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절망
카나가 지목한 자를 향해 협회 직원과 내가 달려들었다.
“캬아악!”
그러자 그자는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듯한 괴성을 지르며 반항했다.
함께 있던 동료들이 깜짝 놀랐다.
“허걱! 박 과장!”
“잡아!”
“죽이지는 마세요!”
“바인드!”
박 과장이라 불린 남자는 나의 바인드에 의해 금세 꽁꽁 묶여 버렸다.
무력이 뛰어난 자는 아니었다.
설령 무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이쪽은 S급까지 포함한 인원이었다.
“캬아악!”
박 과장은 온몸이 꽁꽁 묶인 채 입으로만 저항을 했다.
주변 동료들은 바인드에 묶인 채 이상한 괴성을 지르는 동료를 당황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헌터 협회 직원에게 물었다.
“이거 직원들도 있고 그런데 경찰에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협회 직원이 품속의 신분증을 꺼냈다.
신분증에는 경찰이라고 써 있었다.
“저는 경찰이기도 하면서 헌터이기도 합니다. 겸업입니다.”
“아, 경찰 헌터시군요.”
“네, 지금 연락했으니 곧 다른 경찰들이 올 겁니다. 뒷정리는 그들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경찰 헌터가 잠시 생각의 정리를 하는 듯했다.
“국회의원도 당했고 전국적으로 곡물 창고에 공격을 가하고 있으니 꽤 스케일이 큽니다. 이자를 이용해서 몸통이나 머리를 잡을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자를 연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끄덕.
“일단 협회 연구소로 가시죠.”
바둥거리는 박 과장이라는 사람을 데리고 비행 차량에 탑승한 후 헌터 협회 연구소를 방문했다.
헌터 협회 연구소에는 여러 연구직 헌터들이 있었다.
흰색 가운을 입고 무시무시해 보이는 기구들을 들고 다가왔다.
연구원들이 박 과장이란 자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나도 측정되는 결과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체온은 15도입니다. 현재 기온과 같습니다.”
“심장이 뛰지도 않고 혈액도 순환하지 않습니다. 호흡도 없고요.”
“신체를 분석해보면 움직인다는 것만 빼고는 죽은 지 이틀 된 사체와 상태가 거의 같습니다.”
“언데드입니다.”
박 과장이 언데드임이 확실해지자 연구원들이 추가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언데드를 잡아 오셨다면서요?”
“와, 저 언데드 실험은 처음이에요.”
“동영상으로만 보다가 직접 실험할 생각을 하니까 짜릿한데요?”
“어허, 언데드라고 아예 죽지 않는 게 아니야. 죽었는데 움직이게 해놔서 언데드지. 조심조심해서 다뤄야지 잘못 다루면 그냥 골로 간다고. 어떻게 잡아 온 귀한 언데드인데 조심해! 알았어!”
“넵!”
뭔가 연구원들이 흥분한 것 같았지만, 일단 맡기기로 했다.
박 과장을 검사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경찰 헌터가 나에게 다가왔다.
“연구원들이 신성력 테스트를 하길 원합니다.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나는 이제는 언데드를 향해 신성력을 뿜었다.
“디바인…….”
“크아아아!”
디바인 홀리 큐어를 완성하기도 전에 살짝 흘러나오는 신성력에 반응했다.
“신성력에 아주 민감하네요. 디바인…….”
“크아아아!”
“디…….”
“캬아악!”
신성력에는 매우 민감했다.
하지만 신성력으로 고통을 줘봐도 그저 캬악거릴 뿐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뭔 말이라도 해야 카나를 통해 거짓 여부를 파악할 텐데 캬악거리기만 하니 어렵네요.”
“일부러 저러는 걸까요?”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연구원들이 분석한 결과. 혀도 굳고 성대도 제 기능을 하지 않아서 대화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네요.”
“그런데도 움직이는 것을 보면 신기하네요.”
“그러게요. 그 원동력을 찾아야겠죠.”
“경찰 헌터님은 원동력이 누구일 것 같아요?”
“글쎄요. 가능성은 열어둬야죠. 새로운 몬스터일 수도 있고, 아니면 세력일 수도 있죠. 이 정도 규모로 일을 꾸미려면 북한이나 일본과 같은 타국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
연구원들이 잡아 온 언데드 한 마리를 가지고 연구를 하는 동안 나는 나대로 이곳저곳 알아보았다.
우선 언데드가 내 신성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니 신성력의 전문가, 원조 신성력자에게 문의를 해보았다.
“알파야, 화면 띄워서 신성교국으로 가보자.”
화면이 신성교국을 비췄다.
슈우욱.
화면을 조절해서 풍요와 대지의 신전을 향했다.
한때 오랫동안 지켜보던 곳이라 오랜만이긴 했지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성녀는 신전에 있었다.
화면이 성녀를 향하자 나를 눈치챘는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성녀에게 용병을 걸어주었다.
