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필수
힐끔.
헬른 공작과 스피오크 마도사가 내 화면을 알아보았다.
그래, 여기도 군대의 수는 적지만 S급들만 보면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이제 디아론 영지의 팬니르도 S급이었다.
거기에 차지율, 노승민도 힘을 보태준다고 했으니 적어도 셋, 많으면 여섯 명까지 S급이 포함될 수 있었다.
“알파야, 스피오크 님에게 먼저 용병을 걸어드려.”
[스피오크 님, 안녕하세요.]
[샤론 영주 왔는가? 국왕 폐하께서 샤론 영주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신다네.]
[그러면 지구로 넘어오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넘어가신다고 하네.]
국왕, 헬른, 스피오크를 모두 불렀다.
“폐하, 인사드립니다. 샤론을 맡고 있는 김 준남작입니다.”
내가 저 동네 예법을 잘 몰라서 눈치껏 인사를 했다.
뭐 크게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오호, 김 준남작, 스피오크가 말하길, 자네가 전쟁에 특화된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하여 내 이리 와보았네. 제국이 베이론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네, 제가 개인적으로 정찰을 해보았습니다. 지금 제국은 베이론 성을 차지하고 있고 베이론 성 앞에 약 이십만 명의 부대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대는 그게 다가 아닙니다. 정찰 결과 네 개의 부대를 더 발견했습니다. 총 백만대군입니다.”
셋의 눈이 커졌다.
“또한, 제국군의 주요 이동 수단은 늑대, 타이거 혹은 샤벨 타이거와 같은 몬스터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동력이 빠르고, 변신 능력을 가진 자들이 제법 많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빠른 기동력과 변신 능력을 믿는지 특별한 공성 무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셋의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는 짙은 턱수염이 있는 자이며, S급, 즉 소드마스터 혹은 7서클 급입니다. 그리고 그자의 옆에 S급을 한 명 더 보았는데 두 눈의 색이 다른 오드아이며, 검을 사용합니다. 두 번째 부대에는 어떤 여자가 S급이었습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부대에도 최소 한 명의 남자 S급이 있었고, 다섯 번째 부대는 아예 결계로 막혀 있어서 진입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적의 S급은 최소 여섯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헉, 마치 직접 보고 온 것 같구려.”
“네, 제가 볼 수 있는 기술이 있습니다. 오드아이에게는 걸려서 살짝 옷을 베이기도 했습니다.”
“오호, 그랬구려.”
“이왕 여기까지 오신 김에 제가 가진 물자와 적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는 사무실에서 창고로 국왕 일행을 안내했다.
최신식 창고에 셋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이이잉.
AI 로봇 지게차가 짐을 옮기고 있었다.
“저건 뭔가? 사람이 없는데?”
“아, 짐을 옮기는 마법 골렘 비슷한 것입니다.”
그 말에 국왕과 헬른 공작보다 스피오크가 더 놀랐다.
“마법 골렘이라니, 기술력이 상당하군. 누구의 작품인가?”
“아,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이쪽 세상에서 판매하는 걸 산 거라서요.”
나는 창고를 쭉 돌면서 안내를 했다.
“이쪽은 식량, 저쪽은 무기, 요쪽은 마법 장비입니다.”
그런데 창고를 한 바퀴 돌고 나오던 순간 스피오크 마도사의 시선이 창고 바깥을 향했다.
“샤론 영주, 저쪽 바깥의 마나 유동은 뭔가?”
역시 마도사라서 그런지 눈치가 빨랐다.
“가보시지요.”
그곳에는 알바로 뽑은 7백여 명의 마법사들이 마나 충전을 훈련하고 있었다.
운동장 정도의 공간에 꽉 차게 들어선 7백 명이 마나 충전 훈련을 연습하는 모습을 보며 국왕 일행은 뭔가 흐뭇해 보이는 것 같았다.
“제 용병들입니다. 마나를 충전하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평균 3서클이지요. 이들이 마나를 충전해서 그 마나를 제가 프란시아 쪽으로 넘기면 저희 쪽 마법사가 마법을 쓸 수 있죠.”
“스피오크 이 정도면 어떤가?”
“네, 폐하. 3서클 7백 명이 지속적으로 마나를 저에게 공급해준다면 마법을 두 배 정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7서클 마법사가 마법을 두 배 쓸 수 있다면 S급이 한 명 더 늘어나는 효과였다.
찌릿!
