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143화 (142/230)

143화. 비행

오성 기갑 연구소.

인터넷에는 이곳 지하실에 외계인이 갇혀서 고문당한다는 설이 많았다.

늘 새롭고 이해할 수 없는 혁신적인 기술이 나오는 것을 보니 지구인만으로는 안된다는 말이었다.

즉, 외계인이 죽어라 일하며 지구의 기술을 초월한 외계의 기술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었다.

수십 년 전 과거라면 당연히 농담으로 치부될 말이었지만 포탈이 열리고 던전에 드나들 수 있는 세상이 되고 나니 진실로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장 나만 해도 글리제에서 소환수를 소환하는 입장이었다.

남들이 보면 샤샤나 카나도 외계인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양‘계’의 바깥에서 살고 있으니 엄밀하게 말하면 외계인이라는 표현이 맞긴 맞을 것 같았다.

나는 내 옆의 의자에 앉아 있는 샤샤와 카나 그리고 제리를 보았다.

“너네 왜…….”

샤샤와 카나가 나를 보았다.

“네?”

“왜… 뭐?”

동글동글한 에메랄드빛 눈동자의 샤샤가 나를 보았다.

샤샤는 며칠 전 미장원을 다녀왔는데 여고생처럼 앞머리를 일자로 잘랐다.

그런 일자 앞머리에 등 가운데까지 내려오는 푸른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그 옆에서 까칠한 도시 여자 같은 카나가 긴 은색 속눈썹을 가진 눈으로 나를 살짝 흘겨보았다.

카나의 무릎에 올라가 있는 제리의 뽀송한 보라색 털이 보였다.

순간 나는 지금 무슨 망언을 뱉으려고 했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너네 외… 왜 그렇게 예쁘냐고.”

“아이, 왜 그래요.”

샤샤는 눈을 돌리며 좋아라 했고, 카나는 별소릴 다한다면서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1mm 정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제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귀가 살짝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도 각성자이며 헌터였다.

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쯤은 있었다.

순간 말 잘못 했다가 친밀도 하락할 뻔했다며 속으로 나 참 잘했어라고 칭찬했다.

“오래 기다리셨죠?”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던 우리에게 오성의 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오성에서 나온 직원은 지난번 차량을 선물할 때 나온 직원이었다.

“아니요.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주 멋진 녀석을 준비하느라고 조금 늦었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지난번 차량도 아주 잘 쓰고 있는데 기대되네요.”

“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민준 헌터님은 저희의 VIP이십니다. 당연히 기대를 충족시켜 드려야죠.”

“아이고, 제가 뭐라고. 감사합니다.”

“뭐라니요? 노승민 헌터님께서 신신당부하셨어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줄 이는 세상에 오직 민준 헌터님뿐이라고 말입니다. 당연히 VIP로도 부족하죠.”

“감사합니다.”

“그러면 물건을 보러 가실까요?”

“좋습니다.”

나와 소환수들은 직원과 함께 물건을 보러 갔다.

전시실이라고 써진 공간에 도착해보니 희한한 물건이 우릴 반겼다.

커다란 네모난 테두리가 있었고 각 모서리에는 지름 세 뼘, 높이는 두 뼘 정도 되는 원통이 달려 있었다.

“오호라, 이건가요?”

오성의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직 잘 모르시겠죠?”

“네.”

“자, 차량을 가져와달라고 말씀드렸죠? 꺼내 보시죠.”

“네.”

내가 카나를 바라보자 카나가 선물함에서 차량을 꺼냈다.

커다란 캐터필터가 달린 장갑차가 나왔다.

멋진 모습이었다.

오성의 직원이 뭔가 장치를 조작했다.

“잠시 기다리시죠.”

우우우웅.

바닥에 있던 네모난 테두리 모양의 장치가 진동하더니 공중으로 떠올랐다.

드론인가 하는 생각을 할 무렵 장치가 내 차량 위로 올라갔다.

위이잉. 철컥.

“자, 다 되었습니다. 차량과 탈부착이 가능한 비행 장치입니다.”

처음 이곳 기갑 연구소에 연락한 이유는 비행기를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글리제에서 신성교국을 가야 하는데 너무 멀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차량도 선물해주었기도 하고 원래 기계제품은 오성이 제일 좋으니 오성에서 구매하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연락을 하자 지난번 선물로 준 차량에 탈부착이 가능한 비행 장치를 추가하자고 한 것이었다.

