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194화 (193/230)

194화. 오랜만이군

화면 가득 예전 디아론 영지, 이제는 나의 영지가 된 서모너 영지가 보였다.

북쪽에는 험준하다는 말을 넘어 거대한 트란 산맥이 있었고 그 아래 남쪽으로는 약간의 굴곡은 있지만 나름대로 평탄한 지형이 보였다.

“아름다운 영지네요.”

나의 참모 중 한 명인 프로그래머가 영지의 모습을 3D로 재구성하며 말했다.

화면은 영지 곳곳을 날아다녔다.

함께 화면을 보고 있던 참모 후가 물었다.

“후후후,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중세 심시티는 제가 전공입니다. 인구조사, 조직 개편, 농업, 광업, 징병, 생산, 건축, 도로 건설, 수로 건설, 인구 증가 원하는 것을 고르시지요.”

“음…제가 원하는 것은 샤론 영지처럼 서모너 영지를 대규모의 산업단지로 만드는 거예요. 실리콘 밸리처럼 마나를 활용한 마력 밸리?”

“헉! 중세 심시티에 마력 밸리는 없는데요?”

또 다른 전문가가 필요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한국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서황규입니다.”

“글리제는 기본적으로 지구보다 마나가 많아요. 저는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마력단지를 만들고 싶어요. 넘치는 몬스터와 풍부한 마나 이를 활용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도시죠. 하지만 산맥에서는 몬스터가 많이 내려오니 몬스터에 대한 방어가 충분히 되어야 해요.”

도시공학과 교수는 3D로 설계된 서모너 영지 자료를 받고 실제로 서모너 영지를 둘러보며 마력단지 설계를 하기로 했다.

나는 한편으로는 도시의 미래를 그리는 계획을 세웠고 동시에 서모너 영지의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취임식을 열기로 했다.

물론 내가 직접 갈 수가 없어서 동영상을 찍어 영지민들이 볼 수 있게 상영하도록 했다.

영상 속의 내가 말했다.

“반갑습니다. 김 서모너 민준 백작입니다.”

“와아아아!”

영상을 보면서도 영지민들이 환호했다.

영상은 내 소개부터 시작했다.

“저는 소환술사로 글리제에서 멀리 떨어진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을 볼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우리를 볼 수 있으시다는데?”

“갑자기 허공에서 용병 계약을 하겠냐는 물음이 들리면 계약을 한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와 계약하고 대화를 하거나 만날 수 있습니다.”

“오오오!”

“그리고 아시는 분도 계시지만 저의 소환수는 샤샤, 제리, 카나입니다. 제가 영지에 가지 못하는 관계로 대리인을 세워야 하는데 샤샤가 그 역할을 할 것입니다. 샤샤가 영주 대리입니다.”

화면에 샤샤의 모습이 보였다.

“아! 발키리 님이시구나!”

“영주 대리 발키리 님!”

샤샤의 인기가 대단했다.

“우리 영지는 앞으로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마나초와 같은 특용작물 재배지역, 물건에 마법으로 각인을 시키는 마법 장비 생산 지역, 거주지역, 도로와 생태까지 고려한 산업단지로 재탄생할 것입니다.”

웅성웅성.

영지민들은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했다.

* * *

영지의 취임식과 도시 설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기예라가 트란 산맥으로 보내달라고 보챘다.

“민준, 이제 나를 트란 산맥으로 보내줘야지.”

“네, 물론이죠. 그래도 혼자 가시긴 좀 뭐하잖아요? 팀을 꾸려볼게요.”

샤샤에게 쪽지를 보냈다.

[샤샤~]

[네, 민준 님.]

[기예라 누님이 트란 산맥을 탐사하고 싶으시다는 것 알지?]

[네, 그럼요.]

[그런데 아무리 기예라 누님이 S급이긴 하지만 그래도 트란 산맥에 혼자 보내는 건 좀 그런데 탐사팀을 꾸려야 할 것 같아.]

[네, 누구를 보낼까요? 제가 갈까요?]

[아냐, 소환수 급은 좀 오버인 것 같아. 지금 서모너 영지를 꾸려야 해서 얼마나 바쁜데, 네가 가면 안 돼. 기사급에서 한 명 정도 붙여드리고 산맥을 잘 알고 있는 사냥꾼을 조금 붙여주면 되지 싶어.]

[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그럼 부탁해.]

[맡겨 주세요.]

나는 동서 형님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형님, 기예라 누님이 트란 산맥을 탐사하신다는데 함께 보낼 이가 있을까요?”

“트란 산맥에?”

“예, 장기간 기예라 누님과 호흡도 조금 맞출 줄 알고 몬스터가 많은 곳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유환이 보내면 딱이네.”

“아, 그렇군요.”

총 일곱 명의 팀이 꾸려졌다.

멤버는 기예라, 장유환, 꾸얀, 사냥꾼 쟝, 샤론 영지의 3서클 마법사 삼총사인 사니, 코두, 다르를 붙여주었다.

