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과제
민아가 나의 질문에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일반인이 각성도 안 하고 어떻게 마법사가 될 수 있어?”
나는 피식 웃었다.
“얘가 던전이랑 몬스터에 대한 숙제를 하러 다닌다면서 그런 것도 모르나 보네. 각성자들이 일반인과 다른 건 기본적인 마나량과 스킬이야.”
“그렇지.”
“다르게 말하면 마나량과 스킬이 있으면 각성자가 된다는 뜻이지.”
민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각성을 해야 마나와 스킬이 생기는 거지, 순서가 바뀌었잖아.”
“아니야. 마나와 스킬을 얻으면 돼.”
“일반인이?”
“응, 너 모르는구나? 저기 대기업 회장님들 자녀들은 그렇게들 해.”
“아…….”
그제야 민아는 내 말이 어떤 뜻인지 알아들은 듯했다.
“오빠가 그렇게 해줄 수 있다고?”
“어.”
“돈 엄청 많이 들 텐데?”
민아가 감동한 것 같았다.
거의 재벌급 회장님들의 자녀만 가능한 방법이었다.
떼돈을 쏟아붓고 1서클 마법사 만들기.
가성비가 아주 나빠서 등골 브레이이커라 불리는 방법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처럼 돈을 주고 다 사오려면 돈이 많이 들 것이었다.
* * *
민아가 오기 며칠 전.
토벌대가 열심히 트란 산맥을 토벌해준 덕분에 레벨도 제법 오르고 뽑기도 한판 할 수 있었다.
“알파야? 뽑기 가자!”
―네, 카드를 뽑아주세요.
“너로 정했어! 좋은 것 떠라!”
카드가 뒤집혔다.
“아…….”
털썩.
나는 너무 실망해서 주저앉았다.
카드에는 큐티라고 적혀 있었다.
“큐티라니…….”
큐티는 시각 마법이었다.
큐티는 시전자가 귀여워 보이는 마법이었다.
[큐티 : 시전자의 얼굴이 전체적으로 더 하얗게 보이며,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보이며 입술이 붉고 볼에 홍조를 띤 것 같이 보인다. 타인이 큐티 시전자를 귀엽게 생각할 확률이 상승한다.]
“뭐 이딴 게 나왔어.”
내가 큐티 마법을 쓰면 다른 여자들이 나를 귀여워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러다 큐티 마법을 쓰면서 여자들 앞에서 아양을 떠는 나의 모습을 생각하니 왠지 모를 허탈함이 느껴졌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아닌 것 같아.”
물론 시전자에 따라서는 상당히 좋은 마법에 속했다.
예뻐 보이고 싶은 여성들에게는 천금 같은 스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소환이나 용병 스킬처럼 초대박은 아니더라도 내가 쓰고 있는 힐이라던지 제리에게 준 마나를 손에 두를 수 있는 권기 스킬 정도는 나와주었으면 했다.
힐이 또 나와주어도 땡큐였다.
카나에게 힐을 준다면 힐을 가진 탱커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스스로 회복하는 탱커! 얼마나 멋진가!
하지만 큐티라니.
몬스터야, 나 때리지 마, 아잉!
뭐 이런 것도 아니고 많이 아쉬웠다.
나는 화면으로 큐티를 누구 줄까 하며 소환수들을 보았다.
샤샤와 카나는 한 미모했다.
지금도 둘을 데리고 길을 걸으면 시선이 파파팍 꽂혔다.
뭐 별로 방송을 나간 것 같지도 않은데 팬클럽도 있었다.
여기서 큐티를 시전한다?
여기저기서 덕통사고가 날 것이다.
둘은 이미 충분히 예뻤다.
둘을 연예인으로 키울 마음이 있다면 둘 중 하나에게 큐티를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연예인이라니.
더 예뻐지면 힘들었다.
제리?
제리는 이미 충분히 큐티했다.
사실 제일 큐티한 게 제리였다.
보라색 고양이가 나를 올라다볼 때는 가끔 나조차 정신공격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큐티 스킬까지 익힌다?
위험했다.
정말이었다.
확 큐티를 제리에게 주고 몬스터에게도 제리의 큐티스러움이 통하는지 볼까?
