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드론 배송
기예라는 반쯤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몬스터들을 찾아다녔다.
저쪽 앞에 라이칸스롭 세 마리가 보였다.
휘익!
바로 날아가 단숨에 라이칸스롭을 얼려버렸다.
“이익!”
뻑!
기예라가 얼음덩어리를 걷어찼다.
꽁꽁 언 라이칸스롭에 금이 가더니 와장창 깨져 버렸다.
물론 얼음덩어리 라이칸스롭들의 목숨도 함께 깨졌다.
그래도 기예라는 불만이었다.
“이익! 블리자드를 쓸 수가 없잖아!”
S급 마법사의 장점이 확 죽어버렸다.
대형 블리자드를 사용하면 이렇게 몇 마리가 아니라 몇백, 몇천 마리도 한 번에 몰살시킬 수가 있었다.
기예라의 별명이 왜 얼음 마녀이던가?
그렇게 한방에 대량으로 얼려 죽일 수 있으니 얼음 마녀였다.
하지만 얼음 마녀는 자신의 궁극기를 사용하지 못했다.
“아파트 사이에 몇 마리 모인 라이칸스롭에게 궁극기를 쓸 수는 없어. 마나가 아까울 뿐만 아니라, 그러면 인근의 아파트에 너무 큰 피해를 주잖아. 결국은 범위 마법이 아닌 대인 마법을 사용할 수밖에.”
이번 던전 브레이크의 몬스터들은 기존과 달랐다.
무리를 짓지 않고, 헌터들의 도발에 쉽게 응수하지 않았다.
기예라가 대형 마법을 쓰자 그대로 뒤돌아가다가 사방으로 흩어져버렸다.
그러면 기예라는 누구와 싸워야 한다는 말인가?
전투의 흐름이 시가전으로 흘렀다.
시가전에서는 강력한 한방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주택가에서 블리자드를 쓸 수 없으니 S급이나 A급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졌다.
이런 것은 마법뿐만이 아니었다.
S급 소드마스터인 차지율도 시원스레 칼질을 못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동해 전투에서는 바다를 향해 마음껏 칼질을 할 수 있었지만, 골목길에서는 그러다 집을 무너트리는 수가 있어. 건물을 부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몬스터들을 잡으려면 딱 몬스터만 죽을 정도의 기술을 사용해야 해.”
S급 검사 역시 궁극기를 봉인한 채 싸워야 했다.
오성의 노승민도 마찬가지였다.
“도심에서 켄타우로스가 뛰어다니면 건물 피해가 막심해서 안 되겠어. 걸음걸음을 조심하게 하느니 맨몸으로 싸우는 게 나아.”
S급들이 자신의 궁극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봉인된 채 전투해야 한다면 그들도 상황을 바꿀 게임 체인저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몬스터들이 건물 속에 있어!”
또한 도시는 숨을 공간이 많았다.
대피소가 많아서 사람들이 꼭꼭 숨었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몬스터 역시 쉽게 숨어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어딘가 창문 하나를 깨고 들어가 있으면 반대쪽에서 보면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 도시에서의 전투였다.
바로 옆 건물, 바로 옆 방에 뭐가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시가전이었다.
야외에서라면 언덕 하나, 강 하나를 두고 진지를 구축하며 싸워야 했는데 시가전의 형태를 띠다 보니 건물 하나하나, 방 하나하나가 새로운 공간이었다.
* * *
서울역 광장에 헌터들이 쏟아졌다.
“마, 고마 몬스터 확 쌔리삐라 안 카나!”
“던전 브레이크 터질 줄 알았으면 그제 올걸 그랬슈.”
“오빠야, 몬스터는 어대??”
전국 방방곡곡의 헌터들이 한곳에 모이니 그 에너지가 활활 타올랐다.
“와, 이렇게 많은 헌터들이 오다니 감동이네요.”
나와 지휘를 함께 하고 있던 경감이 말했다.
“그럼요.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하기 위해 달려오는 것은 누구나 같은 마음이에요. 민준 헌터님은 동해안에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을 때 안 그러셨나요?”
