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신성교국
치킨을 세 마리나 먹고 돈이 없다는 나의 말에 사장님은 잠시 눈빛이 흔들렸다.
“허허허, 괜찮아. 아내 친구 아들인데 치킨이 대수라고 괜찮아. 원래 공짜로 주려고 그랬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치고는 눈빛이 너무 흔들리셨다.
“에이, 공짜는 제가 죄송해서 안 되죠.”
“아니, 정말 괜찮아.”
“제가 안 괜찮아요, 사장님. 그럼 이렇게 하죠. 대진이가 던전 들어갔다가 중독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제가 나름 힐러인데 힐 마사지 한 번 해드리는 걸로 하죠.”
내 말을 듣자 사장님이 뚝 하고 멈추고 나를 보았다.
사장님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사장님은 잠시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나를 보았다.
“정말 고마워.”
왠지 느낌에 사장님은 내 제안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힐 마사지라는 게 힐러 한 명의 마나를 통째로 다 쓰는 일이라 일반인이 편하게 받을만한 금액은 아니었다.
사장님은 힐 마사지를 사양하거나 금액을 지불하고 싶지만, 아들을 치료하는 일이라 눈 질끈 감고 받아들이시는 것 같았다.
마침 가게에 손님이 없어서 사장님은 그대로 가게 문을 닫았다.
허둥대며 앞서가는 사장님과 함께 사장님의 집에 갔다.
대진이의 어머님께서는 나를 보며 놀라셨다.
“아! 민준이구나.”
어머니는 곧 내가 왜 왔는지 아셨는지 울컥한 표정을 지으셨다.
“와줘서 정말 고마워.”
“아니에요.”
대진이는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는데 병색이 완연한 모습이었다.
나는 어머님께 물었다.
“포션이나 힐은 안 써보셨나요?”
“써봤지. 지금도 쓰고 있고. 그런데 이게 그냥 독에 중독된 게 아니래. 저주계열이라고 하더라고. 포션이나 힐로 고쳐놔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상태가 나빠져. 저주를 푸는 힐러가 있다는데 지금 예약이 꽉 차서 몇 달은 기다려야 한대. 그래서 지금은 어찌어찌 악화를 늦추고만 있어.”
“일단 힐과 큐어를 싹 돌려볼게요. 힐, 디바인 홀리 큐어!”
화아악!
여러 차례 힐과 큐어를 쏟아부었다.
대진이의 몸에 마나와 신성력이 환하게 쏟아졌다.
몽실몽실.
꿈틀꿈틀.
마나의 움직임과 함께 마치 풍선이 부푸는 것처럼 가죽만 남은 것 같은 피부가 살이 오르며 팽팽해졌다.
누렇게 뜬 얼굴색도 화사해졌다.
대진이는 쏟아지는 회복력에 금세 몸이 회복되었다.
실시간으로 몸이 좋아지는 모습에 대진이의 어머님과 함께 따라오신 사장님도 미소를 지으셨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사장님과 어머님이 연신 감사를 표했다.
여기까지는 쉬웠다.
하지만 진짜는 지금부터였다.
이러고 내가 돌아가 버린다면 포션 몇 병 주고 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상태가 나빠지는 저주라는 말에 잠시 고민을 하다가 혹시나 해서 알타르에게 쪽지를 보내보았다.
[알타르 님?]
[네. 스승님]
[아는 사람이 저주에 걸렸다는데 힐과 큐어를 퍼부으니 겉보기엔 괜찮아졌네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빠진다는데 완치시키거나 이미 다 나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주는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힐이나 큐어는 다친 상태, 중독된 상태를 회복시킵니다. 그런데 저주는 지속적으로 상태를 악화시키니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상태가 나빠집니다. 뿌리를 뽑아야 해요.]
[어떻게요?]
[잠시만요. 10분쯤 후에 저를 소환해 주시죠.]
[네.]
잠시 후 알타르가 소환되었다.
알타르는 복잡한 마법진을 설치했다.
“제가 자주 쓰는 마법이 아니라서 시간이 조금 걸리네요.”
바닥에 마정석을 놓고 책자를 보며 한참을 마법진을 그리더니 활성화시켰다.
“진실의 눈으로 본다. 숨겨진 저주여 그 모습을 나타내라. 디택트 커즈!”
징, 징, 징.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마법진의 마정석이 여러 차례 색을 바꾸었다.
그러더니 대진을 둘러싼 마법진이 밝아지더니 대진이의 오른쪽 허벅지 뒤쪽이 빛나기 시작했다.
대진의 몸을 뒤집어 허벅지 뒤쪽이 드러나도록 했다.
대진의 부모님도 대진이의 허벅지 뒤쪽에서 빛나는 문양을 보았다.
“이게 뭐니?”
“대진이가 아픈 원인이에요. 이게 저주의 마크예요.”
두 분은 저주의 마크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셨다.