[안녕하세요. 성녀님.]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답니다. 지난번에 크게 도와주셔서 덕분에 제가 신성교국의 연합장의 역할을 맡고 있답니다. 모두 민준 님 덕분이에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런데 성녀님 이렇게 연락드린 건 궁금한 것이 한 가지 있어서예요.]
[무엇인가요?]
[저희 세상에 언데드가 발생했는데 제 신성력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해요. 아주 미약하게 신성력을 흘려도 꽤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왜 그럴까요?]
[음, 민준 님의 신성력은 풍요와 대지의 신성력이에요. 태양의 신, 전쟁의 신 등의 신성력도 언데드에게는 꽤 아프겠죠. 하지만 저희 신성력이야말로 언데드에게는 제격이랍니다. 거의 상극이죠.]
[아, 상극이군요. 성녀님, 혹시 제가 언데드 한 마리를 잡아놨는데, 와서 봐주실 수는 없을까요?]
[물론이죠.]
[와, 감사합니다.]
“알파야, 성녀님 소환!”
화아악!
성녀가 소환되었다.
경찰 헌터와 연구원들의 협조를 받아 성녀가 언데드를 살폈다.
“흠, 이건 신전 측에서 직속으로 만든 언데드는 아닌 것 같아요.”
“신전 직속이요?”
“네, 신전 측에서 만들면 이보다 신의 냄새가 짙게 풍기거든요. 그런데 이 언데드를 보니 신의 냄새가 아주 짙지는 않아요.”
“그러면요?”
“그래도 제가 누굽니까? 신의 냄새가 나긴 납니다.”
“어느 신인데요?”
“절망과 허기의 신의 향기가 나요.”
“예? 절망과 허기의 신이요?”
“네.”
“그게 어떤 신인데요?”
“글리제에는 여러 신이 있어요. 그중 절망과 허기에 관여하는 신인데, 지난 신성교국 내전에서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거든요. 그래서 한참을 안보였는데 이쪽에서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니, 글리제의 신이라면서요. 글리제의 신이 지구로 넘어온 것일까요?”
“그렇지 않을 거예요. 신 자체는 차원을 넘지 않았을 거예요. 지구는 지구의 신이 있겠죠.”
“그럼요?”
“글리제의 신을 따르거나 영향을 받는 자가 지구로 넘어왔겠죠. 마치 풍요와 대지의 신을 모시는 제가 지금 여기 이렇게 서 있는 것처럼요.”
“아!”
이거 문제가 복잡해 보였다.
“그럼 성녀님이 보시기에는 저 언데드는 절망과 허기의 신을 따르는 어떤 집단이 지구로 넘어와서 만들었다는 것이죠?”
“네, 그래요.”
“어떤 집단일까요?”
“글쎄요. 그것까진 모르겠군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 더 궁금한 것 있으시면 다시 연락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의외의 신의 이름이 나왔다.
절망과 허기의 신을 따르는 집단이라니!
“경찰 헌터님?”
“네.”
“방금 보신 성녀님께서 말씀하시길 절망과 허기의 신을 따르는 어떤 세력이 존재하고, 그 존재가 언데드를 만들었을 거라고 보고 계십니다.”
“그렇군요. 종교와 관련된 문제라면 이처럼 규모가 커질 수 있겠죠.”
국회의원, 곡물 창고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공격까지 규모가 컸다.
이러한 규모의 공격은 한 두 명의 범죄자가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절망과 허기라는 신을 믿는 종교집단이 관여할 수 있다는 말에 수사의 초점이 그 방향으로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곡물 창고를 공격한다는 것이 자연스럽기는 합니다.”
“맞아요. 곡물 창고 공격이라니, 황당했는데 굶주리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상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라면 가능할 법도 해요.”
“그렇죠. 대량의 식재료가 있는 곳이나 유통하는 곳에서는 언데드를 조심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런데 신이 절망과 허기라고요?”
“네.”
“그러면 허기를 목적으로 곡물 창고 등을 공격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절망은 또 뭘까요?”
곡물 창고만 신경 쓰고 있었는데 문제는 허기뿐이 아니었다.
뭔가 절망할 상황을 만들거나 이미 절망한 사람들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 * *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대형 물류센터에서는 오늘도 직원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일은 어렵지는 않았다.
단순하게 물건들을 분류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물건들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것이 힘든 일이었다.
몸은 힘들고 머리는 지겨우니 직원들은 종종 라디오를 켜곤 했다.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어제 발생한 국가 곡물 창고 화재 현장입니다. 아직도 불길이 사그라들지 않았는데요.
직원들은 일을 하며 잡담을 했다.
“자나 깨나 불조심을 해야 해.”
“그러게. 우리 같은 물류 창고도 마찬가지라고.”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저녁 9시부터 밤하늘에서는 월식이 발생할 예정입니다. 특히 오늘 밤 달은 지구와 매우 가까워 슈퍼문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홍 반장, 공문 내려온 것 봤어?”
“무슨 공문?”
