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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소환수들-154화 (153/230)

154화. 리치

나는 죽은 자들의 사원을 벗어나 다시 풍요와 대지의 신전으로 화면을 옮겼다.

슈욱.

성녀에게 화면을 맞추자 이를 눈치챈 성녀가 고개를 들어 화면 건너의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성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알파야, 용병 제안해드려.”

―네, 알겠습니다.

[들리시나요?]

[네, 성녀님.]

[지금 공격대가 죽운 자들의 사원을 돌고 있을 시간인데 공격대에 무슨 일이 생겼나요?]

성녀는 공격대를 바라보고 있어야 할 내가 성녀에게 돌아오자 공격대에 일이 생긴 줄 알고 걱정한 것 같았다.

[걱정 마세요. 공격대는 아주 순탄하게 사원을 돌고 있습니다.]

[그래요?]

[네, 아주 잘 싸우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문제는 너무 잘 싸워서 생겼습니다. 사원의 중간 정도까지는 진입한 것 같습니다.]

성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성녀는 조금 의아한 것 같았다.

성녀는 마나 각성제의 존재를 모르니 익스퍼트 중급 기사 서른 명이 익스퍼트 상급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모를 것이었다.

[성녀님, 공격대가 리치를 잡아볼까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성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건 안 돼요. 리치를 만만히 보면 안 됩니다. 무려 7서클이에요. 죽은 자들의 사원 외곽부에 언데드들을 잘 잡고 있다고 해서 리치까지 잘 잡을 거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무리예요.]

생각보다 반응이 확고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하고 설득할지 살짝 고민이 되었다.

그냥 보여주기로 했다.

[성녀님 그럼 일단 한 번 보시죠. 소환.]

화아악!

용병 신분의 성녀가 사무실로 소환되었다.

성녀는 관리 잘 받은 중년 여성처럼 보이는 외모에 그리스 로마 시대에 어울릴 듯한 치렁치렁한 밝은 색 옷을 입고 있었다.

“성녀님, 안녕하세요.”

나는 나름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오호, 여긴 어디죠? 신기하네요.”

“여긴 글리제는 아니고 지구라는 곳입니다. 제가 일하는 사무실이에요.”

성녀는 신기한지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여긴 주로 제가 글리제를 지켜보고 행정 일을 하는 사무실이고, 바로 옆에는 글리제에 소환수나 용병들에게 물건을 주고받는 공간이에요.”

성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성녀님, 화면을 봐주세요.”

성녀는 사무실 벽을 채우고 있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알파야, 다시 소환수들에게 화면 맞춰줘.”

슈욱.

화면이 이동했다.

화면은 죽은 자들의 사원에서 이동하고 있는 공격대의 모습이 보였다.

“아! 공격대로군요.”

“네, 성녀님 맞아요. 제가 열심히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드리는 편이 낫죠. 보세요, 저들이 얼마나 잘 싸우고 있는지를요.”

성녀는 잠시 공격대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공격대의 위치는 외곽과 중심의 중간 정도 되는 위치로 보였다.

화면상에서 공격대를 향해 약 열 기의 검은 기사들이 다가왔다.

“저건! 어둠의 기사예요.”

좀비는 일반 병사도 전투가 가능했다.

구울까지만 해도 병사들이 모여서 싸우면 어떻게든 가능했다.

하지만 어둠의 기사는 강력했다.

그들은 살아있을 때부터 일반인이 아니었다.

기사 출신 언데드가 어둠의 기사였다.

살아생전에는 마나를 운용하던 기사는 죽어서 어둠의 마나를 사용하는 기사가 된 것이었다.

저들의 실력은 익스퍼트 상급에 달했다.

원래대로라면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이었던 풍요와 대지의 신전 측 기사들에 큰 피해가 있어야 맞았다.

“도와주어야 해요!”

성녀가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성녀를 보며 씨익 웃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왜 성녀님을 여기로 모셨겠습니까?”

화면 속에서 가장 먼저 카나가 가로로 검을 그었다.

스윽.

복잡하지 않고, 거창하지 않고, 빠르지도 않았다.

동네 아이들이 막대기를 들고 휘두르는 듯한 속도감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달려오던 어둠의 기사 중 앞쪽에 있던 세 기사가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쓰러지며 데굴데굴 굴렀다.

피피핏!

샤샤의 화살이 날아가 그다음 기사들의 발목을 노렸다.

기사 둘이 쓰러졌다.

그 다음은 난전이었다.

어둠의 기사 한 명당 이쪽은 서너 명이 달라붙었다.

슈칵, 슈칵.

뭔가 빨리 잡지 않으면 빼앗기기라도 할 것처럼 아군 공격대는 순식간에 어둠의 기사들을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돌려주었다.

“아!”

성녀가 놀란 모양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죠? 아니, 프란시아의 기사들이야 그렇다 쳐도 왜 우리 기사들이 저렇게 잘 싸우죠? 저도 마냥 기도만 하지는 않아요. 저도 전투 경험이 많답니다. 우리 기사들의 실력 정도는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저건 마치…….”

