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찾았다
기예라가 오줌 이야기를 꺼낸 것이 미안했는지 신입을 친절하게 대했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네, 뭐 더 필요하신 것 없을까요? 신입으로 들어온 장유환이라고 합니다.”
유환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사람 수에 비해서 팝콘의 양이 얼마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더 가져오겠습니다. 아니, 아예 튀김 통을 가져오겠습니다. 팝콘은 즉석에서 튀기는 게 맛있죠.”
유환은 급하게 마나를 써서 이동하며 지원실에서 팝콘 장치를 가져왔다.
“이게 즉석에서 팝콘을 튀기는 건데요. 역시 음식은 즉석에서 조리하는 게 최고죠.”
“하하, 고마워요.”
유환은 즉석에서 팝콘을 튀겼다.
마법 실력을 발휘해서 최선을 다해 팝콘쇼를 보였다.
마나를 이용해 불을 피우고 팝콘이 튀겨지는 공간 전체에 고른 열이 퍼지도록 애썼다.
유환은 마법을 사용할 때 이렇게 긴장해서 사용한 적이 있나 싶었다.
최근 몇 년간 던전에 들어가서 보스를 레이드할 때보다 더 긴장되는 마법 시연이었다.
“오, 잘하네요. 유환 씨는 등급이 뭐예요?”
“아, 부끄럽지만 A급입니다.”
“어머, 여기서 팝콘 튀길 군번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딱 팝콘 튀길 시기입니다. 맛있게 드셔주시면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아작.
“음, 맛있네요. 따뜻하고, 이거 간식타임입니까?”
“그럼 핫바도 꺼내요. 샤샤, 불러?”
“피토니는?”
“피토니가 빠지면 안 되지.”
“하하.”
“호호.”
그런데 유환은 이 사람들이 전쟁 중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전쟁이 맞나 싶었다.
* * *
“사령관님, 이제 저 앞에 헬른성이 보입니다.”
“음.”
육중한 헬른성이 제국군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스하끄는 또다시 거대한 성이 보이자 이번에는 성에 무슨 장난을 쳐 놓았을까 고민이 깊었다.
“으음, 헬른성에 전령을 보내라.”
“네, 뭐라고 전할까요?”
부관이 이스하끄를 쳐다보았다.
“헬른성과 우리 병력이 주둔한 곳 가운데에서 각 진영에서 열 명씩 나와서 대장전을 벌이자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타다닥.
전령이 헬른성으로 달려갔다.
헬른성에는 헬른 공작이 지휘하고 있었다.
헬른성은 공작의 아들이 관리하고 있었지만, 대군을 앞두고 망설임 없이 군대의 지휘권을 넘겼다.
전령이 도착해 대장전을 하자는 제안을 건넸다.
“아버지, 대장전이라는데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제국군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40만이 넘게 남아 있다. 대장전으로 승부를 볼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다면 인원은 어떻게 꾸리시겠습니까?”
“대장전 인원은 내가 꾸리지 않는다.”
“네? 아버님… 아니, 프란시아를 대표하는 소드마스터 헬른 공작님이 대장전을 꾸리지 않으시면 누가 꾸립니까?”
“샤론의 김 자작이 꾸릴 것이니라.”
“김 자작이요?”
“그래.”
나는 사람들과 간식을 먹으며 웃고 떠들고 있었지만, 그래도 전투를 보는 화면을 놓치지는 않았다.
다들 S급이라 전투 하루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초급 병사처럼 긴장해야 전투를 잘하는 그런 수준의 헌터들은 아니었다.
하하호호 하다가도 1초 만에 진지하게 전투에 임할 수 있는 헌터들이었다.
헬른성에 있던 카나의 쪽지가 왔다.
[제국군이 대장전을 하자고 전령을 보냈어.]
10 대 10으로 붙자는 제안이 왔다고 했다.
나는 화면을 보면서 구상을 했다.
열 명이라면 일단 프란시아의 마스터 급인 헬른, 스피오크, 팬니르를 포함하고, 지구의 S급인 차지율, 노승민, 까밀로, 기예라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나의 소환수인 샤샤, 카나, 제리가 들어가면 딱 열 명이었다.
나는 헬른 공작에게 이런 대진표를 보내며 물었다.
[헬른 공작님?]