그때 헬른 공작이 한쪽을 노려보았다.
소드마스터인 헬른 공작답지 않은 예민한 반응이었다.
잘생긴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헬로, 민준! 아 유 히어?”
이탈리아의 S급 까밀로가 도착했다.
“아, 헬른 공작님 제 용병입니다. 팔라딘 마스터입니다.”
국왕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마스터급 용병을 부리다니!
국왕이 입을 열었다.
“내 스피오크의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어떤 특수 능력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네. 하지만 저 건물 안의 수많은 물자, 마법사와 마스터라니! 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네.”
국왕은 손바닥을 주먹으로 탁하고 쳤다.
“김 준남작! 아니, 이제부터 김 자작이네! 이번 전쟁에 공을 세우면 그 이상을 주겠네. 자작! 프란시아를 위해 힘을 다해 주시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국왕 일행을 데리고 다시 사무실로 왔다.
그리고 일행을 앉힌 후 화면을 통해 브리핑했다.
화면을 통해 베이론에서 부대가 있는 곳을 보여주었다.
“보시죠. 이곳, 이곳, 이곳, 이곳 그리고 여기까지 총 다섯 군데에 각각 이십만 명의 부대가 있습니다. 총 백만대군이죠.”
화면을 통해 두 눈으로 보는 수많은 적의 모습에 국왕은 할 말을 잊었다.
백만대군이라는 숫자를 듣기만 하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충격을 준 듯했다.
“전투가 벌어지면 이긴다고 해도 남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삼각성, 헬른성, 수도의 성곽으로 저 병력은 막을 수 없고, 모든 것은 잿더미가 될 것입니다. 외곽을 떠돌며 숨어서 게릴라 부대를 운용하는 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면 좋소?”
국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반존대를 하고 있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
“네.”
나는 다시 화면을 프란시아 쪽으로 이동하면서 지형을 살폈다.
“보시다시피 수도까지 적과 맞서 싸울만한 특별한 성이라고는 삼각성과 헬른성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지난번 베이론이 쳐들어왔을 때, 삼각성은 포위만 하고 바로 헬른성을 쳤습니다. 분명 이번에도 일부만 삼각성을 치고 곧바로 헬른 성을 공격할 것입니다.”
“크음…….”
“만약, 헬른성이 무너지면 수도까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입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국왕 폐하께서는 외곽을 떠돌아 다녀야 할 것이고, 저들은 수도에 진을 친 후 지속적으로 곳곳을 정벌하러 다니겠죠.”
“야전에서 백병전을 벌이는 방법도 있지 않소?”
“백만대군과 야전에서 싸운다는 것은 무모해 보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적의 S급이 최소 여섯입니다. 얼마나 더 많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나는 지도를 확대하며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저희 세계에서는 수많은 대군이 밀려 내려올 때 이를 막아내는 방법을 가상으로나마 많이 연습하곤 합니다.”
“그게 무엇이오?”
“일명 물량 막기 훈련입니다. 심시티, 락다운, 벙커, 공성탑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저 역시 천 마리 막기, 만 마리 막기 등을 많이 익혔죠. 허나 그것들은 가상이었고, 현실에서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을 벌어주십시오. 길어야 한 달. 그 안에 모두 제작해 내겠습니다.”
왕은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알겠네.”
* * *
다음날, 프란시아의 사신단이 다시 한번 베이론을 향해 출발했다.
특히 이번 사신단에서는 최우선 왕위계승권자인 왕세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왕세자를 사신단으로 보낸다는 것은 자존심을 완전히 내려놓는다는 의미였다.
사신단은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제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량의 물자와 식량, 비단과 마정석 을 들고 이동했다.
다각다각.
사신단의 중심에서 말을 타고 가는 왕세자가 혼자 중얼중얼거렸다.
“그렇소? 오호! 그렇군. 하지만 아닐 수도 있지 않소?”
왕세자를 모시고 가는 사신단의 신하들은 지금 가는 길이 죽으러 가는 길일지도 몰라서 왕세자가 실성한 거라고 생각했다.
[왕세자님, 소환 연습을 해 보셨으니 잘 아시지 않습니까? 실제로 전쟁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구해드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소. 샤론 영주만 믿겠소.”
왕세자는 나와 쪽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왕세자에게도 용병을 맺고 소환하는 연습을 했다.