“익스퍼트 상급 같지요.”

“그래요.”

나는 성녀에게 마나 각성제를 보여주었다.

“이건 마나 각성제라는 거예요. 저희 세상에서는 마정석을 이용해 만든 물건인데 일정 시간 동안 능력을 올려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걸 마시면 익스퍼트 중급이 상급이 된다는 건가요?”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한데, 대략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식사하고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 동안은 유지됩니다.”

“아…….”

성녀는 신기하게 마나 각성제를 살펴보았다.

“시음해 보시겠습니까?”

성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성녀에게 고급 마나 각성제를 한 병 따서 조금만 맛보도록 했다.

딸깍.

뚜껑을 따는 순간 마나의 향이 확 하고 퍼져 나왔다.

이거지.

성녀는 눈을 크게 떴다.

꿀꺽.

성녀가 살짝 한 모금만 마셔 보았다.

“오 마이 갓!”

“네?”

“아, 저희를 보살피는 풍요와 대지의 신이시여라는 뜻이에요.”

“마나가 아주 끝내주죠?”

“네, 와, 정말, 이건…”

성녀는 마나 각성제가 너무 좋아서 표현할 단어를 고르는 게 힘들어 보이는 것 같았다.

“아무튼 성녀님, 화면을 보시죠. 익스퍼트 상급 실력의 기사 서른에 소드 마스터에 한 발자국 정도 걸친 기사들이 있습니다. 7서클 리치를 잡기 부족한가요?”

성녀가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는지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보았다.

“물론 7서클이 장난은 아니죠. 그래서 거기에 성녀님이 끼는 겁니다. 그러면 아군에 거의 피해가 가지 않고도 리치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녀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완전히 내 작전을 이해한 것 같았다.

“그렇군요. 그러면 정말 해볼 만할 것 같군요. 하지만 제가 오랫동안 신전을 비울 수는 없어요. 제가 신전에 없다는 것이 알려지면 다른 세력들이 쳐들어올 수 있거든요.”

일명 빈집털이를 조심해야 한다는 뜻인가?

“공격대가 리치를 잡으려는 순간에 바로 성녀님을 보내드릴게요. 그리고 리치를 잡고 바로 퇴장입니다. 그래도 어려울까요?”

성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술을 다물고 나를 보았다.

뭔가 결심한 표정이었다.

“해보죠.”

성녀는 다시 풍요와 대지의 신전으로 돌아갔다.

죽은 자들의 사원을 돌고 있던 공격대는 어느덧 사원의 중심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사원의 중심부에는 죽음의 신전이 있었다.

대형 제단이 있었고 어둠의 기사와 같은 언데드들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장소였다.

그리고 7서클 리치가 있는 곳이었다.

내가 먼저 정찰해보니 언데드들이 제법 많이 있었다.

[샤샤야, 내가 정찰을 해봤는데 언데드가 제법 많은데? 한 번에 싸우면 피해가 크겠어. 조금씩 유인해서 잘라먹어야겠는걸?]

나는 공격대의 기사인 루디에게 용병을 걸었다.

[루디, 낚시 좀 해요?]

[낚시요?]

공격대는 사원의 중간쯤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루디는 혼자서 신전의 중심부로 향했다.

나는 화면으로 신전을 내려다보며 루디에게 방향을 알려주었다.

[거기서 오른쪽이요. 좋아요, 잠깐 숨어요. 거기서 왼쪽. 오케이, 전방을 향해 쏘세요.]

루디는 내가 준 마법 양피지를 찢었다.

슈욱!

마법 양피지는 간단한 일회용 마법이 담겨있었다.

파이어볼.

대단할 것 없는 평이한 화염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떨어진 곳은 죽음의 신전 가운데였다.

콰앙!

파이어볼이 폭발했다.

고오오오.

그그그극!

으으흐흐흐!

이상한 소리와 함께 이상한 것들이 몸을 일으켰다.

[루디, 뭐해요? 튀어요!]

루디가 뛰기 시작했다.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나는 루디가 정확한 방향으로 달아날 수 있도록 안내했다.

하지만 기사 혼자 신전 가운데에 불을 지르고 멀쩡하게 달아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루디는 갑자기 튀어나온 언데드에 의해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뒤쪽에서는 훨씬 많은 언데드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루디 소환.”

화아악!

루디가 사무실로 소환되었다.

“헉헉헉.”

아직도 숨이 가쁜 것 같아 보였다.

“고생했어요. 소환수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드릴게요.”

그렇게 기사 세 명을 시켜서 낚시를 세 번 정도 하니 적당량의 언데드를 몰아올 수 있었다.

그다음은 낚시와 사냥의 반복이었다.

처음에는 낚시를 한 군데서만 하다가 양방향으로 기사들을 보내 낚시를 하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사원의 가운데 있는 신전의 언데드의 수를 줄이자 리치가 등판했다.

왠지 리치가 열받아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이 정도로 언데드들이 줄었으면 열받을 만할 것 같았다.

리치도 7서클이라고 하니 나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리치와 눈맞춤하는 것이 싫어서 멀찍하게 떨어져서 리치를 관찰했다.