[오, 김 자작. 정말 대진표를 이렇게 구성할 수 있겠소? 자네가 마스터 급의 용병을 네 명 보내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구려.]
프란시아 자체 마스터 급이 세 명인데 내가 네 명을 보내준다는 것이 놀라울 만했다.
사실 한국의 S급도 다섯 명뿐인데, 이탈리아의 까밀로를 포함하긴 해도 아무튼 네 명을 보내주는 거니까 거의 국가 규모의 마스터를 보내주는 셈이긴 했다.
[공작님, 제가 염탐을 해보니 적의 마스터 급은 다섯 명 정도였습니다. 물론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인원이 있을 수 있지만,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이기면, 김 자작의 공이 매우 크오.]
헬른 공작의 입에서 내 공이 크다는 말이 나왔다.
이거 조금 설렜다.
예전에도 공적을 배분할 때 헬른 공작의 입김이 있었다고 하던데, 이렇게 헬른 공작이 대놓고 나의 공이 크다고 말하면 꽤 짭짤한 보상을 기대해도 될 것 같았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도 프란시아의 일원이며 작지만, 하나의 영지를 가진 영주입니다. 물론 영지가 작아서 공작님께서 보시기엔 작은 영지이겠지만, 그렇게 작은 영지에서라도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자 작은 성의를 보태겠습니다.]
[허허. 알겠소. 이번 전쟁에서 김 자작의 커다란 활약에 커다란 기대를 하고 있겠소. 전쟁에서 커다란 활약과 앞으로도 프란시아의 커다란 기둥이 되길 바라오.]
[네, 감사합니다.]
헬른 공작은 말귀를 잘 알아듣는 사람인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눈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도 딸린 식구들이 많고, 무이자이긴 하지만 대출이 5조 원이 있었다.
말이 5조 원이지, 까마득한 금액이었다.
작은 영지가 커다란 영지가 되지 않으면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그때, 카나의 쪽지가 다시 날아왔다.
[민준, 헬른성에서 적들의 모습이 보여.]
이제 때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팝콘을 아작아작 씹어 먹으며 대형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꼭 영화 관람하는 손님들 같아요.”
“흐흐, 그런가? 화면도 큼직하니 보는 맛이 있네.”
“그러게요, 이번에는 대규모 전쟁씬이 나오는 영화인가 보죠? 딱 보니까 공성전이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요. 이번에는 대규모 전투가 아닙니다.”
나는 모두를 향해 씩 웃어주었다.
“대장전, 여러분들의 차례입니다.”
“오오오, 그 말을 기다렸어요.”
“갑시다.”
“한판 뜨러 갑시다.”
곧이어 사무실이 썰렁해졌다.
용병수가 6명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얼마든지 보내줄 수 있었다.
나도 장소를 이동했다.
사무실이 아니라 창고 알바생들이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수백 명의 알바생들이 마나 충전 대형으로 앉아있었다.
이들을 이곳에 앉혀두는 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드디어 이들을 써먹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나는 창고 벽에 화면을 띄웠다.
헬른성 앞쪽 벌판이 화면에 비추었다.
그곳에 우리의 전사들이 모여 있었다.
“디바인 프로텍션!”
벌판에서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모두에게 보호막을 걸어주었다.
[스피오크 님, 초반에 마정석에 있는 마나를 가지고 궁극기 써주시는 것 아시죠? 그리고 지구로 넘어오셔서 마정석 주시고 다시 싸우고 계시면, 최대한 충전 빨리해서 보내드릴게요.]
[알겠소.]
마법사의 전투 스타일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단순하게 보면 두 가지였다.
대인전 혹은 집단전.
대인전은 작은 견제 공격을 끊임없이 하면서 카운터 한 방을 노려야 했다.
하지만 집단전에서 마법사의 역할은 일단 시작과 동시에 큰 것 한 방이었다.
일단 크게 한 방을 먹인 후 그다음 부대 간의 충돌을 하는 것이었다.
지구의 현대전에 비유한다면 보병끼리 붙기 전에 박격포 포격 정도의 역할이었다.
10 대 10의 전사들이 약 20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마주 봤다.
그들의 뒤쪽에는 각각 헬른성과 40만 이상의 제국군이 있었다.
