 저기서 누가 대장이니?”

“가운데 노란 옷을 입은 헌터입니다.”

“알파야, 용병 제안해봐.”

대장은 알파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화들짝 놀랐지만 용병을 수락하지 않고 무기를 겨누며 경계했다.

“샤샤야, 선물함에 먹을 것 좀 있니?”

“네.”

샤샤는 선물함에서 도시락 스무 세트 정도를 꺼냈다.

“얘, 이거 선물이라고 하고 용병 좀 받아들이라고 해봐. 그리고 보다시피 이쪽은 S급이 둘이라고도 전해.”

“네.”

아이의 통역을 듣자 저쪽 대장이 용병을 받아들였다.

이쪽이 S급 둘이라는 것은 우리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이미 이곳은 몰살이란 뜻이었다.

―용병 계약이 성립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어디서 오셨습니까?”

“한국이라고 아시나요?”

“아, 들어는 보았습니다.”

“일단 저희는 이곳 주변의 상황을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저희에게 정보를 주시면 음식을 드리죠.”

꿀꺽.

한국식 도시락은 화려하고 먹음직해 보였다.

대장이라는 자의 눈길이 차지율과 카나의 오러에 잠시 맺혔다.

“알겠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동쪽으로 가면 도시가 나옵니다. 그곳은 얼마 전 새로운 무리가 점령했습니다.”

“새로운 무리요?”

“저희가 이미 알고 있던 헌터들이 몸에 검은색 마정석을 박고는 더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뭐랄까, 더 사악해지고 잔인해졌지요. 사실 이런 세상에서 죽음은 일상이지만 불필요한 살인을 할 필요는 없죠. 하지만 그들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르죠?”

“음… 마치 종교 집단 같았어요. 광신도? 그런 표현이 적절할 거예요.”

“누구를 따르는 광신도죠?”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흠… 동쪽 도시의 광신도 무리라…….”

아무래도 기예라가 만나자고 한 곳까지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서모너 영지의 꾸얀에게 쪽지를 보냈다.

[꾸얀.]

[네, 영주님.]

[식량, 쌀 포대 80kg짜리 열 개만 선물함에 담고 쪽지 주세요.]

금세 꾸얀이 답장을 보내왔고 이곳으로 소환했다.

쿵.

80kg 쌀 포대는 묵직했다.

대충 쌀 10kg으로 밥을 100인분은 지을 수 있으니 이 정도면 한참 동안 먹을 수 있었다.

수북하게 쌓인 쌀 포대를 보며 대장이라는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집단의 대장이라는 헌터도 삐쩍 말라 보였다.

아무리 못사는 집단이라도 이곳에 사람이 몇 명인가?

이 정도 무리의 대장이라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자기 혼자 충분히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장도 삐쩍 마른 것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갑시다.”

비행 차량을 꺼내 다시 탑승했다.

슈우욱.

얼마간 날아가자 저 멀리 도시가 보였다.

우리는 도시로 들어가기 전에 기예라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기예라는 자신이 이동해 이쪽으로 온다고 했다.

한참을 기다리니 기예라와 만날 수 있었다.

마치 히잡처럼 얼굴 전체를 가려서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민준, 지율 그리고 다들 와주어서 고마워.”

“뭘요. 마족이 이쪽으로 왔다는데 추적하는 게 당연하죠. 여기 상황은 어때요?”

“아직 은둔자는 찾지 못했어.”

“여기선 얼굴을 칭칭 가리고 있어야 하나요?”

“아무래도 동양인이 얼마 없으니까 얼굴만 보여도 튀긴 하지. 아마 너희들도 길을 걸으면 다들 쳐다볼걸.”

“은신 망토를 준비하긴 했어요.”

“일단 내가 은신처를 마련해두었어. 일단 그곳으로 가자.”

“좋아요.”

우리는 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은신 망토를 걸쳤다.

하위 헌터들로는 우리의 존재를 파악하긴 어려울 것이다.

곳곳이 파인 도로, 쓰러진 담, 거리를 뒹구는 쓰레기는 이곳이 정비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숲에서는 몬스터를 보았는데 도심의 거리까지 몬스터가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기예라는 우리를 허름한 건물의 옥탑으로 안내했다.

“휴, 오느라 고생했어.”

“창문을 모두 가리신 것은 바깥에서 우리를 볼 수 없게 한 것이에요?”

“그래. 추적을 하는 입장에서 먼저 발견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니까.”

“그동안은 어떻게 정보를 얻으셨어요?”

“많은 정보를 얻지는 못했어. 그저 밤에 몰래 가보곤 했지.”

“아까 오다가 들른 곳에서는 이곳에 종교 세력이 있다던데… 알아보셨나요?”