“알타르 님, 이제 다음은 어떻게 하죠?”
“스승님의 신성력으로 지우시면 됩니다.”
“아!”
치료법은 이미 내가 가지고 있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신성력을 가득 모았다.
그리고 저주의 인장이 있는 대진이의 오른쪽 허벅지 뒤에 대었다.
치치치칙.
덜컥덜컥 오른쪽 다리가 성난 물고기처럼 요동쳤다.
치치치칙.
―꺄악!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알타르 님, 이 소린 뭔가요?”
“소리요? 무슨 소리를 들으셨습니까?”
나에게만 들린 소리였나보다.
“까악 하고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렸어요.”
“아! 그러면 시전자의 비명인 것 같습니다. 저주의 인장은 시전자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스승님께서 강제로 지워버렸으니 저주의 시전자에게도 타격이 간 것입니다.”
대진이는 어떤 던전에 들어가서 이런 저주를 받아 왔을까?
나와 소환수들이 연결되어 있듯이 어떤 시전자와 대진이가 저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나 보다.
나는 대진이의 부모님께 설명을 해드렸다.
“보셨다시피 대진이의 오른쪽 허벅지 뒤쪽에 저주의 인장이 박혀 있었어요. 이제 지웠으니 앞으로는 괜찮을 거예요.”
“정말 고마워.”
대진이의 어머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감사해했다.
연신 감사를 받으며 나왔다.
“민준아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구나.”
“괜찮아요. 보셨다시피 오래 걸리지 않았잖아요. 잠깐 와서 한 건데 서로 돕고 살아야죠.”
“고마워.”
부모님 집에 오니 어느새 부모님이 집에 계셨다.
집에 들어가니 엄마가 다짜고짜 나를 불렀다.
“아들!”
“예?”
엄마는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고마워.”
대진이 어머니가 엄마에게 벌써 전화를 했나 보다.
“에이 뭘요. 이럴 때 엄마 기 세워 드리는 거죠.”
“그래 정말 잘했어. 명품 가방 받았을 때보다 훨씬 감동이었어.”
내가 멋쩍게 있자 엄마가 소환수들에게 인사를 했다.
“어머 샤샤, 카나, 제리도 오랜만이야.”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가족과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조금 전의 일을 이야기했다.
“흠… 저주 종류가 흔치는 않았는데 던전의 종류가 좀 다양해진 느낌이에요. 마나초는 드시고 계시죠?”
“지난번에 민아가 가져온 그 당근 같은 거 말하는 거니?”
“네.”
“꿀에 재서 잘 먹고 있어.”
“꾸준히 드시고 계세요. 마나를 올려놔야 나중에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아이고, 우리는 놔두고 네가 먹어. 좋은 게 있으면 헌터인 네가 먹어야지. 아니면 민아 정도만 챙겨. 이 나이 먹고 우리가 뭘 하라고.”
“혹시 모르는 거죠. 헌터를 하시라는 게 아니라 마나가 늘어서 각성이라도 하면 건강함의 차원이 달라요.”
“그래?”
“그럼요.”
“꼬박꼬박 챙겨 드세요. 각성자가 되면 힘과 체력이 장난 아닌 거 아시죠? 아빠, 남자는 힘!”
나는 오른팔을 들어 주먹을 불끈 쥐며 남자의 힘을 외쳤다.
가만히 있던 아빠도 오른팔을 들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역시 민준이가 뭘 좀 아는구나. 남자는 힘이지!”
사나이끼리는 뭔가 통했다.
아빠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 아빠도 힘을 내 볼 테니 너도 짝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네?”
이게 이야기가 왜 이렇게 연결되나 모르겠다.
고향집에 방문했을 때 고향 어른들이 하지 말아야 할 말 베스트에 오르는 질문이었다.
너는 결혼 언제 할래?
고향에 자녀가 내려가지 않게 만드는 주요 질문 중 하나였다.
“아빠, 나 아직 20대거든요?”
순간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이 나를 주목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따끔.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조금 더 명분을 쌓을 필요가 느껴졌다.
“아빠, 20대에게 결혼 이야기 꺼내는 거 아니라구요. 30대, 요즘은 40대가 되어서 결혼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20대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거는 좀 아닌 것 같아요.”
“민준아.”
아빠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네.”
“난 결혼이라는 단어는 꺼낸 적 없다.”
“아…….”
“그리고 이왕 결혼이란 단어가 나왔으니 사실 요즘은 글로벌이 대세 아니겠니? 꼭 한국인과 결혼해야 하는 시대는 지난 지 오래야. 내가 흥선대원군도 아니고 한국인만 된다고 고집부리지는 않아.”
이제 뭐라고 답할 힘도 없었다.
“민준아, 아빠는 인종차별을 하지 않아요. 그리고 종족차별도 하지 않아. 지구인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떠냐.”
아빠는 글로벌… 아니, 유니버셜하단다.