나는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일단 큐티 스킬을 보류하고 사무실에 있는 냉장고를 열었다.
달칵.
꿀꺽꿀꺽.
“캬.”
시원한 피토니 한 잔을 마셨다.
플라스틱 반찬통에서 마나초 조각 하나를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아삭아삭하니 맛이 좋았다.
그런데 이것도 너무 많이 먹다 보니 마나가 오르지 않았다.
샤론 마을 주민들이 날 위해 열심히 캐서 바친 건데 점점 효율이 느려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처음에는 한 입만 먹어도 띠링거리는 스텟 상승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한 바구니를 먹어도 스텟 하나가 오를까 말까였다.
하긴 계속 스텟이 상승하면 마나초만 찾으러 다녔을 것 같았다.
“이걸 팔아?”
비싸게 팔릴 것 같았다.
“에이, 내가 돈이 없나? 소환수들도 더 주고, 기사급들에게도 주고 하면 되지.”
나 혼자 먹으면 이제 큰 효용이 없으니 나눠주고 인심이나 쌓으면 좋을 것 같았다.
고등급 몬스터들을 잡으니 이제 돈은 숫자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민아가 과제를 위해 나를 찾아왔다.
너였구나!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왜 큐티 스킬이 나에게 주어졌는지, 큐티 스킬의 주인이 나타났다.
더 큐티해져야 할 사람이 여기 있었다.
나는 순간 이런 말이 떠올랐다.
민아야, 그 얼굴로 살아오느라 힘들었지? 오빠가 새 삶을 선물해줄게.
동생에게는 새 삶을 선물해주고, 덕분에 부모님의 안전을 보강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생길 것이었다.
동생이 마법사가 되어서 부모님을 지킨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위험을 감지해서 자동으로 발동하는 마법 장비들도 있지만, 마법 물건들의 기본은 마나로 시동을 걸어주는 장치가 많았다.
동생이 1서클 마법사라도 된다면 시동을 걸 수 있는 장비들이 아주 많아질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과제를 마친 민아에게 마법사가 되라고 말했다.
민아는 당황했고 감동한 것 같았다.
내가 자신을 위해 큰돈을 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실 큐티 마법은 내 입장에서는 버리는 스킬이었다.
그리고 마나초도 어차피 주변에 나눠주려고 했다.
어차피 나눠줄 주변인에 민아가 포함될 뿐이었다.
나는 마나초를 적당히 싸서 민아에게 주었다.
부모님과 함께 셋이서 하루에 한 조각씩 다 먹으면 다시 오라고 했다.
처음에는 약발이 잘 받을 테니 마나 20정도 까지는 얼추 될 것 같았다.
창고에 굴러다니던 가죽 지갑 두 개를 주워 대충 먼지를 털고 민아와 가영이에게 주었다.
그렇게 동생, 동생 친구와 함께 왔던 경호원이 내려갔다.
모두 돌아간 후 나는 화면을 보았다.
트란 산맥에서는 토벌대가 아직도 토벌하고 있었고, 잠시 시간을 내어 샤론 마을을 둘러보았다.
꼬맹이들이 노는 모습이 보였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 *
며칠 후.
대운 대학교 던전학 수업 시간에는 여러 학생이 발표 준비를 했다.
“영수야, 발표 준비 잘했어?”
질문을 받은 영수라는 학생은 질문한 학생을 영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어, 뭐 그럭저럭했어. 그런데 넌 왜 연락이 안 됐어? 둘이 같은 조면서 과제 준비할 때는 연락이 안 되다가 지금 발표 준비 잘했냐고 물어보는 건 좀 아니지 않아?”
대학에서 조별 과제는 서로의 인성을 알게 되는 좋은 기회였다.
영수는 혹시 교수님들은 조별 과제를 통해 과제의 내용이 아닌 조원들의 인성, 즉 인간을 깨닫게 하시려는 의도가 있으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수가 발표했다.
“제가 조사한 내용은 던전 광물입니다.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암석과 광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영수는 프리젠테이션 화면을 띄웠다.
“이 광물은 마전석이라고 하고 전기가 구리보다 다섯 배 잘 통하는 물질이라고 합니다. 다음 광물은…….”
영수는 프리젠테이션 화면을 차례차례 넘기며 약간의 설명을 첨가했다.