그랬다.
나도 동해안 던전 브레이크 때 망설이지 않고 달려갔다.
저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경감이 물었다.
“저들을 어디로 보내면 될까요?”
나에게는 인지 공유를 통한 헌터들의 눈, 그리고 경찰 관계자들을 통한 CCTV와 일반인들이 올린 정보들이 모였다.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최적의 지휘를 해야 했다.
“르녹, 알타르 님 소환.”
화아악!
“영주님.”
“스승님.”
일단 둘을 불렀다.
“경감님. 저는 헌터 협회장님의 관리자 권한을 받은 사람입니다. 제 말이 곧 헌터 협회장님의 말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네! 잘 알고 있습니다.”
혹시나 내 지시에 반발할까 해서 물었지만, 오히려 내 지시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경감님. 무기와 포션류를 기부할게요. 헌터들이 서울역에서 나오는 방향에 배치해주시고 헌터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세요.”
“네!”
“르녹, 알타르 님, 두 분 여기 경감님이 말씀하시는 곳에 가져온 무기들을 쏟으세요.”
나는 샤샤와 공유하고 있는 선물함에서도 무기류를 왕창 쏟았다.
“이 무기들도 부탁드립니다.”
“네! 얘들아! 날라라.”
나는 손을 들어 반대쪽 공터를 가리켰다.
“이쪽은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주세요. 제가 환자들을 소환할 거예요. 각종 힐러들과 의료진을 집합시키세요.”
“네. 알겠습니다.”
“일단 지금 온 헌터들은 이곳과 가까운 장소로 이동하도록 합니다. 반경 5km 정도까지는 달려서 가도 충분할 테니 헌터들에게 몬스터의 위치를 알려주시고 그들에게 맡기세요.”
지금 온 헌터들에게 몬스터들이 있는 위치가 전달되었다.
“몬스터 실시간 위치 정보 앱이라꼬? 아따 이건 언제 만들었나?”
“어제 만들었나 부쥬.”
“오빠야, 우린 절로 가자.”
헌터들은 조를 이루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몬스터들이 서너 마리씩 뭉쳐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헌터들은 열 명 정도는 되어야 안전할 수 있었다.
나는 제리와 카나에게 쪽지를 보냈다.
[제리, 카나 상황은 어때?]
[제 쪽은 오성의 노승민 헌터가 합류해서 괜찮아요. 그런데 몬스터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일반인들을 지키는 데 애를 먹고 있어요.]
[나도 비슷하당. 하지만 내 쪽은 S급도 없당.]
[그럼 제리 쪽으로 일단 르녹을 보내줄게.]
나는 트란 산맥 팀들을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A급 장유환 헌터, 트란 산맥 쪽 상황은 어떤가요?]
[네, 여긴 안전합니다. 원래 깊이 들어가지 않았는데 기예라 누님 소환되고 산에서 거의 내려왔습니다.]
[혹시 유환 헌터와 꾸얀이 이쪽으로 넘어올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고마워요. 그럼 소환할게요.]
“꾸얀, 유환 소환.”
꾸얀과 유환도 소환되었다.
“꾸얀, 유환 그리고 르녹이 제리가 있는 곳으로 가세요. 대신 제리를 다른 역할로 쓰려고 하거든요.”
“넵!”
그렇게 인원을 재분배했다.
[카나, 제리!]
[네!]
[냥]
[카나는 비행차량으로, 제리는 드론으로 내가 알려주는 장소로 날아가.]
“알타르 님!”
“네, 스승님.”
“높은 곳에서 천천히 떨어지게 하는 마법 쓰실 수 있으신가요?”
“부유마법이군요. 할 수 있습니다.”
“제 앞쪽으로 오는 헌터들에게는 S급 마정석 두 개의 마나를 다 쓰시더라도 부유마법을 걸어주세요. 높은 곳에서 떨어뜨릴 거예요.”
“알겠습니다.”
시가전.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카나와 제리의 비행 배송, 드론 배송이 필요했다.
