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토벌대 (4)
“이야, 이거 때깔이 기가 막힙니다.”
“이거 바다 생선 맞지?”
“날 것을 그대로 썰은 것 같은데?”
“얼음 위에 올려 두어서 그런지 시원하기도 해. 시원하면서도 부드럽고, 쫄깃하면서도 고소해.”
“이거 생선 밑의 가느다란 채는 뭐지? 먹는 거지?”
“이 초록색 덩어리는 뭐지? 먹어볼까?”
“악!!! 매워! 으악!”
샤샤는 고추냉이를 통째로 먹고 괴로워하는 기사에게 해독 포션을 한 모금 건넸다.
신선한 샐러드, 부드러운 스프, 두툼하게 자른 사시미와 알록달록한 초밥 그리고 따뜻한 우동까지.
높은 산 위에서 먹는 사시미 정식은 기사들에게 맛 이상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거 너무 예뻐서 먹기 아까운데?”
“지난번 토벌에서는 계속 육포를 씹었는데 이건 영지에서도 못 먹던 음식인데?”
트란 산맥을 오른 지는 한나절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마나를 쓰는 기사들이 반쯤은 뛰듯이 올랐기 때문에 이동한 거리가 상당했다.
높은 고도, 울창한 숲. 주위를 둘러보면 가도 가도 산뿐이었다.
그런 야외에서 먹는 사시미 정식은 토벌대의 사기를 높이 올려주었다.
샤샤는 자신 있는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 음식을 꺼냈다.
“자, 마지막은 샤론의 명물, 핫바예요.”
샤론의 특산품 핫바를 나누어주었다.
따뜻하게 데운 핫바를 먹으니 기사들은 눈이 동그래지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맛있네.”
그렇게 우물우물 핫바를 먹던 기사들이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거 그냥 음식 맞아? 마나가 늘어난 느낌인데?”
“마나가 늘었다고?”
기사 한 명이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였다.
“나는 이상하게 힘이 늘어난 느낌이야. 분명해, 이 감각.”
“마나와 힘? 나는 몸무게가 줄어든 느낌이야. 이 핫바 뭡니까?”
디아론의 여러 기사들이 의문을 품고 샤샤를 보았다.
샤샤는 그들의 의문을 풀어주고자 크게 외쳤다.
“이 핫바는 샤론의 명물이에요. 핫바는 종류에 따라서 힘, 민첩, 체력을 조금씩 올려줘요. 소화되면 능력치가 다시 돌아오지만, 맛도 좋고 능력치도 잠시 올려주는 샤론 핫바! 앞으로도 애용해 주세요.”
샤샤의 설명을 들은 팬니르는 핫바를 먹고 몸속을 관조했다.
조용히 마나를 회전하며 뱃속에 들어간 핫바를 느끼려 애썼다.
핫바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핫바는 마치 마나 포션을 마신 것처럼 일렁대는 마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 마나는 잠시 요동을 치더니 팬니르의 몸 구석구석으로 이동했다.
“그랬군.”
승부의 세계에서는 작은 차이가 생사를 가르는 법이었다.
음식에 이렇게 기운을 내는 성분이 들어 있으니 토벌대의 사기가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팬니르는 샤론의 기사들이 막타를 치게 해달라는 부탁을 떠올렸다.
샤론의 기사들은 뭔가 달랐다.
디아론의 기사들은 몬스터를 죽이면 힘이 들 뿐이었지만, 그들은 주기적으로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몬스터를 죽여 강해지는 것이었다.
물론 몬스터를 죽이면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팬니르도 많은 몬스터와 생사의 대결을 하며 검술을 갈고 닦았다.
샤론의 기사들이 주기적으로 회복되는 조금은 이상한 방법으로 강해진다고 하지만 샤론이 이상한 것은 너무나 많았다.
“팬니드 대장님~”
샤샤가 팬니르를 불렀다.
