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제국
“꿍이야, 손!”
척.
꿍이가 앞발을 척 하고 내 손바닥 위에 올렸다.
“앉아!”
꿍이가 뒷발을 앉고 앞발을 세워 앉은 자세를 취했다.
“좌로 돌아! 우로 돌아!”
꿍이는 척척 모든 행동을 다 취했다.
“너 좀 똑똑하다.”
“꾸우~”
“더 어려운 동작도 가능할까? 왼손 들어, 오른손 들어, 왼손 들지 말고 오른손 들지도 마!”
꿍이가 잠깐 멈칫하긴 했지만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했다.
나는 하급 마정석 몇 개를 꺼냈다.
“이야, 너 엄청 똑똑하구나. 마정석 세 개 중에서 두 개를 먹었어. 그러면 남은 마정석은 몇 개?”
꿍이가 한 개만 골랐다.
“오오오, 마정석 두 개를 세 번 먹을 거야. 그러면 모두 몇 개?”
꿍이가 여섯 개를 골랐다.
“와, 너 사람이니?”
나는 꿍이 속에 사람이 들어 있는지 꿍이의 몸을 뒤적거렸다.
“이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은? 바람직한 정치란? 우리 샤론 영지의 발전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은?”
꿍이가 잠시 나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꾸우.”
“그래, 미안. 창고 한 바퀴 돌아보자.”
꿍이와 함께 창고를 한 바퀴 돌아 보았다.
창고 한 바퀴라고는 하지만 어지간한 학교 운동장 한 바퀴 도는 것보다 컸다.
“꾸우”
꿍이가 자신의 등을 들이대며 나를 불렀다.
“왜? 타라고?”
“꾸우.”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나와 각인으로 연결된 동물이라서 그런지 그냥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가 되었다.
조심스레 꿍이 위에 올라타 보았다.
스윽스윽.
흔들흔들.
“오오오.”
예전에 학창 시절 수학여행 때 말타기했던 기억이 났다.
뭔가 흔들거리면서 부드럽게 스윽 가는 느낌이 낯설면서도 새로웠다.
“흔들흔들 창고 투어, 재미있는데?”
그러다 일하고 있는 직원을 마주쳤다.
직원은 내가 꿍이를 지난번에 보여준 적이 있어서 당황하지는 않았다.
“상일 씨,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와, 꿍이가 많이 컸네요.”
“네. 꿍아, 인사해. 안녕하세요, 해야지.”
“꾸우.”
꿍이를 타고 종종 한 바퀴 돌아야겠다.
꿍이와도 용병 계약을 하면 친밀도를 볼 수 있었다.
꿍이는 친밀도가 90을 찍었다.
실제로 꿍이와 함께한 시간이 적었는데 각인 덕분인 것 같았다.
꿍이는 마나초를 다시 자라게 하는 등의 역할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주로 샤론에서 지내야 했다.
그래도 꿍이와 함께하는 시간에는 친밀도를 조금이라도 높여두면 좋을 것 같았다.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도 집중해서 놀아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창고에 도착하자 길드 삼총사가 와 있었다.
“동서 형님, 종구, 나리. 어서 와요.”
“와, 이제 여기가 우리 사무실이야?”
“좋은데.”
나는 길드 사무실로 일행을 안내했다.
“여기가 길드 사무실이에요. 넓죠?”
“아니 달랑 셋, 아니 민준까지 넷인데 뭐가 이렇게 넓어?”
“길드를 키워야죠. 앞으로 길드를 키우려고 크게 자리를 만들어 봤어요. 그리고 동서 형님.”
“어.”
“길드를 더 키우려면 형님이 관리를 좀 해주셔야 할 듯해요. 아니면 못 해요.”
“그럼 이제 우리 길드도 커지는 건가?”
“네, 이제 앞으로도 동해안 던전 브레이크처럼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아요. 질도 중요하지만, 양도 중요한 것 같아요.”
이번 던전에서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보스와 만나고 나니 양이 질을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고 관리 직원을 불러 길드 삼총사들과 함께 여러 가지 토의를 했다.
