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합동 토벌
지이이잉.
스마트폰이 울렸다.
누군가 보니 오성의 S급 노승민 헌터였다.
“네, 승민 헌터님.”
―민준 헌터님. 한국에 오셨다고요?
“네, 오늘 도착했어요.”
―지난번에 화룡 레이드를 하고 제가 차를 한 대 보내드린다고 했잖아요.
“아…….”
―이제 슬슬 도착할 거예요. 선물함 크기에 맞췄으니 편하게 쓰실 수 있을 거예요.
“거기까지 생각해주시다니 완전 감동이에요. 고마워요.”
―하하, 뭘요. 샤론과 앞으로도 돈독하게 지내자는 의미입니다.
“감사합니다.”
얼마 후, 정말로 차량이 도착했다.
대형 트레일러에 육중한 무언가를 싣고 왔다.
쿠르르르르.
트레일러 위의 그것이 천천히 내려왔다.
“와…….”
이걸 차라고 해야 할까?
사무실 앞 공터로 트레일러가 도착하자 직원들도 나와서 구경을 했는데 다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장님, 전쟁하세요?”
“전쟁 맞지. 헌터신데.”
“그러네요. 그리고 이건 차가 아닌데요?”
내가 생각한 차는 바퀴가 네 개가 있는 것이었다.
던전에서 사용한다고 하니 오프로드용으로 바퀴가 큰 사륜자동차 정도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무한궤도가 달린 탱크 같았다.
탱크처럼 앞에 대포가 달려 있지는 않으니 장갑차 정도로 불러야 할 것 같았다.
차량에서 운전자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오성에서 나왔습니다. 김민준 헌터님이신가요?”
“네, 접니다.”
오성에서 나온 직원은 차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장갑차도 차라는 글자로 끝나니 차라는 건가?
탱크 같은 바퀴를 보니 이걸 어떻게 운전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샤샤, 카나 소환.”
화아악!
샤샤와 카나가 소환되었다.
“잘 배워 둬.”
오성에서 나온 직원은 우리에게 한 시간 정도 차량 운전 방법을 알려준 후 실제 주행 연습을 하자고 했다.
“이거 도로에서는 운전하면 안 됩니다.”
“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도로에서 운전하면 안 된다니, 그럼 뭐 어쩌라는 건가?
“던전에서만 운전하셔야 해요.”
아, 그런 뜻이었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이 물었다.
“어떻게 지금 시간 되세요? 던전 들어가 보려는데 연수 가능하신가 해서요.”
“저희는 가능합니다.”
“좋습니다. 자, 그러면 알려드린 대로 차량 축소형으로 변신해 보세요.”
차량은 축소, 확장이 가능했다.
축소 형태는 가로세로 3m 정도 크기였고, 확장형으로 변신하면 높이가 낮아지고 앞뒤로 더 길어지는 형태였다.
“선물함 크기에 맞췄습니다. 선물함에 넣어 보시죠.”
카나가 얼른 선물함을 비운 후, 차량을 선물함에 담자 쏙하고 차량이 선물함에 들어갔다.
소환 등급이 오르면서 맨 처음 샤샤와 계약할 때보다는 선물함의 크기도 제법 커져서 차량을 넣고도 여유 공간이 남아 있었다.
카나의 선물함에 차를 싣고 인근 던전으로 향했다.
가까운 곳에 E급 던전이 하나 있었다.
마침 오성에서 나온 분도 E급 헌터였다.
메카닉 계열의 스킬이 있어서 오성에서 기술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샤샤, 제리, 카나, 나, 직원분이 함께 던전에 들어갔다.
“선물함에서 차 꺼내 봐.”
카나가 선물함에서 차를 꺼냈다.
“얘들아, 너희들은 샤론에 가서 실컷 연습해보도록 하고 오늘은 내가 좀 몰아봐도 될까?”
평상시에 나는 별로 욕심이 없는 스타일이었는데, 장갑차처럼 생긴 차량을 보니 나도 남자인지라 욕심이 생겼다.
“민준 님 뜻대로 하세요.”
“알았어.”
“냥.”
나는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를 잡았다.
“내가 이래 봬도 1종 보통 면허가 있는 사람이야.”