* * *
서울의 밤은 늘 밝았다.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은 밤이 되면 인적이 끊기겠지만 서울의 밤은 치안이 유난히 좋아 밤에도 늘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먹자골목에는 맛집을 찾는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이어지곤 했다.
가영이는 방학을 맞아 서울에 있는 친구 세희와 만나러 왔다가 던전 브레이크라는 봉변을 당했다.
에에에에엥!
―시민 여러분, 지금 서울에서 A급 던전 다섯 개가 브레이크 되었습니다. 모든 시민들께서는 거리로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까운 대피소에 가시거나 건물의 문을 잠그고 인기척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에에에에엥!
밖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영이는 조금 전까지 친구 세희와 음식을 먹던 중 날벼락을 맞아 식당에 그대로 있었다.
가게의 주인아저씨가 말했다.
“가게 문은 모두 잠갔습니다. 다행히 저희 식당은 5층이니까 이대로 모든 문을 닫고 있겠습니다. 방송에서 안전하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해주셨으면 합니다. 밖은 위험합니다.”
얼떨결에 식당에서 갇혀있게 되었다.
창문은 모두 커튼으로 가려지고 문은 모두 잠겼다.
그리고 실내의 불까지 모두 껐다.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빛에 의지한 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숨죽이고 있었다.
세희는 가영이와 함께 겉옷을 뒤집어써서 빛 또는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한 다음 조용히 톡으로 대화했다.
[그래도 여기 5층이니까 안전하겠지?]
[1층보다는 훨 낫겠지. 설마 몬스터들이 5층까지 올라와서 문을 따겠어?]
[하진 그래. 조용히만 있으면 안전할 거야.]
[가영아, 여기 봐. 몬스터 위치 정보를 알려주는 사이트래.]
[이런 건 언제 만들었대. 어! 여기 근처에도 있는데?]
[헉. 백 미터도 안 되는 곳에 몬스터가 있대. 어떡해]
[조용히 숨죽이고 있어야지. 5층이라고 나대다가 걸리면 끝이야.]
[하아.]
[정말 어쩌다 이렇게 됐지.]
[가영아, 그런데 민아는 뭐해? 걔네 오빠 헌터 맞지? 인맥으로 어떻게 안 될까?]
[민아 오빠는 헌터 맞는데 민아는 연락 안 돼. 유학 갔어.]
[유학?]
[응.]
세희는 민아가 유학을 갔다는 소리에 민아의 SNS 계정에 들어가 보았다.
[가영아, 민아 계정 소개글인데, ‘백작가의 여동생이 되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그다음 글에는 ‘영지민들이 나에게 집착한다?’ 이게 무슨 소리지? 너 이게 무슨 소린 줄 알아?]
[걔 던전으로 유학 갔어.]
[뭐?]
[걔네 오빠가 던전주라잖아.]
[올 던전주?]
[그렇지.]
[아무튼 거기에서 걔네 오빠가 영지가 있는 영주이고, 급이 백작인가 봐. 민아는 가자마자 백작의 여동생 대우를 받는 거고.]
[아… 좋겠다. 너 그 오빠 연락처 알아?]
[헐, 넘보지 마.]
[왜?]
가영이는 인터넷에서 소환수들이 있는 사진을 검색해서 세희에게 보여주었다.
[대박, 뭐가 이렇게 예뻐?]
[나도 어떻게 비벼봤는데 잘 안 돼. 나도 안 되는데 네가 되겠냐?]
[헐, 그 말 진심임? 내가 너보단 낫거든?]
[응, 아니야.]
[근데 너 가방 좋다?]
[이거? 민아가 줬어.]
[찐친인데?]
그때 무언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쾅, 쾅, 쾅!
순간적으로 홀 안의 사람들은 눈만 동그랗게 뜬 채 굳어버렸다.
“캬아아아아!”
문 바깥에서 알 수 없는 괴물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철문입니다. 그것도 바깥에서 당기는 문이에요.”
그래도 사장이 철문이라며 사람들의 동요를 막아보려 했다.
