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160화 (159/230)

160화. 커맨더

다섯 척의 멸치잡이 배가 바다에서 항해하고 있었다.

배들은 마치 군인들이 행군하듯 일렬로 줄을 맞춰 나아가고 있었다.

출렁출렁.

선원들은 흔들리는 갑판에서 드넓은 동해 바다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봐, 황씨, 오늘 조황은 어떨 것 같은가?”

“글쎄, 낸들 아나. 저어기 어로장님에게 물어봐야 알지.”

“누가 그걸 몰라서 묻는가?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지.”

“다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지. 오늘 조업 마치고 쐬주나 한잔 혀. 내가 아주 맛있는 꽃게탕 하는 집 알아 놨어.”

“오가네 말하는 거 아녀?”

“어, 자네도 알아?”

출렁출렁.

배는 하염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삐빅!

지휘하는 어로장의 무전 신호였다.

[동쪽으로 5도 튼다.]

[알겠습니다.]

멸치잡이는 여느 낚시와 같이 기다림의 미학이 있는 낚시가 아니었다.

어군탐지기로 멸치 떼를 찾고 다섯 척의 배가 하나의 팀이 되어 순식간에 그물을 펼치고 잡아야 하는 긴급한 작전부대였다.

그래서 어로장의 말 한마디에 한순간의 지체도 없이 사십여 명의 선원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움직여야 했다.

멸치 선단의 대장인 박철우 어로장은 바다와 어군탐지기, 그리고 선단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확인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어로장의 판단이 잘못되면 그날 조업은 허탕이었다.

40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어로장은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때였다.

위잉, 위잉, 위잉!

어군탐지기가 아닌 다른 기계에서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 번도 울리지 않았던 마나 탐지기였다.

순간적으로 어로장의 머릿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이 스쳐 지나갔다.

마나 탐지기는 말 그대로 마나를 탐지하는 장비였다.

육지에서 100km는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서 마나가 발견될 일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몬스터, 던전, 아니면 갑자기 하늘에서 마나를 품은 물건일 수도 있었다.

어로장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어로장은 선단의 움직임을 결정해야 했다.

무전기를 잡고 선단에 명령을 내렸다.

고민은 짧고 판단은 빨랐다.

“마나 탐지기가 울렸다. 모두 우현으로 돌아서 강릉으로 복귀한다.”

어로장은 40명의 목숨을 책임지는 입장이었다.

바다 한가운데서 마나 탐지기가 울렸으면 일단 회피하는 것이 맞았다.

배들이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서 오던 길의 반대 방향으로 가려고 했다.

촤아악!

바다 위로 거대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크게 돌고 있는 배의 원심력을 이기려 배 난간 손잡이를 꽉 잡고 있던 선원들은 십 미터 이상 솟아오른 붉은 물체에 너무 놀라서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꽃… 꽃게다.”

십 미터도 넘어 보이는 거대한 크기의 꽃게였다.

마나 탐지기가 울린 이유가 저것이었다.

어로장은 무전기를 통해 외쳤다.

“전속력!”

이미 어로장이 시키지 않아도 배들은 전속력으로 꽃게를 피해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배와 꽃게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꽃게의 움직임이 재빨랐다.

이대로는 모두 살아서 항구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어로장은 40년 어업 경력의 지식을 머리에서 쥐어짜 냈다.

“그물을 내려!”

배에는 멸치를 잡기 위한 그물이 있었다.

그물의 길이는 거의 1km에 달했다.

배는 달리면서 뒤쪽으로 그물을 내리기 시작했다.

“좌현으로 20도 틀어!”

그물을 내리면서 배가 좌측으로 꺾였다.

“우현으로 40도 틀어!”

배가 지그재그로 가면서 그물을 내리자 꽃게의 입장에서는 여러 번 그물을 찢어야 했다.

어로장의 수가 통해서일까?

꽃게는 몸이 삐죽해서 계속 그물에 걸렸고, 그물을 찢느라 약간의 시간을 지체했다.

멸치 선단은 그물을 버리고 전속력으로 항구를 향해 달렸다.

* * *

소환수들과 알타르는 신성교국에서의 일을 마치고 샤론으로 복귀했다.

나는 고생한 일행들을 맞이했다.

[다들 고생했어요.]

[그냥 앉아만 있었당.]

[그래도 장거리 비행이니 피곤하지.]

[제국이 넓긴 넓더라.]

[하늘에서 본 제국은 어땠어요?]

[네, 스승님. 자세힌 모르겠지만 엄청 넓었습니다. 사막 같은 곳도 많더군요.]