인터넷에 있는 흔한 던전 광물 사진과 검색창에 쳐보면 바로 나오는 설명을 듣는 교수와 학생들은 영수의 설명에 시큰둥했다.
발표를 마치고 들어오는 영수도 그런 반응을 느낀 듯 얼른 자리로 들어왔다.
다음 발표는 민아와 가영이였다.
민아와 가영이는 둘이 함께 무대에 올라가 발표를 소개했다.
민아와 가영이는 서로 눈빛을 마주쳤다.
민아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민아!”
“그리고 가영입니다!”
꾸벅 인사하는 둘의 상큼한 모습에 교수와 학생들의 기대치가 높아졌다.
“저희는 영상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저희의 영상을 잘 시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둘은 영상을 틀고 얼른 자리를 비켰다.
화면에서는 생기발랄하게 여행을 떠나는 듯한 둘의 모습이 보였다.
영상에서 둘의 대화가 이어졌다.
[민아야, 우리 어디 가?]
[응, 요즘에 뜨는 길드가 있다고 해서 가보려고.]
[그래? 어딘데?]
[응, 혹시 너 천마 길드라고 알아?]
[와! 설마 천마 길드를 가는 거야?]
[아니, 천마 길드는 아니야. 그렇지만 천마 길드와 관련이 있어. 혹시 최근에 천마 길드와 지분 교환을 한 길드가 있는데 들어봤어?]
[지분 교환?]
[그래. 천마 길드와 지분, 즉 피를 나눈 사이라고 할 수 있지.]
[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
어느새 어느 사무실 또는 창고처럼 생긴 건물 앞에 도착한 둘은 함께 손으로 건물을 가리키며 외쳤다.
[소개합니다. 빰빠라밤! 샤론 길드!]
[와~!]
호들갑스럽게 소개하는 둘의 상큼한 모습에 학생들은 어느새 영상에 몰입하고 있었다.
[저희는 샤론 길드에 왔고요, 이곳에서 몬스터 사체를 구경할 것입니다. 몬스터 사체는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기본이지만, 또 그만큼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갓 잡아 온 싱싱한 몬스터 사체 구경을 떠나 볼까요? 따라오세요. 고고고~]
영상은 길드의 창고를 들어가더니 창고의 몬스터들을 소개해 주었다.
영상은 코볼트부터 시작했다.
[여기 이렇게 개처럼 생긴 머리에 인간형 몸체를 가진 몬스터가 있는데 무엇인지 아시겠어요? 네, 코볼트랍니다.]
영상은 코볼트의 머리, 몸, 발가락을 자세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쪽은 고블린, 놀이 있네요. 그리고 우왁!]
흔하지만 강력한 몬스터 오크가 있었다.
[여러분 오크예요.]
민아는 오크 옆에 나란히 누워보았다.
오크와 나란히 누운 모습에 오크의 덩치가 얼마나 큰지 한눈에 보였다.
[TV에서 헌터들이 오크를 토끼 잡듯이 잡는 모습을 많이 보았는데, 제가 이렇게 옆에 나란히 있으니 오크는 토끼가 아니었네요. 헌터님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화면은 점점 크고 강한 몬스터들을 보여주었다.
샤벨 타이거의 크고 멋진 모습이 보였고, 가영이가 여러 마리의 트롤 사이에서 민아를 찾다가 트롤의 허벅지 뒤에서 민아가 짠 하고 나왔다.
민아는 몬스터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스스로 축척이 되어 몬스터들의 크기를 알 수 있도록 했다.
[여러분 오우거 아시죠? 오우거의 머리는 몇 개일까요?]
화면은 트윈 헤드 오우거를 비췄다.
[여러분 키가 5m는 된다고 해요. 그런데 여러분 저는 왜 사체임에도 불구하고 무섭죠?]
거대한 트윈 헤드 오우거는 사체임에도 우람하고 육중한 모습이었다.
시청하는 학생들도 절로 감탄을 터트렸다.
그리고 화면은 자이언트 타란튤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나, 둘, 셋, 넷… 눈이 너무 많아요.]
많은 학생들이 징그러워했다.
그리고 화면은 장소를 옮긴 듯했다
[여러분 더 큰 몬스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짜잔, 이것은 바로, 드레이크!]
