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189화 (188/230)

189화. 선택

제국군은 베이론 성을 올려다보았다.

성벽 위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깃발은 베이론을 출발할 때의 깃발이 아니었다.

“이런! 프란시아다!”

“베이론성이 프란시아에게 점령당했어!”

“언제?”

스윽.행갈이

성벽 위에 소환수와 S급 용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환수와 용병들은 성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편안하게 담소를 나누었다.

“여, 새까맣게 몰려왔네요.”

“쟤들은 진짜 많이 왔나 봐요. 어떻게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도 아직도 저렇게 많이 남았어요?”

“그래도 많이 줄었지. 처음엔 백만이었다잖아. 어휴, 말이 백만이지 징글징글해. 하지만 지금은 봐봐. 대충 십만?”

“그래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들 많았겠어요.”

“그럼 고생했으니까 편히 쉬게들 해 줘.”

“영원히?”

“어우, 멘트가 넘 심하다.”

“아니, 전쟁에서 영원히 재워주는 거지 그럼 8시간만 재워줘요?”

“자, 그럼 마법사님들부터 시작하시죠.”

스피오크가 이미 한참 전부터 영창을 하고 있었다.

“하늘의 번개가 땅으로 내리꽂히고 바람은 휘몰아쳐 땅을 뒤엎으리라! 세상을 이루는 작은 알갱이여. 너의 짝을 내어놓아 외로운 공간을 떠돌 지어라…….”

평상시와 다르게 한참 동안 주문을 읊었다.

스피오크가 들고 있는 커다랗고 각진 예쁜 마정석에 마나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제국군 머리 위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바직바직.

영창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구름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스피오크의 옆에서는 기예라가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기예라의 주문도 만만치 않게 길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눈보라여, 숨결을 얼릴 차가운 빙정이여, 거센 바람에 흩날리며 오르내리며 힘을 키우라…….”

으슬으슬.

기예라의 공격 대상은 저쪽 성벽 아래의 제국군이었는데 영창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성벽 위까지 추워진 것 같았다.

한참을 읊조리던 둘의 영창이 마무리되었다.

“…그리하여 떨어졌던 짝이 다시 만나 휘몰아치리라, 썬더스톰!”

“…적들의 눈을 얼리고 걸음을 멈추어라, 블리자드!”

7서클 마법사가 마나 각성제를 원샷 한 후, S급 마정석을 하나씩 쥔 채 천천히 제대로 주문을 외웠다.

급할 때는 주문을 간략히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는 제대로 주문을 외울 때보다 파괴력이 감소했다.

하지만 지금은 천천히 주변 대기의 마나를 잔뜩 끌어모으고 손에는 거대 마정석을 쥔 채, 스스로의 몸 속의 마나를 알차게 끌어모아 대기, 마정석, 심장의 공명을 이뤘다.

기예라와 스피오크는 이 마법이 왜 7서클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콰과과광!

휘이이잉!

한쪽에서는 하늘에서 번개의 비가 내렸다.

강력한 바람이 불어 서 있기조차 힘든 상태에서 내리꽂히는 번개는 어떻게 피할 방법도 없이 적들을 유린했다.

다른 쪽에서는 눈폭풍이 불었다.

기예라의 궁극기가 왜 블리자드라고 했는지, 노승민이 기예라의 블리자드를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하던 모습이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와!”

“장난 아니네.”

“이거 저번에도 썼던 마법 같은데 파괴력이 다른데요?”

“원래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라고 하지. 검사의 검은 언제나 한결같은 파괴력을 낼 수 있지만, 마법사는 조금 달라. 이렇게 준비된 상태에서 만나는 적에게는 끔찍한 재앙이지.”

“아, 그러고 보니 바닥에 마법진 두 시간 전부터 그리던걸요.”

“그래, 그래서 마탑은 건드리는 게 아냐. 마법사의 집을 건드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지.”

순식간에 폭풍에 만 단위의 적들이 휘말렸다.

헬른 공작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법사들에게만 맡길 수야 있소? 자, 검사들도 내려가 봅시다.”

휘익.

헬른 공작이 성벽 위에서 아래로 점프를 뛰었다.

타악.

파앗.

다른 공격대원들도 적을 향해 뛰었다.

얼마 남지 않은 제국군에게 다시 악몽이 시작되었다.

* * *

샤론 영지에 남은 기사 꾸얀과 르녹은 오늘도 영지를 지키는 일에 소홀함이 없었다.

