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해안 전투
협회장과 시선이 마주쳤다.
주름진 눈가와 깊고 검은 눈동자는 깊은 현기를 담은 것 같았다.
나는 그 시선에 빨려들 것 같았다.
찰칵.
뭔가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거대한 전자 장치에 부품 하나를 찰칵하고 끼운 느낌이었다.
“됐습니다. 다음.”
“아.”
잠시 멍 때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회장과 시선을 맞추기 위해 뒤에 줄 서 있는 헌터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별다른 차이점을 느낄 수 없었다.
“헌터님, 협회장님과 시선 맞추셨죠? 그럼 마나를 머리 위쪽으로 쏘아 보낸다고 생각하고 움직여 보세요. 정수리, 머리 꼭대기로 마나는 쏘아 올린다 생각해보세요.”
몇몇 헌터들이 나처럼 처음 협회장과 시선을 마주친 헌터들에게 사용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마나를 머리 쪽으로 보내라는 말에 시키는 대로 하니 뭔가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어? 차지율 헌터님, 협회장님과 시선을 맞추고 마나를 조금 써보니 뭔가 느낌이 이상하네요. 이게 뭐죠?”
“같은 팀원을 인지하게 되는 거예요. 인지 공유 스킬이라고 협회장님의 고유 스킬이죠.”
“팀원을 인지한다고요?”
“네, 팀원의 위치와 상태를 알 수 있는 거예요. 부대 전체가 서로를 이해한다고나 할까요?”
놀라운 스킬이었다.
나는 샤론에서 전투가 벌어질 때 소환수들과 용병들의 위치를 내려다보곤 했다.
그리고 소환수와 용병들의 체력도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맵핵처럼 소환수와 용병들에게 가야 할 길을 안내하고 전투 시 체력이 떨어지면 체력창을 봐가면서 힐을 쏴줄 수 있었다.
직접 상황을 보면서 전투를 한다는 건 상당한 강점이었다.
그런데 협회장의 스킬은 한두 명이 상황을 보면서 지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전체가 함께 상황을 인지한다는 것이었다.
인지 공유라니.
전투 시 서로를 인지하게 하는 스킬이라면, 처음 만난 사이라도 아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사이처럼 유기적으로 전투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오늘 처음 모인 수많은 헌터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거다.
예컨대 샤샤를 처음 보는 헌터라도 샤샤가 활을 들어 자신을 겨냥할 때 정말 자신을 겨냥하는 건지, 아니면 화살이 자신의 뒤쪽에 있는 몬스터를 겨냥하는 건지 안다는 말이었다.
팀워크가 저절로 생기는 스킬이었다.
“협회장님이 S급 커맨더인 이유가 있군요.”
“민준 헌터님, 아직 놀라긴 일러요. 협회장님에게 마나를 준다는 느낌으로 마나를 더 보내 보세요.”
마나를 더 보내라고?
마나를 머리 위쪽으로 보내는 느낌으로 몰아서 보내니 협회장이 보내는 신호를 더욱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
“더 선명하죠?”
이거 마나를 보내는 양에 따라 정보를 얻는 수준이 달랐다.
처음에는 미니맵을 통해 위치를 파악하는 듯했다가 마나를 계속 보내니 미니맵이 흑백 TV가 되었다가 4K 고화질 대형 TV가 되는 느낌이었다.
“이거, 거의 제가 글리제를 보는 느낌인데요?”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이제 나는 어디를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곳은 이곳 정동진 해안에서 약 100km정도 떨어져 있었다.
던전과 가장 가까운 곳이 이곳이었다.
그래서 몬스터들은 가장 가까운 이곳에 가장 먼저 도착할 것이었다.
물론 정확히 어느 해안에 몬스터가 상륙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건 말 그대로 몬스터 마음이었다.
하늘에서 바다를 관측한 결과 던전에서 출발한 몬스터들은 동해안에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헌터들은 적게 잡아도 수십 km, 넓으면 100km 이상의 해안선을 지켜야 했다.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있다가 몬스터가 나타나면 재빨리 이동해야 했다.
