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성장
“사장님, 안녕하세요?”
“네, 소장님, 안녕하세요?”
건설 사무소의 현장 소장님이 환한 미소로 인사를 했다.
내 사무실 창고 옆에서는 땅을 파고 있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기존의 창고가 좁아서 더 큰 창고를 짓고 있었다.
나는 공사가 잘 되고 있나 궁금해서 공사 현장을 둘러보았다.
“지금 터파기 공사 중입니다. 지반이 좋아서 금세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 만들 창고의 면적은 지금 창고의 열 배가 넘었다.
그리고 설계상으로는 높이도 상당히 높았다.
축구장 하나는 가뿐하게 들어가도록 설계했다.
높이도 높으니 정말 축구를 해도 될 공간이 될 것이었다.
“이쪽 동네에서는 가장 큰 창고 규모예요. 저희 업체가 동서울에 있는 물류센터를 지은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잘 만들어 보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잘 부탁한다고 말해 주었다.
한 바퀴 둘러보고 임대한 드레이크 사체가 있는 창고를 들렀다.
사체 상태가 어떤지 체크를 해줘야 했다.
그런데 드레이크의 사체를 보니 새로 만들 창고에 대한 걱정이 생겼다.
“설계를 너무 작게 했나.”
설계할 때는 정말 크다고 생각했는데, 드레이크 여러 마리의 사체를 보고 오니 더 크게 만들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몬스터 중에는 드레이크보다 더 큰 몬스터도 있었다.
“에이, 지금 공사하는 창고나 다 채우고 생각하자.”
지금 공사하는 창고를 채울 생각을 하니 또 창고가 작지 않은 것 같았다.
드레이크 정도 되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지금 짓고 있는 창고 옆쪽에 공터가 있는데, 그쪽 땅도 매입해두어서 급할 때 천막이라도 세우고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다시 사무실에 들어왔다.
창고 한쪽에 있는 문을 마정석 보관함을 열었다.
화악.
눈이 부셨다.
마정석이 자체 발광하는 것도 아닌데 눈부시다는 느낌은 왜일까?
그런데 나는 마정석이 쌓여 있으니 또 고민되었다.
이걸 또 다 어떻게 사용할까 하는 고민이었다.
그냥 팔아?
디아론 백작, 세 명의 S급 용병들에게도 드레이크의 마정석을 나누어 주었다.
그래도 나에게 일반 드레이크의 마정석 다섯 개, 드레이크 퀸의 마정석까지 주었다.
퀸의 마정석은 커다란 늙은 호박 크기였다.
색은 피처럼 붉고 반투명하며 아름다웠다.
퀸의 마정석을 보다 보니 보석에 별 감흥이 없던 나는 왜 여성들이 보석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단순한 물체였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경매로 팔아버려?”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쉬웠다.
이런 물건은 돈이 있다고 구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내 손에 들어왔을 때 좋은 활용법을 알아보아야 했다.
나는 동서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서 형님은 어디 회사를 다니다 와서 그런지, 뭔가 부탁하면 착착 해결해주는데 일 처리가 너무 깔끔하고 좋았다.
뚜르르르.
―어, 민준아.
“이사님, 접니다.”
―나 이사야?
“형님, 싫으면 다른 거 하십쇼. 전무님?”
몇 명 되지도 않는 길드에 아무 직책이나 부르면 그만이었다.
―나 하고 싶은 거 하면 되나? 그럼 부장할래. 차 부장.
“왜 겨우 부장을 해요? 사장해도 되는데?”
―나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부장 다는 게 목표였거든. 각성해서 그만두었지만. 왠지 한 번쯤 달아보고 싶었어.
“그랬군요.”
―그런데 왜 전화했어?
“물어보고 싶은 게 두 가지가 있어요.”
―뭔데?
“하나는 지금 사무실 창고 옆에 새로운 창고를 짓고 있거든요. 거기에 형님이나 나리, 종구도 있을 사무실 공간도 좀 넣을 거고요, 천마 길드만큼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체력단련실도 만들까 해요. 휴게실도 있고, 또 뭐가 있으면 좋을까 해서요.”