소환수들이 모두 제국과 전쟁하러 갔기 때문에 이들이 남아서 샤론 영지를 지켰다.

“영주님과 소환수님들께서는 지금도 전쟁 중이겠지?”

“그렇겠지.”

“전황을 들은 것이 있어?”

“응, 수도에서 무전으로 들어온 것이 있는데 상당히 잘 싸우고 있나 봐.”

“그래? 다행이네.”

“그리고 확실한 건 아닌데…….”

“뭐? 새로운 정보가 있어?”

“아니, 확실한 건 아닌데 우리 영주님께서 승작을 하실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아.”

“아! 승작.”

“그래, 이번 전쟁에서 공적이 크신가 봐. 알다시피 우리 영주님께서는 전쟁의 규모가 커질수록 큰 역할을 하시는 분이잖아.”

“음, 그렇지. 참 대단한 분이신 것 같아.”

“그래, 그러니 우리가 영지를 열심히 지켜야지. 밖에 나가서 열심히 싸우시고 공적을 쌓아 오셨는데 집이 망해 있으면 안 되겠지?”

“맞아. 꾸얀, 한 바퀴 돌고 올게.”

“그래, 르녹. 어제 동쪽 함정에 오크들 몇 마리 걸렸거든 오늘은 어떤지 잘 살펴봐.”

“알았어.”

르녹은 의욕을 뿜으며 영주관 밖으로 나갔다.

르녹이 영지를 순찰하러 나가자, 꾸얀도 자리에 있지 않고 르녹의 반대편으로 순찰을 나갔다.

순찰하던 르녹은 영주의 밭 근처에서 행정관 다니엘을 만났다.

“꾸얀 님, 순찰 중이십니까?”

“아, 행정관님 한 바퀴 돌아보려고요.”

“늘 영지를 돌보시느라 고생이 많습니다요.”

“아니에요. 행정관님은 오늘도 밭에 가시나요?”

“네. 영주님께서 심으신 마나초인데, 정성을 들여야지요. 그래도 신수 덕분에 마나초가 아주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영주님께서도 기뻐하시겠어요. 그럼 수고하세요.”

그렇게 이리저리 영지 순찰을 하던 꾸얀은 서쪽 방벽 위로 올라왔다.

“하아, 달은 붉고, 영주님과 소환수님은 없고 몬스터는 있고, 심란하네.”

붉은 달이 뜬 이후로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불안정했다.

그래서 이렇게 늘 긴장하며 방벽을 순찰해야만 했다.

“하아, 이게 다 붉은 달 때문이야. 달이 붉으니까 몬스터들이 흥분을 해가지고 말야. 이놈의 붉은 달은 언제까지 떠… 어라?”

하늘에 달이 없었다.

도리도리.

이쪽저쪽을 살펴보아도 달이 없었다.

그 말은 붉은 달도 없다는 말이었다.

꼬집.

꾸얀은 스스로의 볼을 꼬집었다.

“아얏!”

하지만 이내 현실을 자각하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예!”

꾸얀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아작.

나는 팝콘을 먹었다.

마나로 튀긴 팝콘은 맛있었다.

아작.

쪼오옥.

꿀꺽.

팝콘에는 피토니였다.

“하아, 이제 편안하네.”

전쟁은 끝물이었다.

소환수와 용병들은 베이론을 손쉽게 점령했다.

S급들이 일곱 명 이상이 쳐들어가니 반항이고 뭐고 없었다.

그리고 제국군들이 달아나는 것도 적당히 쫓아가다가 말았다.

제국군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해서 뿔뿔이 흩어져서 달아났다.

아작 아작.

소파에 기대어 누워 TV 보듯 남은 잔당 토벌을 지켜볼 뿐이었다.

샤샤의 쪽지가 왔다.

[민준 님.]

[어, 샤샤야.]

[민준 님! 붉은 달이 내려갔어요!]

[뭐?]

붉은 달이 내려가다니 이건 더욱 좋은 소식이었다.

[그럼 몬스터들도 많이 안정되겠네?]

[그렇겠죠?]

[샤론에서 영지를 지키는 기사와 병사들도 붉은 달이 내려가서 좋아할 것 같네.]

[네.]

[샤샤야, 그럼 나 잠깐 샤론 잘 있나 둘러보고 올게.]

[알겠어요.]

“알파야, 샤론 영지 한번 둘러보자.”

―네, 알겠습니다.

슈우욱.

화면이 날았다.

금세 익숙한 영지의 모습이 보였다.

“일단 꾸얀에게로.”

슈우욱.

