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토벌대 (3)
스테미너 포션을 나누어주니 여기저기서 맛있다고 하면서 자체 광고를 찍고 있었다.
“캬~ 이 맛이 포션이지.”
“사랑해요. 스테미너 포션!”
“아주 힘이 불끈 하구만. 드레이크가 아니라 드레이크 할아버지가 나온다고 해도 이 기세면 충분할 듯해.”
디아론 측에서는 최종적으로 팬니르를 포함해서 31명이 참가를 했고, 우리 쪽에서는 9명이 참가를 했다.
소환수 세 명에 알타르, 르녹, 꾸얀 그리고 샤론 길드원인 동서 형님, 종구, 나리도 참가했다.
팬니르가 샤샤에게 말했다.
“샤샤 님, 산에 오르기 전에 편제를 갖추고 올라갔으면 합니다.”
샤샤는 팬니르의 존대에 조금 당황했다.
“대장님, 왜 저에게 존대를 하세요?”
“샤샤 님께서 영주 대리를 하신다는데 아무리 영지가 달라도 저는 기사, 샤샤 님은 영주 대리이시니 존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규정과 방침대로 하는 팬니르였다.
저 뒤에서는 상급 기사 안톤이 자기는 아까 샤샤에게 반말로 말했었다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팬니르가 말했다.
“두 영지의 기사들이 모였으니 명령 체계를 분명히 하고 올라갔으면 합니다.”
맞는 말이었다.
샤샤는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나에게 물었다.
[샤샤야, 난 당연히 팬니르가 지휘를 할 줄 알았어. 늘 그랬잖아.]
[민준 님,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팬니르 대장이 갑자기 격식을 갖추시네요.]
그때 이런 계급과 명령 체계에 익숙한 카나가 나섰다.
[민준, 이번 토벌대에서는 당연히 가장 계급이 높은 민준이 지휘권을 가지시는 것이 옳아.]
[헐, 내가 지휘를 하라고? 그건 조금 아닌 듯. 카나야, 아무리 내가 주변을 둘러본다고 해도 그건 정찰의 의미야. 현장에 함께 있는 사람이 지휘를 해야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내가 지휘를 하면 어떡하니?]
[그러면 방법이 있지. 민준이 지휘를 하기 불편하다면 마음에 드는 기사에게 지휘권을 부여하면 돼. 그러면 모두가 납득할 거야.]
나는 그제서야 팬니르와 카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두 영지의 기사들이 모였는데 처음부터 팬니르가 지휘권을 써버리면 우리 쪽 기사들이 반발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샤샤야, 내 말을 전해줘. 나, 샤론 영주는 이번 토벌대의 지휘권을 디아론 영지의 팬니르 기사에게 위임한다고 말이야.]
샤샤가 내 말을 크게 외쳤다.
“지금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신 샤론 영주님의 말씀을 전달하겠습니다. 나, 샤론 영주는 이번 토벌대의 지휘권을 디아론 영지의 팬니르 기사에게 위임한다.”
팬니르는 하늘을 향해 무릎을 꿇고 내 말을 받드는 모습으로 외쳤다.
“기사 팬니르가 샤론 영주님께 이번 트란 산맥의 지휘권을 위임받았습니다.”
복잡했다.
하지만 이런 행위를 통해 두 영지의 기사들이 반목하지 않고 하나가 된다 생각하니 팬니르가 노련하고 현명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샤샤나 제리는 팬니르의 지휘를 받았지만 르녹, 꾸얀, 동서 형님, 나리, 종구는 디아론 기사들과의 합동 토벌이 처음이었다.
나는 동서 형님, 나리, 종구에게도 쪽지를 보냈다.
[형님, 나리, 종구야 거기 팬니르라는 기사분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에요. 지금 마스터 되기 직전의 간당간당한 실력이니까, 지구의 등급으로 치면 A+급 딜탱은 될 거예요. 게다가 이곳 트란 산맥 토벌은 고인물이니까 공대장으로 믿고 따라주세요.]
동서 형님, 나리, 종구가 말했다.
[아, 오키. 걱정 마. 당연히 공대장을 잘 따라줘야지.].
[오키도키 알았어욧!]
[ㅇㅋ]
모두로부터 지휘권을 인정받은 팬니르가 지휘를 했다.
“샤론 영지의 인원은 1조, 디아론 영지의 기사들은 10명씩 조를 나눈다.”
기사들이 착착 인원을 나누었다.
“조장들은 무전기를 착용하고 통신을 확인하라.”
삐리릭.
“잘 들리나 오버?”
“잘 들린다. 오버.”
조가 나누어지고 각 조장들의 무전까지 완성이 되자 팬니르가 명령을 내렸다.
“트란 산맥으로 진입하라!”
모든 인원이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기사급인데다가 스테미너 포션 희석액을 마셔서 그런지 탐사 속도가 매우 빨랐다.