“왜 그럽니까?”
“대장님, 말 편히 하세요. 이제 지휘권도 가져가셨잖아요. 대장님이 대장, 저는 대원. 그러니까 말 편히 하셔야죠.”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알았다.”
그렇게 사시미를 먹고, 핫바를 후식으로 먹고 토벌대는 다시 이동했다.
나는 미리 봐둔 방향으로 토벌대를 이끌었다.
[거기서 11시 방향으로 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와. 거기서 왼쪽 길로 가면 트롤 무리가 있어. 몬스터의 수는 최소 20마리야.]
내 쪽지를 받은 샤샤가 팬니르에게 내용을 전했다.
팬니르는 조금 고민을 했다.
“음, 트롤이 20마리 이상이 있다고 하는군.”
전면전으로 붙으면 이기기야 하겠지만 이건 무조건 피해가 발생할 것 같았다.
돌아가야 하나 피해가 있더라도 한판 붙어야 하나 고민하는 팬니르를 향해 알타르가 말했다.
“무기를 쓰시죠.”
“수량은 충분한가?”
“네, 넉넉히 준비해 두었습니다.”
알타르가 쪽지를 보냈다.
[민준 님, 다연발 발리스타를 사용하겠습니다.]
[네, 와서 가져갈 거예요?]
[아니요. 선물함에 몇 대 있습니다.]
[좋아요. 제가 위치를 잡아드릴게요.]
토벌대는 최대한 은밀하게 이동을 시작했다.
내가 말한 장소에 언덕 하나를 남겨두고 토벌대가 멈췄다.
[민준 님, 제가 화면을 한 번 보고 와도 될까요?]
[물론이죠.]
현재 알타르는 용병 신분이 아니었다.
용병을 세 명 등록할 수 있었는데 그 자리는 동서 형님, 종구, 나리가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 나리를 불러 용병을 해제하고 다시 알타르를 불러야 했다.
[나리야, 잠깐 알타르 님 지구로 부르게 용병 해제할게. 지구로 잠시 와봐.]
[넹]
“나리 소환, 용병 해제, 알타르 님, 등록 및 소환!”
조금은 귀찮은 과정이었지만 용병 스킬을 알차게 써먹으려면 순서를 잘 짜야 했다.
화아악!
알타르가 소환되었다.
나는 화면을 보며 알타르에게 말했다.
“여기 화면을 보세요. 이 정도면 지구 거리로 300m 정도 돼요. 거리가 될까요?”
“네, 저희 쪽이 조금 더 고도가 높기 때문에 충분히 거리가 될 것 같아요.”
“너무 멀거나 낮으면 제가 조절해 드릴게요.”
나는 화면상에서 보이는 거리를 알려주었다.
“이 정도가 10m예요. 얘네들도 한 대 맞으면 달아날 거잖아요. 어느 방향으로 피하는지 얼마만큼의 거리로 피하는지 알려드리면 다시 2차로 발사를 하세요.”
“알겠습니다.”
알타르는 아군과 트롤의 거리와 방향을 꼼꼼하게 살피고 돌아갔다.
“나리 땡큐, 나리도 이제 가서 준비해야지. 알타르 님이 이쪽으로 넘어와야 할 때는 또 부탁할게.”
“얼마든지요.”
그렇게 알타르와 나리를 모두 돌려보냈다.
[알타르, 준비됐나요?]
[네, 준비되었습니다.]
침묵 속에서 기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연발 발리스타 세 대가 준비되었다.
[우선 다연발 발리스타 한 대만 먼저 발사하겠습니다.]
[준비되었으면 쏘세요!]
알타르가 다연발 발리스타를 가동시켰다.
웅웅웅!
잠시간 진동이 일더니 발리스타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슈슈슈슈슈슉!
스무 발의 대형 마법 화살이 날아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기사들은 입을 떡하니 벌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목표가 된 트롤 무리를 화면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트롤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편안히 모여 있었다.