마스터 급들에게 200m의 거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도달하는 거리였다.
아니, 바로 검을 휘둘러 공격이 가능한 거리였다.
타다다닥.
두 진영이 서로를 향해 달렸다.
가장 먼저 스펠을 완성한 이는 스피오크였다.
“라이트닝 스톰!”
콰과과광!
초장에 마나를 퍼부으라는 나의 작전에 걸맞은 강력한 마법이 발동했다.
7서클의 마법으로 하늘에서 수많은 번개가 내리꽂혔다.
두 번째 마법은 기예라의 차례였다.
“블리자드!”
눈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블리자드 속에서 눈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옆에서 휘몰아치는 것이었다.
블리자드는 상대의 시선을 가리고, 온도를 낮춰 움직임을 제한하고, 물리적인 타격을 입히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상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다크 필드!”
투명한 물이 담긴 얇은 접시에 검은 잉크를 떨어뜨린 것처럼 두 집단이 싸우고 있는 지면 전체가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특정 지역을 그들의 영역으로 선포하는 종류의 마법이었다.
자신의 편에게는 유리한, 상대에게는 불리한 공간을 만드는 마법이었다.
마법사들의 대형 마법이 발생한 다음은 육박전이었다.
검사들이 검을 휘둘렀다.
쩡!
공간이 흔들흔들거렸다.
마스터 급은 공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들이었다.
검 한번 휘두름에 공간 자체가 갈라져서 단순한 물리적인 방어를 무시하는 공격이 서로 난무했다.
어느새 스피오크가 신호를 보내서 얼른 소환해 주었다.
스피오크는 최상급 마정석 두 개를 주고 다시 돌아갔다.
나는 얼른 알바생들에게 빛바랜 최상급 마정석을 충전하도록 했다.
양이 중요할까? 아니면 질이 중요할까?
답은 양이 많으면 질이 좋아진다였다.
알바비가 아깝지 않았다.
번개가 난무하고, 블리자드가 눈을 가리며, 온 세상이 검게 물들어가는 착각 속에서 아차 하면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검격이 난무했다.
콰과과광!
떠엉!
쯔우우우욱!
나는 그 험난한 전투의 한 가운데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소환수들에게 열심히 프로텍션과 큐어를 넣어주었다.
마나 각성제는 기본으로 마셨기에 마스터의 한 발자국 정도는 걸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샤샤는 화살 없이 불새를 날렸다.
카나는 방패보다 오른손에 집중했다.
마스터 급 경지의 상대는 원거리에서 휘두르는 방패는 모두 피할 수 있었다.
찰나의 찌르기 한방이 의미 있었다.
제리 역시 줄기줄기 발톱에 마나를 흘리며 아름다운 춤을 추듯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수백 명의 마나 충전 알바생들이 알바비 값을 했다.
원래라면 천천히 마나를 충전하면 되었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중요했다.
알바생들은 급속 마나 충전 마법진 위에서 자신들의 마나를 낭비하며 아주 비효율적으로 마정석에 마나를 충전했다.
그러나 마나의 낭비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였다.
[스피오크 님, 마정석 충전해서 선물함에 다시 넣어드렸어요.]
[알겠소.]
7서클 마법이 다시 펼쳐졌다.
“레스토레이션!”
지금은 이미 서로가 얽힌 난전 상황이었다.
그래서 처음의 스톰과 같은 범위 공격은 사용할 수 없었다.
레스토레이션은 고등급의 치료마법이었다.
팔다리 하나 잘려도 순간적으로 되돌릴 수 있는 고위 마법이었다.
딜러 열 명보다는 딜러 아홉에 힐러 한 명이 더 강력한 조합이 될 거라는 판단이었다.
천지가 개벽하는 전투가 벌어졌다.
헬른성 위의 프란시아 병사도, 평야에서 지켜보는 제국군도, 화면으로 바라보는 나 역시 긴장하며 지켜보았다.
승부의 추는 상대의 A급 전사들의 목이 달아나면서 기울기 시작했다.
상대는 S급이 다섯, A급이 다섯, 이쪽은 S급이 일곱, A급이 셋이었다.
그것도 그냥 A급이 아니고 S급에 잠시 한쪽 발을 걸친 A급이었다.
대진을 이렇게 짠 순간 결과는 정해진 것이었다.
