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203화 (202/230)

203화. 중앙아메리카

나는 기예라에게 연락을 했다.

“누님, 문자 보았어요. 혹시 은둔자가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뜻인가요?”

“내 추측에는 그래. 서울에서 던전 브레이크를 발생시켜 보았지만 큰 소득이 없자 다른 나라로 옮겨간 것 같아.”

“그렇군요. 누님은 어디세요?”

“나는 이미 중앙아메리카야. 예전 엘살바도르 부근이야.”

은둔자를 향한 기예라의 집념은 포기를 모르는 것 같았다.

“저도 길드와 영지에 이야기하고 가도록 할게요.”

“그래, 고마워. 와준다면 큰 힘이 될 것 같아.”

나는 주요 인원을 불러 회의를 했다.

동서 형님이 팔짱을 낀 채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꼭 가야 해? 솔직히 중앙아메리카에서 어떤 나쁜 놈이 활개를 친다고 해서 꼭 우리 길드가 해결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

“네, 맞아요. 그런데 그 나쁜 놈이 서울 브레이크를 열었던 놈이라는 것이죠.”

“오케이. 그 점은 인정. 나도 서울 브레이크를 열었던 놈은 당장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은 동의해. 그런데 우리, 조금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말 그대로 서울 브레이크를 열었던 놈이야. 만만한 놈은 아니지. 그런 놈이 지구 반대편에서 일을 꾸민다는데 무작정 가는 건 아니라고 봐.”

옆에서 한나리도 동서 형님의 의견에 동조했다.

“맞아요. 지금은 기예라 헌터로 인해서 알게 된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구 반대편에서 뭐가 터졌다는 상황 자체를 몰랐을 거예요.”

“그래, 민준아. 일단 길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의뢰받은 것이 없어. 만약 지금 우리끼리 출발한다면 말 그대로 자발적 복수를 하러 가는 것이지. 위험도는 매우 높고 보상은 기대하기 어려워.”

“서울 브레이크가 끝난 지 두 달이 지났어요. 그동안 그자가 어떤 준비, 어떤 세력을 만들어놨을지 모르죠. 이건 우리의 앞마당인 서울을 지키는 것이 아니에요. 순식간에 대한민국의 헌터들이 서울역으로 모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적이 더 익숙한 장소에서 우리가 적은 숫자로 침투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위험도가 더 크죠.”

동서 형님과 나리의 신중론은 일리가 있는 지적이었다.

나는 신성 교국의 성녀에게도 자문을 구했다.

성녀는 소환되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지구의 크기가 얼마나 되죠?”

갑작스레 지구의 크기를 묻길래 글리제와 비교해서 알려주었다.

“지름은 글리제의 절반 정도 됩니다.”

“인구는요? 그리고 헌터의 수는 어느 정도죠?”

대략적으로 알려주었다.

“저희 교국의 문헌에는 오래전 마족의 세력이 글리제의 절반을 차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글리제의 절반이면 지구의 전체 면적을 넘어요. 저들의 능력은 행성 단위의 질서를 바꿀 수 있는 수준이에요.”

“행성…….”

마족의 세력이 그토록 크다는 말에 회의에 참여하던 인원들은 잠시 침묵했다.

“그 마족이 지구 출신이라고 했죠?”

“네.”

“그렇다면 지구 출신 마족이 다시 지구로 돌아왔군요. 지구로 돌아온 것이 그 마족 스스로의 의지였을까요? 아니면 누군가의 의지로 보내진 것일까요?”

“네?”

“마족은 혼자가 아니에요. 제 생각에는 지금 넘어온 마족은 아마 찔러보는 정도의 수준일 가능성이 높아요. 정찰병을 하나 보내서 이곳의 사람들, 이곳의 신은 어떤 반응을 하는지 보는 것이죠.”

마족이 단지 한 명의 정찰병이라고?

전혀 다른 관점이었다.

정찰병 한 명이 던전 브레이크 다섯 개를 열어서 서울을 놀라게 했다.

그러면 본대가 쳐들어온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기도 싫었다.

행성 수준의 질서를 바꾼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동서 형님이 팔짱을 풀며 더욱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더욱 문제입니다. 이 정도 스케일은 우리 혼자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최소한 헌터 협회 차원의 서울 브레이크 복수를 위한 팀이라도 꾸려야 합니다.”

끄덕끄덕.

대부분 동의하는 것 같았다.

“그럼 제가 협회장과 만나볼게요.”

나는 회의를 마치고 바로 헌터 협회로 향했다.

협회장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협회장은 맞은편 소파에 앉아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그래요, 서울 브레이크의 범인을 찾았다고?”

“네.”

“누구인가요?”

“은둔자입니다.”

“……!”

협회장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놀랐다가 가라앉았다가 하는 다양한 표정을 보이더니 이내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그랬군요. 그래서 기예라가 거기 있었군요.”

“네. 협회장님, 마족이라고 아십니까?”

