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167화 (166/230)

167화. 갑시다

나는 거대 변신 자동차처럼 생긴 트럭 뒤편에 가득 실린 마정석을 살폈다.

크기도 다양하고 모양도 다양했다.

마정석 한 개를 손에 들었다.

마나는 가득 차 있었지만, 누군가 오랫동안 어루만진 손때가 묻어 있었다.

“알타르 님, 소환.”

화아악.

알타르가 소환되었다.

충전 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소환되어서 그런지 알타르는 허둥지둥대며 나에게 보고를 하려 했다.

“스승님, 아직 충전을 다 못…….”

충전을 다 못 했다는 말을 하려던 알타르에게 나는 손가락으로 컨테이너를 가리켰다.

내 손가락을 따라간 알타르의 시선에 수북한 마정석이 보였다.

“아! 이… 이건!”

“알타르 님, 이 마정석들의 마나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알타르는 잠깐 생각하더니 손가락을 딱 쳤다.

“마정석 병렬 연결마법이 제일 간단합니다. 마정석 여러 개가 병렬 연결되도록 하는 마법입니다. 하나의 마정석처럼 강력한 한 방을 쓸 수는 없지만, 마나의 양만큼은 여러 마정석의 마나를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연결할 수 있습니다. 스승님이 꾸준히 힐과 소환을 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산더미처럼 쌓인 마정석을 보며 알타르는 신이 나서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진을 그리는데도 마정석이 필요했지만, 갑자기 마정석이 많아져서 얼마든지 필요한 만큼 꺼내 쓰면 됐다.

“자, 다 그렸습니다. 활성화!”

화아악.

마법진은 컨테이너 바로 앞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딱 사람 한 명 앉을 만한 크기에 둥근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요 자리에 앉아서 마법을 사용하면 이 마정석 무더기의 마나를 받아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알타르가 그린 자리에 앉아 보았다

“아!”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마치 최상급 마나 각성제를 마신 듯한 느낌이었다.

“이야! 쥑이네요!”

나는 자리에 앉아서 협회장의 스킬에 접속해 보았다.

하늘 위에서 우리나라 동해안 전체를 내려다보는 시선이었다.

최선을 다해 집중하지도 않았는데 자동적으로 풀컬러 4K화면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곳곳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헌터들이 느껴졌다.

눈을 감고 힐을 날려주었다.

“힐, 힐, 힐, 힐, 힐…….”

무아지경으로 힐을 날렸다.

띠링!

―힐 스킬이 상승하였습니다.

―힐 스킬을 동시에 여러 명에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이렇게 많이 사용하면 스킬이 오를 만도 했다.

한 번에 여러 명씩 힐을 쓰니 더욱 금세 힐을 뿌릴 수 있었다.

힐로도 안 되는 헌터들은 큐어로, 큐어로도 안 되는 헌터는 소환해 주었다.

몬스터들이 물량으로 들이닥쳤다면 이제는 이쪽도 마나를 통한 회복력을 쏟아부었다.

동해안의 북쪽에서부터 남쪽까지 한번 싹 훑으면서 힐을 날려주었다.

그렇게 한바탕 힐을 날려주고도 마나가 충분했다.

이게 부자의 씀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써도 써도 마나가 충분하다는 건 이런 느낌이었다.

백화점에 들어가서 가격표를 보지 않고 물건을 산다는 건 이런 느낌일 거였다.

다음은 프로텍션 차례였다.

“알파야, 이번에는 디바인 홀리 프로텍션을 쭉 뿌리는 거야.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디바인 홀리 프로텍션…….”

어느 정도 힐로 급한 불을 꺼둔 상태에서 보호막을 걸어주기 시작했다.

C급 헌터가 C급 몬스터와 붙을 때 프로텍션을 걸고 싸운다면 전혀 피해를 받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C급 헌터가 프로텍션을 믿고 B급 몬스터와 싸우기는 조금 어려웠지만, 프로텍션을 믿고 시간벌기만 한다거나 회피, 탈출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정도였다.

동해안의 북쪽에서 남쪽을 훑으며 탱커 위주로 보호막까지 걸어주었다.

힐끔 마정석의 상태를 보았다.

너무 막 퍼다 썼나 싶었지만 그래도 아직 마정석의 마나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마정석의 마나도 한계가 있으니 이제는 슬슬 퍼붓듯이 쓰지는 말아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아까 들렸던 소리가 들렸다.

띠이. 띠이. 띠이.

“어?”

비슷한 모양의 트럭이 다가왔다.

설마?

“충청에서 왔습니다.”

띠이. 띠이. 띠이.

“조금 늦었죠? 전남에서 왔어요.”

“아…….”

물량전은 이제 시작이었다.

* * *

서귀포 길드원들은 다시 전열을 갖추었다.

“진우 실종된 것이 아니라 소환되었대. 멀쩡하다고 연락 왔어.”

“알아요. 걔 TV에도 나왔다고 그러더라고요.”

“의무병 한다던데요. 힐러도 아니고 딜러가 갑자기 웬 의무병?”