―그래? 음… 내 생각엔 네가 길드를 얼마나 확장할지에 따라 달렸다고 봐.
“확장이요?”
―그래, 지금 인원이 그렇게 많지는 않잖아. 그래서 길드원들이 사용할 공간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지. 하지만 네가 길드원을 더 받을 거라면 길드 사무실이 지금 정도로는 안 되지. 샤론의 이름값이나 벌어들이는 매출에 비하면 사무실이 작은 편이야.
길드의 인원을 더 받는다?
그런 생각은 못 하고 있었다.
“형님 지금 뭐 해요?”
―나, 집인데?
“그럼 사무실에 나와서 길드의 앞날에 대한 고민 좀 해줘요. 알다시피 저는 샤론 영주기도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샤론 길드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가 적었던 것 같아요. 전적으로 길드의 성장만 고민해줄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길드의 앞날은 길드장이 정해야지.
“며칠 후에 글리제에서 멀리 여행을 가야 하거든요. 그거 한 번 가면 또 며칠이 걸릴지 몰라요. 그럼 저는 한동안 화면만 쳐다보고 있어야 해요. 만약, 제가 신입 길드원을 뽑았다고 쳐봐요. 그럼 걔네들은 우리 길드장은 면벽수련만 한다고 자기들한테는 관심도 없다고 할걸요?”
―그래도 네가 신입 뽑는다고 하면 들어올 애들은 줄 섰어. 요즘 샤론의 이름값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구나?
“몰라요, 몰라. 암튼 길드 확장하고 싶으면 형님이 와서 사무실에 알박기하고 있어야 해요. 아님 나 못해요.”
영주일하랴, 소환술사의 일을 하랴, 길드를 관리하랴 몸이 부족했다.
길드를 관리하는 일은 동서 형님이 잘할 것 같았다.
―알았어. 사무실에 자주 나갈게. 그리고 아까 질문이 두 개라며? 나머지 하나는 뭐야?
“아, 이번에 트란 산맥에서 마정석을 좋은 것들을 여러 개 얻었거든요. 그걸 어쩔까 해서요.”
―어쩌다니?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니 팔기는 싫고, 잘 썼다고 생각할만한 데가 있을까 해서요.”
―네가 원하는 건 뭔데? 돈이 아니면 무력? 인맥? 세력?
“저요? 저야 길드원님들, 소환수들, 샤론 영지의 기사들, 주민들과 잘 지내는 거죠. 길드원이나 소환수 등이 강해지면 더 좋구요.”
―강해지고 싶어? 그럼 마나 각성제를 만들어. 그거 마정석 좋은 게 있어야 만들 수 있어서 비싼 거야. 다르게 말하면 마정식이 좋은 게 있으면 더욱 높은 등급의 각성제를 만들 수 있지.
“각성제요?”
―그래, 마정석이 넘치는데 강해지고 싶으면 각성제지, 뭐 별 게 있나? 옛날처럼 폐관수련 할 리가 없잖아?
좋은 생각이었다.
역시 동서 형님에게 물어보면 답이 착착 나왔다.
“형님.”
―왜?
“그럼 마정석을 마나 각성제로 바꿀 연락처도 아시나요?”
―어, 몇 군데 알긴 하지.
동서 형님은 부장으로 끝나면 안 될 것 같았다.
“일단 사무실로 나오시죠.”
얼마 후, 동서 형님이 사무실에 왔다.
“형님, 일단 이거 보시죠.”
나는 마정석이 가득한 보관함을 보여주었다.
거대한 크기의 마정석을 보자 동서 형님도 눈이 아주 커졌다.
퀸의 마정석을 뽑을 때는 동서 형님이 용병이 아니었을 때라 못 보았던 것 같았다.
“크죠?”
“야, 대단하네.”
“이걸로 각성제 만들면 등급 좀 오를까요?”
“당연히 최고급 각성제가 나오겠지.”
“각성제는 마법사에게만 효능이 있는 거 아니에요?”
