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친구
“동서 형님, 피토니 한잔해요.”
사무실 앞쪽 공터 구석으로 차동서 부길드장을 끌고 갔다.
“캬, 피토니는 언제 먹어도 참 맛있어요. 그렇죠?”
부길드장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고민 있어?”
동서 형님은 참 눈치가 빨랐다.
“티 나요?”
“응, 많이.”
“형님, 조금 어려운 선택지가 있어서요.”
“뭔데?”
“이번에 소환술이 올랐어요.”
“오오, 그래? 소환술사 길드장의 소환술이 올랐으면 길드의 경사지, 왜 고민이야?”
“그런데 소환술이 올랐다고 보상을 그냥 주면 쉬운데 보상을 고르라고 하더라고요. 새로운 소환수를 한 명 더 추가할 수도 있고 지금 있는 소환수들에게 능력을 줄 수도 있대요.”
“어떤 능력인데?”
“그건 몰라요.”
“흠… 어느 것을 고를지 고민이어서 그래?”
“네.”
동서 형님은 내 얼굴을 빤히 보며 물었다.
“그러면 소환수를 한 명 더 추가하면 되잖아… 라고 내가 말할 수도 있고, 지금 소환수들에게 능력을 주면 되잖아… 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답이 정해졌네.”
“네?”
동서 형님이 뭔 소리를 하나 싶었다.
“민준아, 너 얼굴에 다 티나.”
“뭐가요?”
“소환수를 추가하라고 할 때는 얼굴이 심각하다가 지금 소환수들에게 능력을 주라니까 실실 쪼개고 있으면서 뭘 고민해. 이미 답은 정해져 있구만.”
그랬나?
내 마음은 이미 정해졌던 것인가?
“그래도 전투를 생각하자면 숫자가 중요하잖아요. 이번에 제국군들이 물량으로 쳐들어왔을 때도 그랬고, 또 저 역시 자원의 물량으로 승부하는 셈이거든요.”
“그래? 그런데 반대쪽 선택을 하고 싶은 이유는?”
“그거야…….”
나는 잠시 머뭇거리며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스킬을 뭘 준다는 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모험을 걸어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 그런데 내가 보기엔 지금 하는 말이 다 진심은 아닌 것 같은데?”
하…또 티가 났나 보다.
“그래,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민준은 이미 너무 잘하고 있어.”
씨익.
“맞아요. 사실 그냥 해주고 싶어서 그래요. 미지의 소환수도 좋지만 지금 있는 애들에게 더 잘해 줄 수 있다면 그걸 선택하고 싶어요.”
“그래, 좋은 선택일 거야.”
“사실 저는 소환수들과 던전, 헌팅, 전쟁의 관점으로만 지내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좋은 거 있으면 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사실 제가 빈둥빈둥하는 걸 좋아하잖아요.”
“그것도 좋지. 사실 나도 처음 자격증 따고 F급 던전 돌 때 참 재밌었어. 던전을 돈 만큼 술먹고 놀고 그런 게 좋지.”
“그러게요.”
“민준아, 네가 길드장도 하고, 영주도 하고, S급 던전과 전쟁을 하면서 부담이 많은 것 알아. 그래도 너는 혼자가 아니잖아. 나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시커먼 인간이 아니라 너와 시스템으로 연결된 네 편이 있잖아. 그 친밀도라고 했나?”
“네.”
“민준은 친밀도가 얼마야?”
“제 친밀도요?”
“그럼 다른 친밀도가 있어?”
나에 대한 샤샤, 제리, 카나가 친밀도가 아니라 소환수들에 대한 나의 친밀도를 묻는 건가?
그런 생각까지는 안 해봤다.
소환수들의 친밀도는 내가 볼 수 있으니 쉽게 알 수 있었다.
샤샤는 한참 전부터 100이었고 카나도 100을 찍었다.
도도하고 까칠한 제리도 90대였다.
그러면 나는?
나는 내 소환수들에 대해 얼마만큼의 친밀도를 가지고 있을까?
“그건 시스템에 나오지 않아요.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어요.”
“뭔데?”
“저에게 소환수들은 그냥 소환수가 아니라는 거죠.”