정신공격을 받아 잠시 쉬고 있는데 부모님과 소환수들은 꽁냥거리며 히히덕거렸다.
아빠가 샤샤에게 물었다.
“혹시 그쪽 동네는 결혼 체제가 어때? 혹시 일부일처제야?”
“일부일처가 무슨 뜻이죠?”
“아, 결혼해서 살 때 남자와 여자가 꼭 한 명씩 사냐고.”
“아니요. 그렇지는 않아요. 남자 한 명에 여자들이 여럿인 가족도 많아요.”
“그래? 왜 남자가 부족해?”
“몬스터가 너무 많고, 전쟁도 흔해서 남자들은 일찍 죽어요. 그러면 남은 여자와 아이들은 살기 힘들잖아요. 그럴 때는 모여서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일부다처도 가능하다는 거구만. 허허허.”
저런 질문은 왜 하는 건가?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오늘 길에 운전대는 카나에게 맡겼다.
다음날, 제리의 업그레이드된 드론을 받았다.
드론은 날개가 사라져 있었다.
테두리는 팔각형 모양이었고 위아래 투명한 반구형 뚜껑과 바닥이 있었다.
아래도 투명하기 때문에 공중에서도 아래쪽 상황을 잘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리가 앉아보았다.
꼭 우주선을 타고 다니는 것 같았다.
“오~ 드론제리 더 멋져졌는데?”
“냥~”
제리도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얘들아, 신성교국에 다녀오자. 성물을 하나 얻어오긴 해야 할 것 같아. 성물을 안 가져오면 장기적으로 프란시아 왕국 전체에 영향을 끼친대. 그러면 안 되겠지? 비행기를 타고 가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소환수들은 선물함에 이것저것 물건들을 챙겼다.
혹시 모르니 무기도 잘 챙겼다.
제리는 어디서 났는지 귀여운 고양이 모양의 안대를 챙기고 있었다.
“제리야. 안대는 왜 챙기는 거야?”
“뭘 모르는구낭. 원래 장거리 여행을 갈 때는 안대를 끼고 자는 거당.”
충분히 준비한 후, 소환수들이 샤론으로 넘어갔다.
소환수 셋이 탄 비행 차량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행 고도를 최대한 높였다.
저 멀리 지평선이 보였는데 높은 고도에서 보니 지평선의 모양이 살짝 휘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얘들아, 글리제는 둥글어. 알지?]
[그게 무슨 소리냥?]
[너희가 사는 글리제라는 곳이 둥근 공 모양이라고.]
[엥. 그게 무슨 소리냥?]
[제리야, 민준 님께서 둥글다고 하시면 둥근 거야.]
[냥!]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도 글리제는 둥글었다.
얼핏 보니 대기권이 두껍게 층을 이루고 있고 그 위 우주로 넘어가는 부분의 경계가 보였다.
높이 날면 멀리 볼 수 있다는데 우주까지 보일 줄은 몰랐다.
이렇게 날아가니 오성의 직원이 비행기가 아니라 로켓 수준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비유하는 표현이 아니라 그냥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로켓 유지비, 아니 차량 유지비가 꽤 들었지만 내 경제적 수준이 차량 유지비 걱정할 단계는 아니었다.
슈우우욱.
비행 차량은 가능한 높은 고도에서 하늘을 날았다.
혹시라도 대형 비행 몬스터라가 있는 건 아닌가 해서였다.
화면을 확대 축소해가며 방향을 잡았다.
다행히 아직까지 대형 비행 몬스터가 보이지 않았다.
[얘들아, 그쪽 방향으로 쭉 날아가. 열 시간 이상은 걸릴 거야.]
[바닥에 뭔가 하얀 것들이 있어요. 뭐죠?]
뭔가 해서 보니 구름이었다.
[그거 구름이야.]
[네? 하늘에 있는 구름이라고요?]
[그래, 그 구름. 너희들이 구름 위로 올라가서 날아가고 있는 것이지.]
[와, 구름 위를 날고 있으니 뭔가 신기해요.]
프란시아 왕국의 주민들 중에서 구름 위에서 지면을 내려다본 이는 거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구름 위를 날아가는 것도 처음이 신기하지, 몇 시간 지나면 익숙해졌다.
나는 선물함에 슬리퍼를 보내주었다.
[슬리퍼 보냈어. 발 올리고 쉬어. 장거리 여행은 편히 가야지.]
슈우우욱.
지구 시간으로 12시간이 지났다.
단조로운 비행에 나도 슬슬 지루해질 무렵 알파가 말을 걸었다.
―민준 님, 신성교국에 거의 도착했습니다.
“그래, 드디어 도착하는구나.”
소환수들에게 쪽지를 보냈다.
[얘들아, 잠 깨. 다 도착했대. 이제 슬슬 하강해.]
슈우욱.
비행 차량이 서서히 하강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