“오빠 달려!”
부와와앙!
“전방에 고블린이에요!”
퍽! 캑!
차를 몬 지 3분 만에 고블린 한 마리를 차로 쳐버렸다.
“오오! 민준 님, 이거 좋은데요? 그냥 달리면서 차로 깔아버리면 끝이네요.”
“그러게, 이동 속도도 빨라서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도 시간 단축이 많이 될 것 같아.”
“냥.”
오성에서 온 직원은 나에게 차근차근 도로 주행 연수를 시켜주었다.
“여기 이 버튼을 누르면 천장이 열립니다.”
지이이잉.
천장이 가운데 부분이 열렸다.
사람 서너 명이 서 있어도 될 것 같았다.
샤샤가 일어서서 활을 꺼냈다.
“저는 이렇게 활을 날려도 될 것 같은데요?”
저 앞에 고블린 무리가 나타났다.
“파이어 애로우!”
핑, 핑, 핑.
샤샤의 화살이 날아갔다.
이곳 E급 던전에서는 차량의 돌진을 막을 몬스터가 없었다.
골렘형 몬스터처럼 덩치가 크고 무거운 몬스터가 아닌 다음에는 저등급 던전에서는 물리적으로 차량을 막기 어려워 보였다.
한참 달리다 보니 호수가 나타났다.
“자, 여기 버튼을 누르면 수중 모드로 변신을 합니다.”
수중 모드 버튼을 누르자 지붕 창문이 닫히고 차량의 곳곳에서 뭔가 덜컥 소리가 났다.
“이대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쿠르르르르.
차량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자, 여기 버튼이 부력 조절입니다. 위로 뜨려면 이것, 아래로 가라앉으려면 이 버튼입니다.”
조금 어려웠지만 완전 재미있었다.
시간 될 때마다 던전에 와서 드라이브를 즐기고 싶었다.
그렇게 몇 시간의 드라이브 겸 몬스터 헌팅을 했다.
직원이 가면서 말했다.
“혹시 어려운 일 있으시면 여기 명함으로 전화 주시고요, 오성에서 전화가 가면 꼭 매우 만족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그럼요. 매우 만족했습니다.”
진심으로 매우 만족이었다.
* * *
고풍스런 가구들이 있는 집무실 안.
사각사각.
디아론 백작은 서류에 연신 사인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디아론 백작은 어느 서류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음…….”
디아론 백작이 서류를 자세히 읽어 보았다.
[트란 산맥 정기 토벌 결과 보고]
참가: 기사 50명, 짐꾼 50명 참가
기간: 50일
성과: 오우거 5마리, 트롤 28마리 외 다수 몬스터 사살
피해: 기사 12명, 짐꾼 37명 사망
특이사항: 드레이크와의 전투 시 기사단의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으며 드레이크는 토벌하지 못하고 달아남.
“피해가 너무 커.”
트란 산맥의 정기 토벌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기적으로 토벌을 해줘야 인근의 마을에서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고, 혹여나 두 개의 달이 뜰 때 밀려오는 몬스터의 수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기사까지 죽어서는 안 된다.
기사는 새로 보충하고 키워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성과가 좋다 하더라도 피해가 크면 손해였다.
“음…….”
디아론 백작의 고민이 깊어졌다.
성과가 있어도 피해가 크면 손해다.
하지만 그렇다고 토벌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 한꺼번에 대량의 손해를 본다.
기사단의 피해는 거의 없으면서 몬스터들을 줄이는 것이 최선이긴 한데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고서의 끝부분에는 트란 산맥의 몬스터 토벌을 샤론 영지와의 연합으로 하자는 제안이 쓰여 있었다.
“카나가 조금 뜸한데…….”
샤론 영지의 영주인 소환술사가 전투에 참여하면 좋다는 것을 디아론 백작이라고 모르는 게 아니었다.
팬니르를 대장으로 트란 산맥 탐사를 보냈을 때 꽤 긴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도 사망하지 않고 임무를 완수했었다.
소환술사, 지금의 샤론 영주가 지켜보며 그들을 보호했다고 했다.
디아론 백작은 마음을 먹고 사람을 시켜 샤론 영지에 가서 카나를 불러오도록 했다.
며칠 후.