딱 봐도 해골바가지 얼굴에 주렁주렁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옷을 차려입은 폼이 보스 같았다.

[자, 리치가 떴습니다. 잠시만요.]

저쪽의 쪽수를 세어보니 리치에다가 언데드들이 스물 정도 모여있었다.

“알파야, 성녀님에게 용병 제안해.”

―네, 알겠습니다.

―용병 계약을 받아들였습니다.

“오케이.”

[샤샤야, 12시 방향에 리치와 언데드 스무 마리 정도가 있어. 마나 각성제 선물함에 더 넣었으니까 다들 한 병씩 더 마시고 붙어보자고 해. 기사단 것은 중급이고 우리건 고급이야, 색깔 알지?]

[네, 감사해요.]

기사들과 소환수 등이 사원에 진입한 지 시간이 꽤 흘렀다.

처음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 마셨던 각성제는 효과 시간이 다 되었었다.

이제 보스전 하기 전에 한 병 더 마시고 붙어야 할 것 같았다.

각성제를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7서클 잡을 때 쓰지 않으면 또 언제 쓰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성녀도 오는데 각성제의 효과를 제대로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예전 디아론 백작가가 나를 밀어주면서 예상을 초월하는 혜택을 보았다.

대량의 마정석과 몬스터 부산물은 물론이거니와 마나초에 영지까지 디아론 백작가의 큰 도움이 있었다.

신성교국의 성녀가 ‘어머, 각성제 참 좋네요. 이거 어디서 사요?’ 이렇게 한마디 하면 그게 얼마의 수입으로 환산이 될까?

성녀는 개인이 아니고 신전의 대표였다.

게다가 신성교국의 현재 상황이 여러 신전 간의 종교적 갈등, 이걸 다른 왕국의 표현으로는 내전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내전에서 풍요와 대지의 신전이 이긴다면? 백작가의 후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잘하면 국가의 수장을 세우는 일, 즉 킹메이커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자자, 실컷 마시시고 7서클 잡고, 신성교국 짱 드세요!”

화면상에서 공격대가 각성제를 모두 섭취했고, 리치와 맞붙으러 나아갔다.

“성녀님 소환.”

화아악!

성녀가 내 사무실에 다시 왔다.

“성녀님도 한잔하세요.”

나는 조금 전 한 모금 마시고 남긴 고급 마나 각성제를 성녀에게 주었다.

성녀는 기다렸다는 듯 허겁지겁 각성제를 마셨다.

나도 얼른 고급 마나 각성제를 한 병 마셨다.

“알파야, 성녀님 투입.”

공격대에 성녀가 포함되었다.

두 세력이 맞붙었다.

리치는 하늘에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과연 7서클이었다.

마법진의 규모가 백 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쪽도 성녀가 있었다.

성녀 역시 거대한 빛의 방패를 만들기 시작했다.

리치의 마법이 만든 음산한 붉은 덩어리들이 공격대를 향해 다가왔다.

하지만 그 붉은 덩어리들은 성녀가 만든 빛의 방패에 가로막혀 다가오지 못했다.

공격대는 우선 언데드들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금 보니 마치 우리 소환수와 알타르 네 명이 공격대의 작은 분대장인 것 같았다.

샤샤, 제리, 카나, 알타르를 꼭짓점으로 공격대의 기사들이 일곱에서 여덟 명 정도 보조하고 있었다.

역시 실력 있는 자를 중심으로 뭉치는 것은 어디를 가나 당연한 것 같았다.

“디바인 프로텍션, 디바인 홀리 큐어.”

나는 소환수와 알타르, 그리고 용병에게도 보호막과 큐어를 날려주었다.

성녀도 용병 신분이기에 프로텍션과 큐어를 날려주었다.

그런데 성녀 프로텍션과 큐어를 날려주자 성녀가 나에게 쪽지를 보냈다.

[어떻게 한 거죠?]

[아, 저는 용병에게 보호막과 큐어, 힐을 보내줄 수 있어요.]

[그게 아니고 신성력을 보내주셨잖아요.]

다른 이에게는 보호막과 큐어가 걸렸지만, 성녀는 그 마법들을 이루는 원천인 마나뿐만 아니라 신성력 자체를 느끼는 것 같았다.

[아, 제가 보내드리는 마법에는 풍요와 대지의 신성력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 신성력! 보내주세요.]

신성력을 보내달라고?

[디바인 홀리 큐어.]

나는 성녀에게 큐어를 보내주면서 최대한 신성력이 전달될 수 있도록 애썼다.

[디바인 홀리 큐어.]

[디바인 홀리 큐어.]

[디바인 홀리 큐어.]

신성력만 따로 뽑아서 주기는 쉽지 않아서 일단 디바인 홀리 큐어를 계속 부어주었다.

성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어라?

성녀가 만든 방패의 크기가 1.5배는 커졌다.

와, 저거 내 신성력을 더한 건가?

리치가 방패를 쳐다보고 있었다.

리치는 해골이라서 표정을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쟤 지금 당황하는 중인 것 같았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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