누워서 뒹굴거리고 있던 트롤 한 마리가 하늘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카륵?”
그것이 다가온 것은 순식간이었다.
퍼퍼퍼펑!
어지간한 나무 기둥 같은 화살은 단순한 대형 화살이 아니었다.
그 넓은 표면에는 화려한 모양으로 덕지덕지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순식간에 트롤이 있던 장소가 불바다가 되었다.
“크에엑!”
그래도 트롤은 상급 몬스터였다.
팔다리가 떨어져나가고 몸이 불타올라도 특유의 재생력을 발휘하며 화염지대가 된 장소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다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케이. 얘네들 오른쪽으로 몰려갔는데? 알타르 님! 방금 쏜 곳에서 오른쪽으로 100m 정도 이동했어요.]
[알겠습니다.]
알타르가 두 번째 다연발 발리스타를 가동시켰다.
웅웅웅!
슈슈슈슈슈슉!
허우적거리며 마법 화살이 떨어지는 곳을 피해 잠시 숨을 가다듬고 있던 트롤들의 머리 위로 다시 마법 화살이 떨어졌다.
퍼퍼퍼펑!
[이번에도 명중이에요.]
[감사합니다!]
어라? 쟤들 봐라.
[알타르 님, 트롤들이 열받았나 봐요. 토벌대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는데요? 조금만 있으면 언덕 위쪽에 도착할 것 같아요.]
[그러면 언덕 정상을 목표로 한 번 더 쏘겠습니다.]
[그래요.]
알타르가 세 번째 다연발 발리스타의 각도를 조절했다.
[지금이에요! 언덕 꼭대기! 쏘세요!]
슈슈슈슈슉!
발리스타가 불을 뿜기 시작하는 타이밍에 트롤들이 언덕 꼭대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캬아아아악!”
언덕 위에 도착하자 그 아래 있던 토벌대를 확인한 듯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괴성이 끝나자마자 도착한 것은 스무 발의 대형 마법 화살이었다.
퍼퍼퍼펑!
거의 초죽음이 된 트롤.
스무 마리의 트롤이라면 사실 디아론 성에서도 성벽을 끼고 싸워야 할 정도의 전력이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트롤은 스무 마리씩 모이지도 않았다.
저들이 왜 모여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큰 피해를 각오하고 접전을 벌여야 했다.
아니, 팬니르라면 결국은 회피를 선택했을 몬스터 집단이었다.
팬니르가 외쳤다.
“돌격!”
사십여 명의 기사들이 달려 나갔다.
“디아론의 기사들은 트롤의 팔다리를 자르고, 목을 치는 작업은 샤론의 기사들에게 맡겨라!”
맛있는 사시미를 먹여서 그런지 디아론의 기사들은 충실하게 트롤을 제압만 했다.
살아남은 트롤이 절반도 되지 않았고, 그 트롤들도 상태가 영 엉망이었다.
기사들은 손쉽게 트롤을 잡아내었다.
“아싸! 또 레벨업!”
고등급 몬스터의 막타를 쳐서 그런지 한나리가 또 기분 좋은 소리를 질렀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내 귓가로도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렸다.
선 폭격 후 돌격.
지구의 육군에서는 아주 기본적인 전술이었다.
지구의 군대에서 박격포 등으로 벌집을 만든 후 깃발을 꽂으러 가는 전략이었다.
그러한 지구의 육군 전술이 트란 산맥에서 응용되었다.
그렇게 트롤을 잡고 몇몇 잔챙이들을 더 잡다 보니 어느덧 트란 산맥의 밤이 찾아왔다.
토벌대는 숙소를 설치했다.
“텐트 받아 가세요.”
원터치 텐트는 공중에서 팡 하고 완성되는 신기를 보여주었다.
“텐트 바닥에는 매트리스를 까세요.”
점심으로 일식을 먹었으니 저녁은 한식이었다.