“그래도 한 명도 죽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큰일 날 뻔했지만 잘 이겨냈기에 모두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화아악!

그 순간 모두에게 동시다발적으로 힐이 들어왔다.

“어?”

“어라!”

“예빈이니?”

헌터들은 힐러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하지만 이름이 불린 힐러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힐러는 모두에게 힐을 넣어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마나가 부족해 그럴 수 없었다.

모두 힐을 받고 한결 가뿐한 몸이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누가 힐을 쏴주었는지 알 수 없었다.

“지휘부에서 준 것 같은데?”

“지휘부에서?”

“왜 진우가 몬스터에게 휩쓸려 갔을 때는 소환도 해갔는데, 힐 정도 넣어주는 거야 쉽겠지.”

한 명의 헌터가 스마트폰을 모두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샤론이래요.”

“뭐가?”

“여기 보세요.”

스마트폰의 화면에서는 샤론 길드장이라는 헌터가 허공에서 뭔가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연신 힐이라는 단어를 내뱉고 가끔씩 큐어, 소환을 말했다.

소환이라고 할 때는 다친 헌터가 소환되었다.

“진우도 저렇게 불려간 거구나.”

“이야, 이거 우리도 죽을랑 말랑하면 저렇게 데려가 주는 건가요?”

“이거 든든한데.”

샤론 길드와 제대로 대화조차 해본 적이 없었지만, 이렇게 자신들을 뒤에서 든든히 지원해주는 존재가 있음을 알게 된 길드원들은 자신감과 함께 사기가 솟는 것을 느꼈다.

죽을 것 같으면 데려가서 회복시켜준다니 자신들은 그저 열심히 싸우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닌가?

“자, 이제 힐도 들어왔겠다. 죽을 것 같으면 데려간다는 것도 알았겠다. 다시 한번 포인트를 잡아보자고.”

“넵, 대장님.”

서귀포 길드는 다시 진형을 갖추고 몬스터와 싸울 채비를 했다.

저쪽에 아까 싸우다 도망쳤던 고블린 샤크가 보였다.

아까는 두 마리였는데 지금은 한 마리라서 해볼 만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함부로 덤빌 몬스터는 아니었다.

화아악!

웅, 웅, 웅, 웅…….

“이게 뭐죠?”

갑자기 모두의 몸에 보호막이 한 겹 씌워졌다.

“전원 실드 한 겹씩 씌워준 것 같은데요?”

“우와, 마나가 얼마나 많으면 이걸 다 걸어줄 수 있는 거지?”

“에이, 설마 동해안에 헌터가 몇인데 다 걸어주려고요. 선별해서 걸어주겠죠. 우린 운이 좋아서 당첨되었을 거예요.”

“그렇겠지?”

잠시 여성 헌터 한 명이 진지하게 고민한 후에 말했다.

“아니면 그 지휘부의 샤론 길드장이란 헌터가… 나한테 관심 있나?”

“뭐?”

“헐, 저것도 중증이네.”

“쟤 세뇌 마법 당한 거 아닌가 확인해봐라.”

하지만 여성 헌터는 당당했다.

“그럼 설명해봐요. 왜? 굳이? 우리에게만? 계속 지켜보면서? 이렇게 잘해주냐고요? 그러고 보니까 진우가 소환된 것도 이상해요. 계속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그 타이밍에 딱 구해주기도 쉽지 않아요. 답해봐요.”

다른 헌터들이 잠시 답을 하지 못했다.

“거봐요. 답하기 어렵죠? 후후, 20대 미혼 남자가 굳이 특별히 누군가를 지켜보면서 잘해준다? 이유는 뻔한 거 아니에요?”

언제 샤론 길드장이 20대 미혼 남자임을 조사했는지는 모르지만, 설마 하면서도 그 논리에 설득당하는 일부 헌터도 있었다.

하지만 곧 반론이 이어졌다.

“아니야. 네 설명에는 큰 허점이 있어.”

“뭔데요?”

“나도 샤론에 대해 찾아봤는데, 길드장 옆에 있는 미녀들이 너보다 열 배는 예뻐.”

“뭐라고요?!”

“인정.”

“동의.”

“난 동의 못 해요. 열 배라니요. 백 배죠.”

길드장이 수습을 했다.

“아이고, 다들 이제 조금 살만한가 봐? 농담 따먹는 소리나 하고? 쓸데없는 소리는 전쟁이 끝나고 하고 저기 고블린 샤크가 한 마리인데 잡아보자고. 다들 힐에다가 보호막까지 들어왔으니 할 만하지?”

“넵!”

“갑시다, 고고!”

헌터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차앗!”

“막아!”

“찔러!”

고블린 샤크가 격렬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A급 몬스터라도 혼자였고, 전원 보호막까지 두르고 있는 헌터들에게는 당해낼 수 없었다.

“크에엑!”

단말마를 내지르며 고블린 샤크가 잡혔다.

“오예!”

“내가 아까 널 피해서 달아나는 걸 생각하면, 으이구.”

헌터들이 고블린 샤크에게 분풀이를 했다.

촤아아악!

