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죽은 자들의 사원
풍요와 대지 신전의 기사 루디는 자신이 속한 신성교국이 꽤 열린 사회라고 생각했다.
우선 신성교국은 하나의 신만 모시는 국가가 아니었다.
신성교국은 다신교를 믿으며 서로 다른 신을 인정하고 다양한 종족이 모여 살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여러 신이 가끔씩 세상일에 개입하니 싫은 신이라고 해도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신부터 다양하다 보니 사회도 다양해졌다.
길을 걸으면 인간을 만날 수도 있고, 다른 종족은 물론 수인족, 아인족 등의 다른 국가에서는 보기 힘든 종족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다하다 얼마나 다양성을 존중하던지 죽음의 신도 존재해 언데드 들도 당당히 신성교국의 한쪽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종족들이 살고 있으니 다른 국가에 배타적일 리가 없었다.
사람과 물류가 활발하게 교류했다.
또한, 루디는 그러한 신성교국의 기사이며 직무적으로 정보를 다루는 일도 많이 해서 루디는 자신이 비교적 시야가 넓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루디는 프란시아 기사들을 보고 나서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임을 깨달았다.
기사로서의 강함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당장 풍요와 대지 신전의 성녀만 해도 상당한 강자에 속했다.
하지만 하늘을 가르는 대형 마법 화살을 보자, 루디는 전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루디는 폭격 후 돌격이라는 전술을 처음 들어보았다.
물론 마법사가 원거리에서 공격하고 기사들이 백병전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지만, 그 마법사의 원거리 공격이 이렇게 바뀔 줄은 몰랐다.
물론 백번 양보해서 그런 원거리 폭격은 마법사의 원거리 공격이 크게 발달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짜 루디를 놀라게 한 것은 루디의 손에 들려진 작은 유리병 때문이었다.
“이걸 마시라고요?”
“네, 부대의 기사들 모두 한 병씩 마시세요.”
“이게 뭔데요?”
“마나 각성제입니다.”
오늘은 죽은 자들의 사원을 선제공격하기로 한 날이었다.
풍요와 대지 신전 측 기사 서른 명이 공격대에 선발되었다.
죽은 자들의 사원 가까이 도착했을 무렵 프란시아의 기사들이 공격대의 모든 기사들에게 마시라며 노란색 액체를 나누어 주었다.
꿀꺽.
“아!”
“이건!”
“이럴 수가!”
사방에서 감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루디도 병 속 액체를 마시고 나서 세상 위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루디는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이었다.
마나를 활용할 줄 알았고 검에 마나를 보낼 줄도 알았다.
그리고 매일 연습하다 보니 자신의 몸속에 얼마 정도의 마나가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물약 한 병에 그 양이 두 배가 되었다.
루디는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이었지만 부단히 노력하면 10년 후에는 어느 정도 실력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상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프란시아 기사들이 준 물약은 상상의 경지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웅웅웅.
곳곳에서 기사들이 검에 마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검에 마나의 불꽃이 어렸다.
저런 불꽃은 익스퍼트 중급의 기사가 만드는 불꽃이 절대로 아니었다.
불꽃을 피워본 후 제자리에서 점프를 뛰어보는 기사도 있었다.
제자리 점프는 단순한 동작이지만 기사의 성취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한 가지 방법이었다.
익스퍼트 중급 정도의 기사가 마나를 잔뜩 돌리면 자신의 키의 두 배까지는 뛰어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기사 한 명이 점프를 뛰어올랐다.
루디는 저게 점프인가? 그냥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자 다른 기사들도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점프를 뛰어보기 시작했다.
“와.”
“엄청 높이 뛰는데?”
“마나량이 차원이 달라!”
여기저기서 점프 놀이가 펼쳐졌다.
루디는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상급 기사가 날 듯이 점프를 뛰어 오우거 머리 위로 날아올랐고, 오우거의 정수리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동료들이 그런 검술을 펼칠 수 있었다.
마나 각성제를 마신 루디는 갑작스러운 마나의 양이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기뻤다.
