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토벌대 (2)
나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지율 헌터님, 반가워요. 어쩐 일이세요?”
―네, 민준 헌터님이 오성이랑 레이드를 같이 하고, 또 어디 해외에 나갔다가 들어오셨다고 해서 전화해 봤어요. 요즘 뭐 하세요? 바쁜 일 끝나셨으면 훈련장은 오셔야죠?
차지율 헌터가 내가 오랫동안 천마 길드 훈련장에 나가지 않자 연락을 한 것 같았다.
“아… 지율 헌터님. 어쩌죠. 제가 또 레이드가 잡혀 있어요. 지율 헌터님도 지난번에 샤론 영지 축제에 오셨죠?”
―네, 그럼요. 갔었죠. 샤론은 아름다운 영지였고 축제도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혹시 기억나시는지 모르겠지만 그 주변이 죄다 산이에요. 샤론의 북쪽은 아주 커다란 산맥이에요. 그런데 그 산맥에는 몬스터가 아주 많아요. 그래서 주기적인 몬스터 소탕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피해를 입게 돼요. 이번에 그 산맥으로 몬스터 토벌을 하러 가게 되었어요.”
―그렇군요.
전화를 하다가 나는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
지구의 S급 헌터를 트란 산맥에 투입시킬 수 있을까?
“저… 지율 헌터님도 트란 산맥 레이드에 관심 있으세요? 오시면 아주 든든할 것 같은데요. 이번에 드레이크 잡으러 가거든요. 그 아용족으로 알려진 드레이크 아시죠? 지율 헌터님이라면 칼로 써는 맛이 제법 괜찮은 몬스터일 거예요. 아, 그리고 시간 되시는 때만 참여하셔도 돼요. 몬스터는 언제나 많답니다.”
“드레이크요? 조금 솔깃한데요? 네 좋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는 어렵고 다음 주 초에 시간이 되네요. 그때 합류해도 될까요?”
“아이고 S급이 와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나는 천마 차지율이 합류하기로 한 김에 오성과 이탈리아의 헌터인 까밀로에게도 연락을 해보았다.
“노승민 헌터님?”
“헬로? 까밀로?”
모두 당장은 어렵지만 시간을 내보겠다는 대답을 해주었다.
까밀로는 로마로 돌아갔을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한국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고 샤론의 레이드에도 참가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S급들에게 편하게 전화를 걸고 나도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트란 산맥 토벌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먼저 알타르에게 연락을 했다.
“알파야? 알타르 님에게로.”
화면이 디아론 백작가로 이동했다.
알타르는 디아론 백작가에서 무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샤론 영지에서 알타르 혼자 만들기는 어려워, 인력이나 장비 등이 부족할 테니 기존 인프라가 갖춰진 백작가에서 협업하여 만들라고 했다.
알타르야 백작가의 수석 마법사이기도 했으니 편하게 일할 것이었고, 백작가에서는 알타르가 만드는 걸 배우면 기술이전이 되는 셈이니 당연히 환영했다.
화면에 무기의 모습이 보였다.
뭐가 으리으리한 것들이 많아 보였다.
알타르는 한눈에 보아도 멋있는 무기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알파야, 알타르 님에게 용병 제안을 해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알타르 님?]
[네, 스승님.]
[드레이크용 무기들은 준비가 되었나요?]
[네, 일단 세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스승님의 창고에서 보관해야 할 것 같으니 가져가서 하나씩 보여드리겠습니다.]
알타르는 본인의 선물함에 무기 하나를 넣고 지구로 소환을 요청했다.
나는 창고로 자리를 옮겨 알타르를 소환했다.
화아악!
알타르가 창고에 소환되었다.
“스승님, 잠시만요.”
알타르는 선물함에서 거대한 뭔가를 꺼내었다.
뭔가 커다란 육면체가 있었고 그 육면체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받침대가 있었다.
커다란 육면체에는 사람 머리통 크기의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었다.
구멍이 스무 개는 되어 보였다.
“이게 뭐죠?”
“발리스타를 응용한 무기입니다. 발리스타는 대형 화살이 한 발만 날아갑니다. 하지만 이것은 대형 화살이 연속으로 날아가도록 만들었습니다. 한 번에 스무 발이 날아갑니다. 어지간한 드레이크라고 해도 연속으로 날아가는 대형 화살에 벌집이 될 것입니다.”