그런데 그 긴 전선에서 어디가 여유 있고 어디에 헌터들이 부족한지 빨리빨리 중계가 되어야 했는데, 협회장의 스킬로 그런 중계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것 같았다.
나는 협회장의 스킬에 집중하며 마나를 더 보내 보았다.
“군데군데 빈 곳이 있네요.”
“네, 하지만 몬스터가 오는 상황을 보고 지휘를 받으며 움직여도 늦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협회장의 스킬에 적응하고 있었는데 지휘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협회장님, 관측되는 몬스터의 양이 너무 많습니다. 처음 출발한 몬스터가 던전 입구에서 거리가 100km 정도 이동했는데 아직도 던전에서 몬스터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현재 추정 몬스터의 수는 최소 5만 이상입니다.”
“전국 헌터 동원령이 발령해야 합니다.”
“중국, 필리핀, 태국에서 헌터를 파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본은 자국의 서쪽 해안을 방어해야 한다고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원래도 분위기가 좋지는 않았지만, 점점 더 심각해졌다.
S급 던전 브레이크가 심각하지 않을 리가 없지만 지금 관측되는 몬스터의 수가 예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5만?
나는 숫자를 잘못 들었나 싶었다.
5만 마리의 몬스터가 몰려온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던전 브레이크라는 것이 원래 한꺼번에 많은 양의 몬스터가 쏟아져나와서 피해가 큰 법인데 이번 브레이크는 중국이나 일본에서의 S급 브레이크보다 관측되는 몬스터의 양이 훨씬 많았다.
“전국 헌터 동원령을 선포합니다.”
결국 전국의 모든 등급의 헌터를 동해안으로 모으는 동원령이 발동되었다.
이렇게까지 작전을 벌인 적은 없었다.
나는 마나를 머리 위쪽으로 보냈다.
그리고 바다 위쪽의 상황을 보고 싶었다.
가만히 흘러들어오는 정보를 집중했다.
헬기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헌터의 시야에 접속하는 느낌이 들었다.
우글우글.
물 반 고기 반이 바다에 펼쳐져 있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물고기 떼가 시야에 비췄다.
그런데 물고기 떼에서 뭔가가 날아와 헌터를 공격했다.
아! 이런!
시야가 급격히 흔들렸다.
흔들리는 시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물고기 떼가 아니라 몬스터 떼였다.
내가 접속했던 시야가 끊겼다.
꿀꺽.
절로 긴장이 되었다.
내가 긴장한 모습에 차지율 헌터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괜찮으세요?”
“아, 네. 고마워요. 바다에서 몬스터를 관측하는 헌터의 시야에 접속해 보았어요. 그런데 몬스터가 우글우글했어요.”
차지율 헌터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나는 차지율 헌터에게 물었다.
“오성은 왜 없나요?”
“오고 있답니다.”
“그렇군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S급 브레이크였다.
나도 서울 동쪽에서 날아서 이곳에 도착한 것이었다.
오성의 노승민 헌터가 지구 반대편에만 있지 않았었기를 바랬다.
헌터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외쳤다.
“5분 전!”
“준비해!”
“북쪽으로 이동하는 몬스터 떼가 발견됐어!”
“위치로!”
“천마는 북쪽으로!”
지휘부에서는 이제 막 도착하는 길드들을 남북으로 배열했다.
이곳 지휘부에만 해도 얼핏 천여 명 가까운 헌터가 모였다.
하지만 몬스터의 수는 헌터들보다 훨씬 많아 보였다.
지금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쏟아져나올지 알지 못했다.
한두 명, 한두 길드의 힘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인지 공유에 더 익숙해지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지금 상황이 엄중한 상황임은 누구나 알고 있었고 심지어 외국에서도 우릴 도우러 오고 있다고 했다.
나는 내가 할 일에 집중해야 했다.
사아악.
하늘 위에서 동해안에 길게 늘어선 헌터들 전체를 조망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은 누구보다 많이 경험하기 때문에 익숙했다.
화면을 조금씩 확대해보았다.
이제 슬슬 협회장의 스킬에 적응이 되고 있었다.
