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영웅 길드
지이이잉.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의 스마트폰에 동시다발적으로 진동이 울렸다.
[강릉시 정동진 동쪽 100km 바닷속에서 던전 브레이크 발생.]
“뭐?”
“던전?”
“던전 발생이 아니고 던전 브레이크 발생이야! 터진 거라고!”
“바다에서 터졌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등급이 얼마짜리야?”
던전 브레이크라는 소식에 시민들은 황급히 뉴스를 찾아보며 정보를 얻었다.
속보가 뜬 처음에는 등급이 공개되지 않았다.
그래도 뉴스에서는 동해안 던전 브레이크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려고 애썼다.
헌터들이 모여들고 준비하는 과정이 급박하게 전달되었다.
동해안에 있는 리포터들이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무작정 방송을 넘겨받았다.
카메라가 먼저 켜지고 그제야 리포터가 뭔가 원고를 들고 뛰어 들어오는 방송사고가 나기도 했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다 TV에서 속보로 대통령 긴급 브리핑이 진행된다는 자막이 떴다.
“대통령 긴급 브리핑이래.”
국민들이 TV 앞으로 모이거나 스마트폰에 집중했다.
그리고 곧이어 대통령이 브리핑장에 나타났다.
대통령은 굳은 표정이었다.
국민들은 갑작스러운 대통령 브리핑에 긴장하며 TV 화면을 지켜보았다.
TV 속의 대통령이 브리핑했다.
[국민 여러분, 약 40분 전 동해안 앞바다, 정동진에서 동쪽으로 약 100km 되는 지점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습니다. 그 던전 브레이크의 규모는 S급입니다.]
술렁술렁.
대통령이 던전의 규모를 말하자 브리핑에 참여한 기자들의 술렁임이 TV 화면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었다.
TV 자막으로 실시간 속보가 나갔다.
―정동진 동쪽 100km 지점. S급 던전 브레이크 발생.
[조금 전 헌터 협회장이 헌터들에게 동원령을 내렸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헌터들은 동해안으로 집결해주시기 바랍니다.]
―헌터 동원령 선포. 모든 헌터 동해안으로.
[지금 대통령으로서 강원도와 경상북도를 재난지역으로 선포합니다. 또한 군 통수권자로서 전군 비상사태를 명하고, 군대와 경찰 소방 병력은 강원도, 경상북도 해안가 일대의 주민 철수 작전을 펼칠 것을 명합니다.]
―강원, 경북 재난지역 선포, 군경 총동원 동해안 주민 철수 작전 실시.
“국민 여러분, S급 던전 브레이크는 대한민국이 처음 경험하는 사태입니다. 모두 힘을 합쳐 이 위기를 극복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S급 던전 브레이크의 발생을 전달한 대통령의 브리핑은 짧지만 강렬했다.
대한민국이 난리가 났다.
회사에서 일하던 직장인도, 학교에서 공부하던 학생도 모두들 S급 던전 브레이크라는 사태에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S급 던전 브레이크면 어느 정도 피해가 발생했지?”
“맞아, 중국에서도 발생했잖아.”
“거긴 우리나라보다 더 넓은 지역이 피해를 입었다고 했어.”
“우리나라보다 더 넓은 지역이 피해를 입었다고? 그러면 우린 어디로 대피해?”
하지만 모두가 당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동해안 던전 브레이크 소식에 해안에서 내륙으로 달아나는 사람이 많았지만 반대로 동해안으로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 헌터 한 명이 부인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건넸다.
“동원령이 발동되었네. 잘 다녀올게.”
“여보, 가지 마요. 거기가 어디라고 가? 당신이 E급인데 왜 꼭 가야 해? S급 브레이크라잖아. 가지 마요.”
“지금 길드에서 요 앞 사거리로 오라고 연락이 오네. 헌터 접을 거 아니면 가야지.”
“그러다 잘못되면 애들은 어떡해요.”
“다녀올게. 괜찮을 거야.”
자칭 던전 브레이크 전문기자라는 KMS 조금만 기자도 그리고 그의 단짝인 카메라맨도 당연히 가야 할 곳이란 듯 동해안으로 출동했다.
“땡철아, 가자.”
“네, 형님.”
조금만 기자는 이제 방송국에서 제법 파워가 있어서 방송국 헬리콥터를 한 대 지원 받을 수 있었다.
타다다다다.
조 기자를 태운 방송국 헬기가 동쪽으로 향했다.
조 기자는 카메라맨에게 손짓하며 도로를 가리켰다.
카메라맨은 헬리콥터 위에서 지상의 도로를 촬영했다.