영상에는 한 화면에 다 담기지도 않는 거대 몬스터의 잔해가 있었다.
드레이크의 크기를 현실감 있게 보여주기 위해 민아가 가까이 다가갔다.
몸 크기가 발가락 한 개 정도였다.
드레이크는 높은 등급의 던전 보스급 몬스터였다.
그런 드레이크가 여러 마리가 보이자 학생들은 놀라워했다.
그렇게 여러 몬스터를 소개한 후 다시 민아와 가영이가 영상에 나왔다.
[여러분, 몬스터들을 잘 보셨나요? 오늘 주제는 던전에서 갓 잡은 싱싱한 몬스터 사체였는데요. 그런데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 거대한 드레이크들, 한 마리도 아니고 꽤 여러 마리였는데요. 과연 누가 드레이크 여러 마리를 잡을 수 있었을까요? 지금! 만나보시죠!]
화면은 잠시 모자이크 처리된 채 누군가를 비췄다.
화면에서 숫자 3, 2, 1이 순서대로 지나간 후 모자이크가 사라졌다.
그리고 훤칠한 키에 잘생긴 유럽 모델 같은 남자가 나타났다.
자막에는 이탈리아의 S급 헌터 까밀로라고 적혀 있었다.
까밀로가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까밀로라고 해요. 이렇게 아름다운 두 분과 영상을 찍게 되어 영광입니다.]
까밀로는 유창한 한국말로 자기소개를 했고 마지막에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와 함께 손가락 하트를 날려 주었다.
순간 강의실에서 영상을 보고 있던 여학생들의 환호가 울렸다.
민아가 다시 화면에 나와 설명했다.
[여러분 까밀로 헌터분 너무 잘생기셨죠? 에휴~ 우리나라에는 이런 헌터가 없을까요?]
그때 화면 속에서 가영이가 말을 받았다.
[있습니다.]
[네?]
[그런 헌터 있습니다.]
[누구죠? 우리나라에서 S급이면서 저렇게 잘생긴 헌터가?]
[바로!]
화면이 다시 모자이크로 변하며 누군가 걸어오는 모습을 비추었다.
강의실의 여학생들을 초집중을 하였고 남학생들도 뚫어져라 화면을 보았다.
모자이크가 풀리고 나타난 모습에 강의실에 모든 사람이 환호성을 외쳤다.
[와!]
[꺅~]
[엄마!]
차지율은 차지율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가 기대치 않은 어느 수업 과제의 영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대한민국의 S급은 총 다섯 명인데 그중에 남자는 네 명이었다.
그 남자들 중 한 명은 나이가 아주 많은 헌터협회장이었고 한 명은 은둔해서 얼굴조차 알려져있지 않았다.
그리고 남은 헌터는 노승민과 차지율이었다.
실질적으로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이 꿈꿀 수 있는 대한민국의 미혼 S급 남자 헌터들이었다.
그런 차지율이 영상에 나오다니 강의실이 들썩이지 않을 수 없었다.
차지율이 간단한 소개와 인터뷰를 해주었고 다시 민아가 화면에 나왔다.
[차지율 님의 멋진 모습을 잘 보았는데요, 여러분, 저는 다음에 나오실 분과 차지율 중에서 누가 더 멋진지 고르지 못할 것 같아요.]
가영이가 말을 보탰다.
[저도 그래요. 차지율 님이냐, 이분이야, 하~ 너무 어렵네요.]
[자,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이분은! 바로!]
다시 누군가 모자이크와 함께 등장했다가 모자이크가 사라졌다.
그는 바로 오성의 기갑 전사 노승민이었다.
이제 강의실에서는 감탄이 아니라 멘붕이 왔다.
아니 이게 조별 발표에 나올 인물들인가?
어떻게 조별 발표에 S급이 셋이나 나올 수 있는 것이지?
TV 정규방송에서 S급이 한 명이라도 나오면 시청률이 팍팍 오를 텐데, S급 셋이 등장한 조별 과제 발표는 거의 사기급이었다.
얼마 후, 인터넷 사이트에는 ‘흔한 대학 조별 과제’라는 제목의 글이 나돌았고 대부분 뻥 치지 말라는 댓글이 달렸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