“어허, 모르는 소리. 뭐든 직접 해보고 배우는 게 제일 빨라. 딜러나 탱커도 한 차원 높은 경지를 체험해보고 나면 금방 늘어.”
나는 동서 형님과 함께 각성제를 제일 잘 만든다는 업체에 연락했다.
드레이크 퀸의 마정석이 있다고 하니, 두 시간도 안 되어 업체의 담당자가 우리 사무실에 도착했다.
업체 담당자는 마정석을 보자 아주 공손한 자세가 되었다.
“최근 샤론 길드의 명성을 많이 듣고 있었습니다. 과연 명불허전이네요. 최선을 다해 작품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각성제 제작 업체에서는 열과 성의를 다해 각성제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마정석의 수량이 많아서 각성제의 양은 아주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완제품은 일주일 후부터 순차적으로 납품하겠습니다.”
약빨로 강해질 생각을 하니 좋았다.
천마 길드의 강 트레이너님이 알면 근성이 없다고 뭐라고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드레이크 퀸의 마정석을 포함한 저렇게 많은 마정석을 두고도 써먹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각성제도 먹고 훈련도 열심히 하면 될 것이었다.
“각성제 먹으면 등급이 오를까요?”
“그럼. 민준이 B등급이지? 저 정도 마정석으로 각성제 만들어 먹으면 금방 A급 헌터가 될 거야.”
“그거 좋은 소리네요. 저는 A등급 헌터가 되려면 훈련이나 레이드를 얼마나 해야 할까 생각했어요. 까마득해 보였는데 지름길이 보이니까 좋네요.”
“그래, 지름길 있는데 왜 돌아가. 요즘에 각성제 안 먹어보는 헌터가 어디 있다고. 다들 쓰는 거야. 혼자 산속에 들어가서 수련하는 건 다 옛날이야기라니까.”
“훗, 그렇죠.”
“민준아. 아니, 길드장님?”
“네?”
“크음, 거 나도 한 모금 주는 거지?”
“에이, 한 모금이라니요. 길드원이 몇 명이나 된다고요. 많이 드세요.”
“흐흐, 고마워.”
나와 동서 형님은 약빨로 한 등급 높은 경지를 체험해볼 생각을 하며 서로 미소를 지었다.
* * *
디아론 백작가.
백작은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똑똑.
누군가 노크를 했다.
“들어오게.”
백작의 집무실로 들어온 이는 기사단장인 팬니르였다.
“오. 팬니르, 이 시간에 어쩐 일인가?”
“백작님, 얼마 전 토벌을 마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이번에도 아무도 죽지 않고 돌아와 내 얼마나 흐뭇했는지 몰라. 게다가 드레이크라니. 내 드레이크의 머리를 박제해서 전시할 작정이야. 이웃 영주들이 보면 깜짝 놀랄 거야.”
즐거워하는 백작의 이야기를 듣는 팬니르는 표정이 어두웠다.
“백작님.”
팬니르의 어두운 기운을 감지한 백작이 물었다.
“왜, 무슨 일 있는가?”
“얼마간 개인적으로 수련을 했으면 합니다.”
“수련? 수련은 기사들과 매일 하고 있지 않은가?”
“지난번 토벌대에서는 샤론 영주가 투입한 소드마스터들이 있었습니다.”
“그래, 그 이야기는 보고를 들었네.”
“검을 사용하는 정통 소드마스터 한 명, 해머를 쓰는 마스터급 팔라딘이 한 명, 그리고 거대 괴물로 변해 마스터급 위력을 펼치는 용병까지 있었습니다. 샤론 영주는 마스터급 용병을 세 명을 부리더군요.”
디아론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작도 그 보고를 읽고서 상당히 놀랐었다.
마스터 세 명을 부리다니?
당장 프란시아 왕국만 해도 마스터급 인원이 헬른 공작과 대마법사 스피오크뿐이었다.
샤론 영주의 힘이 프란시아 왕국을 넘볼 정도였다니 보고서를 읽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그래, 나도 많이 놀랐다. 그러면 어떻게 수련을 하려고 하는가?”