다연발 로켓 같았다.
“지구에도 이런 것이 있어요. 다연발 로켓? 신기전? 그런 것 같은데요?”
알타르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지구의 무기들을 참고했습니다. 얼마 전 로마에 소환되어 여행을 다닐 때 TV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무기에 대한 영상이 나오더군요. 그때 왜 발리스타를 동시에 여러 발 날릴 생각을 왜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원래 아이디어란 게 떠올리는 게 어려운 것이다.
“그랬군요. 테스트는 해본 건가요?”
“네. 해봤습니다. 동시에 스무 발이 지구의 단위로는 수백 m까지 도달했습니다.”
알타르는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저는 강력한 폭발력으로 빠르게 물체를 날리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지금도 그런 고정관념에 쌓여 있을 겁니다. 강력한 폭발력으로 물체를 빠르게 쏘아 보내 피해를 준다. 발리스타를 포함한 대형 무기의 기본이지요. 그런데 그러려면 폭발력이 강해야 하고 이를 감당할만한 그릇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강력하지는 않아도 되니 일단 날아가게만 한 후 약하게라도 도착하면 마법 화살 자체에 걸려있는 마법으로 피해를 준다는 개념이 놀라웠습니다. 저는…….”
알타르가 설명을 하다가 신이 났나 보다.
나는 알타르의 설명을 어느 정도 들어준 후, 물었다.
“좋아요. 다른 무기도 있어 보이던데요?”
“아, 그렇죠! 다시 디아론 성으로 다녀오겠습니다.”
화아악!
알타르가 다시 디아론 성에 다녀온 후 선물함을 열었다.
겉보기에는 발리스타 같았다.
“이건 발리스타인가요?”
알타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대 드레이크 전용 작살입니다.”
“작살이요?”
“네, 보기에는 발리스타와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날아가는 화살이 다릅니다.”
알타르는 작살을 보여주었다.
금속으로 만든 작살과 작살에 연결된 체인이 있었다.
들어보니 무게가 상당했다.
“이거 묵직한데요?”
“네. 무거워서 그냥은 날아가지도 않습니다. 마법진을 활성화해야 날릴 수 있습니다.”
“꼬챙이고 꿴 다음 줄로 붙든다는 개념인가요?”
알타르는 씩 하고 미소를 지으며 다시 TV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로마 여행을 하다가 밤 12시 무렵 보았던 TV 채널에서 얻은 영감을 응용했습니다. 제목이 태평양 참치잡이였습니다. 저는 지구에서 그렇게 커다란 물고기가 잡히는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참치를 전기 마법으로 지지더군요. 물고기는 작살로 꿰어 당긴다는 생각만 했지, 전기로 기절시킨다는 개념이 놀라웠습니다.”
“아, 그럼 이 작살은?”
“네, 그렇습니다. 드레이크의 피부를 관통시킨 후 붙드는 용도뿐만 아니라 체인 라이트닝 마법을 전달하도록 했습니다.”
순간 알타르가 똑똑해 보였다.
하긴 알타르는 빽 없이 오직 재능만으로 4서클에 올라간 인재였다.
내가 약빨로 5서클로 올려 주었지만, 애초에 똑똑한 인재였던 것이었다.
“대단해요. 훌륭합니다.”
내 칭찬이 마음에 들었는지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알타르였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아저씨가 내 칭찬에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참 묘했다.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알타르 님, 아주 마음에 듭니다. 고생하셨어요. 최고예요.”
칭찬은 드래곤도 춤추게 한다던가?
“스승님! 아직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그래요?”
“스승님,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알타르는 헐레벌떡 다시 디아론 성에 다녀왔다.
나는 이번에는 또 뭔가 싶어서 보았다.
이번에는 둥글둥글한 반구였다.
“이건 또 뭐죠?”
“드레이크를 향해 멀리서 다연발 발리스타로 공격하고, 어느 정도 피해를 입힌 후 근접하면 작살로 꿴 후 전기 공격을 합니다. 그러면 드레이크도 가만히 안 있겠죠. 아마도 발악할 겁니다.”