곧이어 붉은 등이 들어온 카메라를 향해 조 기자가 해설을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면 어디라도 간다. 던전 브레이크 전문기자 조금만입니다. 저는 지금 강원도 정동진으로 향하는 헬리콥터 안입니다. 잠시 동해안으로 향하는 도로를 보시죠.”
강원도로 향하는 도로에는 차들이 많았다.
그런데 동쪽으로 가는 차량과 서쪽으로 향하는 차량의 종류가 달랐다.
동쪽으로 향하는 차량은 군부대의 차량, 경찰차, 소방차, 구급차였다.
반대로 서쪽으로 향하는 차량은 일반인들의 차량이었다.
사이렌을 켜고 동쪽으로 향하는 수백 대의 군, 경, 소방, 구급 차량은 그 존재만으로 장관이었다.
조 기자의 영상은 방송으로도 나가지만 독자들의 실시간 채팅이 가능한 사이트로도 동시에 방영되고 있었다.
└ ㅠㅠ
└넘 멋져요.
└감동이네.
└S급 던전 브레이크를 막으러, 국민들을 피난시키려 가는 모습. 헌터가 아니어도 당신들은 영웅입니다.
“국민 여러분, 보고 계십니까? S급 던전 브레이크를 향해 나아가는 차량입니다. 저 차량들을 보면 우리는 S급 던전 브레이크를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저도 동쪽으로 날아가겠습니다. 함께 지켜봐 주십시오.”
타다다다.
헬리콥터로 이동하면 동해안까지는 금방이었다.
어느새 헬리콥터는 정동진 근처에 도착했다.
조 기자가 카메라맨에게 해안가를 가리켰다.
조 기자가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해안가를 따라 불을 지른 것으로 보였다.
자로 잰 듯 해안을 따라 죽 늘어선 불길은 길이가 거의 1km는 되어 보일 정도였다.
“마법인가? 조종사님, 저 불길이 뭔지 확인 좀 해봅시다.”
조 기자의 헬리콥터가 조심스럽게 불길이 보이는 상공으로 이동했다.
“아!”
조 기자는 불길을 경계로 양쪽을 보는 순간 저 불길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불길을 경계로 바다 쪽에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쌓여 있었고 반대쪽에는 헌터들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몬스터의 상륙을 저지하는 불길이었다.
“국민 여러분, 보고 계십니까?”
카메라는 최대한 줌을 당겨서 불의 장벽 좌우를 보여주었다.
“현재 정동진에는 한눈에 보아도 1km는 넘어 보이는 기다란 불의 장벽이 있습니다. 이 장벽이 무엇인지는 그 좌우를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불의 장벽을 기준으로 해안 쪽에는 몬스터가, 내륙 쪽에는 헌터들이 있습니다. 몬스터의 상륙을 저지하는 불의 장벽입니다. S급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지만, 이곳 정동진에서는 희망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거대한 불길을 보자 시청자들도 호기심이 생겼다.
└나 저기 잘 아는데 거리가 상당해. 조 기자가 1km라고 하지만 더 될 듯.
└무슨 스킬이지?
└마법진인가?
└파이어 월로 보이는데?
└아니 무슨 파이어 월을 1km를 뿌려?
└누가 저렇게 할 수 있어? 저 정도면 S급 마법사 아냐?
└S급 마녀 기예라인가?
└마녀가 화염계를 쓴 적은 없어. 여러 명이 구역을 맡아서 이은 거 아냐?
└이어붙인 것치곤 너무 균일한데? 한 명의 작품인 것 같아. 기예라네.
└기예라는 화염을 쓴 적이 없다니까.
우리나라의 S급은 모두 다섯 명으로 협회장, 천마 차지율, 기갑 전사 노승민, 마녀 기예라, 은둔자였다.
국민들은 몇 년째 잠적 중인 S급 마법사인 기예라가 저곳에 와주었길 바라고 있었다.
촬영은 계속되었다.
헬리콥터는 해안가로 너무 붙지는 않았다.
몬스터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헌터들의 영역 위에서 날며 촬영을 이어갔다.
헬리콥터는 남쪽으로 이동했다.
불의 장벽 너머의 몬스터 떼들이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다.
헬리콥터로 날아가니 불의 장벽도 끝이 났다.
불의 장벽이 끝나는 곳에서부터는 헌터와 몬스터의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타앗!”
“야압!”
“크레렉!”
기합 소리와 괴성이 난무했다.
카메라에는 사슬 갑옷을 입은 어느 검사가 복어처럼 생긴 몬스터의 머리에 검을 쑤셔 넣고 있는 장면이 찍혔다.
검사의 검은 거의 손잡이까지 박혔지만 몬스터는 멈추지 않고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복어처럼 생긴 몬스터는 물고기처럼 머리가 둥글었지만 두 팔이 있어서 팔을 헌터들에게 휘두르고 있었다.