반쯤은 뛰어가는 속도에 맞춰 나도 열심히 토벌대의 앞길을 확인했다.
“알파야! 줌인, 줌아웃!”
혹시라도 있을 몬스터를 찾아야 했다.
어? 고블린이다.
[3시 고블린]
내 쪽지를 받은 샤샤가 받아 무전을 날렸다.
삐리릭!
“3시 고블린.”
그 무전을 들은 팬니르가 부대를 정지시켰다.
“부대 정지. 4조 6시 방향으로 우회, 3조 12시 방향으로 우회, 나머지 3시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
순식간에 학익진을 형성하며 고블린 무리를 감쌌다.
고블린 스무 마리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키르륵?”
이 정도 전력 차이면 볼 것도 없었다.
“공격.”
팬니르의 명에 고블린 스무 마리가 순삭당했다.
기사들 중에는 칼 한 번 못 썰어본 인원이 절반이 넘었다.
“자, 다시 기본 대형으로!”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 * *
강원도 설악산 울산바위 꼭대기에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갑옷에 검을 찬 모습과 그들 주위에 일렁거리고 있는 포탈을 보니 대부분 헌터였다.
그때 포탈이 크게 흔들리더니 십여 명의 사람들이 나왔다.
천마 차지율과 그의 친위대였다.
차지율이 나오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인사를 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차지율도 인사를 했다.
“다들 고생 많았어요.”
“길드장님이야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몇몇 헌터들은 갑옷이 찢어져 맨살이 드러나 있었고, 대부분의 헌터의 갑옷 틈새에 몬스터의 점액질이 곳곳에 묻어있는 모습을 보니 쉽지 않은 교전을 벌이고 나온 듯했다.
천마가 포탈에서 나오자 지원조가 다가왔다.
천마가 지원조와 함께 다가온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실장님, 새로 생긴 포탈이 있나요?”
“있습니다. 길드장님이 이곳 울산바위A 던전에 들어가신 지 96시간 30분이 되었는데 약 30시간 전에 제주 용눈이 오름에서 A급 던전이 열렸습니다.”
“그래서요?”
“그곳은 오성이 맡기로 했습니다.”
“다행이네요.”
말은 다행이라고 했지만, 천마는 인상을 푹 썼다.
자꾸 A급 던전이 발생하는데 A급 던전을 안정적으로 클리어할 수 있는 헌터의 수는 한정적이었다.
B급 던전 이하는 차지율이 신경 쓰지 않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인원이 많았다.
하지만 A급 이상의 던전은 S급 헌터가 포함되어 줘야 안정적인 클리어가 가능했다.
A급 헌터만 모아도 A급 던전을 클리어할 수는 있지만, 그럴 경우 언제든지 피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감안해야 했다.
“길드장님이 들어가신 후, 협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협회장님이 천마와 오성이 A급 이상의 던전에 대한 협력을 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천마는 2L물통 하나를 받아서 왼쪽 팔에 쏟아부었다.
콸콸.
몬스터의 이물질을 떼기 위함이었다.
물을 절반쯤 왼쪽 팔에 붓고는 나머지 물로 세수했다
“아, 시원하네. 실장님.”
“네.”
“우리와 오성이 지역을 나눠서 관리하고 있잖아요.”
“그렇죠.”
“이제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슬슬 힘에 부치네요.”
천마가 힘에 부친다는 표현을 하자 실장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마 차지율은 개인의 공격력만을 따지면 한국 최강이었다.
또한 길드의 힘으로도 둘째라면 서러웠다.
그런 천마가 힘에 부친다면 누가 힘들지 않을까?
“이제는 자기 구역 관리가 아니라 똘똘 뭉쳐야 할 때 같아요.”
차지율은 천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마음에 안 들면 다 때려 부수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레이드를 펼칠 때는 철저하게 조사하고 준비하는 알고 보면 지적이고 꼼꼼한 스타일이었다.
“저 다음 스케줄은 어떻게 되죠?”
“내일 헌터 협회장님과 면담이 있고, 주말에 인천 던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헌터 협회장의 연락이 있었습니다.”
“다음 주 초에 스케줄 좀 비워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시죠?”
“김민준 헌터가 도와달라고 해서요.”
“어느 던전이시죠?”
“아, 한국에 있는 건 아니고 민준 헌터 개인 소유 던전인데, 드레이크를 잡으러 간다고 하네요.”
“드레이크요? 어떤 드레이크를 잡으러 간다고 하시던가요?”
“그건 말 안 했어요. 하지만 민준 헌터도 데리고 다니는 인원이 많아서 어지간한 드레이크면 어찌어찌 잡긴 할 거예요. 뭐 내가 가면 더 쉽고.”
“그렇죠. 길드장님이 가시면야 뭐, 드래곤도 아니고 드레이크인데 별일 있겠습니까?”
“아, 혹시 드레이크 퀸이면 또 모르겠네요.”
“에이, 퀸이면 퀸이라고 말을 했겠죠.”
