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신탁
소환수들이 여자를 경계하며 거리를 벌렸다.
선물함을 열어 언제든 무기를 꺼낼 수 있도록 준비를 했다.
소환수들의 경계하는 모습을 본 여자가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는 풍요와 대지의 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소환수들에게 자애로운 표정을 지어주고 난 다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허공을 바라보며 화면 건너의 나와도 시선을 맞추었다.
그 눈빛이 화면 너머와 마주쳤다.
여자의 눈빛은 깊이가 있었다.
지구와 아주 멀리 떨어진 글리제에서 나를 향하는 눈빛이었지만, 왠지 나를 샅샅이 살피는 것만 같아서 머리 뒤쪽이 쭈뼛한 느낌이 들었다.
“반가워요. 저는 하모스입니다. 부족하지만 성녀라 불리고 있습니다.”
샤샤가 실시간으로 중계를 해주었다.
[민준 님, 성녀라고 합니다.]
성녀라니, 생각보다 거물이었다.
성녀는 자리에 앉으며 소환수들이 의자에 앉기를 권했다.
성녀가 이야기를 꺼냈다.
“신의 마크를 받으신 분이 보내셨다고요?”
“네, 저희의 마스터께서 신의 마크를 받으셨고 저희를 이쪽으로 보내셨습니다.”
“혹시 그 마스터란 분은 저쪽에서 보고 계신 분인가요?”
성녀는 힐끔 허공을 응시하며 물었다.
[민준 님, 성녀가 민준 님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 화면을 정면으로 보네. 눈이 마주쳤어.]
샤샤가 성녀에게 설명했다.
“네, 지금 저희 마스터께서도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랬군요.”
성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신탁이라 함은 풍요와 대지의 신이 성녀에게 직접 말을 했다는 뜻이었다.
신이 민준에게도 말을 걸었으니 성녀쯤 되는 인물에게 직접 뜻을 전했을 수도 있었다.
“나의 마크를 가진 이의 전사들이 찾아올 것이다. 변화할 세상을 준비하라. 신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풍요와 대지의 신의 마크라면 내 가슴에 하나 새겨져 있었다.
코토풀요라는 동물의 그림이 그려진 마크였다.
샤샤가 여기 온 이유를 말했다.
“성녀님, 저희는 성물을 얻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저희 마스터께서는 프란시아 왕국의 성물을 빌렸었는데, 그 성물이 마스터의 몸에 흡수되며 신의 마크가 생겼습니다. 성물이 없으면 프란시아 왕국 전체에 피해가 간다고 합니다. 이곳 신성교국에서 새로운 성물을 얻기 위해 왔습니다. 가능할까요?”
성녀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물론 가능은 합니다.”
성녀는 성물을 줄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잘 들어보니 공짜는 아니었다.
풍요와 대지의 신은 신탁과 나에게 한 말을 통해 세상의 변화가 올 것임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인지는 성녀도 나도 몰랐다.
내가 샤샤를 통해 최근 신성교국의 변화가 있냐고 물었는데, 태양신의 신전과의 사건처럼 다른 신전과 분쟁이 매우 심해졌다고 했다.
성녀는 이렇게 심한 분쟁은 분명 다른 신들이 의도한 것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 쪽지를 받은 샤샤가 함께 논의해보았다.
“어떤 변화인지는 모르지만, 변화는 온다는 것이군요.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 다른 신을 믿는 집단과 분쟁이 심해졌고요.”
어떤 대비를 해야 할지 모르지만 결국 다른 신전과의 분쟁을 피할 수 없었다.
어쩌면 다른 신들이 분쟁을 조장하는 것이 이미 변화를 대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력을 확장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전투를 통한 경험을 쌓거나 지구의 헌터들처럼 능력치를 높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샤가 우리의 장점을 어필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지만, 물자를 운반하는 일이라면 저희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희들도 익스퍼트 상급은 되고 저희 마스터의 용병이 되는 기사는 더욱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소환수들이 성녀와 대화를 나누는데 기사 한 명이 새로 들어왔다.
“성녀님, 급하게 보고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소곤소곤.
기사는 성녀에게 작게 보고를 했다.
“음. 그렇군요.”
성녀가 소환수들을 둘러보았다.
“어둠의 군대가 접근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 부대와 함께 싸워주시죠. 신께서 변화할 세상에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충분히 도와주셨다고 생각되면 여러분께 성물을 내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기꺼이 참전을 결정했다.