경험해보지 못한 경지의 맛을 본 기사라면 응당 기쁠 것이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의 사원에서 언데드들을 처단할 자신감이 솟았다.
그러다 루디는 프란시아의 기사들을 보았다.
“아…….”
루디는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런 물약이 넘쳐나는 국가와 전쟁이 벌어지면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디는 복잡한 감정을 뒤로하고 공격대와 함께 죽은 자들의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돌로 만든 거대한 건축물들이 상당히 많았다.
죽은 자들의 사원은 상당히 면적이 넓었다.
덩그러니 건물 몇 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무덤이 섞여 있는 무덤 도시 같았다.
공격대가 죽은 자들의 사원으로 발을 들이자 언데드들이 반응을 했다.
그그극.
돌 석판이 열리고 그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났다.
“쳐라!”
“그워어어어!”
죽은 자들이 다가왔다.
천천히 걷는 언데드들도 있었고 비교적 빠른 몸놀림을 보이는 개체도 있었다.
심지어 마나를 사용하는 언데드도 있었다.
우리 쪽 공격대가 사용하는 마나와는 달랐지만 강력하다는 점만은 동일했다.
풍요와 대지의 신전 측 기사들은 상승한 마나에 적응하려는 듯 서로 나서며 언데드들을 잡아갔다.
샤샤는 함께 전투를 벌이고 있던 기사 루디를 살폈다.
루디가 소환수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표정이 안 좋으니 신경이 쓰였다.
“루디 기사님? 표정이 좋지 않으신데 괜찮으세요?”
제리가 보기에도 루디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뭔가 많이 놀란 표정이당. 그래, 아무리 기사라고 해도 언데드들이 이렇게 많으면 놀랄 수 있당. 괜찮당.”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놀라긴 했는데… 언데드들 때문은 아닙니다.”
“몸이 안 좋으면 조금 뒤에서 따라오세요. 저희를 안내해주시느라 힘드셨나 봐요. 조금 쉬세요.”
“예?”
사원 내부는 몇 발자국 걸으면 벽에서 석관이 열리며 미라가 걸어 나오고, 또 몇 발자국을 걸으면 머리 없는 시체가 네발로 달려오는 곳이었다.
루디는 이런 곳에서 힘들면 쉬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장소와 대화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리가 구울 한 마리를 다섯 등분 내며 말했다.
“여긴 이름이 죽은 자들의 사원이라서 강력한 언데드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당. 그런데 생각보다는 언데드들이 강하지 않은 것 같당.”
샤샤가 제리를 달랬다.
“제리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우리가 지금 각성제를 마셨잖아. 그걸 고려해야지. 여기가 낮은 수준의 던전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잠시 강해진 거라고 생각해야지.”
“그렇긴 하당. 그래도 이거 마나가 흘러넘치니까 힘이 남아돈당. 약빨 떨어지기 전에 보스를 잡았으면 하는 것은 내 생각 뿐이냥?”
끄덕끄덕.
카나도 샤샤도 제리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들 루디를 바라보았다.
“예?”
“아, 루디 기사님, 약빨 떨어지기 전에 보스랑 붙는 건 어떨까 싶어서요.”
“아… 보스요. 그런데 이번 작전이 보스까지 잡는 거였나요?”
루디는 상황을 설명했다.
“저희 공격대는 죽은 자들의 사원 외곽을 적당히 돌면서 가벼운 견제 정도만 하다가 빠질 계획이었습니다. 이곳 보스는 리치이며, 7서클 마법사입니다. 7서클 마법사를 함부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7스클 마법사는 대마도사라고 칭하고, 소드 마스터와 동격의 대우를 받았다.
샤샤가 루디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요? 그런데 다들 외곽에서 가벼운 견제만 하고 돌아가자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샤샤가 루디 부근의 기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풍요와 대지의 기사들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모습으로 흥분상태인 것 같았다.
“아!”
루디 뿐만 아니라 다른 기사들도 마나 각성제라는 물건을 마셨다.