“대충 위치는 알고 있어. 하지만 자세히는 못 보았어.”

“그래요?”

그렇다면 우리의 정찰 담당 소환수가 출발할 때였다.

“제리야.”

“냥.”

제리는 고양이의 형태였다.

“자, 목에 캠 켰니?”

제리의 목에는 캠이 달려 있었다.

캠을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아서 작은 목걸이처럼 보였다.

캠과 연결된 노트북을 설치하고 선물함에서 대형 TV를 꺼내 연결했다.

“와, 죽이는데?”

“그렇죠? 85인치 8K TV예요.”

제리의 캠이 대형 TV에 그대로 나왔다.

“화질이 장난 아닌데?”

“크크. 지율 헌터님 얼굴이 완전 크게 나오네요.”

“악, 나 찍지 마.”

“그럼 가볼까요?”

은신 망토를 두르고 있는 투명제리가 출발했다.

휙휙.

제리가 건물 옥상을 뛰어넘어가는 모습이 화면에 나왔다.

“오오. 대형 화면으로 보니까 실감 나는데?”

“예라 누님, 방향은 이 방향이 맞을까요?”

“잠깐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고 해봐.”

나는 제리에게 쪽지를 보냈다.

[제리, 스톱. 높은 곳으로 올라가봐.]

제리가 어느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주위를 살폈다.

“잠깐만… 어, 저기. 저쪽 방향 갈색 건물로 가봐.”

[제리야, 저기 갈색 건물. 그렇지. 그래. 그 건물이야. 거기로 가봐.]

제리는 살아 있는 드론이 된 듯 갈색 건물로 이동했다.

건물 근처로 가보니 딱 봐도 경비를 서는 듯한 인물들이 있었다.

맞은편 건물 꼭대기에서 보는 시야에 대여섯 명의 경비들이 있었다.

저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가 문제였다.

어지간하면 발각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실력이 좋은 헌터라면 발각될 수도 있었다.

[옆 건물에서 뛰어넘을 수는 있지만 혹시라도 들킬 가능성이 있당. 일단 후퇴했다가 하늘에서 침투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당.]

제리가 목표했던 건물의 반대로 여러 건물을 넘어갔다.

그렇게 한참 물러난 후 드론을 꺼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슈욱.

화면이 점점 하늘 높이 올라갔다.

8K 화면으로 도심과 주변 그리고 광활한 하늘의 모습이 비쳤다.

“어우, 이렇게 보니까 여기도 멋진데요? 저기 지평선 봐요.”

“멀리서 보면 다 멋진 동네지. 가까이서 보면 엉망이지만.”

하늘 높이 솟아오른 드론은 조금 전의 장소로 빠르게 날아갔다.

꼭대기에서 떨어지려고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금 전 장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드론을 집어넣고 낙하하기 시작했다.

TV에서 제리가 빠르게 떨어지면서 공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파르르르르!]

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빠르게 떨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어우야.”

“와. 이건 무슨 초음속 자유낙하야?”

“크크크. 재밌어 보여요.”

“샤샤도 해볼래? 비행 차량으로 높이 올라갔다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내가 소환하면 되지.”

“크크크.”

하늘 높은 곳에서, 제자리에서 자유낙하하는 것도 아니고 포물선을 그리면서 제리가 낙하했다.

제리는 이리저리 몸을 틀더니 거의 목표한 지점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오호. 이렇게 보니까 제리도 장난 아닌데?”

“누구 소환수인데요.”

지표면이 점점 다가왔다.

턱.

턱.

브레이크가 걸렸다.

제리가 이단 점프 스킬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바로 눈앞에 목표했던 갈색 건물이 보였다.

턱.

턱.

멈칫.

제리가 공중에 멈췄다가 뾰족한 건물 지붕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착지 인정.”

“10점.”

제리는 이제 내려갈 곳을 찾아보았다.

조금 찾아보니 창문이 있었다.

창문에는 손가락 두세 개쯤 들어갈 틈이 있었다.

창문을 열려고 하나? 생각하는데 그냥 그 손가락 두세 개의 틈으로 제리가 통과했다.

“와, 저길 통과한다고?”

“T―1000이야?”

천천히 제리가 건물 계단을 내려갔다.

제리가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숨죽여 지켜봤다.

[움베르치노.]

TV에서 누군가 이상한 목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베르난디오스아.]

그 소리를 쫓아 제리가 이동했다.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건물이 형편없어서 그런지 문틈에 손바닥을 넣을 정도의 틈이 있었다.

액상화 스킬을 가지고 있는 제리에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스르륵.

제리가 문틈으로 스며 들어갔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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