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48시간 후
S급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고 48시간이 지났다.
동해안에 길게 늘어선 헌터들은 몬스터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최초 해안선 100m 이내에서 만들던 전선을 꿋꿋하게 지켜낸 지역도 있었지만, 대량의 몬스터 유입으로 인해 뒤쪽 시가지로 전선이 밀린 지역도 있었다.
“헉헉.”
해안가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어느 빌라 사이의 골목길 중간 부분을 탱커들이 늘어서서 막고 있었다.
“탱커 진형 갖춰!”
헌터들은 몬스터들을 골목길의 지형을 이용해 공략하고 있었다.
골목길 중간을 탱커들이 막고 양쪽 빌라 위쪽에서 골목으로 들어오는 몬스터들을 잡아가고 있었다.
지형 때문에 몬스터에게 둘러싸이지 않았다.
오히려 몬스터들을 좌우 빌라 위쪽에서 공격해 둘러쌀 수 있었다.
이러한 작전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작전을 48시간째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제길. 힐 좀!”
다른 헌터들도 그렇지만 특히 탱커들이 오랜 접전에 체력이 딸리고 있었다.
탱커가 무너지면 전선이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
“힐!”
다행히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힐러가 탱커에게 힐을 날려 주었다.
하지만 힐러는 마나를 쥐어 짜내서 힐을 날리는 것 같았다.
보통은 몬스터 레이드를 펼치면 강력한 몬스터를 대상으로 다수의 헌터들이 레이드를 펼쳤다.
레이드의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하면 개개의 헌터들은 큰 부담감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헌터의 수보다 몬스터가 다수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니, 헌터의 입장에서 이토록 괴로울 수가 없었다.
“다시 밀려온다!”
탱커들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몬스터를 억지로 막아 세웠고 그렇게 멈춰놓은 몬스터들을 딜러들이 꾸준히 정리해 나갔다.
빌라 위에서 전투 상황을 지휘하고 있던 리더는 상황이 조금 어려워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거 위험한데, 뒤로 몬스터들을 흘려야 할 것 같아.”
리더와 함께 있던 딜러가 되물었다.
“흘리자고요?”
“그래. 지금 탱커들이 한계야.”
“힐로는 못 버틸까요?”
힐을 주라는 소리에 리더가 힐끔 눈짓으로 힐러를 쳐다봤다.
딜러가 힐러를 보니 그가 보기에도 힐러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고 핼쑥해 보였다.
힐러는 의자에 앉아 마정석이 꽂힌 완드 하나에 몸을 기대며 헉헉대고 있었다.
딱 봐도 48시간 동안 힐을 써대서 마나 탈수 현상이 일어난 것 같았다.
“안 되겠어. 힐러 보면 몰라? 마나 탈수가 온 것 같아. 몬스터들을 뒤로 흘리고 조금 쉬면서 체력과 마나를 충전해야 다시 싸울 수 있을 것 같아.”
“…….
마나 탈수가 일어난 힐러, 간신히 몬스터들을 막아내고 있는 탱커 그리고 어떻게든 헌터들에게 휴식을 주어야 한다는 리더의 판단에 딜러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몬스터들을 뒤로 흘리자는 말은 일반인들에게 몬스터를 던져주라는 말이었다.
헌터들도 이런 지경인데 몬스터가 일반 시민들에게 가면 어떻게 될까?
학살.
몬스터는 마나를 담은 공격으로만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군과 경찰, 소방 인력이 그걸 몰라서 이쪽으로 달려온 건 아니었다.
여기서 뚫리면 봇물 터지듯 몬스터들이 흘러갈 텐데 그걸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싶었다.
질끈.
딜러가 입술을 깨물었다.
헌터들을 보존해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리더의 말을 이성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지만, 불 보듯 뻔한 학살을 외면하자는 말에 선뜻 긍정할 수도 없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몬스터, 체력과 마나가 지쳐가는 헌터.
딜러가 보기에도 이러한 딜레마 상황에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 오고 있음을 느꼈다.
슈우웅.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눈앞에 비행체 한 대가 나타났다.
슈슈슈슉!
위이이잉!
파파파팟!
비행체에서는 화살비와 전기톱을 휘둘러 골목길의 몬스터들을 도륙해나갔다.
그러더니 골목길 위쪽으로 오고 있던 몬스터들도 차례차례 쓰러뜨렸다.