“알파야, 화면 좀 열어봐.”

트란 산맥을 오르고 있는 기예라 등의 트란 산맥 탐사팀이 보였다.

[예라 누님.]

[응, 보고 있니?]

[예, 누님. 멤버 구성은 마음에 드시나요?]

[그래, 고마워. 나는 혼자라도 올라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여러 명을 붙여주니 고맙지. 유환이는 뭐 10년 전부터 알던 애고, 꾸얀이라는 기사도 아주 눈치가 비상하던데? 그리고 쟝 씨는 아주 길을 훤하게 아셔서 믿음직해. 삼총사도 귀엽고.]

[네, 선물함에 등산 장비 꽉꽉 넣어드렸으니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드시고 싶으신 것이나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쪽지 주세요. 바로 넣어드릴게요.]

[에이, 말만 들어도 고맙네.]

[그럼 수고하세요.]

그렇게 기예라 팀을 보내고 며칠이 지났다.

백작성을 꾸리려다 보니 정신없이 바빴다.

프란시아 왕성에서 보내는 물건들은 물량이 장난이 아니었다.

백만 대군이 몰려와서 십만 단위의 몬스터 가죽을 남겼다.

그리고 새롭게 나의 영지민들은 나를 잘 몰라서 불안 반 호기심 반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말 한번 걸어주는 것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용병을 처음 경험하는 영지민들은 이게 뭔가 싶어 어디둥절하곤 했다.

[용병? 어디세요? 누구세요?]

[저는 영주입니다.]

[눼?]

[영주요. 김 서모너 민준이라고요. 이번에 여기 영주가 되었잖아요. 아직 모르세요?]

[히이이익!]

하지만 그렇게 어디둥절 놀라다가도 힐이나 큐어 한방에 감동하기 일쑤였다.

[흑흑흑, 영주님]

[어… 근데 왜 우세요?]

[영…영주님…영…영주님, 흐엉!]

[저기 아파 보여서 큐어 걸어드린 거예요. 울지는 마세요.]

[영광입니다. 으아아앙!]

영지민은 많았고 지나가는 영지민 셋 중 하나는 어디 아픈 곳이 있었다.

몇 마디 대화와 힐에 영지민들은 쉽게 감동했다.

말 몇 마디에 평판이 오르고 힐 몇 방에 충성심이 쭉쭉 올랐다.

[샤샤야, 오늘은 영지민들에게 쌀 맛을 보여줘.]

80kg짜리 쌀 포대가 서모너 영지로 운반되었다.

“영주님이 곡물을 푸신다고?”

“디아론 백작님도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시는 훌륭한 분이셨는데, 이번 영주님은 아예 곡물까지 푸시다니 너무 좋은데?”

“나는 영주님이 바뀌어서 취임세를 걷을 줄 알았어.”

“자네, 그 쌀이라는 곡물을 먹어 봤는가?”

“아니, 아직.”

“그 쌀이라는 곡물을 물에 넣고 끓이면 하얗고 윤기가 반질반질하며 찰기가 있어. 그리고 오래 씹으면 고소하면서도 단맛이 난다네.”

“꿀꺽. 나고 빨리 먹어봤으면 좋겠네.”

“그리고 정말 놀라운 게 뭔지 아나?”

“뭔데?”

“그 곡물에는!”

“곡물에는?”

“돌이 씹히지 않는다네.”

“에이, 거짓말. 돌이 섞이지 않은 곡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작은 곡물과 돌이 섞일 텐데 하루 종일 돌만 고른단 말인가?”

“이 사람이 못 믿기는! 먹어 보면 알 것 아닌가!”

[민준 님?]

[어, 샤샤야.]

[그런데 왜 지구에서 넘어온 농작물에는 돌이 없어요?]

[어?]

왜 없더라.

쌀에는 원래 돌이 없는 게 아니었나?

인터넷에 물어보니 답이 나왔다.

[어, 여기서는 콤바인이라는 기계가 벼가 서 있을 때 잘라서 껍질을 까기 때문에 쌀이 땅에 닿은 적이 없대.]

[쌀이 자라서 먹을 때까지 한 번도 땅에 닿지 않는다고요?]

[응, 그러니까 돌이 없지.]

[와, 지구는 농사에도 마법을 쓰는군요.]

[뭐 그런 셈이지.]

그렇게 새로운 영지를 안정시키며 짬짬이 트란 산맥을 탐사하고 있는 기예라도 관찰했다.

기예라는 벌써 몬스터 몇 마리를 잡아놓고는 마치 해부를 하는 검시관처럼 몬스터를 조각내고 뭔가를 탐구하고 있었다.

[누님, 쉬엄쉬엄하세요.]

[알았어. 내가 생각했던 곳이 여기가 맞는 것 같아서. 트란 산맥의 몬스터들은 다른 곳의 몬스터와 조금 달라. 내가 찾던 곳이 여기였던 것 같아.]

