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별성 전투
별 모양의 성이라서 별성이라 불린 이 성의 한 가운데에는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탑이 있었다.
그 탑 꼭대기에 헬른 공작과 스피오크 그리고 팬니르가 서 있었다.
스피오크는 삼각성에 있었지만, 제국군이 멀찌감치 물러나자 알타르에게 수비를 맡기고 이곳으로 넘어왔다.
펄럭펄럭.
탑의 맨 꼭대기에서 프란시아를 상징하는 깃발이 휘날렸다.
“팬니르 경이라고 했는가?”
“네, 헬른 공작님.”
“그래,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고?”
“그렇습니다.”
“축하하네.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계기라도 있소?”
“샤론 영주가 용병으로 부리는 마스터가 있습니다. 심상으로 그자를 떠올린 후 함께 대련하다 보니 경지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호오, 나도 샤론 영주의 마스터를 본 적이 있소. 해머를 쓰는 팔라딘 마스터라고 하였지.”
“아닙니다. 제가 본 자는 검을 쓰는 자였습니다.”
“나는 분명 그자의 기세를 읽었네. 팔라딘 마스터였어.”
“샤론 영주의 마스터가 한 명이 아닙니다.”
“허어, 샤론 영주가 부리는 마스터가 한 명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허어, 대단하구려.”
“헬른 공작님.”
“그래요, 스피오크 공.”
“이제 적들이 움직이나 봅니다.”
“그렇군. 그럼 우리도 한번 싸워 봅시다.”
씨익.
세 마스터급 인물들이 함께 미소를 지었다.
별성의 바깥쪽으로 뾰족한 부분이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오목한 곳까지 밀려 들어온다면 자연스럽게 협공을 할 수 있었겠지만, 적들은 그렇게 공격하지 않았다.
별은 모두 여섯 군데가 뾰족했는데 S급 세 명과 샤샤, 카나, 제리가 각각의 끝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프란시아의 백인장이 샤샤에게 물었다.
“샤샤 님, 적들이 바깥쪽 끝부분만 공격합니다. 어떻게 하죠?”
“마음껏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저들도 마찬가지예요. 끝부분에서는 수비 위주로 버티고, 조금 안쪽에서는 원거리 공격을 가해 주세요.”
뾰족한 곳 끝부분에는 세 명 정도 자리할 수 있었다.
그곳에 탱커 세 명을 세우고 뒤쪽에 마법사들이 줄을 서서 실드를 걸었다.
쿵, 쿵, 쿵.
제국군들이 별성의 끝부분에 공격을 가했다.
화살을 쏘아 올리고 사다리를 걸었다.
마법사들은 아래에서 위로 마법을 쏘아댔다.
하지만 그중에 가장 커다란 위협은 제국군 자체였다.
“크와와왁!”
다수의 제국군이 야수로 변신하였다.
“캬우우우!”
몬스터의 형태로 변신한 병사는 거칠게 달려오더니 성벽 중간 정도까지 뛰어 올라왔다.
파악!
별성은 삼각성 만큼 높지는 않았다.
삼각성은 뛰어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게 높았지만, 별성은 몇 번 성벽에 흠집을 내면 이를 이용해 기어오를 만했다.
일반 병사였다면 어려웠겠지만, 유인원 비슷하게 변신한 제국군에게는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쾅! 쾅! 쾅!
제국군의 첫 목표는 성벽 자체였다.
성벽은 나름 강화콘크리트로 만들었지만, 마나를 담은 공격에 콘크리트가 벗겨져 내부의 철근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콰우우우우”
철근이 드러나자 수인화된 제국군은 더욱 신이 났다.
철근을 잡고 올라가자 성벽을 올라가는 것이 더욱 쉬워졌다.
하지만 성벽 위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파이어 애로우!”
화르르르륵!
성벽을 기어오르는 병사들에게 불새가 날아들었다.
피피피피핑!
샤샤의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한 발에 2,500원짜리 화살이었지만 문제없었다.
샤샤가 선물함을 열더니 박스 하나를 꺼냈다.
샤샤 옆에 있는 병사가 익숙하게 박스를 넘겨받았다.
박스 안에는 주먹만 한 둥근 유리병 안에 찰랑거리는 액체가 담겨있었다.
병사는 위쪽 버튼을 누르고 아래쪽으로 병들을 던졌다.
휙, 휙, 휙.
가볍게 던진 유리병이었지만 그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쾅, 쾅, 쾅!
마나 폭탄이었다.