사실 대규모 부대의 전투야말로 우리의 장점이 드러나는 전투였다.
일대일 전투라면 개인의 기량이 더 중요했지만 집단전은 물량 앞에 장사 없었다.
그리고 물량이라고 한다면 나는 창고가 부족해 더 크게 새로 짓고 있는 사람이었다.
[얘들아, 집단전이야말로 우리가 활약하기 좋은 전투지. 우리가 물량 쏟아내기 시작하면 신전 사람들 깜짝 놀랄걸.]
[호호, 그러게요.]
[맞당. 성물 여러 개를 줘야 할 거당.]
신이 말한 변화와 준비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전투를 도와 물량을 주고 성물을 얻는 교환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했다.
성녀가 소환수들에게 말했다.
“이쪽 기사분과 함께 가시면 됩니다. 부대를 배정해 드릴 거예요.”
방금 들어와서 보고를 한 기사가 소환수들을 이끌었다.
“따라오시죠.”
소화수들은 방금 들어온 기사를 따라갔다.
“저는 루디라고 합니다.”
소환수들도 기사 루디와 통성명을 했다.
루디는 은색 판금갑옷을 입은 검사였다.
한참을 따라가자 기사들이 많이 모인 연병장이 있었다.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백여 명이 있었다.
“어둠의 부대는 밤이 되면 찾아올 것입니다. 구역을 나눠 신전을 지키면 됩니다.”
나는 루디라는 기사에게 용병 등록을 제안했다.
루디는 용병 시스템이 무엇인지 의아해하였지만 한번 맛보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스킬이 용병 스킬이었다.
[루디, 안녕하세요? 프로텍션, 힐 맛보기 들어갑니다.]
화아악.
루디의 몸에 보호막이 걸리고 힐이 공급되었다.
“보호막을 받을 수 있군요. 힐도 들어오고, 대화도 가능하다니 놀랍습니다.”
아직 선물함 기능도 모르는데 이미 용병 스킬의 매력에 푹 빠진 모양이었다.
기사정신… 아니, 군인정신이 있는 카나가 루디에게 물었다.
“어둠의 부대는 무엇이죠?”
“프란시아와는 다르게 신성교국에는 다양한 종족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아시나요?”
“오며 가며 다양한 종족이 있는 것을 보긴 했어요.”
“어둠의 부대는 야행성 종족으로 이루어진 부대입니다. 라이칸스롭 계열의 혈통이거나 흡혈귀의 피가 섞였으면 주로 야행성을 띠곤 하죠.”
“누가 그들을 보내는 거죠?”
“몬스터의 신입니다. 신이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이렇게 교국 내에서 이 정도 규모의 분쟁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신성교국 내에서도 몬스터의 신은 꽤 세력이 큰 신입니다. 몬스터 신의 계시를 받는 주술사가 있는데 그가 어둠의 부대를 보냈을 겁니다.”
“그렇군요.”
“사실 예전에는 몬스터 신을 따르는 이들과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저희의 신은 풍요와 대지의 신, 저들은 몬스터의 신. 굳이 적대하는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평상시에는 죽음의 신, 절망과 허기의 신이 저희와 상극이었죠.”
“그런데 왜 싸우게 되었죠?”
“그건 저희도 잘 모릅니다. 수십일 전부터 소규모 다툼이 벌어지더니 이제는 부대급으로 도발을 하고 있습니다.”
수십일 전부터의 알 수 없는 다툼이라니 풍요와 대지의 신이 말한 변화와 관련된 것 같았다.
소환수들은 루디가 있는 곳에서 함께 신전을 지키기로 했다.
신전은 외벽이 있고 안쪽 건물까지는 거리가 있었다.
소환수들은 외벽의 곳곳에 있는 초소 한 군데에 자리를 잡았다.
곳곳에서 횃불을 밝혀서 어둠을 비추고 있었다.
[민준 님, 이곳에 공성용 무기라도 설치를 할까요?]
[그것도 좋겠지만 어느 곳에서 적이 쳐들어올지 모르니까, 여러 군데 설치해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괜히 창고가 부족해서 새로 짓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공성 무기는 많았다.
[다연발 발리스타를 꺼내 볼까요?]
[그래, 아끼지 말고 팍팍 꺼내]
성녀는 우리가 충분히 도움이 된다면 성물을 준다고 했다.