앞으로의 조직을 키우기 위해 부서를 체계화할 필요가 있었다.
“자, 그러면 길드는 크게 자재부, 판매부, 헌터부, 지원부로 구분하는 건가?”
“네, 상일 씨가 자재부장, 홍민 씨가 판매부장, 헌터부장은 동서 형님, 종구와 나리는 헌터들을 뽑아서 조장을 해야지. 지원부는 비헌터들을 뽑아서 헌터들의 스케쥴 관리를 돕도록 할게요.”
“이제 우리 샤론 길드도 규모가 커지겠군요.”
“하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 치고는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지.”
“당장 언론에서 길드장님과 만나고 싶다고 전화 오는 것만 해도 엄청났어요. 응대하는 것을 포기해서 그렇지 제대로 응대하려면 지금 인원 가지고는 불가능하죠.”
“공고문은 제가 이쁘게 한번 만들어 볼게요. 제가 왕년에 뽀샵 좀 했거든요.”
며칠 후 인터넷 공개 채용란에 샤론 길드의 모집 공고문이 떴다.
[공고]
샤론 길드에서 몬스터를 함께 레이드할 헌터를 모집합니다.
또한, 샤론 길드에서 재고 관리, 영업, 지원 업무를 담당할 인재를 모집합니다.
분야
―헌터: 탱커, 딜러, 힐러, 버퍼 총 00명
―일반: 재고 관리, 영업, 지원 00명
제출서류 및 일정
…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샤론 길드의 모집 공고문이 올라가자 난리가 났다.
가장 뜨거운 반응이 올라온 곳은 블루실버 팬클럽 카페였다.
└하악, 나도 샤론에서 일하고 싶다.
└저기서 근무하면 샤샤 볼 수 있는 거임?
└샤론에 뽑히면 덕질도 하면서 돈도 버는 거네.
└내가 알아봤는데 이미 내정자가 다 있대. 그러니까 지원서를 내도 안 됨.
└ㅋㅋㅋ 그렇게 말하면서 경쟁자 줄이려는 것 다 앎.
└ㅋㅋㅋ 내정자가 헌터 00명에 일반 00명?
└나는 공고문 컬러로 크게 뽑아서 벽에다 붙여둠. ㅋㅋ
└야 너도? 나도
공고문의 왼쪽 귀퉁이에는 제리를 안고 있는 샤샤가, 오른쪽 귀퉁이에는 카나가 초대한다는 듯 손짓을 하고 있었다.
* * *
디아론 영지의 밤나무 마을에는 아직도 기사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철컥철컥
기사 두 명이 금속제 갑옷을 입고 순찰하고 있었다.
“조장님, 이놈의 붉은 달은 언제까지 떠 있으려나요?”
기사가 푸념하듯 선배 기사에게 물었다.
“글쎄. 나라고 아냐? 저기 달한테 물어봐야지.”
손가락으로 가리킨 하늘에는 아직도 붉은 달이 떠 있었다.
붉은 달은 한 낮에 해가 쨍쨍 떠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침저녁에도 대체로 잘 보였다.
지금도 정오에서 시간이 조금 지났을 뿐이지만, 그럭저럭 붉은 달이 잘 보였다.
치치칙.
무전이 들어왔다.
―북동쪽에 상급 오우거 발견!
“앗!”
선배 기사가 후배에게 말했다.
“나는 북동쪽으로 갈 테니, 안톤 님을 데려와!”
“네!”
두 기사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달려갔다.
선배 기사가 달려간 곳에는 무전을 보낸 기사들이 오우거를 상대하고 있었다.
“크워워워워!”
오우거는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려는 듯 크게 포효했다.
“큭.”
상급 몬스터가 외치는 고함에는 마나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수련이 부족한 기사들은 상급 몬스터의 고함에 얼어버리고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오우거 크라이라고 부르는 오우거의 외침은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일반인을 그대로 기절하게 만든다.