“하아… 결국 그렇게 되었군요. 잘 알고 있습니다.”

“그자는 마족이 되어 돌아왔고, 서울 던전 브레이크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중앙아메리카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기예라 헌터가 이미 중앙아메리카로 출발했습니다.”

협회장은 턱을 괴더니 잠시 고민을 했다.

“협회장님, 마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다른 세계의 성녀에 의하면 은둔자는 정찰병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지구 자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찔러보는 것이죠. 그자를 처단하지 않으면 더욱 많은 마족이 넘어온다는 겁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국제적인 팀이 꾸려져야겠군요.”

“그렇다면 최상입니다.”

“하지만 제가 국제 헌터 연합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그러면요?”

“차지율 헌터를 붙여드리겠습니다. 협회 차원에서 천마와 샤론 길드에게 의뢰를 드리죠. 목표는 국제 헌터 연합을 움직일 수 있는 근거의 확보입니다. 기예라, 천마 그리고 민준 헌터님 이 힘을 합한다면 마족과 정면으로 싸우지는 않아도 국제 연합을 설득할 근거 정도는 가져오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 *

슈우욱.

나는 소환수들, 차지율과 함께 비행 차량에 탑승해 광활한 태평양을 건넜다.

목적지는 중앙아메리카였다.

10시간 정도의 비행을 마치자 비행 차량 아래로 육지가 보였다.

“오호. 드디어 육지에요.”

“카나, 운전하느라 고생했어. 장거리 운전이 피곤하지?”

“저는 중간에 샤론에서 쉬기도 한걸요. 계속 차량에 계셨던 민준 님과 지율 헌터님이 고생하셨죠. 아무 곳에나 착륙해도 되나요?”

“그래. 저 밑에 해안가에 세워.”

“냥, 여긴 뭐 공항 같은 거 없냥? TV에 보면 공항으로 왔다 갔다 하더랑.”

“여기도 옛날에는 그랬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던전이 오픈되면서 국가 시스템이 붕괴되었다고 해. 이 동네는 거의 무정부 상태라서 허락 맡을 곳도 없어. 힘이 있는 자가 곧 법인 동네이지.”

나는 차지율과 소환수들을 둘러보았다.

“아마도 우리 정도면 법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렇구낭.”

어느덧 해안가에 도착했다.

슈우욱.

철컥.

비행 차량이 착륙했다.

소환수 셋과 나, 차지율이 모래사장을 밟았다.

촤아악, 철썩.

적당한 모래사장과 철썩거리는 파도를 보니 물놀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이곳은 또 어떤 적들이 있을지 모르는 곳이었다.

“그래도 비행 차량으로 내려다볼 때는 특별히 보이는 것들은 없었어요.”

“냥, 내가 한 바퀴 보고 올깡?”

“그래, 제리야. 정찰 부탁할게.”

“알았당.”

제리가 드론을 꺼내 하늘로 올라갔다.

“기예라 누님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이곳에서 동쪽으로 100km 정도는 가야 할 것 같아요. 바로 날아가기보다는 정보를 얻으면서 차근차근 갔으면 해요.”

일단 해안가에서 걸어 숲으로 들어갔다.

[냥, 동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성채가 있당.]

[성?]

[그렇당. 성이당.]

[무슨 성?]

[샤론성처럼 생긴 성이다. 멀리서 보긴 했지만 경계를 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알았어. 소환할게.]

“제리 소환.”

화아악.

제리가 내 옆으로 소환되었다.

“동쪽 5km 정도에 성이 있었당.”

“일단 근처까지만 가봅시다.”

방향을 동쪽으로 잡았다.

한 5분 정도 걸었다.

숲에서 무언가를 만났다.

크르르르.

어라?

“어머, 저건 뭐죠?”

“야생동물인가요?”

자세히 보니 초등학생 정도의 덩치에, 머리는 개의 모습이었다.

나름 뾰족한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지능도 있어 보였다.

“저거 코볼트 아냐?”

“와, 여기 그냥 숲에 코볼트가 사는 거예요?”

“하아… 이 숲은 사람의 영역이 아닌가 봐요.”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는데 관리가 안 되면 이렇게 되는 거지. 지구의 모든 곳이 한국처럼 관리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와, 그러면 서울 브레이크도 그냥 뒀으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 사람이 없으면 몬스터들이 사는 땅이 되는 것이지.”

코볼트는 자신을 앞에 두고 우리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자 화가 났는지 큰 소리로 짖으며 달려들었다.

“크아아악!”

서걱.

하지만 고작 코볼트에 당할 팀이 아니었다.

5km를 이동하는 동안 몬스터를 다섯 번 만났다.

코볼트와 고블린, 슬라임이었다.

“그래도 강한 몬스터는 안 보이네요.”

“너무 강한 몬스터가 있었으면 사람도 살기 어려웠겠지.”

저 앞쪽에 제리가 보았던 성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썩 훌륭하지는 않았다.