학살이었다.
“와.”
갑작스런 지원군에 감탄하고 있던 있었는데 몸에 활력이 솟았다.
화아악!
이 느낌은 분명히 힐이었다.
그리고 리더의 귓가에 어느 목소리가 들렸다.
[용병 계약에 응하시겠습니까?]
“아!”
어제 들었던 협회장의 안내 멘트가 떠올랐다.
협회장은 스킬로 공유된 모든 헌터들에게 혹시라도 용병 계약에 응하겠냐는 소리가 들리면 응하라고 했다.
용병 계약을 할 수 있는 스킬을 가진 헌터가 돌아다니면서 지원을 해주고 있다는 말이었다.
“계약에 응하겠습니다.”
[선물함이라고 말하세요.]
“선물함.”
[거기 박스 꺼내세요.]
리더는 눈앞에 보이는 반투명한 박스를 꺼냈다.
그러자 박스는 실체화되어 두 손에 들렸다.
[그럼 건투를.]
[용병 계약이 해지되었습니다.]
슈우웅.
우주선 같았던 비행체가 사라졌다.
리더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디로 갔는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동료 헌터들을 살펴보니 다들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골목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모든 헌터들에게 힐이 들어왔던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제 다 처리했는지 누워서 꿈틀거리는 몬스터는 더러 있었지만 제대로 서 있는 몬스터는 없었다.
리더는 박스를 열어 보았다.
“아!”
박스 안에는 지금 가장 필요했던 물건인 체력 포션과 마나 포션 그리고 봉지에 담긴 음식 비슷한 것이 담겨 있었다.
봉지를 자세히 보니 ‘샤론 핫바’라고 쓰여 있었다.
* * *
“김 기사님, 남쪽으로 세 블록 정도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운전대를 잡지 않고 협회장의 스킬에 집중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운전대를 잡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헌터들에게 힐을 넣어주고 지원을 해주는 역할이 중요했다.
힐보다 한 단계 위인 큐어 스킬은 물론이며 보호막을 걸어줄 수 있는 스킬까지 가지고 있는 내가 운전만 하는 것은 낭비였다.
운전대는 운전 스킬이 있는 헌터에게 맡겼다.
처음에는 협회장에게 운전 스킬이 있는 헌터 나오라고 공유해달라고 할까 했었는데, 사안이 그 정도로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 지휘부에만 말하자 순식간에 구해 주었다.
지휘부에서는 헌터들의 데이터 베이스가 있는 것 같았다.
F급 헌터였지만 운전 스킬이 있어서 그런지 불과 십 분 만에 비행 차량을 10년 운전한 자기 차처럼 운전했다.
김 기사는 등급이 F라서 몬스터를 잡지는 않고 운전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이름을 불러드리려고 했으나 이름에 콤플렉스가 있다며 본인이 김 기사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 전투 상황에서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슈우욱.
“꽉 잡으세요.”
비행차량이 건물들 사이를 빠르게 날아갔다.
건물 사이를 슉슉 지나가는 게 내가 운전을 했다면 벌써 부딪혔어도 여러 번 부딪혔을 것 같았다.
아니 이렇게 건물들 사이의 길을 날아서 운전해 간다는 생각 자체를 안 했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도 헌터들이 고전하고 있었다.
“힐, 힐, 힐, 힐, 힐…….”
눈에 보이는 모든 헌터들에게 무차별로 힐을 날려 주었다.
체력이 꽉 차 있는 헌터는 아무도 없었다.
그다음은 샤샤, 카나, 제리의 차례였다.
피피피핏.
위이이잉.
슈칵슈칵.
화살비가 내리고 칼날 방패가 갈아버리고 투명제리가 구석진 곳에 있는 몬스터까지 꼼꼼하게 목을 땄다.
“알파야, 저분에게 용병 걸어줘.”
리더처럼 보이는 헌터를 지목해 용병을 걸었다.
용병을 걸고 힐링 포션과 마나포션 그리고 샤론 핫바가 포장되어있는 박스를 넣어드렸다.
그때 알타르의 쪽지가 왔다.
[스승님, 충전 완료되었습니다.]
“알타르 님, 소환.”
화아악!
알타르가 차량 내부로 소환되었다.
“스승님, 여기 충전 완료된 마정석입니다.”