“그럼?”
“음… 굳이 적당한 표현을 찾자면 친구? 그래요. 친구가 딱 좋겠어요.”
“열~”
동서 형님과 내가 이야기를 나누던 사무실 앞 공터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무실 건물 지붕 위에는 햇빛을 받으며 고양이 한 마리가 일광욕하고 있었다.
살랑살랑.
고양이가 꼬리를 흔들었다.
* * *
샤론에서의 전쟁이 끝이니 이제 길드와 샤론 영지를 정리해야 할 시간이었다.
길드에 새로운 인원도 많이 뽑았는데 전쟁 때문에 서로 얼굴도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아 인사할 기회를 만들었다.
샤론 영지, 아니 이제는 서모너 영지에서 르녹, 꾸얀, 알타르, 행정관 다니엘, 마을의 대소사를 책임지던 갈리나 할머니, 한국어 교사인 랭귀지니어스가 지구로 넘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영주님의 기사인 꾸얀입니다. 지구라는 세상에서 영주님을 돕고 계신 분들을 만나 반갑습니다. 앞으로 영주님을 위해 충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르녹입니다. 저는 영주님을 위해 이미 목숨을 걸었습니다.”
인사를 하라고 했더니 충성을 다짐하고 있었다.
“부길드장 차동서입니다. 영지 쪽 분들, 다시 뵈어 반갑습니다. 샤론 영지, 아니 이제 서모너 영지와 지구의 샤론 길드는 길드장님의 양쪽 날개입니다. 함께 비상합시다.”
양쪽 세상의 멤버들이 모여 연합 회의를 했다.
르녹이 먼저 보고를 했다.
“영주님, 왕성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며칠 내로 이번 전쟁의 전리품인 마정석과 동물 및 몬스터 사체를 보내온다고 합니다.”
“그래요? 수량이 얼마나 되죠?”
“마정석은 중간급으로 약 일만 개, 사체는 대략 십만 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와, 십만이요?”
대량의 전쟁이니 대량의 전리품이 발생했다.
그래도 이렇게 많이 준다고 하니 고마웠다.
나는 영지의 공장장 역할을 하고 있는 알타르와 지구에서 물자를 담당하는 한상일을 보았다.
“알타르 님, 상일 씨, 들으셨죠? 곧 마정석 중간급으로 약 일만 개, 사체는 대략 십만 개 정도가 들어온다네요.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요?”
알타르가 먼저 이야기했다.
“영주님, 우선 사체는 영지에서 일차로 가공한 후에 지구로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지만 수량이 많아서 영지민만으로 해결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듯합니다. 마정석은 영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물자 담당 한상일입니다. 서모너 영지에서 일차 가공을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물량을 처리하지 못하신다면 그냥 지구로 보내셔도 좋습니다. 지구에서 하청을 줘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정석은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데 이건 저도 길드장님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좌중이 나를 보았다.
“기본 방향을 말씀드릴게요. 저는 돈보다는 실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대량의 마정석이 들어온다면 마나 각성제로 길드원이나 영지민들의 실력을 키우고 공격용 무기 등으로 사용하는 데 활용했으면 해요.”
“네, 영주님.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회의하니 색깔이 분명했다.
한쪽은 지구인 다른 쪽은 글리제인이 모여 영지와 길드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했다.
순간 나는 어느 한쪽만 편애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도, 글리제도 모두 소중했다.
내가 방향을 정해주자 알타르, 다니엘, 한상일, 나홍민 등 실무자급에서 한참 동안 토의를 했다.
용병은 자동으로 한국말을 사용하니 편했다.
종종 소환을 통해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해야 할 것 같았다.
회의가 끝나가자 내가 새로운 안건을 제안했다.
“자, 기본적인 회의가 끝났으면 나갑시다. 기사와 마법사 그리고 헌터가 모여서 이렇게 옹기종기 대화만 할 건 아니죠? 던전 어떻습니까? 던전.”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던전행을 반겼다.
“성동 B던전을 바로 예약했습니다. 참가 인원은 길드원 중에서 B급 이상 전원 스무 명, 그리고 길드장님의 소환수 분들과 르녹, 꾸얀, 알타르입니다.”