[그래요? 뭐를 찾으시는데요?]

[마족.]

[마족이요?]

마족이 트란 산맥에 있으면 문제가 심각했다.

[트란 산맥에 마족이 있어요?]

[그건 나도 모르지. 하지만 연관성이 있는 건 틀림없어.]

[그랬군요. 누님 잘 부탁드립니다. 누님이 아니었으면 모르고 있었을 뻔했어요. 탐사 잘하시고 꼭 찾고자 하는 것 찾으셨으면 해요. 필요한 것 있으시면 바로바로 쪽지 주시고요.]

[그래, 알았어.]

[종종 찾아뵐게요.]

[응, 땡큐.]

나는 트란 산맥의 몬스터로부터 경험치, 마정석, 가죽을 얻을 생각만 했다.

하지만 트란 산맥 그 자체를 조사하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트란 산맥을 조사하는 S급 마법사가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뭐라도 성과가 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기예라는 기예라 대로 트란 산맥을 돌아다니고 나는 나대로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 * *

헌터 협회에는 여러 가지 산하 기구가 있었다.

그 산하 기구 중에는 새롭게 나타나는 포탈을 감지하는 일을 담당하는 포탈 감시청이 있었다.

마치 기상청이 날씨나 지진을 관측하고 예보하듯 포탈 감시청은 지속적인 관측과 예보를 통해 헌터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일을 했다.

경상남도 지역의 포탈 발생 여부를 담당하고 있는 경남 포탈 감시청의 박 과장은 오늘도 성실하게 감지 기구들 앞을 지키고 있었다.

삐……!

“어?”

포탈이 발생하려면 던전 에너지가 한 곳에 집중되어야 했다.

공간을 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므로 에너지가 쏠리는 현상은 며칠 이상이 걸렸고 이를 측정하면 포탈이 열리는 시기와 장소를 예측할 수 있었다.

“아니…….”

“박 과장, 왜 그래?”

“지리산에 포탈이 열렸습… 아니, 안 열렸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리산 노고단 정상에서 포탈이 열리는 신호가 잠깐 잡혔는데, 바로 사라졌습니다.”

“뭐? 포탈이 열리자마자 클리어됐다는 거야?”

“음…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포탈이 생성되어가는 전조도 없이 바로 생성되었다가 사라졌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아마 포탈 감지 센서의 오류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런데 혹시 모르니까 확인이나 해봐.”

“네, 인근에 반달곰 길드가 있는데 지리산 노고단 정상을 점검해 달라고 요청할까요?”

“그래. 포탈이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미션이라고 해서 걸어봐. 미션비는 적당히 챙겨 주고.”

“알겠습니다.”

반달곰 길드에서는 경남 포탈 감시청의 협조 요청을 받았고 즉시 한 쌍의 헌터를 지리산 노고단 정상으로 보냈다.

휙휙.

두 헌터는 등산로를 따라 날 듯이 올라갔다.

헌터들은 올라가는 동안 여러 등산객들을 만났다.

등산객들은 날 듯이 올라가는 헌터들을 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아! 헌터님들이시군요. 수고하세요.”

“예~ 감사합니다.”

경남 포탈 감시청에서 최초 신호를 인지한 후 불과 삼십 분만에 헌터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지난 동해 S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 이후 포탈을 감지하고 확인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으며 이를 보강하기 위한 대대적인 노력이 있었다.

헌터들은 지리산 노고단 정상에 오른 후 정상 부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뭐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래도 잘 살펴봐. 포탈이 열리는 신호가 아주 잠깐 들어왔다잖아.”

“에이, 측정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잖아요.”

“아무튼 그래서 우리가 온 거잖아.”

“네네.”

두 헌터는 노고단 정상을 중심으로 반경 삼백 미터 내부를 샅샅이 훑었다.

“아무리 찾아도 뭐 특이한 건 없는데요?”

“그래, 내가 봐도 그러네. 좋아, 이대로 보고하자고.”

경남 포탈 감시청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반달곰 길드의 보고가 올라왔다.

“측정 오류인가 봅니다.”

“그래, 알았어.”

노고단에서 한참 내려가다 보면 도심의 모습이 보이는 언덕이 있었다.

그런데 그 언덕에서 도심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는 저 아래 불빛을 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까 두 헌터가 스쳐 지나간 등산객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낡은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옷은 조금 낡았지만, 등산하면서 멋지게 차려입기보다는 편안한 옷을 입는 사람들도 많아서 크게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도심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뭔가 회한이 서린 듯했다.

“음… 20년쯤 흘렀나? 산은 그대로인데 도심은 많이 달라졌군.”

그렇게 물끄러미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던 그는 뭔가 생각의 정리를 마친 듯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에 작은 청설모 한 마리가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갸우뚱.

청설모 한 마리만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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