화면이 꾸얀을 비췄다.

팬니르의 용병을 해제하고 꾸얀과 용병을 맺었다.

전쟁도 끝물이라 팬니르가 경험치를 많이 주기도 어려웠다.

[꾸얀.]

[네, 영주님!]

[잘 있었어요?]

[네, 일부 몬스터들이 내려오곤 했지만, 모두 함정 선에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붉은 달이 내려갔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몬스터들이 좀 차분해지겠죠?]

[아마도 그럴 것으로 예상됩니다.]

[알았어요. 영지를 지키느라 고생이 많았어요.]

[네, 감사합니다. 아 참, 행정관이 마나초를 잘 기르고 있습니다. 마나초가 아주 튼실해 보였습니다.]

[오호, 그래요?]

나는 밭으로 가서 행정관을 찾았다.

행정관은 밭에서 잡초를 뽑으며 마나초 잎을 입으로 호호 불어가며 먼지를 닦고 있었다.

[다니엘 행정관님.]

[영주님 오셨습니까.]

[네, 영지는 별일 없죠?]

[그렇습니다. 꾸얀과 르녹 기사가 참 열심히 경계를 섰습니다.]

[그래요, 늘 감사하죠. 그런데 마나초는 잘 컸나요?]

[영주님 보시죠. 아주 튼실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트란 산맥에 있을 때보다 더 잘 자란 것 같습니다.]

[그럼 몇 뿌리만 캐 보실래요?]

나는 다니엘이 몇 뿌리를 캐도록 한 뒤 지구로 소환했다.

“여기 있습니다.”

“오호, 정말 튼실하네요. 지난번에는 당근만 했는데 이건 무 정도의 크기네요. 잘 길러주셔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제가 무슨 실력이 있어서 마나초를 키웠겠습니까? 다 신수 덕분입니다.”

“꿍이가 농사를 잘하는 것 같네요.”

“그렇습니다.”

“농사 규모를 좀 넓혀도 되겠죠?”

“제가 보기에는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맡겨만 주십시오.”

나는 무 크기의 마나초를 먹기 좋게 잘랐다.

팝콘, 피토니, 핫바에 마나초까지 길드의 특색있는 음식이 늘어났다.

“알파야, 민아에게 용병 걸어봐.”

―네.

[민아야, 사무실로 와봐.]

끼익.

사무실 문이 열리고 민아가 들어왔다.

“헐, 바로 옆에 있는데 그거 말하려고 용병 계약한 거야?”

“어, 귀찮아서.”

“전화나 문자를 보내면 되잖아.”

“이게 더 편해. 잔소리는 그만하고 이거나 먹어.”

나는 먹기 좋게 자른 마나초를 내밀었다.

“어! 마나초네.”

“그래, 지난번 거는 다 먹었지?”

“응. 엄마, 아빠랑 먹으니까 오래는 안 가더라.”

“그래, 나중에 더 줄 테니까 이건 저기 길드 사무실에 가서 나눠 먹어. 부길드장님 보고 알아서 배분하라고 해.”

“응, 알았어.”

오도독.

얼른 입으로 마나초 조각 하나를 넣는 민아였다.

민아가 나가고 화면을 베이론성으로 옮겼다.

베이론성에서는 헬른 공작을 중심으로 회의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전쟁도 끝난 마당에 뭔 일인가 해서 가까이 가 보았다.

그러자 헬른 공작이 내가 있는 공간 쪽을 힐끔 보더니 쪽지를 보냈다.

[샤론 영주.]

[네, 헬른 공작님.]

[베이론을 통째로 차지했소. 그리고 적과의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이 상당히 많소. 그리고 적들은 수인화 된 상태로 죽었을 경우, 다시 인간화되지 않고 동물의 형태로 죽어버려서 수십만의 동물, 몬스터 사체가 발생하였다오. 최대한 공평하게 분배하도록 하겠소.]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전리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있소. 마족을 쓰러트리고 나니 그 자리에 마나의 농도가 큰 세 가지 물체가 떨어졌소.]

[세 가지 물체요?]

[그렇소. 마족의 눈, 마족의 마정석, 마족의 뿔이 떨어졌소. 여기 모인 이들이 회의했는데, 우선 샤론 영주가 한 가지를 고르는 게 맞을 것 같소. 나머지 하나는 지구에서 넘어온 용병들에게 분배하고 나머지 하나는 국왕께 진상하리다.]

마족의 눈, 마족의 마정석, 그리고 마족의 뿔.

뭘 선택할까?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