검사의 양쪽에서 방패를 가진 탱커가 몬스터의 팔을 막아주자 검사는 두 발을 몬스터의 머리에 올리고 앉았다가 일어나는 자세로 간신히 자신의 검을 뽑을 수 있었다.
촤아악.
검을 뽑자 몬스터의 점액질이 사방으로 뿜어졌다.
몬스터의 점액 범벅이 된 헌터들은 점액을 채 닦지도 못하고 밀려오는 다른 몬스터를 맞이하고 있었다.
불의 장벽이 끝나는 곳이어서 그런지 불의 장벽을 우회해서 돌아오는 몬스터의 양이 많은 곳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헌터들도 이곳에 제법 많이 모여 있었다는 것이었다.
조 기자의 헬리콥터가 헌터들의 전투 장면을 찍으며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갔다.
조금 전 불의 장벽이 끝나는 곳보다는 몬스터의 수가 적었다.
하지만 몬스터의 수에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헌터의 수도 적어서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은 비슷했다.
헬리콥터는 조금 더 내려갔다.
조 기자는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며 시청자들에게 전체적인 상황을 보여주려 했다.
“아!”
조 기자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헬리콥터에서 보이는 바다에서 마치 고등어 떼처럼 몬스터들이 시커멓게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저건 자연재해, 몬스터 재해였다.
헌터들도 저 몬스터 떼를 알고 있었는지 그 앞에 백여 명의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몬스터 떼의 수가 압도적이었다.
몬스터 군단에 위기를 느꼈는지 헌터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까맣게 밀려오는 몬스터 떼와 후퇴하는 헌터들을 본 시청자들도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아…….
└어떡해.
└개떼 같아.
└제발…….
└죽지 마.
헌터들이 후퇴한 곳은 지형적으로 약간 오목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 작은 다리와 몇 개의 길이 있었는데 다리는 왜인지 부서져 있었고 대형 버스로 길을 막아두었다.
마치 이곳으로 오면 올라오지 못하고 갇히는 느낌이 드는 함정 같은 장소였다.
백여 명 이상의 헌터들이 후퇴하자 몬스터들이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헌터들은 오목한 곳에 도착해 준비해둔 길로 올라가 위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몬스터가 오자 준비해둔 길은 제거하고 위에서 아래로 공격을 펼쳤다.
순간적으로 성벽 위에서 농성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었다.
└잘한다!
└몬스터들아, 우린 성벽 위다.
└원래 성벽 위에서 싸우면 3배는 강해짐.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려는 몬스터들의 시도는 헌터들의 방해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 오목한 지형에 몬스터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조 기자는 헌터들이 나름 선방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몬스터의 수가 너무 많아서 곧 무너질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그 아슬아슬함이 느껴지는지 시청자들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쿵.
흔들흔들.
몬스터들의 압력에 두 겹으로 막아두었던 버스가 종이벽처럼 흔들렸다.
그때, 하늘에 수많은 붉은 점이 나타났다.
나풀나풀.
붉은 점은 붉은 비가 되어 땅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몬스터들이 모인 곳에만 내리는 붉은 비.
7서클 마법 파이어 레인이었다.
화르륵!
치이이익!
“크에엑!”
시청자들은 잠시 이게 무슨 상황인지 댓글도 쓰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리고 마치 UFO처럼 공중에 머무는 비행체 한 대가 몬스터들의 머리 위로 올라왔다.
파파파파팟!
위이이이잉!
썩뚝썩뚝!
불꽃 비 다음은 화살 비 그리고 전기톱이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멀쩡하게 서 있던 몬스터의 머리가 위로 달아나곤 했다.
댓글창이 폭발했다.
그리고 인터넷 부대의 검색 실력은 뛰어났다.
└뭐지?
└누구야?
└저 여자, 비행체의 창문에 매달려 있는 여자! 어디서 본 적 있어!
└샤론 길드의 샤샤라는 여자야. 그 반대편 문에 전기톱은 카나라는 여자야. 전기톱이 아니고 칼날 방패야.
└비행체 위에 어떤 아저씨가 앉아 있는데? 뭐지? 손에 수정구 같은 걸 두 개 들고 있어.
└샤론 길드! 천마 길드와 오성 길드가 점찍은 길드라잖아.
└저 붉은 비처럼 내리는 스킬 알아! 저거 7서클 파이어 레인이야!
└7서클?!!!
└샤론 힘내라!
└샤론 길드 부탁해.
└샤론아, 제발 부탁해 ㅠㅠ
조 기자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샤론 길드는 이제 국민의 영웅 길드가 될 거라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샤론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