다연발 발리스타를 보고도 도움이 안 되었다는 소리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적들이 올 것 같으면 미리 트랩이나 마법적인 알람 장치를 설치해 두는 건 어떨까요?]
[그것도 좋은 생각인데?]
[마법 알람 장치를 설치하려면 알타르 님이 오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알타르?]
알타르가 있으면 좋긴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신성교국은 샤론 마을에서 매우 멀어서 알타르가 직접 갈… 수가 있었다.
[갈 수 있구나! 용병으로 보내줄게.]
용병 스킬은 용병을 소환수 옆으로 보내줄 수 있었다.
“알파야, 샤론 마을에서 알타르 용병 걸어서 소환해줘.”
알타르가 기다렸다는 듯 사무실로 소환되었다.
“스승님, 부르셨습니까?”
“알타르 님, 저기 화면 좀 보세요.”
알타르는 화면을 보며 나와 함께 작전을 짰다.
“화면에서 보이는 모습은 신성교국의 풍요와 대지의 신전이에요. 그런데 적이 쳐들어올 것 같다고 해요. 그래서 소환수들이 신전 측에 합류해서 수비하려고 해요.”
나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축소해 신전 전체를 보여주었다.
“지금 다연발 발리스타를 설치한 곳이 여기, 여기, 여기 그리고 이곳까지 총 네 곳이에요. 어느 쪽에서 적이 올지 몰라 사방에 설치했어요.”
“그러면 제가 이곳, 이곳 이곳에 미리 적이 오는지 알람을 설치하고 가까이에서는 신전을 빙 둘러 경계 마법을 설치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부탁할게요.”
나는 알타르를 신성교국으로 보내주었다.
알타르의 합류에 소환수들도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알타르는 나와 이야기한 위치에 마법 알람을 설치하기 시작했고 카나가 탱커로서 알타르를 호위했다.
나도 알타르가 준비를 할 때는 함께 지켜보며 정찰을 해주었다.
나는 신전 주변도 살폈지만 몬스터 신을 믿는 신자들이 많은 곳까지 미리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루디, 적들이 올 것 같은 방향이 있지는 않나요? 제가 꽤 멀리까지 미리 정찰할 수 있거든요.]
[그러면 북쪽을 미리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몬스터 신을 믿는 종족들이 그쪽 방향에 많이 있습니다. 이 부근까지 와서는 방향을 바꿀 수 있지만 멀리서 출발할 때는 아무래도 북쪽에서 내려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요? 알았어요.]
나는 신전에서 북쪽을 향해 수색을 펼쳤다.
줌인, 줌아웃
수색은 내 전문이었다.
남들이 보면 프로게이머의 화면처럼 정신없이 확대, 축소와 이동을 반복했다.
오른 손가락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왼손으로는 터치스크린을 건드려 위치를 끊임없이 바꿨다.
허공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듯했다.
순간 뒤쪽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직원인 한상일이 일하면서 지나가다가 나를 보았다.
순간 나는 땀나게 손을 움직여 수색하는 모습이 과연 한상일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눈빛을 읽었는지 한상일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해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 멋지십니다.”
오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왜 하필이면 오해라는 단어를 꺼냈을까?
“용병 등록하세요.”
“네?”
“어서요.”
텅 빈 화면을 보며 반복적으로 손을 움직이는 모습이 이상해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텅 빈 화면이 아니라 내 손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화면과 함께 보면 이상해 보일 리가 없었다.
“오오~”
어느새 용병 등록한 한상일이 화면을 보며 감탄했다.
“그동안 이러고 계셨던 거였군요.”
“그러면 그동안은 어떻게 생각했는데요?”
“하하, 제가 못 보는 뭔가를 보며 일하고 계실 거라는 생각은 했죠.”
“네, 마저 일 보세요.”
나는 괜한 오해를 풀고는 마저 수색했다.
그렇게 북쪽으로 올라가며 수색하던 중 어느 벌판에 수백 명의 수인족이 모여 있음을 발견했다.
설마 얘네인가?
그런데 수백 명의 수인족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여 있었다.
풍요와 대지의 신전 쪽으로 움직이지는 않고 있었다.
긴가민가 고민하던 때 수인족들이 모두 일어났다.
그러더니 하나같이 하늘을 보며 광분하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하늘을 향하길래 뭔가 궁금해 화면을 움직여 하늘을 보았다.
“오 마이 갓.”
하늘에는 붉은 달이 떠 있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