그렇게 처음에는 화살, 마법 폭탄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성벽 위로 올라온 병사가 등장했다.
“크와와왁!”
챙, 챙, 챙!
화살과 원거리 마법, 투척 위주의 마법폭탄 위주의 전투가 이제 접근전으로 양상이 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차지율, 노승민, 까밀로와 함께 화면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거러췌! 거 샤샤 화살 끝내주게 잘 쏘는구만!”
“민준 씨, 이런 멋진 장면을 민준 씨 혼자만 보고 있었던 거예요? 너무한 거 아니에요?”
“와, 이거 드론뷰 맞죠. 화면을 하늘 위에서 잡으니까 영상미가 더 멋진걸요?”
“오 마이 갓, 샤솨 너무 옙뻐요!”
“그나저나 용병 6명으로 느니까 너무 좋네요.”
“그러게 맨날 자기 혼자 보다가 우리도 보여주니 얼마나 좋아?”
“하하,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어서요. 다른 장소들도 돌아가며 지켜볼게요. 위험한 곳이 있으면 도와줘야 하거든요.”
나는 화면 카나에게로 돌렸다.
카나는 칼날 방패를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휭!
칼날 방패가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적병이 한 명 바닥으로 떨어졌다.
칼날 방패의 사거리는 거의 50m까지 이르렀다.
이는 성벽을 약간만 올라도 카나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온다는 뜻이었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무수히 많은 야수화 병사들을 때려잡는 모습은 마치 게임장에서 두더지게임을 하는 모습 같았다.
“와, 여기도 장난 아니네.”
“이 장소와 카나의 무기의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아. 카나의 무기는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무게감이 있는데, 그게 성벽에 매달린 병사들에게는 최악의 조합이 되는 것이지.”
“와우, 카나의 실버헤어도 아름다워요.”
카나가 맡고 있는 별성의 뾰족한 부분도 큰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카나가 이곳 지형에서 워낙 강력함을 보이기도 했고 적들도 아직은 간을 보는 중인 것 같았다.
“제리가 있는 곳으로 이동할게요.”
화면은 다시 이동해 제리를 비추었다.
“제리?”
“어디요?”
이 사람들이 제리의 전투 스타일을 모르는 것 같았다.
팟!
적군의 목이 달아났다.
“아! 투명제리!”
성벽에 매달려 오르고 있던 병사가 갑자기 피를 흘리며 떨어져 나갔다.
“오호, 성벽에서도 싸우는군요!”
제리가 이 정도였다.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리더니 적들이 물러났다.
아무래도 간을 보는 것 같았다.
이번 적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밥 먹고 싸우자는 뜻이었을까?
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적군이 몰려왔다.
이번 전투는 양상이 달랐다.
제국군의 S급들이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근육 돼지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푸짐하고 튼튼한 몸매를 지닌 응추가 성 위로 올라왔다.
허리에는 쌍검을 차고 있었다.
두리번.
그의 눈에 줄을 단 방패를 휘두르는 이가 보였다.
“으라차!”
응추의 검이 카나를 향했다.
카나는 갑작스런 공격에 방패를 들어 막았다.
쾅!
주르르르륵!
상대의 힘에 카나가 뒤로 주르륵 밀렸다.
“크윽! 민준! 마스터야!”
단 한 번의 격돌이면 상대의 수준을 알기 충분했다.
상대는 마스터였다.
응추는 다시금 카나에게 접근했다.
파앗!
그때 카나의 옆으로 누군가 소환되었다.
끼긱.
달려가던 응추가 급하게 멈췄다.
찌릿.
둘이 서로 눈싸움을 했다.
씨익.
서로가 말은 안 해도 기세만으로 서로가 마스터급임을 알 수 있었다.
“팬니르 경, 고마워요. 제가 협공할게요.”
“별말씀을요. 카타리나 님과 협공한다면 충분할 겁니다. 박자를 잘 따라오셔야 합니다.”
“훗, 따라갈 정도는 된다구요.”
카나는 선물함에서 약병 하나를 꺼내 마셨다.
상급 마나 각성제였다.
최상급을 마셔서 충분한 S급 경지에는 이르지 못해도 카나 정도가 상급 마나 각성제를 마시면 마스터에 반 발자국 정도 걸칠 정도는 되었다.
상대는 마스터가 응추 한 명이고 이쪽은 카나를 절반 쳐서 1.5명의 마스터였다.
이쪽이 우위였다.
응추가 달려들었다.
“타앗!”