그래서 일반 주민들 사이에는 고통없이 잡아먹는 오우거의 배려라고 부르기도 했다.
기사는 살짝 마나가 진탕되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조장급이기에 흔들림 없이 오우거에게 나아갔다.
기존에 오우거에게 대항하고 있던 기사들도 실제로 오우거와 싸운다기보다는 본대가 오기까지 시간을 벌며 피하고 있었다.
“타앗!”
“피해!”
“가까이 붙지 마! 천천히 물러나!”
도착한 기사까지 다섯 명이 있었지만, 이미 다 자란 성체 오우거를 상대하기는 무리였다.
다행히 특수 능력은 없는 일반 상급 오우거라서 안톤과 본대가 도착하면 어찌어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샤론의 지원이라도 온다면 더욱 어렵지 않게 상대가 가능했다.
“왼쪽은 마을이야! 살살 오른쪽으로 유도하면서 물러나기만 하면 돼! 제이튼, 뒤로!”
기사들은 오우거를 살살 유도하며 뒤로 물러났다.
제대로 붙으면 자신들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오우거가 몽둥이를 휘둘렀다.
붕!
기사들이 훌쩍 물러나 피했다.
붕!
기사들은 오우거의 위세에 놀라 계속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휭!
퍽!
“크악!”
오우거가 몽둥이를 계속 휘두르다가 마지막에는 몽둥이를 던져 버렸다.
그 몽둥이에 기사 한 명이 맞아버리고 말았다.
“크윽! 뒤로 물러나!”
“제이튼!”
제이튼이라 불린 기사는 오우거의 몽둥이에 다리가 부러진 듯 일어나지 못했다.
저벅, 저벅.
오우거는 제이튼의 바로 앞까지 도착했다.
주변에 네 명의 기사가 있었지만,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크워워워워!”
오우거 크라이가 터져 나왔다.
이곳이 자신의 영역이고 너희들은 자신을 이길 수 없다는 듯 자신감 넘치는 오우거의 외침이었다.
삭!
제이튼은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쿵!
바로 앞에 뭔가 충격이 있었다.
기사로서 몬서터와 싸우며 이런 상황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디아론 영지의 기사로서 오우거와 싸우다 죽는다는 것은 명예로운 죽음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감고 있어도 반응이 없었다.
제이튼은 눈을 떠보았다.
“히익!”
바로 앞에 커다란 오우거의 얼굴이 있었다.
깜짝 놀랐지만, 자세히 보니 오우거의 얼굴이 아니라 오우거의 머리통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웃통을 벗은 누군가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머리 없는 오우거의 몸통이 쓰러져 있었다.
단칼에 오우거의 머리를 자른 것으로 보였다.
그는 한 손에 검을 들고 서 있었는데 그 검은 마치 오러 자체로 이루어진 것처럼 짙고 푸르렀다.
제이튼은 자신을 등지고 서 있는 이가 누군지 궁금했다.
그 대답은 동료 기사들이 말해주었다.
“팬니르 님!”
“대장님!”
그들의 대장이 돌아왔다.
* * *
나는 길드 삼총사와 함께 입사 지원서를 정리했다.
“와, 무슨 지원서가 이렇게 많이 들어와?”
“그러게 너무 대단한 헌터들이 지원을 해서 고르는 것도 일이네.”
“아니 그런데 A급이 신청하면 어떡해요? 이런 분이 들어오면 동서 형님이 컨트롤 가능하겠어요? 막말로 헌터는 등급이 깡패인데?”
“어허!”
“잠깐. 이분은 뭐야? 지원동기가 덕질하는 헌터의 길드에서 일하는 게 꿈이래. 크크”
“자세히 읽어봐. 그런 사람 많아. 덕질 대상도 다양해. 샤샤, 카나가 제일 많고, 제리와 민준이도 있어. 크크 알타르 씨도 은근히 인기인데?”
한참 회의를 하고 있는데 샤샤가 쪽지를 보내왔다.
[민준 님.]
“여러분 잠시만요 샤샤가 연락을 해오네요.”