그런데 바닷물이 해안선 안쪽으로 크게 밀려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바다를 향했다.

그곳엔 조금 전까지 없었던 무언가가 있었다.

“어라?”

“섬인가?”

뭔가 커다란 것이었다.

“집게?”

그 섬에는 대형 집게도 있었다.

서귀포 길드원들은 길드장을 바라보았다.

길드장은 빠르게 판단해서 명령을 내렸다.

“튀어!”

서귀포 길드원들은 우리가 이렇게 도망 전문 길드가 아닌데 오늘따라 도망을 많이 친다고 생각했다.

* * *

지휘부에 정보가 들어왔다.

“보스가 떴답니다.”

“위치는?”

“이곳 정동진에서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약 50km 지점입니다.”

“천마, 오성, 염화에게 연락해.”

“넵!”

차지율, 노승민, 염화가 보스가 나타났다는 장소로 이동을 했다.

그곳엔 신고했던 헌터들의 말처럼 섬이 있었다.

보스는 아직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가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저 몬스터를 잡으려면 바다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차지율, 오성, 염화가 도착했다.

나의 소환수들을 태운 비행 차량도 도착했다.

차지율, 노승민, 염화, 샤샤, 제리, 카나가 모였다.

나는 알타르도 불러서 소환수들의 옆으로 보내주었다.

알타르는 리치의 마정석과 옥토푸스의 마정석을 가운데에 막대를 이용해 붙여서 커다란 아령 형태로 만들어서 들고 있었다.

나는 의사소통의 편의를 위해서 염화를 먼저 용병 등록해 주었다.

“아! 김 따거, 용병 등록 고맙습니다.”

갑자기 말이 없던 중국 헌터가 한국말을 하자 차지율과 노승민이 살짝 놀랐다.

하지만 그들도 용병 스킬을 잘 알기에 쉽게 이해했다.

샤샤가 설명했다.

“민준 님께서 여기 알타르 님과 염화 님을 용병 등록하셨어요. 용병은 한 자리가 비었는데 상황을 봐가면서 크게 다치는 헌터가 나온다면 바로 등록해서 데려가신다고 합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다치며 바로 후방으로 빼준다는데 이런 안전장치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 저기 보이는 보스를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해야 할 차례였다.

“갑각류형인가? 껍질이 딱딱해 보이네요.”

“처음에는 일정 수준 이하의 공격은 아예 안 먹힐 겁니다. 하지만 저런 게 또 껍질만 어떻게 뚫으면 속살은 말랑한 법이죠.”

“그러면 가서 한 곳만 두드려 패봅시다. 구멍이 뚫리면 마법사님이 전기 계열 같은 걸 속살에 넣거나 하면 데미지가 제법 먹히지 않을까요?”

“관절 같은데는 좀 약하지 않을까요?”

“집게는 자르는 힘은 세도 펴는 힘은 약하잖아요. 집게를 묶어버리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렇게 보스를 잡을 작전을 짜고 있는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

타다다다.

보스가 떴다는 소식에 방송국 헬리콥터가 날아온 모양이었다.

방송국 헬기는 밧줄을 하나 내려서 레펠로 기자와 카메라맨이 내려왔다.

나름 헌터라고 하더니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기자가 방송을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KMS의 조금만입니다. 지금 저는 동해안에서 보스가 나타난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보이십니까? 저건 섬인가요? 다행히 보스는 지금까지는 큰 움직임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만으로도 압도감을 느낄 수 있는 크기입니다. 하지만 시청자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기 우리의 늠름한 헌터들이 있습니다.”

TV 화면에서 헌터들이 비추어졌다.

한낮이었는데도 카메라 필터를 조절해서 석양의 노을이 지는 효과를 냈다.

카메라맨이 이건 꼭 찍어야 한다는 듯 온몸으로 촬영에 임했다.

약간 아래에서 위쪽을 향해 작전을 위해 모인 헌터들을 촬영했다.

카메라는 차근차근 헌터들의 모습을 담았다.

차지율은 담담하게 몬스터를 보며 굳은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오성의 기갑 전사 노승민은 아직 켄타우로스를 소환하지는 않았지만, 손가락을 풀며 저 멀리 있는 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중국에서 온 염화도 꿋꿋하게 서 있었다.

샤샤와 카나는 가만히 서 있었는데도 그냥 여주인공 같았다.

카메라맨은 의식인지 무의식인지 본인도 모른 채 샤샤와 카나에게 카메라 화면을 줌인해서 당겨 찍었다.

제리 역시 시선 강탈이었다.

제리는 날카로운 발톱을 수십 cm를 꺼낸 후 손을 쥐었다 폈다하며 몸을 풀고 있는 뮤지컬 배우 같았다.

대형 마정석을 무기처럼 들고 있는 알타르의 모습도 여유가 있으면서도 곧 거대한 전투를 앞둔 영화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개성 만점 독특하고 강력한 보스 레이드 팀이었다.

방송 짬이 되는지 차지율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팀원들에게 말했다.

“갑시다.”

바람결에 하늘색, 은색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두 손을 잡으며 기원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