도시락 세트를 넣을까 하다가 험한 산속에서 고생들 하는데 밥이라도 따뜻한 것을 넣어주려고 근처 한식당으로 나왔다.
“사장님, 아까 전화 드렸던 40인분이요.”
40인분 주문에 사장님은 얼굴에 화색이 돌며 나를 맞이했다.
한식당에서 공급되는 음식은 트란 산맥에 커다란 테이블을 설치하고 바로바로 전달되었다.
한식당의 특징은 무엇인가?
토벌대는 끝없이 나오는 반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는 점심 먹었을 때, 더 이상 음식으로 놀라지 않을 줄 알았어. 그런데 이건 환상이네.”
그렇게 맛난 음식을 먹인 후, 휴식 시간을 가졌다.
“히히, 대장님. 잠깐 여기 앉으세요. 아주 편하고 좋아요.”
샤샤가 팬니르에게 의자에 앉으라 권했다.
커다랗고 이상한 의자가 있었다.
팬니르가 보기에 샤론은 의자도 이상했다.
“이게 뭐지?”
그렇게 말하며 팬니르가 의자에 앉았다.
이이잉.
꿀럭꿀럭.
의자가 움직였다.
“안마 의자예요.”
트란 산맥의 어느 봉우리에서 안마 의자로 안마를 받으며 팬니르는 샤론을 모두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
아침이 되면 산맥을 이동하며 몬스터를 잡고, 밥때가 되면 식도락을 펼쳤다.
나중에는 아예 식단표를 만들어주었다.
“오오! 오늘 저녁에는 불닭볶음이래!”
“내일 점심이 예술이야. 버섯 한우 불고기라고!”
“쯧쯧, 뭘 모르는군. 모레 저녁은 해산물 뷔페라고 써 있는 것도 못 봤어?”
창고 한쪽에는 마정석과 몬스터 사체가 쌓여 있었다.
40명의 기사급 인력이 몬스터를 쓸어 담고 있으니, 매일 업체가 와서 사체를 받아 가도 잠깐이면 또 몬스터 사체가 가득했다.
“사장님, 창고 설계 업자가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창고 설계 업자는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해왔다.
창고는 높고 편리하게 설계되었다.
원하는 물건은 지게차를 이용해 운반하거나 자동 레일을 타고 이동시킬 수 있었다.
또한 어디에 얼마만큼의 물건이 있는지 재고 관리가 한눈에 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었다.
“좋네요. 안 그래도 창고가 부족한데 얼른 지어주세요.”
업자는 내 허락을 받자 미소를 지으며 나갔다.
업자를 보내고 다시 트란 산맥 화면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민아였다.
“어, 왜?”
―오빠, 바빠?
“어, 바쁜데.”
―아니, 이번에 내가 조별 과제가 있는데 그게 던전 부산물에 대해 조사하는 거라서 오빠 찬스를 좀 쓸 수 있나 해서.
던전 부산물이라는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종류별로 수북하게 쌓인 몬스터 사체가 있었다.
“몬스터 사체도 괜찮아?”
―그거면 완전 좋지.
“그럼 시간 날 때 내 사무실로 와. 주소 찍어줄게. 오기 전에 문자 보내고.”
―응.
다시 며칠간 꾸준한 토벌이 진행되었다.
[민준 님, 팬니르 대장이 그러는데 지난번 드레이크와 접전을 벌인 장소에 다 왔다고 해요.]
[그래? 알타르 님에게 무기 재고 점검해 보라고 해. 이쯤에서 한 번 전열을 다듬어야겠네.]
[알겠어요.]
나는 주변을 수색했다.
얼마 후, 뭔가 폭격이라도 맞은 듯 나무가 부서지고 돌이 파인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이 드레이크와 접전을 벌였던 장소인 것 같았다.
줌인, 줌아웃.
천천히 드레이크를 찾아보았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