“그렇겠죠.”
“드레이크는 화염 브레스를 쓰곤 합니다. 얼마 전 디아론 성의 기사들도 드레이크의 화염 브레스에 많은 피해를 보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불가마입니다.”
“아하, 요 속에 들어가서 불을 피하라는 건가 보죠?”
“네. 이걸 들고 다니라면 조금 어렵겠죠. 드레이크와의 전투 시 곳곳에 깔아 두었다가 브레스를 쓸 것 같을 때 들어가 숨는 겁니다. 1서클 마법 중에 땅을 파는 마법인 디그가 있습니다. 디그 마법을 응용해서 땅을 파면서 뚜껑을 덮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안쪽에서는 온도조절 마법과 숨을 쉴 수 있는 바람 마법을 추가했습니다.”
나는 반구를 만져 보았다.
두께가 한 뼘 이상인 돌이었다.
“그냥 돌이 아닙니다. 이것도 로마에서 본 TV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건 또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이번 것은 한국 프로그램인 극한의 직업이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지구에서는 금속을 녹여 다양한 물건을 만들더군요. 저는 엄청나게 뜨거운 금속을 녹이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 금속을 보관하는 통이 더 신기했습니다. 저렇게 뜨거운 것을 보관하는 통은 또 뭔가 이런 것을 궁금해하니 돌과 모래는 드레이크의 불을 막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드레이크를 잡냐 못 잡냐가 아니라 얼마나 적은 피해로 잡냐의 문제인 것 같았다.
“알타르 님.”
“네.”
“종종 시간 될 때마다 지구에 와서 TV 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알타르와 다른 기사 둘을 용병으로 등록해 사무실 창고에 무기를 가득 옮겨 두었다.
커다란 무기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며 옮기다 보니 창고가 거의 꽉 찼다.
나는 사무실 직원을 불렀다.
“상일 씨, 홍민 씨.”
“네, 사장님.”
“창고의 공간이 부족하지 않나요?”
“보통 70% 정도는 찼었는데 지금은 거의 꽉 찼네요. 사장님 레이드 하실 때는 더 차긴 했는데 이번에 가져온 것들이 부피가 크네요. 공간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창고를 옆에 하나 더 지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레이드를 해야 해서 알아보기는 어려우니 업자를 알아보시고 설계를 받아주세요. 요즘은 창고도 다 자동이던데 지금 창고보다 크고 깔끔하게, 현대식으로요.”
“네, 알아보겠습니다.”
다음 날.
디아론 영지에서 출정식이 열렸다.
성내의 주민들은 무사 귀환을 기원하였고 디아론 백작은 토벌대에 참가하는 기사들을 한 명 한 명에게 승리의 의식을 치러주었다.
팬니르를 대장으로 하는 디아론의 기사들이 출전했다.
기사들은 우선 밤나무 마을로 이동했다.
샤론에서도 마찬가지로 출정식을 열었다.
디아론처럼 수십 명이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영지를 이끌어가는 이들이 모두 참가하는 토벌이었다.
샤샤, 제리, 카나, 알타르, 르녹, 꾸얀까지 모두 참가하기로 했다.
혹시라도 영지에 무슨 일이 있을까 봐 내가 하루에 한 번 영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영지에서 나에게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샤론의 영주관에 붉은 깃발을 올리기로 했다.
샤론과 디아론의 토벌대가 합류했다.
“팬니르 대장님, 오랜만이에요.”
“안톤 님, 반가워요.”
“샤샤, 오랜만이야.”
“제리야, 이렇게 또 산맥을 같이 오르네. 이번에도 잘 부탁해.”
“냥”
“와, 이번 탐사는 샤론과 함께니까 푹신한 바닥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거지? 나 너무 기대돼.”
디아론의 기사들은 우리와 함께 산에 오르니 편안하고 충실한 보급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는 모양이었다.
[샤샤야. 스테미너 포션 희석액 한 잔씩 돌리고 출발하자.]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이었다.
“팬니르 대장님. 저희 마스터께서 스테미너 포션 희석액 한 잔씩 돌리고 산을 오르자고 하십니다.”
팬니르도 씩 하고 미소를 지었다.
샤샤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한 잔씩 하고 올라가요!”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