“합체하니까 더 멋있네요.”

“그럼요. 이게 20톤 정도까지 띄울 수 있는 장치입니다. 민준 님의 차량은 5톤도 되지 않으니 아주 가볍게 들고 날 수 있습니다.”

“날개가 없는데도 나는가 보네요.”

“하하, 헌터님도 참. 저희는 날개 달린 비행체는 취급 안 한 지 오래입니다.”

“한번 몰아 볼까요?”

“네, 조작법은 물속에서 다닐 때와 비슷합니다. 입체 기동 장치를 이용하면 됩니다. 같이 타보시죠.”

나와 소환수들 그리고 직원이 탑승했다.

“우선 차량 모드로 저쪽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나는 조종석에 앉아 직원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직원이 안내한 곳으로 나가니 매우 넓은 야외 공터가 나왔다.

야외 공터까지 오는 사이에 직원은 차량의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했는지 조절 장치에 비행모드 글자가 추가되어 있었다.

“자, 이곳을 눌러보세요.”

꾹.

“좋습니다. 비행 모드가 되었습니다. 전후좌우상하, 공간 내의 기울임입니다. 움직여 보시죠.”

나는 비행 모드로 운전을 해보았다.

수중 모드로 많이 해보았지만, 비행 모드는 속도가 빨라서 수중 모드와 느낌이 달랐다.

하지만 얼마간 조작하자 곧 익숙해졌다.

“역시 헌터님이라서 그러신지 금방이네요.”

“그런가요?”

“그럼요. 원래 헌터님들은 민첩이 높아서 반사 신경이 뛰어나시잖아요. 그래서 이런 장치에 적응하는 것도 순식간이시죠.”

“이게 기본 모드로 설정하면 항상 중력 방향을 아래로 향해 날아갈 수 있고요, 기본 모드를 해제하시면 다양한 방향으로 이동 가능합니다. 거꾸로 뒤집혀서 날 수도 있죠.”

“그래요?”

나는 기본 모드를 해제하고 날아보았다.

차량을 이용해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듯 움직여 보았다.

그것도 익숙해지니 공중에서 차량으로 앞구르기도 해보고 앞으로 나아가며 뒤구르기도 해보았다.

하늘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느낌이었다.

“와, 민준 님, 빙글빙글 돌아요.”

“냥.”

“이거 기본 모드를 해제하면 다양한 움직임이 가능하니까 더 재밌네요.”

내가 운전을 해보고 카나에게도 운전대를 맡겨 보았다.

샤론에서는 카나가 기계 담당이었다.

카나 역시 적응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예~”

카나는 마치 한 마리의 야생마를 길들이는 듯했다.

“헌터님도 잘하시네요.”

내가 손가락으로 카나를 가리키며 직원에게 말했다.

“A급이에요.”

“와, A급 헌터시구나.”

직원은 선망의 눈빛으로 카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VIP님의 동료입니다.”

한참을 하늘을 난 후 다시 연구소에 내렸다.

“제리야, 드론 좀 꺼내 봐.”

제리가 드론을 꺼냈다.

“저, 이게 제 소환수가 고양이 모습일 때 타고 다니는 드론이에요. 아까 날개형은 취급 안 하신다고 했는데 이게 날개가 있어요.”

제리의 드론은 드론이면서도 날개가 있었다.

이게 구형 모델인가 싶었다.

직원은 드론을 자세히 보았다.

“날개형 드론이고, 마력도 좋네요. 하지만 최신형이라고 보기는 조금 어렵네요. 프로용이긴 하지만, 민준 헌터님은 프로 이상의 VIP이시니까 더 좋은 것도 쓰실 수 있겠죠?”

“네, 더 최신형이 있나요?”

“날개형은 날개가 양력을 받으니까 연료 소비가 적어 더 오래 날 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공기저항을 피할 수 없죠. 날개가 있는 비행기는 활공하며 오래 날 수 있지만, 비행기보다는 날개가 없는 로켓이 더 빠르겠죠? 오래 나는 문제는 이게 해결해 주겠죠.”

직원은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둥근 모양을 만들었다.

결국 돈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제리의 드론은 경제성을 고려한 비행체이고, 자신들은 비싸고 유지비도 더 들지만 성능이 더 좋은 것을 판다 이건가?

“좋아요. 그럼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까요?”

“왜 안 되겠습니까? 내일 다시 와주시면 싹 바꿔놓겠습니다.”