응추는 쌍검을 사용했다.
부드러운 곡도가 연이어 쉴새 없이 휘둘러졌다.
저 검격이 공격인지 아니면 검으로 실드를 만드는 것인지 혼동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지는 검이었다.
하지만 팬니르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마치 동네 산책을 가는 듯한 표정이었다.
팅, 팅, 팅.
응추의 빠른 검격과는 다르게 팬니르는 쉬엄쉬엄 검을 흔들었다.
검을 쓰는 스타일은 달랐지만, 서로 비슷한 경지였다.
핏!
둘 사이의 검격 틈을 카나가 찔러 들어갔다.
카나의 오른손은 이미 뾰족한 창처럼 변했다.
카나는 팬니르를 방패 삼아 타이밍을 보다가 창을 사용하는 듯 찔렀다.
“이잇!”
응추는 팬니르와 카나의 합공에 열이 받았지만, 이 대 일의 대결이라 별수 없었다.
이러한 대결은 다른 곳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헬른 공작과 샤샤가 합심하여 도끼를 쓰는 제국의 마스터와 싸우고 있었고, 스피오크와 제리가 힘을 합쳐서 무라나라고 하는 상대 마법사와 싸웠다.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렸다.
“크읏!”
제국군의 마스터들을 포함한 부대가 모두 뒤로 후퇴했다.
“와아아아아!”
제국군을 몰아낸 프란시아 병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다음날도 전투는 계속되었다.
그런데 오늘 전투에서는 적의 마스터 수가 더 늘었다.
삼각성 주변에서 진을 치고 있던 오드아이 유프가 이곳 전투에 합류했고, 사령관인 이스하끄도 마스터간의 전투에 합류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적의 S급은 5명이 되었고 이쪽은 헬른, 스피오크, 팬니르 나의 소환수가 0.5명으로 계산을 한다고 해도 4.5명이었다.
병력의 수도 열세였고 마스터의 수도 열세였다.
후퇴해야 했다.
쾅, 쾅, 쾅!
챙, 챙, 챙!
“공격하라!”
“화살을 쏴라!”
“기름을 부어라!”
전투는 치열했다.
제국군에도 큰 피해가 있었지만, 프란시아에도 만만치 않은 피해가 있었다.
그 모습을 화면으로 보던 이들이 나에게 물었다.
“우린 아직이에요?”
“네, 기다리세요.”
“저러다 성을 빼앗기겠어요.”
“괜찮아요.”
“성을 빼앗겨도 괜찮다고요?”
그 말이 무섭게 외성에서 후퇴 명령이 떨어졌다.
“후퇴하라!”
별성은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바깥에 외성이 있고 안쪽에도 같은 별 모양의 성이 있었다.
물론 안쪽 내성의 크기는 바깥 외성의 크기보다는 작았다.
외성을 빼앗기고 프란시아 병사들이 내성에 다시 진영을 갖추었다.
내성과 외성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화살을 쏘면 충분히 상대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힐 만큼 가까웠다.
내성을 지키는 프란시아 병사들은 성벽 가장 바깥쪽은 모두 커다란 방패를 들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활을 든 궁수, 마법사 등 원거리 공격진이 준비했다.
반면에 제국군은 상대에게는 달려드는 전술을 이어갔다.
외성을 빼앗았듯이 내성도 달려들어 빼앗으려 했다.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막아!”
“밀어내!”
“쏘아!”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제국군들은 내성의 성벽 위로도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덧 내성과 외성 사이에는 제국군의 병사들로 가득 찼다.
내가 소환수들에게 말했다.
[지금이야.]
* * *
또각또각.
인천공항 국제선에서 출국 게이트가 열리고 한 여성이 걸어 나왔다.
“음, 한국 냄새.”
커다란 짙은 선글라스를 낀 기예라였다.
기예라는 오랜만에 고국에 돌아와서인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북극 근처에서 출발할 때는 편안한 복장이었는데 어느새 살랑거리는 비싸 보이는 옷으로 변신해 있었다.
오랜만에 돌아오는 고국이라서 기예라는 공항 면세점을 이용해 변신을 마쳤다.
기예라는 공항을 나와 바로 택시를 탔다.
“어디로 갈까요?”
택시 기사의 질문에 기예라가 답했다.
“샤론 길드로 가주세요.”
기사가 샤론 길드를 네비게이션에 검색해보니 샤론 길드의 위치가 바로 표시되었다.
“그럼 출발합니다.”
부릉.
택시가 샤론 길드로 향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