그들은 지금 마나가 넘쳐흘러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익스퍼트 중급기사의 마나가 갑자기 상급 기사 수준으로 올라갔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아서 흥분할 만했다.
하지만 루디는 가까스로 정신줄을 붙들었다.
“그래도 7서클입니다. 7서클 리치를 만만히 보면 안 됩니다.”
슈칵!
카나가 원래 머리 없던 언데드 한 마리를 반으로 자르며 말했다.
“네, 안전하게 가는 것도 좋아요. 아무튼 들어갈 때까지는 들어가 보도록 해요. 대충 약빨이 한 시간은 가니까 시간 봐가면서 들어가면 될 것 같아요.”
공격대는 죽은 자들의 사원을 더 깊이 들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화면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풍요와 대지의 기사단이 서른, 소환수와 알타르까지 넷.
이렇게 서른네 명을 일일이 인원 체크를 해가면서 돌보고 있었다.
“음… 생각보다 각성제 효과가 좋은데? 잘 가고 있네.”
화면은 좀비와 구울 언데드들이 나오고 있어서 꼭 공포영화 같았다.
[샤샤야, 두 시 구울 열 마리]
[넵, 감사요.]
샤샤의 불화살이 두 시 방향으로 불을 뿜었다.
구울은 얼굴의 절반이 입과 이빨 같아 보였다.
네발로 달려오다가 바닥과 벽을 차며 다가왔지만, 그 커다란 입에 화산 한발씩 사이좋게 박아주었다.
화르륵!
늦게 발견한 공격대원은 칼도 휘두르지 못하고 입맛만 다시고 있었다.
나는 정찰에 소홀하지 않았다.
내가 부지런히 살펴줘야 내 소중한 이들이 다치지 않았다.
나는 샤론 마을의 꾸얀도 한 시간 간격으로 용병을 걸어 상황만 파악하기로 하고 이쪽에 용병 스킬을 모두 사용했다.
이제 기사들도 익숙해져서 그런지, 용병을 걸고 프로텍션과 힐을 받고 다시 다음 기사에게 용병을 넘기는 과정이 빠르고 매끄러웠다.
[디바인 프로텍션, 다음~]
디바인 프로텍션은 효과가 좋았다.
다른 상황에서는 그저 알타르가 시전하는 실드와 큰 차이가 없었는데, 언데드들에게는 상극이라서 그런지 효과가 좋았다.
디바인 프로텍션을 받은 기사와의 접촉만으로 언데드들은 물리적인 타격을 받았다.
마나 각성제로 한 차원 높은 등급의 기사가 되었는데 그냥 만지기만 해도 언데드들이 타격을 받는다?
그 말은 곧 경험치를 거저 먹으라는 뜻이었다.
샤샤가 쪽지를 보내왔다.
[민준 님, 각성제 효과 떨어지기 전에 보스 잡으러 가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있어요.]
[급하게 다니다 다쳐. 그러지 마. 각성제 또 있어.]
[와~]
각성제 효과가 떨어지면 또 마시면 되었다.
[보스는 어디에 있고 누군데?]
[루디 말로는 사원의 중심부에 신전이 있을 거라고 해요. 7서클 리치래요.]
7서클이라니 조금 걱정되긴 했다.
나는 우리편 인원들을 다시 살폈다.
지금 기사들을 보니 익스퍼트 상급 상태에 오른 서른 명의 기사와 소환수, 알타르였다.
알타르도 약빨로 6서클은 될 것 같고, 소환수들도 카나 같은 경우는 마스터의 경지에 반 정도 걸친 것 같았다.
어쩔까나? 나는 고민이 되어 머리를 긁었다.
아슬아슬한데 해볼 만하긴 했다.
결국 잡긴 잡을 것 같았다.
그런데 또 아무 피해가 없을 거라고 자신하는 건 7서클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지금 여기서 추가할 수 있는 인원이 누가 있을까?
“알파야.”
―네, 민준 님.
“성녀님에게 한 번 가보자.”
슈욱!
화면이 날아갔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