[그랬군요. 오느라 고생했지만, 샤론도 붉은 달 때문에 다들 비상근무 중이에요. 꾸얀과 르녹 등이 샤론 영지의 재정비를 하고 있었는데 여러분들도 합류해 주세요. 그리고 알타르 님은 길리언도 좀 챙겨 주시고요.]

[네.]

샤샤와 카나는 영지를 둘러보러 갔고 알타르가 길리언을 만나러 갔다.

길리언은 집 앞마당에 있었다.

요 며칠간은 붉을 달 때문에 아이들에게 집 바깥으로 멀리 나가지 않도록 하는 분위기였다.

알타르가 길리언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길리언. 3서클에 올랐다면서? 축하한다.”

“안냐세요. 알타르 선생님.”

“그래, 길리언. 어디 마법을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조아요.”

길리언은 집중해서 마나를 모았다.

“아꾸아!”

길리언의 손에서 물길이 솟았다.

“대단하구나.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 정도 마법이라니.”

알타르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래, 마법을 쓰면서 힘들거나 어려웠던 점, 궁금한 점이 있었니?”

길리언이 조금 고민하다가 물었다.

“붉은 달이 뜨면 마나가 왜 더 많아요?”

“마나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단다. 순수한 마나도 있지만 불의 마나, 물의 마나 그리고 네가 느끼는 것처럼 달의 기운을 받은 마나도 있단다. 아마도 길리언은 달의 마나에 더 친밀도가 높은 모양이구나.”

길리언은 고개를 갸웃했다.

“달의 마나가 뭔대여?”

“달의 마나?”

어린아이의 질문을 어린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을 해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알타르는 길리언에게 설명을 해주다가 거꾸로 길리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러면 길리언은 마나가 뭐라고 생각하니?”

“마나여? 제 친구죠.”

친구라니, 역시 아이다운 대답이었다.

“그래, 몸속 마나에 의지를 덧씌워 마법을 발현하는 것이지. 너는 그걸 친구라고 생각했구나.”

“의지요? 저는 그냥 부탁하는데요?”

“후후. 그렇구나.”

의지를 덧씌우는 과정을 부탁이라고 생각하는 길리언이 귀여웠다.

알타르는 길리언과 함께 한참을 문답을 주고받고 서로의 마법을 보여주었다.

“그래, 이번에는 선생님이 마법을 써보마. 길리언처럼 해볼까? 내 친구 마나여, 나의 부탁을 들어주렴. 커다란 물방울을 만들어줄 수 있겠니? 부탁할게.”

알타르도 재미 삼아서 사용해 본 길리언식 부탁 마법이었다.

사라락.

알타르의 몸속 마나가 빠져나오고 주변 마나가 이에 동조했다.

그리고 5서클 마법사의 시전에 당연하다는 듯 커다란 물방울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알타르는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길리언식 부탁 마법을 사용해보니, 마음이 편했다.

그동안 자신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나란 무엇일까? 그동안 나는 마나에 의지를 씌워 마나를 조종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부탁을 한다는 것은 마나를 믿는다는 것이구나. 그렇구나. 그동안 나는 마나의 흐름을 너무 내 마음대로 바꾸려고만 했었구나. 존중하고 신뢰하고 부탁한다. 마나를 대하는 나의 근본적인 태도가 내 앞을 막고 있었구나.”

가르치려고 하다가 배운다고 할까?

알타르는 깨달음을 느꼈다.

그리고 깊은 명상에 들어갔다.

길리언은 알타르가 명상에 빠진 것을 보곤 구석에 가서 자기 혼자 놀았다.

그러다가 마침 길리언의 밥을 챙겨주러 온 길리언의 엄마가 알타르가 명상 중인 것을 보곤 근처로 아무도 못 가게 막아주었다.

어느 순간, 알타르의 몸에서 마나가 요동쳤다.

그 마나의 파동에 제리가 도착해 알타르 주변을 정리해 주었다.

한참 후, 알타르가 눈을 떴다.

한층 깊고 고요한 눈빛이었다.

“길리언.”

집안에 들어가 있던 길리언이 알타르의 부름에 밖으로 나왔다.

길리언 옆에는 길리언의 엄마도 함께 서 있었다.

“길리언의 여벌 옷을 잠시만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길리언의 엄마가 얼른 들어가서 옷을 가져왔다.

“마나여, 이 옷을 더 깨끗하고, 질기고, 부드럽고 따스하게 해주어라. 럭셔리!”

화아악!

6서클 럭셔리 마법이 발동되었다.

흔한 아이들 옷이 왕자님들이나 입을법한 옷으로 재탄생했다.

“길리언, 내가 큰 도움을 받았구나.”

알타르가 길리언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길리언의 어머님.”

“네.”

“길리언을 저의 정식 제자로 들여도 될까요?”