인원이 많다 보니 이동하는 차량만 해도 여러 대였다.
하지만 지원팀이 일을 잘해서 그런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동해도 일정이 매끄럽게 흘러갔다.
일렁일렁.
성동 B던전의 포탈이 보였다.
“오랜만에 던전에 들어가네요.”
“입던 고고.”
길드원들은 부길드장이 전체를 총괄하되 세 명의 조장이 있었다.
조장은 나리, 종구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뽑은 장유환이라는 A급 마법사였다.
“안녕하세요. A급 마법사인 장유환입니다. 길드장님, 그리고 소환수님 다음 서열은 A급인 저라고 생각합니다. 소환수님들을 하나로 묶으면 제가 넘버 쓰리가 되겠네요. 넘버 쓰리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새로 온 조장이라서 그런지 의욕이 넘쳤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네, 잘 부탁드려요.”
그런데 그런 장유환의 말에 자극받는 인물이 있었다.
“크음. 영주님 다음 서열은 소환수님인 것은 맞습니다. 그다음은 알타르 님이죠. 저는 그 다음의 실력인 소드 익스퍼트 상급인 르녹입니다.”
찌릿.
르녹과 장유환이 기 싸움을 벌였다.
기사든 헌터든 싸움꾼들 사이에는 서열정리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데 서열정리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누가 우두머리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자, 저와 소환수가 먼저 보여드릴게요. 알파야.”
―네, 민준 님.
“중급 소환술 특전을 기존의 소환수들에게 능력을 부여하는 것으로 선택하겠어.”
―네, 알겠습니다.
띠링!
―소환수 샤샤에게 고유스킬 ‘공유’가 생성되었습니다.
―소환수 제리에게 고유스킬 ‘액상화’가 생성되었습니다.
―소환수 카나에게 고유시클 ‘정견’이 생성되었습니다.
“어, 민준 님. 고유 스킬이 생성되었다고 떴어요. 공유? 이게 뭐죠?”
“난 액상화당.”
“저는 정견인데요?”
나는 소환수 고유스킬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공유>
―소환술사와 소환수가 선물함, 체력, 마나를 공유할 수 있다.
<액상화>
―신체가 액체화된다.
<정견>
―거짓을 뚫고 진실을 볼 수 있다.
샤샤의 스킬은 샤샤만 좋은 게 아니라 나에게도 완전히 좋은 스킬이었다.
그동안은 샤론 영지에서 물건을 가지고 올 때는 소환을 해서 소환수가 물건을 꺼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내가 꺼내면 되었다.
“샤샤야, 공유 스킬은 너한테만 좋은 게 아니라 나한테도 좋은데? 그리고 샤론에서 전투가 발생할 때 솔직히 내 체력과 마나가 많이 남곤 했어. 이제 팍팍 밀어줄 수 있겠네.”
“그렇군요, 히히. 혹시라도 민준 님 체력이 떨어지시면 저도 팍팍 밀어드릴 수 있게 되었어요.”
“제리야. 너는… 원래도 액체 같은 고양이였는데 이제는 그냥 막 대놓고 액체구나.”
“냥.”
“카나도 좋은 스킬인 것 같아.”
“이제 제 앞에서 거짓말은 안 된답니다.”
“에구 무서워라. 자, 그럼 몬스터 좀 몰아와 볼까? 카나? 비행 차량 타고 도발 걸면서 한 바퀴 몰아와 봐.”
“넵!”
위이이잉.
카나가 한 바퀴 도발을 걸러 갔다.
나머지 인원들은 진형을 갖추고 잠시 기다렸다.
두두두두.
5분쯤 기다리니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몬스터가 몰려오나 봐요.”
“너무 많이 몰아오는 건 아닌가?”
“괜찮을까?”
“괜찮으니까 몰아오겠지?”
아직 소환수들의 실력을 잘 모르는 B급 헌터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장유환인가 하는 A급 헌터도 입을 다문 채 긴장했다.
위이이잉.
카나가 도착했다.
“모아 왔어요.”
두두두두두.
소떼가 몰려오고 있었다.
B급 몬스터인 블랙버팔로였다.
두두두두두.