“그렇죠?”
“그럼요.”
* * *
“다 때려 부숴!”
퍽! 콱! 콰직!
나는 화면을 보며 연신 주먹을 휘두르고 어퍼컷을 날렸다.
나는 상급 기사 안톤의 1인칭 시야와 화면을 같게 맞춰두었다.
즉, 상급 기사 안톤이 눈으로 보고 있는 모습과 내가 보는 화면은 거의 같았다.
안톤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화면이 왼쪽으로 돌아가고 안톤이 자세를 낮추면 화면도 낮아졌다.
안톤이 공중돌기를 한 후 메이스를 휘두를 때면 화면도 휙휙 돌아갔다.
“아! 나 메이스의 매력에 빠져버릴 것 같아. 저 폭력성! 거친 야성미! 남자라면 몽둥이지! 다른 애들 화면보다 안톤이 제일 재밌네.”
조금 전 오크 부락을 발견했다.
오크들은 백여 마리가 넘었다.
오크의 수가 토벌대보다 많았지만, 개인적인 역량은 이쪽이 훨씬 우위였다.
막말로 시간과 물자만 넉넉하다면 샤샤 혼자서도 잡을 수 있었다.
나는 문득 각각의 기사들은 어떤 관점으로 싸움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중에 팬니르가 제일 궁금했다.
팬니르의 검술이 가장 고급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런 고급 검술을 쓰는 기사의 시선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래서 팬니르의 시선으로 사냥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시선의 모습은 그리 역동적이지 않았다.
뭐랄까?
팬니르의 시선으로 사냥하는 모습을 보니 오크들이 다가오다가 그냥 푹 찔려서 죽었다.
시선이 왔다갔다 복잡하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냥 다가가서 푹!
그러면 끝이었다.
뛰지도 않고 그냥 걸어가서 푹.
물론 고수라서 그렇겠지만 아무리 봐도 화면으로 그 고수의 검술을 느끼는 건 무리였다.
한참을 보다가 다른 기사들도 돌아가며 보았다.
그러다 찾은 시선이 안톤이었다.
안톤은 시선 맛집이었다.
마침 안톤이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공중회전처럼 공중을 날아 회전하며 메이스를 휘둘렀다.
화면도 함께 핑핑 돌았다.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이었다.
“그렇지! 다 때려 부숴!”
안톤은 메이스로 때려 부쉈다.
오크의 머리가 보이면 오크 뚝배기를 때려 부수고, 방패로 막으면 방패를 때려 부쉈다.
퍽! 퍽! 퍽! 퍽!
나도 모르게 감탄을 했다.
“거, 시원하게 뚜드려 패는구나.”
기사들은 검을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시선을 화면으로 비추어 볼 때는 검보다는 메이스가 시원하고 맛깔스러웠다.
곰으로 변한 동서 형님의 시선으로도 화면을 보았다.
하지만 곰으로 변한 동서 형님의 시선은 정말 별로였다.
“형님아. 왜 오크를 물어…….”
화면에서 오크를 무는 모습은 호러 무비가 따로 없었다.
눈 버렸다.
동서 형님에게 입을 헹구라고 생수를 많이 넣어드려야 할 것 같았다.
곰에게 물리는 오크가 불쌍했다.
샤샤나 나리, 알타르처럼 원거리들의 시선은 깔끔하긴 한데 보는 맛은 부족했고, 동서 형님은 너무 가까워서 탈이었다.
그때 동서 형님이 뭔가 기분 좋은 듯 승리의 어퍼컷을 날리고 있었다.
[형님, 왜요?]
[어, 레벨업해서.]
그 말을 듣고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지금 이러한 전투 방식이 효과적인가?
지금의 전투는 모두가 착실하게 안정적으로 균등하게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디아론의 기사들이 몬스터를 죽이면 어떤 이득이 있지?
없었다.
그들은 몬스터를 죽인다고 해도 경험치를 먹지 않았다.
그러면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인원에게 막타를 넘겨야 하지 않을까?
오크 부락이 정리되자 나는 팬니르와 다시 상의를 했다.
팬니르가 부대를 다시 재편성했다.
“조를 다시 편성하겠습니다. 샤론 영지의 기사 한 명에 디아론 영지의 기사 세 명에서 네 명 정도가 묶여서 한 조가 됩니다.”
다시 재편성된 조는 전투 방법도 다르게 하기로 했다.
“새롭게 편성된 조원이 함께 몬스터를 처리하되 최종적으로 몬스터의 목숨을 끊는 행위는 샤론 영지의 기사들이 담당하도록 합니다.”
디아론의 기사들은 왜 샤론의 기사들이 막타를 치는지 의문인 듯했다.
하지만 곧 이어진 점심 식사를 보며 모든 의문을 잊고 충실한 경험치 제조기가 되었다.
“자, 사시미 정식 코스 40인분 들어갑니다.”
오늘은 평일 런치라 가격도 쌌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