나는 제리를 한번 보았다.

“냥!”

“네, 그럼 제리의 드론도 놔두고 갈 테니 업그레이드해주세요.”

비용을 노승민 헌터의 월급에서 깐다고 하는 걸 한참을 말려서 내가 계산하기로 했다.

나와 소환수들은 비행 차량을 타고 하늘을 날았다.

운전대는 내가 잡았다.

“한강이 작은 선으로 보여요.”

“저기 산은 뭐지?”

“저건 남산인 것 같은데?”

서울 도심을 내려다보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어디를 가볼까나 이리저리 날아다니는데 전화가 왔다.

지이잉.

동생 민아였다.

“어, 왜?”

―오빠, 어디야?

“서울이지. 왜?”

―엄마 친구 대진네 알지? 그 치킨집 말야. 알아?

“그럼 알지. 나도 그 집에서 치킨 많이 먹었어.”

―그 집 아들이 얼마 전에 던전에 들어갔다가 다쳐서 나왔는데 치료가 쉽지 않은가 봐. 혹시 오빠가 도와줄 수 있나 해서.

“엄마가 물어보래?”

―아니, 대진이네 엄마가 우리 엄마에게 부탁하는 걸 들었어. 그런데 엄마는 오빠에게는 말을 안 했나 보네. 오빠도 알잖아. 엄마랑 대진이네 엄마가 친한 거.

엄마는 친한 아주머니의 부탁을 듣긴 했지만, 혹시 내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알았어. 10분만 기다려.”

―뭐? 10분?

“응, 전화 끊는다.”

나는 전화를 끊고 소환수들에게 말했다.

“이왕 하늘을 날고 있는 것 드라이브 좀 하자.”

슈우우욱.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날개 없는 비행 차량이 마치 거인이 던진 돌덩이 마냥 한 방향으로 쭉쭉 나아갔다.

나는 화면을 통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관점으로 많이 보곤 하지만, 내가 하늘에 떠서 비행하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우리? 내 고향 집에.”

“아!”

샤샤가 놀란 듯했다.

샤샤는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그럼 지금 역소환해주세요. 그리고 도착해서 다시 소환해주세요.”

카나가 말을 이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어라?

순식간에 샤샤와 카나가 샤론으로 가버렸다.

어느덧 비행 차량 안에는 나와 제리만 남게 되었다.

내가 물끄러미 제리를 바라보았다.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10분 후, 고향집에 도착했다.

“제리야, 차량은 일단 네가 보관해야 할 것 같네. 선물함에 자리 되니?”

“된당.”

선물함에 주차하고 집으로 갔다.

띵동!

초인종을 눌렀다.

“와! 오빠 진짜 왔네?”

“그럼 가짜로 오냐? 엄마는?”

“나갔어.”

집에는 민아밖에 없었다.

민아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치킨집 아들 대진이가 던전 잡부를 하다가 뭔가에 중독된 모양이었다.

“알았어. 내가 가볼게.”

치킨집을 찾아갔다.

서울 올라오기 전에 자주 오던 집이었다.

매장 앞에는 유리벽 너머로 치킨을 튀기고 계신 아저씨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 오세요.”

“아, 저 민준이예요. 사모님 친구 아들 민준이에요.”

“아! 맞다, 민준이. 그 힐러한다는?”

“네. 맞아요.”

“그래, 오랜만이야. 어서 앉아.”

사장님은 친절하게 앉으라 권했다.

“잠깐만 있어. 뭐 줄까?”

먹으러 온 건 아니었지만 고소한 치킨 냄새를 맡으니 치킨이 땡겼다.

“샤샤, 카나 소환.”

화아악!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사해진 샤샤와 카나가 소환되었다.

뭔가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여긴?”

“어, 우리 동네 치킨집이야. 일단 치킨 좀 먹을까?”

사장님께 후라이드 한 마리와 양념치킨 한 마리 그리고 마늘 통닭을 한 마리 달라고 말했다.

후라이드는 고소해서 맛있고, 양념은 달콤해서 더 맛있었다.

“얘들아, 이것도 먹어봐. 역시 한국인은 마늘이지.”

구운 마늘도 맛있었다.

그래도 일단 치킨 살의 육즙이 살아있는 것이 중요했다.

다 먹은 후, 나는 계산대로 갔다.

“사장님,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

“어, 왜?”

나는 사장님을 보며 말했다.

“죄송한데 제가 돈이 없어요.”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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