어설프게 지저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콘크리트로 만든 성벽이었다.

높이도 4~5m는 되어 보여 코볼트 따위는 충분히 막을 수 있어 보였다.

“혹시 모르니까 제리부터 들어갔다 와보자.”

드론제리, 투명제리, 액상화제리는 침투 임무에 최고였다.

이번 임무는 전쟁 혹은 적의 섬멸이 아닌 정찰과 국제 헌터 연합을 설득할 근거의 확보였다.

제리는 이미 목걸이에 촬영 캠을 켠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다녀올껭.”

스르륵.

집중해서 보고 있어도 놓칠 만큼 제리의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우리는 숲속에서 기다렸고 약 10분 정도 후에 제리가 쪽지를 보냈다.

[적당히 찍었당.]

“제리 소환.”

화아악!

제리가 다시 소환되었다.

“어디 좀 볼까.”

“큰 화면으로 보죠.”

나는 샤샤의 선물함에 넣어둔 노트북을 꺼내 캠으로 찍어온 영상을 틀었다.

영상 화면은 제리가 이곳에서 출발하는 장면부터 시작했다.

타다닥.

제리가 낮은 시야로 풀숲을 달렸다.

돌멩이가 바로 눈앞에서 보이는 것이 고양이의 형태로 변신하고 달린 것 같았다.

이렇게 낮은 시야로 촬영된 화면을 보니 화면의 구도가 새로웠다.

휙휙.

좌우를 살피던 제리가 단번에 성벽을 올랐다.

성벽에는 몇십 미터 간격으로 보초를 서고 있는 인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제리가 성벽에 오른 후 다시 사방을 살폈는데도 아무도 알아본 이는 없는 것 같았다.

역시 제리는 빠르고 은밀했다.

바깥에서 볼 때 성은 튼튼해 보였다.

그리고 보초도 잘 서고 있었다.

그러니 성안에서는 당연하게도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면에 비친 모습은 뭔가 이상했다.

거의 가죽만 남은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아…….”

“이건 뭐 난민보다도 못하네.”

“어떡해.”

“먹을 것이 없나 봐요.”

10분짜리 짧은 영상이지만 몇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일단 이곳은 둘 이상의 계급이 있는 것 같아. 봐, 보초를 서고 있는 이들은 그래도 비교적 잘 먹는 것 같아. 그렇게까지 마른 사람은 없어.”

나는 화면을 넘기고 확대하며 말했다.

“그리고 여기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은 이곳의 하층 계급이겠지. 먹을 것을 얻기도 어려운 상황인 거야.”

“…불쌍해요.”

“안타깝군.”

“냥, 보초를 서고 있지만 그다지 집중하지는 않는 것 같당. 졸고 있는 사람도 있었당.”

“그래? 그럼 제리가 먼저 루트를 잡아봐. 이번에는 다 같이 갑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은신 망토는 입고 갑시다.”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는 은신 망토를 둘렀다.

꽤 고가의 망토이긴 했지만 정보를 염탐하러 가는 입장에서 이 정도 아이템은 필수였다.

스르륵.

존재감을 지웠다.

* * *

피티는 배가 고팠다.

배급은 하루에 한 번 받지만 오늘은 할당받은 작업을 채우지 못했다며 관리인들이 배급을 주지 않았다.

배급을 받지 못하면 쫄쫄 굶어야 했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우물이 있어서 물은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물마저 충분히 마시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것 같았다.

킁킁.

그런데 어디선가 희미하게 고소한 냄새가 났다.

번쩍.

저절로 눈이 떠졌다.

피티는 길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뒤쪽 골목에서 나는 냄새 같았다.

킁킁.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 냄새를 따라 걸었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허공에 빵이 있었다.

둥실둥실.

피티는 드디어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도 먹지 못하니 눈앞에 빵이 떠 있는 환상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의 빵은 너무 생생했다.

아주 오래전에 먹어봤던 모습이었다.

식빵, 토스트에 사용하는 식빵이었다.

식빵에는 무언가를 발라서 구운 듯 고소한 향기가 났고 먹음직하게 노르스름했다.

손을 뻗었다.

그러자 빵이 뒤로 물러났다.

“안 돼…….”

빵을 쫓아갔다.

피티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방에 들어왔다.

갑자기 머릿속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용병이 되시겠습니까? 용병이 되면 빵을 먹을 수 있습니다.

눈앞의 빵이 환상이라 생각했지만 환상이거나 말거나 피티는 대답했다.

“되고 싶어요.”

―용병 계약이 성립되었습니다.

―용병 기본 특전으로 소환술사의 언어인 한국어를 할 수 있습니다.

스르륵. 피티의 눈앞에 갑자기 여러 사람이 나타났다.

탁.

누군가 피티의 손을 잡았다.

피티는 거부할 힘도 없었다.

그는 피티의 손을 들어 올리더니 손바닥 위에 빵을 올려주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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