“곡물 창고나 물류센터에서 언데드가 있을 수 있으니 하루에 세 번씩 체온 체크해서 보내라는 공문 말야.”
“아, 귀찮게 뭔 체온을 체크해서 보내래.”
“몰라, 체온이 실온에 가까운 자가 있으면 보고하래.”
“그게 뭔 소리야. 체온이 36.5도 정도지, 실온이면 체온이 10도, 20도 그런가?”
“허허, 그러게. 그러면 그게 사람이여, 시체지.”
“그러게 말이야.”
한참을 일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이 되었다.
직원 한 명이 아파 보였다.
“최 반장 아파?”
끄덕끄덕.
“아프면 집에서 쉬어야지 뭘 여기까지 나왔어.”
최 반장은 말이 없었다.
“에고,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
“다들 줄 서. 체온 체크하게.”
“귀찮게시리.”
“줄 서. 위에서 하라잖아.”
“재 봐.”
삑!
“김 팀장 36.5도 정상.”
삑!
“박 반장도 정상.”
삑!
김 반장은 최 반장의 체온을 측정하다가 잠시 멈췄다.
삑!
삑!
체온계에는 15도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최 반장이 체온계를 들고 있는 김 반장을 보았다.
갸우뚱.
최 반장이 고개를 기울였다.
“어… 어, 괜찮아. 정상!”
김 반장은 조심스레 뒷걸음질을 쳤다.
* * *
절망하는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
절망한 이들을 찾기 위해 제리는 한강으로 나왔다.
위이이잉.
드론제리가 한강을 배회했다.
강 저편으로 노량진, 반대편으로 금융의 메카가 보였다.
오랜 수험생활을 하다가 시험에 떨어진 사람들, 금융의 메카에서 일확천금을 노리다가 반대로 꼬꾸라지는 사람들, 그런 절망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었다.
벤처 캐피탈 매니저인 최 매니저는 술에 잔뜩 취한 채 걸어서 한강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제길.”
무려 5억이 물렸다.
확실한 투자 기회라고 생각해서 고객의 돈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돈까지 물렸다.
고객의 돈은 직장에서 잘리면 그만이었지만, 자신의 돈 5억은 어떻게 방법이 없었다.
물끄러미 한강을 바라보았다.
최 매니저는 인간의 정신력이 얼마나 나약한지 새삼 느끼고 있었다.
불쑥!
“으헉!”
갑자기 허공에서 뭔가가 나타났다.
“귀신이다!”
최 매니저는 헐레벌떡 뛰어서 달아났다.
살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놀라웠다.
“뭐냥. 죽으려고 했던 거 아니냥?”
위이이잉.
“어디냥, 어디에 있냥?”
그렇게 제리는 절망과 허기를 노리며 어딘가에서 뭔가를 꾸미고 있을 이들을 찾으며 한강에서 보초를 섰다.
* * *
서울역 지하도에는 노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은 저마다 기구한 사연 하나쯤은 갖고 있었다.
사업을 하며 승승장구하다가 동업자의 배신으로 부도가 난 사연, 안정적인 직장을 다녔지만, 뒤돌아보니 배우자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은 사연, 던전에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몸도 마음도 망가진 사연, 던전 브레이크에 모든 것을 잃은 사연 등 하나같이 기구했다.
“김 씨, 신문지 한 장만 빌려줘.”
“빌려주면 갚을 건가? 나 누가 안 갚는 것 되게 싫어하는 사람이야.”
“알았어. 그럼 팔아. 자, 여기 소주 한잔에 신문지 한 장 나에게 팔아.”
“소주? 큼, 그러지.”
서울역의 두 노숙자는 소주 한 잔에 신문지 한 장을 교환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
소주를 마시던 둘은 며칠 전 새로 이곳으로 들어온 자를 보았다.
한쪽 구석에 박스를 펴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까 전에 눕기 전에 본 얼굴에는 두 눈이 팅팅 불어 있었다.
아마도 어디 가서 펑펑 울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저기 신입도 한잔할 생각 있냐고 물어봐.”
“냅둬. 저땐 그냥 내버려 둬야 해.”
“그런가.”
모로 누워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암울한 분위기가 갓 들어 온 신입다웠다.
그때 갑자기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버렸다.
“왜 저래?”
“글쎄, 어디 가서 뒈지기라도 할 작정인가?”
“그런가. 소주나 한잔 더 줘.”
“그래.”
누워있던 이가 서울역 광장 한쪽으로 나갔다.
그곳엔 그뿐만 아니라 꽤 여러 명이 모여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무리는 어느 한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청바지에 낡은 티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자가 낮고 굵은 음성으로 말했다.
“절망한 자, 나에게 오라.”
그의 말에는 항거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서울역 광장에는 저마다의 이유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등 뒤에 커다란 달이 떠 있었다.
슈퍼문이었다.
그런데 달은 색이 이상했다.
슈퍼 레드문, 커다란 붉은 달이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