많은 헌터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해안가에서 약간 내륙 쪽에도 헌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쪽 헌터의 시야를 공유하니 일반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헌터가 아닌 일반인들은 헌터들과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헌터의 시야를 어느 정도까지 공유할 수 있나 싶어서 마나를 더욱 밀어 넣고 어느 한 화면을 집중해보았다.
나는 하늘을 날아서 오느라 몰랐는데 도로는 차량으로 막혀 엉망이었다.
시민들이 서둘러 달아나고 있었다.
일반인들에게 던전 브레이크는 재해, 재앙이었다.
서둘러 달아나다가 넘어지는 여성이 보였다.
차가 막히자 차에서 내려 아기를 업고, 한 손에는 업은 아이보다는 큰 어린이의 손을 잡고 뛰는 여성도 보였다.
더욱 마나를 집중하니 소리까지도 들리는 것 같았다.
위이잉.
싸이렌이 울리면서 대피 방송이 연이어 나오고 있었다.
이곳 정동진은 이미 일반인 대피가 완료되어 대피 방송이 나오지 않지만, 후방의 경우는 아직도 열심히 대피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2분 전!”
집중을 깨는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헬리콥터와 위성, 그리고 헌터의 눈과 탐지 스킬로 얻은 모든 정보는 협회장에게 향했다가 다시 모든 헌터에게로 뿌려졌다.
몬스터들은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곳으로부터 부채꼴 모양으로 해안가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채꼴과 해안선이 가장 먼저 닿는 접점은 이곳 정동진이었다.
정동진을 기점으로 순차적으로 북쪽으로, 남쪽으로 몬스터들이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런 모습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졌다.
모두가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을 터였다.
그때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협회장이었다.
[저와 스킬로 연결된 모든 헌터님들께 알립니다. 이제 2분 후면 정동진에서부터 시작하여 남, 북 방향으로 몬스터들이 도착합니다. 다행히 해안가의 일반인들은 어느 정도 대피가 되었습니다. 몬스터의 수가 예상보다 많습니다. 이번 전쟁은 물량전, 체력전이 될 것 같습니다. 버티십시오! 모든 헌터들의 무운을 빌겠습니다. 모두에게 체력을, 모두에게 민첩을, 모두에게 스태미너를!]
협회장의 버퍼가 들어왔다.
가슴이 따뜻해지며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늘 누군가를 돕는 역할을 하다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니 느낌이 좋았다.
나와 차지율 헌터의 시선이 마주쳤다.
끄덕.
차지율 헌터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천마 길드는 정동진에서부터 북쪽으로 이동하며 몬스터를 처리할 예정이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쭉 이동하며 몬스터들이 해안가에 도착하는 처음 위치에는 천마가 있을 것이었다.
다 잡지 못하더라도 일단 한방씩이라도 천마의 손길이 닿을 것이었다.
나는 남쪽을 바라보았다.
북쪽은 차지율에게 맡겼다.
“샤론팀도 갑시다.”
소환수들과 알타르가 차량에 탑승했다.
나는 비행 차량에 탑승해 운전대를 잡았다.
다른 비행기들은 빠르게 날아야 양력을 받아 공중에 뜰 수 있지만, 비행 차량은 마나를 써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천천히 날거나 제자리에 멈출 수도 있었다.
우리는 해안가를 따라 약간 남쪽으로 내려갔다.
바다 위쪽으로 몬스터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부글부글.
처음엔 거품인 줄 알았다.
하지만 바다에서 육지로 상륙하는 몬스터의 파도였다.
게 비슷한 것도 있었고, 양서류, 파충류처럼 생긴 것들도 있었다.
외골격을 가진 몬스터가 가장 많아 보였다.
이제는 전투의 시간이었다.
나는 차 안에서 모두를 둘러보았다.
상급 마나 각성제를 다섯 병 꺼내 뚜껑을 땄다.
딸깍.
“여러분, 한 잔씩 마시고 시작하죠.”
꿀꺽.
화아아악!
협회장의 버퍼와 각성제의 활력이 온몸을 휘감았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