몬스터가 밀어붙이는 것만으로는 쉽게 열리지 않는 문이라고 설명하려는 듯했다.
쾅!
하지만 문은 위쪽 부분이 찌그러져 몬스터의 얼굴이 살짝 보였다.
안에 있는 사람들과 몬스터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실내에 있는 사람들이 공황에 빠졌다.
“뒷문이 있어요!”
사장이 먼저 나섰다.
허둥지둥.
철컥.
쾅, 쾅, 쾅!
사람들은 우르르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사장은 옥상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옥상에도 방화문이 있어요. 임시로 대피 공간이기 때문에 거기 문은 더 튼튼할 거예요.”
사장의 말을 듣고 옥상으로 올라갈 것인가?
아니면 1층으로 내려갈 것인가?
가영이와 세희는 옥상으로 따라 올라갔다.
사람들이 올라오고 문이 닫혔다.
가게의 문보다 튼튼해 보이긴 했다.
쾅! 쾅! 쾅!
하지만 몬스터가 이곳까지 따라 올라와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렇게 1분 정도 지나자 옥상 문도 절반 정도가 뜯겼다.
“아……”
옥상에서 어디로 피신을 해야 할까?
그때, 가영이가 몬스터를 향해 다가갔다.
깜짝 놀란 세희는 눈만 동그랗게 떴다.
가영이는 가방을 벗었다.
그리고 가방에 있는 안전탭을 제거한 후, 문틈으로 던지며 외쳤다.
“실드!”
지이이잉.
문틈에 실드가 생겼다.
그 바람에 몬스터가 뒤로 뒷걸음을 치다가 계단에서 굴렀다.
“캬아아아아!”
화가 난 몬스터는 실드를 가격했다.
쾅! 쾅! 쾅!
하지만 실드는 굳건했다.
“저 실드가 문을 막아줄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실드라고 해도 두드리다 보면 부서질 거예요. 도와줄 사람이 있으면 불러보세요.”
사람들이 서둘러 이곳저곳 인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반쯤 열린 문.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반투명한 실드.
그리고 그 건너의 몬스터.
자세히 보니 라이칸스롭이었다.
“거기 119죠? 여기 옥상에 갇혔는데 입구에 몬스터가 있어요. 지금 실드로 막아놨는데, 빨리 올 수 없나요? 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제길. 구조 신호가 너무 많은가 봐.”
“연락도 잘 안돼!”
“실시간 몬스터 위치 알림 앱에 여기 상황을 올렸어요.”
쾅! 쾅! 쾅!
몬스터는 이곳 사람들과 무슨 원수라도 졌는지 꼭 들어와야겠다며 실드를 두드렸다.
세희가 가영이에게 물었다.
“우리가 살 수 있을까?”
“헌터들이 늦지 않아야겠지.”
“오, 제발. 저희를 구해주세요.”
세희는 누구든 구해달라며 기도했다.
그 기도에 응해서일까?
위이이잉!
그때 하늘에서 뭔가가 빠르게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어!”
가영이는 그 물체가 예전에 꼭 인터넷에서 본 드론제리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다.
드론이 머리 위를 스치는 순간 허공에서 사람들이 생겨났다.
위이이잉!
허공에 사람들을 생성한 물체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허공에 생성된 사람들은 천천히 내려왔다.
팔랑팔랑.
마치 물속에서 가라앉는 것처럼 사람들은 천천히 옥상으로 내려왔다.
중세 기사처럼 갑옷을 입은 이, 흉측하게 생긴 뾰족뾰족한 몽둥이를 들고 있는 남자, 화려한 별무늬가 새겨진 망토를 두른 여자.
그들은 헌터였다.
“아따 싸게 싸게 한번 혀 보자꾸마.”
“오빠야, 몬스터는 내게 맡긴나.”
세희가 중얼거렸다.
“와, 하늘에서 눈처럼 헌터들이 내려와.”
꼭 첫눈이 내리는 모습을 본 어린아이처럼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헌터들을 보며 기뻐하고 눈물을 흘렸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