이변은 없었다.
팍, 팍, 팍!
제국군의 A급들의 목이 달아났다.
제국의 S급들은 더욱 처절하게 마나를 짜내어 승부를 걸었지만, 이쪽도 만만치 않았다.
곧이어 제국의 S급들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제국군의 사령관이었던 턱수염을 차지율이 마크한 상태에서 제리가 턱수염의 등을 찔렀다.
푹!
사령관의 턱수염이 부들거렸다.
제국군의 부대장으로 빠른 쌍검을 휘두르던 자는 노승민의 켄타우로스와 접전을 벌이다가 카나의 창에 찔린 후 켄타우로스에게 눌려버렸다.
한번 주도권이 넘어간 다음에는 시간문제였다.
제국군의 사령관인 이스하끄는 마나를 폭발시키며 반전을 노렸다.
“타앗!”
하지만 이미 수적으로 프란시아의 우위였다.
차지율의 검이 다시 한번 이스하끄를 베었다.
서걱!
이스하끄의 팔이 떨어져 나갔다.
“사령관님!”
다른 제국군의 부대장들이 이스하끄를 도우려 했다.
하지만 그들도 수적으로 중과부적이었다.
각각 2:1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우리 공격대는 한쪽 팔이 떨어진 적의 사령관을 잡는데 중심을 두었고 곧 이스하끄의 다른 쪽 팔도 떨어져 나갔다.
“크악!”
응추와 자크가 이스하끄를 도우려 했지만, 각각 까밀로와 카나에게 가로막혔다.
이스하끄가 소리를 질렀다.
“네놈들! 크아아악!”
이스하끄는 뭔가 최후의 궁극기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이스하끄의 입에서 검은 구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각!
하지만 공격대는 이스하끄의 행동을 그대로 지켜보지 않았다.
이스하끄는 마지막 궁극기를 채 펼쳐보지도 못하고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사령관님!”
“이스하끄 님!”
10명을 맞추기 위해 함께 나온 제국군의 A급들이 죽고, 사령관 이스하끄도 죽었다.
부대장들도 온몸에 많은 부상을 입었다.
5부대장 무라나가 다리에 긴 검상을 입은 채 외쳤다.
“모여!”
제국군 부대장들이 한군데 모여 등을 맞대었다.
무라나는 품속에 지니고 있던 구슬을 꺼내 바닥에 던져 깨뜨렸다.
둥근 실드가 그들을 감쌌다.
쾅쾅!
프란시아의 공격대로부터 잠시 동안의 시간을 벌었다.
“제국의 수도로 돌아가는 마법진이야.”
“수도로? 병사들은?”
“어쩔 수 없어. 이 수밖에 없어.”
“크윽. 그래. 후일을 도모하자.”
그때 유프가 마법진 밖으로 걸어 나갔다.
“유프!”
“먼저들 가라. 이대로 가긴 조금 아쉬워서 말야.”
웅웅웅웅
마법진이 완전히 활성화되었다.
파앗!
응추, 자크, 무라나가 사라졌다.
챙그랑!
그와 함께 그들을 감싸고 있던 보호막도 깨졌다.
어느새 남은 것은 두 눈의 색이 다른 오드아이 한 명뿐이었다.
우리 전사들이 오드아이를 포위했다.
그러자 오드아이가 제자리에 서서 크게 웃더니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크크크크크, 대단하구나.]
지구에서 화면으로 전투 장면을 보고 있던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뭐지?”
나에게도 오드아이의 음성이 또렷하게 들렸다.
용병도 아닌데 나에게 말했다.
[프란시아가 이 정도가 아닌데 역시 사신의 말이 맞구나.]
오드아이가 화면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선물을 주마.]
푸악!
오드아이의 눈에서 무언가가 뚫고 나왔다.
꿀렁꿀렁.
그것은 오드아이의 몸을 덮었다.
검은 몸, 날카로운 발톱, 날개와 뿔까지 달렸다.
그 음산함에 포위하고 있던 S급들도 섣불리 달려들지 못했다.
그때, 기예라가 한 발 앞으로 나갔다.
“다들 그동안 내가 뭘 찾는지 궁금했죠?”
사람들의 시선이 기예라에게 쏠렸다
“바로 저것이었어요. 마족.”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