[어 샤샤야.]
[팬니르 님이 소드 마스터가 되었대요.]
“뭐? 소드 마스터?”
육성으로 터진 소드마스터라는 단어에 주변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보았다.
[이야. 대단하네.]
[그렇죠. 지금 밤나무 마을에 있대요.]
[알았어. 한 번 가볼게.]
“여러분들 디아론 백작가의 팬니르 기사단장이라고 알죠? 소드마스터가 되었대요.”
“알아요, 기사단장. 그 멋쟁이 오빠.”
“헐. 나리야. 오빠는 아니지.”
“무슨 소리야. 소드마스터면 오빠지.”
“아… 맞는 소리지.”
나는 화면을 열어 밤나무 마을을 살펴보았다.
기사들이 모여 있었고 그 가운데 팬니르가 있는 것 같았다.
화면을 팬니르를 향해 이동했다.
스윽.
팬니르가 고개를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소름.
소드마스터가 맞았다.
이제껏 화면에서 나와 눈을 꼭 마주친 이는 소드마스터, 7서클 마법사, 성녀뿐이었다.
이제 팬니르가 나와 시선을 맞췄다.
“알파야, 팬니르 님에게 용병 제안해드려.”
―네, 알겠습니다.
[팬니르 님?]
[샤론 영주님, 오랜만입니다.]
[와, 축하드려요. 마스터가 되셨군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덕분이요?]
[네, 샤론 영주님의 용병 중 검을 쓰는 분이 있지 않습니까?]
내 용병?
누굴 말하는 거지?
[한손검을 쓰면서 공간을 가르는 기술을 주로 사용하는 남자 소드마스터 말입니다.]
[아! 차지율 헌터요.]
[네, 그분의 모습을 보고 심상으로 그분과 대련하며 벽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와, 그렇군요.]
[외람되지만 그분과 대련해볼 기회를 주실 수 없겠습니까?]
[아! 대련이요.]
[네, 친선 대련입니다.]
친선 대련이라는 말을 쓰기는 했지만, 소드마스터급 끼리 붙는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안 갔다.
[어, 일단 말은 전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소드마스터의 호승심인 것 같았다.
실력이 늘었으니 한판 붙어보고 싶을 것 같았다.
그런데 실력이 늘은 것은 팬니르 뿐이 아니었다.
[팬니르 님.]
[네 샤론 영주님.]
[차지율 헌터와 한판 붙는 것도 좋은데요. 샤샤, 제리, 카나, 알타르 님도 상당히 강해졌어요. 참고로 알타르 님은 6서클이에요.]
[오, 축하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샤론이랑도 한판 붙어 보실래요? 소드 마스터니까 우리팀이랑 2:1 아니면 3:1 정도로 한판 붙어보시죠. 차지율과도 제가 시간을 조정해 볼게요.]
씨익.
팬니르가 웃었다.
[좋습니다.]
나는 바로 차지율 헌터에게 연락을 했다.
“차지율 헌터님? 혹시 팬니르라고 디아론 백작의 기사단장 기억하세요? 소드마스터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소드마스터가 된 이유가 차 헌터님을 상상하며 훈련을 해서라고 해요.”
―하하, 감사하네요.
“그래서 말인데 팬니르 님이 차 헌터님과 대련을 하고 싶어 하네요. 어떻게 가능하실까요?”
―좋습니다. 날을 잡아 보시죠.
원래 싸움 구경이 재미있는 법이었다.
나는 샤론에서 대련을 해볼까 하다가 차지율도 오케이를 하길래 아예 지구로 다 불러서 판을 키워보려고 했다.
S급 검사들의 대련이라니!
이런 대결은 돈 주고도 못 볼 장면이었다.
나는 이런 대결을 구경할 때는 어떤 팝콘이 어울릴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쉽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카나가 긴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카나는 디아론 백작이 급한 일이 있다고 전했고 나는 백작에게 용병을 걸어 대화했다.
화면 속 디아론 백작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제국이 베이론을 침략했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