왕세자는 소환이라는 방법을 통해 적진 한가운데서도 구출해줄 수 있다는 설명에 크게 안심하는 듯했다.
나는 왕세자와 중간중간 용병 계약을 맺고 상황을 전해 듣기로 했다.
왕세자에게는 최대한 시간을 버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여러 번 말해주었다.
왕세자가 저들의 방심을 일으켜 하루라도 더 전쟁이 늦어진다면 전쟁의 판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했다.
지금 가지고 가는 물량이 왕실의 기둥뿌리 하나는 되는 양이다 보니, 저들의 방심을 조금은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들도 멀리 내려와 왕국을 하나 점령했으니 조금 휴식을 취할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그리고 프란시아가 이렇게 저자세로 왕세자와 공물을 알아서 가져다 바치니 급하게 우리를 칠 필요가 없었다.
왕세자를 다독인 후 나는 선물함에 물자가 잘 들어가고 있는지 확인했다.
나는 강원도 시멘트 공장에 직접 와서 물량을 받아 가고 있었다.
시멘트 공장 직원에게 물었다.
“시멘트는 얼마나 남았나요?”
“예, 사장님. 이 정도 속도면 이번 분량은 다섯 시간이면 다 들어갑니다.”
쿠르르르르.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간 시멘트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나는 그 컨베이어 벨트 끝부분에 소환수와 용병들의 선물함을 열어두고 혹시 꽉 차는 건 아닌지 관리하고 있었다.
한참을 작업하고 있었는데 철강업체 영업사원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철근은 언제부터 납품 가능할까요?”
“지금 공장에 재고가 십만 톤 정도 있습니다. 철근도 직접 가서 수령하신다고 하신 거죠?”
“네.”
“철근의 굵기도 상관이 없으시다는 거죠.”
“지금 중요한 건 빨리 만드는 거라서요. 철근 사이즈 따질 때가 아니에요.”
“철근도 직접 방문 수령하신다고 하셨죠?”
“차량에 싣고 오고 그럴 시간에 제가 가서 받는 게 빨라서요.”
“그러면 다음 물량도 방문 수령하시는 것으로 진행할게요.”
“감사합니다.”
부르릉.
그렇게 철근 납품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데 마나석을 쓰는듯한 멋진 자동차가 멈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딱 봐도 마법사 같아 보이는 사람이 내렸다.
“샤론의 김민준 헌터님?”
“네, 저예요.”
“반갑습니다. 마법 장비 영업직원입니다. 오늘부로 일차 마법 폭탄 배송된다고 말씀드리려고 왔어요.”
“오호, 오늘이요?”
“네, 오른 일차로 들어오고 일주일 간격으로 들어오기로 했어요. 미국, 유럽, 아프리카지역까지 싹 연락 돌려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은 다 땡겨 오고 있어요.”
“그렇군요. 감사해요.”
“아이고, 제가 더 감사하죠.”
[민준 님.]
샤샤의 쪽지가 왔다.
[어, 샤샤야.]
[보내주신 한국대 토목 공학과 교수님이 괜찮은 장소를 세 군데를 찍어주셨어요.]
[그래? 그것 잘 되었네. 알려주시는 대로 잘 설치해봐.]
[네, 알겠어요.]
그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가지 준비가 이루어졌다.
* * *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다행히 제국군은 프란시아의 왕세자까지는 죽이지 않았다.
왕세자는 한 달 하고도 열흘이라는 시간을 끌어주었다.
그동안 우리도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나는 공사 업체 직원들을 돈으로 닦달했다.
그들은 용병으로 세 명씩밖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프란시아에서도 국력을 총동원해서 단 세 명의 지시로 순식간에 성을 쌓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드디어 제국군이 움직였다.
우선 이십만 명 정도의 부대 하나가 프란시아 방향으로 출발했다.
나머지 부대는 아직 베이론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화면을 크게 잡고 하늘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높은 하늘 위에서 저들이 다가오는 것을 멀리 구경하고 있는 카나에게 쪽지를 보냈다.
[카나?]
[응, 민준.]
[그래, 카나야. 이제 싸움의 시작이네. 그런데 카나야. 싸움을 시작할 때 필수인 게 뭔지 알아?]
[글쎄, 여러 가지가 있겠지. 민준처럼 정찰?]
[지금 우리가 내려다보듯 정찰도 중요하지. 그런데 지구에는 이런 말이 있어.]
[뭐?]
[싸움에 선빵은 필수라고.]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