“네, 백작님. 샤론 영주의 마스터급 용병들 중에서 검을 쓰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자와 함께 토벌하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잠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저의 깨달음을 익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디아론 백작 역시 무인이었다.
“알겠네. 따로 수련하게나.”
디아론 백작은 묵묵히 팬니르를 믿어주었다.
팬니르는 그길로 잔뜩 짐을 챙겨 트란 산맥을 올랐다.
아무도 찾지 않을 어느 계곡에 도착한 후, 적당한 지형을 이용해 잠잘 곳을 마련했다.
그리고 검을 꺼냈다.
팬니르는 검을 들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천마 차지율이 눈앞에 보였다.
스윽.
심상 속의 천마가 검을 내리그었다.
쉬익!
팬니르의 검이 천마의 검을 막았다.
콰직.
하지만 팬니르는 천마의 검을 막을 수 없었다.
“윽.”
어느새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팬니르는 입가에 한줄기 핏방울이 흘렀다.
“크윽.”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 바로 다음이 마스터의 경지였다.
팬니르 역시 아주 약간의 벽을 넘으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약간의 벽을 넘지 못하는 기사들이 수두룩했다.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이가 마나를 느껴보려고 하는 벽만큼이나 마스터의 벽은 아무에게나 열리지 않았다.
한번, 열 번, 백 번… 트란 산맥의 어느 골짜기에서 팬니르는 끊임없이 천마에게 도전했다.
* * *
어느 미용실.
“호호호호.”
“어머~ 민준네는 피부가 차아아암~ 좋아.”
“아이, 예림이 엄마도 피부 좋으면서 왜 그래?”
“내가 뭐가 좋아. 비결이라도 있어?”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아줌마들끼리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좀 비밀 좀 알려 줘봐. 혼자 젊어지면 어떻게 해. 우리도 좀 알려줘, 응?”
“아니, 우리 아들이 힐러인 거 알지? 가끔 마사지를 해줘서 그런가?”
“뭐? 그럼 힐 마사지를 받는 거야? 와, 민준네는 좋겠네.”
“에이, 힐 마사지 아니야.”
“아니야?”
“아들이 얼마 전까지는 힐 마사지를 해줬는데, 요즘은 등급이 올랐다고 큐어 마사지라고 하더라고. 힐보다 윗줄. 뭐라더라 그 디톡스 효과가 좋대.”
“그래?”
주변의 아줌마들이 부러워했다.
“민준 엄마. 저 내가 말야. 나이가 50이 넘으니까 어깨가 그렇게 아플 수가 없어. 병원에 가도 뾰족한 방법이 없나 봐. 민준이 언제 내려 온데? 나도 그 마사지 한번 받아보면 안 되나?”
“민준 엄마, 나도 무릎이 너무 아픈데 딱 한 번만 받아보자. 응?”
“민준 엄마…….”
“음, 그러면 아들이 내려오면 한 번 물어는 볼게. 그런데 우리 아들이 워낙 바빠서 말야. 혹시 천마 길드라고 알아?”
그렇게 한참 아들 자랑을 하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울렸다.
지이이잉.
민준의 동생 민아였다.
“어. 딸 왜?”
―엄마, 어디야?
“나 미용실.”
―어, 오빠가 엄마, 아빠랑 나눠 먹으라고 뭐 줬거든. 이거 먹으면 마나가 올라간대. 오빠가 잘하면 나 마법사 만들어줄 수도 있을 것 같대. 대박이지? 내가 알아봤는데, 일반인을 마법사 만들어주는 거는 돈이 엄청 많이 들어서 대기업 회장 손자들이나 할 수 있는 거래. 대단하지?
“뭐라고? 민준이가 너를 큰돈을 들여서 마법사를 만들어 줄 거라고?”
미용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었다.
“우리 딸 좋겠네. 대기업 회장 손자들이나 받는 거를 받는다니.”
―엄마? 옆에 누구 있구나?
“그래.”
―알았어. 암튼 얼른 집에 와.
“그래, 끊어.”
엄마들의 최고의 즐거움은 자식 자랑이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