알타르는 리치의 마정석을 내밀었다.
그리고 내 발밑에 있는 옥토푸스의 마정석을 가져갔다.
옥토푸스의 마정석은 이제 마나가 얼마 남지 않았다.
“스승님, 그럼 다시 돌아가서 충전하고 오겠습니다.”
“네, 감사해요. 알파야.”
화아악!
알타르가 샤론으로 이동했다.
나는 알타르가 잘하고 있는지 샤론을 관찰하는 화면을 띄워보았다.
샤론의 마을 중앙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인원이 대충 150명은 되어 보였다.
그 인원이 모두 마나 호흡을 하고 있었다.
“쓰으으읍, 후우우우우.”
샤론의 주민들은 모두 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앉아 있는 곳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앉은 곳에서 바닥에 그려진 선을 따라 주민들의 마나가 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선은 마을 광장의 가운데 부분을 향했고 그 중심에는 옥토푸스의 마나석이 있었다.
알타르가 장치한 마법진은 단순했다.
주민들이 보내 주는 마나를 이동시켜 마법진 중앙의 마정석으로 옮기는 것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나석 충전 알바는 시간당 페이가 높아서 나름 꿀알바였다.
물론 마법사들만 할 수 있는 알바여서 젊고 저서클인 마법사라면 대부분 해본 알바였다.
그런 마나석 충전을 150명이 하고 있었다.
샤론 영지의 경계 인원은 참가시키지 않아서 150명이었다.
악착같이 쥐어짜면 50명은 더 참가시킬 수 있었다.
알타르의 지휘 아래 150명의 마나가 모였다.
주민들은 대부분 2서클에 머물렀지만 마나량 만큼은 2서클 이상이었다.
단순히 마나 호흡을 하며 마나를 제공하는 일이기 때문에 마법적 깨달음이나 숙련도도 필요 없었다.
오직 커다란 마나통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에는 최적인 주민들이었다.
내가 눈앞에 보이는 모든 헌터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힐을 날려 줄 수 있는 마나의 원천이었다.
나는 다시 협회장의 스킬에 집중했다.
동해안 헌터 전체를 느끼려 애썼다.
어라?
훨씬 남쪽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김 기사님, 남쪽으로요! 훨씬 남쪽이에요.”
“네, 속도를 높입니다.”
남쪽에서 전투 중인 일부 헌터의 체력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저걸 나만 아는 건 아니겠지만 저 헌터들을 구해줄 수 있는 여력이 있는 헌터가 별로 없었다.
“기사님, 달려요!”
“꽉 잡으세요.”
슈우우우욱!
비행 차량은 열심히 날아갔고 나는 협회장의 스킬에 집중해 남쪽 헌터들의 상황에 집중했다.
헌터들의 체력창이 점점 줄었다.
아….
조금만 기다려주면 되는데 안타까웠다.
한 헌터의 체력창이 거의 0에 가까워졌다.
마나를 쑥 부어서 그 헌터의 채널에 집중했다.
꿀렁.
희미하게 보이는 모습이 물속인 것 같았다.
아!
몬스터들에 의해 바닷속으로 끌려 들어간 것 같았다.
아…….
힐을 줄 수 있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지구에서는 내가 직접 눈으로 보는 사람에게만 힐을 줄 수 있었다.
협회장의 스킬로 뻔히 저들의 체력이 줄어드는 것이 보이는데 힐을 줄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안타까움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혼잣말이 나왔다.
“아… 힐을…….”
수욱.
어라?
뭐지?
아직도 접속 중인 헌터의 시야가 조금 밝아지는 것 같았다.
설마?
“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힐을 외쳐보았는데 내가 채널에 접속한 헌터의 체력이 올라갔다.
“힐!”
확실히 헌터의 체력이 더욱 올라갔다.
이건 내 스킬이 먹히는 것이었다.
“대박! 되는구나!”
협회장의 스킬로 접속한 헌터에게 원격으로도 스킬을 날려 줄 수 있었다.
“디바인 홀리 큐어, 힐, 힐, 힐! 알파야, 이 헌터 용병 제안해!”
물속에 들어가서 죽어가던 헌터에게 힐을 여러 번 쏴주니 간신히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았다.
―용병 계약에 응했습니다.
“소환!”
화아악!
물에 젖은 헌터가 비행 차량에 소환되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