자식이 6서클 마법사의 정식 제자가 된다는데, 어느 부모가 반대할까?

원래부터 알타르는 백작가의 수석 마법사였다.

이제 6서클이 된 알타르는 프란시아 왕국에서도 한 손가락 안에 드는 마법사가 되었다.

길리언의 어머니는 그저 감사의 인사를 할 뿐이었다.

붉을 달이 떴어도 작은 파티라도 해야 할 듯했다.

나는 6이라고 써진 케잌을 하나 주문해서 알타르에게 넣어주었다.

영주관 1층에서 알타르의 6서클 상승을 축하하는 작은 파티를 열었다.

알타르는 이런 축하를 받아본 적이 없다며 감동했다.

나는 사무실로 알타르를 불러 따로 축하도 해주었다.

그리고 샤론의 벙커 공사를 지켜보았다.

벙커 업자들이 마법이 섞인 마법 건설장비를 가져와 공사를 하니 공사 진도가 쑥쑥이었다.

지이이잉.

천마 차지율의 전화가 왔다.

오랜만이었다.

“네, 차지율 헌터님.”

[민준 헌터님, 동해안 앞바다에서 S급 던전 게이트가 터진 것 같아요.]

S급 던전 게이트란다.

심지어 그게 터졌다고 했다.

중국에서 S급 게이트가 터졌을 때 우리나라보다 넓은 면적이 피해를 입었었다.

눈앞이 아찔했다.

“정말이요? 바로 갈게요. 어디로 가면 되죠?”

[헬기를 보낼게요.]

“아니에요. 저도 날아갈 수 있어요. 어디로 가면 되죠?”

[정동진으로 오세요. 저도 가고 있어요.]

“네!”

나는 바로 사무실 앞마당으로 나가면서 카나를 불렀다.

“카나 소환!”

화아악!

카나가 소환되었다.

“카나야, 우리 나라의 동쪽 해안에서 S급 브레이크가 터졌대. 비행 차량을 꺼내줘.”

“알았어.”

카나가 사무실 앞마당에 비행 차량을 꺼내자마자 카나와 내가 탑승했다.

“출발!”

둥실.

비행 차량이 떠올라 동해안으로 향했다.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샤샤와 제리 그리고 이번에 6서클이 된 알타르도 불렀다.

날아서 가면 금방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스마트폰이 연신 울렸다.

재난 대피 문자였다.

문자를 보니 강릉 앞바다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으니 강릉, 동해시 주민들은 서쪽으로 대피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자세히 봐도 S급이라는 표현은 없었다.

대피하라는 말은 하되 일반인들에게 던전의 급수는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늘에서 보니 동해안 근처에 차량들이 내륙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피난가려는 행렬로 보였다.

정동진에 도착하니 많은 수의 헌터들이 모이고 있었다.

지휘부를 찾아가니 천마뿐만 아니라 헌터 협회 회장도 나와 있었다.

협회장은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존재감이 묵직했다.

“차지율 헌터님, 상황은 어때요?”

“아, 민준 님 오셨군요. 약 10분 후에 바다에서 해안가로 몬스터들이 들이닥칠 것 같아요.”

약 100km 떨어진 곳의 바닷속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다고 했다.

보통은 던전이 발생하면 던전 탐지 장치에 의해 던전이 발견되었다.

산꼭대기에 있어도 바다 깊은 곳에 있어도 지금까지 모두 잘 발견해 왔는데 이 던전은 탐지가 안 되었다고 했다.

그 원인은 지금도 모른다고 했다.

브레이크가 터지고 나서야 S급 던전 브레이크임이 측정되었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다에서 몬스터들이 100km를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 동안 민간인이 대피하고, 헌터들이 모일 소중한 시간을 벌었다는 점이었다.

헌터 협회장이 모두를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이번 지휘는 제가 합니다. 조장급 헌터들은 모두 저와 텔레파시 연결을 등록해두세요.”

협회장은 S급 커맨더였다.

나는 S급 커맨더의 지휘를 받는 전투는 어떨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S급 던전 브레이크 앞에서 기대감을 갖는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당장 내 눈앞에 S급 협회장과 S급 차지율이 있으니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나는 순서대로 줄을 서서 협회장에게 다가갔다.

등록은 간단했다.

약 1초 동안 협회장과 눈을 마주치면 이번 전투가 끝날 때까지 협회장의 지휘를 받을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내 순서가 되자 가벼운 목례와 함께 협회장을 바라보았다.

구릿빛 피부, 약간 각진 듯한 얼굴 5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의 얼굴이지만 협회장의 실제 나이는 90이 넘었다.

협회장과 눈이 마주쳤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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