천 마리 정도가 몰려오고 있었다.
서열 정리하기 딱 좋은 숫자였다.
내가 앞으로 나갔다.
“카나야, 내 앞에 서야지?”
―소환술사의 앞을 지킬 때는 능력치가 30% 증가합니다.
S급 실드마스터 카나가 내 앞에 섰다.
그런데 카나는 내 앞을 지킬 때 모든 능력치가 30% 증가했다.
“알파야, 샤샤에게 내 체력과 마나의 90%를 넘겨줘.”
―알겠습니다.
―소환술사의 체력이 10% 이하가 될 때는 방어력이 100% 증가합니다.
다시 카나의 방어력이 100%가 증가했다.
이 정도면 방어만 따지면 SS급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설마 SS실드마스터가 B급 몬스터에게 뚫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샤샤가 내 왼편에 섰다.
“파이어, 파이어, 파이어…멀티 마나 피닉스!”
내 마나의 90%가 샤샤에게 전해졌다.
나는 힘, 민첩은 최소한만 찍었고 체력은 적당히, 그리고 마나 몰빵이었다.
그리고 마나 배터리 스킬로 인해서 안 그래도 많이 찍은 마나통이 더욱 커졌다.
마나 하나만 보면 어지간한 S급 부럽지 않았다.
그런 마나의 90%가 샤샤에게 전달되었다.
샤샤의 머리 위로 마나의 불꽃으로 만든 새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도대체 몇 마리의 불새들이 솟아오르는지 모르겠다.
두두두두.
소떼들이 거의 도달했다.
시작은 원거리 딜러인 샤샤였다.
“가라!”
끼아아악!
수많은 불새들이 소 떼를 향해 날아갔다.
한 마리의 새가 한 마리의 소를 태워버렸다.
일인일닭… 아니, 일조일우였다.
콰콰콰쾅!
한방에 절반 이상이 소들이 불타 쓰러졌다.
“타앗!”
그리고 S급 카나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감히! 감히! 이렇게 연약하신 나의 주인님을 향해 달려오다니!”
내가 지금 체력이 낮은 상태지만 뭔가 대사가 이상하긴 했다.
눈알이 뒤집힌 S급은 무서웠다.
앞으로는 카나 앞에서 체력을 샤샤에게 주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리도 멋졌다.
음무우우우우!
서걱!
서걱!
제리를 스쳐 지나가는 소들은 하나같이 목에 선혈이 낭자하며 몇 걸음 가지 못했다.
퍼억!
가끔 제리의 몸을 들이받는 소가 있었다.
스르륵.
하지만 물을 들이받아야 아무 의미 없었다.
1분.
천마리의 B급 몬스터를 학살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스윽.
뒤를 돌아보니 초임 길드원들이 선망의 눈초리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넘버 원의 모습을 보이는 데는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다음으로 소들을 잡아먹는 데빌라이온들이 있었다.
“이번엔 제가 나서보겠습니다.”
“아닙니다. 이번엔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찌릿.
르녹과 장유환은 서로 나서서 몬스터를 잡겠다며 기 싸움을 했다.
“그럼 둘 다 솜씨를 보여주세요.”
몬스터는 많았다.
“타앗! 그레이트 배쉬!”
“어느 추운 겨울날 차가운 공기를 마신다. 프로즌 핸즈!”
르녹과 장유환은 얼추 비슷한 시간에 몬스터를 잡았다.
장유환이 르녹에게 말했다.
“넘버 원은 길드장님, 넘버 투는 소환수님, 그다음 넘버 쓰리는 나다.”
“흥, 그 정도 실력으로 넘버 쓰리는 무리다. 나도 감히 넘버 쓰리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그대는 영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넘버 텐 정도는 인정하겠다.”
“이익!”
제리가 살랑살랑 걸어왔다.
“목숨을 왜 바치냥?”
제리가 장유환의 편을 드는가 싶어서 르녹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럼 영주님께 목숨도 바치지 않고 충성한다는 것입니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걸어갔다.
“목숨을 바치면 친구가 좋아할깡?”
“친…친구?!”
내 귓가를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띠링!
―제리의 친밀도가 1 올랐습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