쿠르르르르.
디아론 성문 앞에 괴상한 물체가 도착했다.
그것은 마차 서너 대 크기의 커다란 쇳덩이였으며 물레방아처럼 생긴 것이 양쪽에 붙어서 회전하며 몸체를 이동시키고 있었다.
경비병들은 그 모습에 쫄았지만, 겉으로 티 내지 않고 창을 들어 겨누며 말했다.
“멈춰라!”
창을 든 경비병은 점점 다가오는 괴상한 물체에 긴장했지만, 그렇다고 뒤는 성문인데 물러날 수도 없었다.
“멈춰랏!”
쿠르르르르.
괴상한 물체가 멈췄다.
달칵.
한쪽이 문처럼 열리더니 누군가 내렸다.
“아! 카타리나 아가씨.”
문에서 내린 사람은 카나였다.
샤론 영지에서 샤샤, 카나가 운전 연습을 했었다.
제리는 드론이 더 좋다며 차량 운전은 둘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
샤샤도 기본적인 운전 방법은 숙달했지만, 탱커인 카나가 운전을 하고 원거리 딜러인 자신이 천장 지붕을 열고 화살을 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며 운전을 카나에게 양보했다.
그렇게 샤론에서의 차량 운전수가 된 카나는 차량을 축소형으로 접어서 선물함에 넣었다.
경비병은 마법처럼 사라지는 괴상한 물체에 놀라 눈을 깜빡였다.
경비병을 지나며 카나가 말했다.
“창을 겨누고 물러서지 않았구나.”
“아, 넵. 몰라뵙고 창을 겨누어 죄송합니다.”
“이름이 뭐지?”
경비병은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찰리입니다.”
“그래, 찰리. 내 아버님께 경비병이 아주 훌륭하다고 칭찬하마.”
“아! 감사합니다.”
카나는 디아론 백작을 만났다.
“카나야, 얼마 전 영지에서 트란 산맥 토벌대를 보냈단다. 성과도 있었지만 피해도 제법 있었지. 기사급이 열 명이 넘게 사망했단다.”
“피해가 크네요.”
“그래, 예전 샤론 영주와 함께 트란 산맥을 오를 때는 오랜 기간이었는데도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단다. 짐꾼 한 명 죽지 않았던 것이지.”
“그랬군요.”
“샤론 영주에게 합동 토벌을 제안해 주겠니?”
“네, 말은 해볼게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안이에요. 저는 어디까지나 소환수, 가신의 역할일 뿐인 것 아시죠?”
“그래, 안다.”
* * *
사무실로 출근한 카나가 인사를 했다.
“민준, 뭐해?”
“어, 동영상 좀 찾아서 볼 게 있어서.”
카나가 내 뒤로 와서 내가 뭘 보나 보는 모양이었다.
“어, 자, 봐봐. 너도 도움이 될 거야.”
“이게 뭔데?”
영상에는 한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엄마, 엄마, 엄마!]
곧 아이의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 쓰레기 버리고 온다고 했잖아. 바로 요 앞인데 울면 어떡해.]
잠시 후, 영상은 전문가가 설명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전문가는 분리불안이 있는 어린이에게는 어떻게 대해주어야 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아이의 분리불안? 민준이 이걸 왜 봐? 민준, 설마?”
“설마라니?”
“민준, 아이 있어?”
“헉!”
카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있구나!”
“그게…….”
“진작 말을 해주지. 아들이야? 딸이야? 몇 살이야?”
“그게 아니고…….”
“한 명이 아니야?”
“아니, 자식이 아니라고.”
카나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물었다.
“그럼 아내가 있었어?”
“야! 나 총각이야. 어디서 혼삿길을 막으려고 그런 소리를 하고 있어.”
“그러면 아이의 분리불안을 막는 법 영상을 보는 이유가 뭐야?”
“어, 아무래도 샤론 영지의 주민들이 나에게 분리불안이 있는 것 같아서. 중국, 일본, 로마까지 왔다 갔다 하니까 안 그래도 지난번에 내가 떠날 것 같다며 불안해하던 주민들이 더 불안해할까 봐 공부하고 있었지. 앞으로도 지구에서의 일이 많을 것 같아서.”
“아, 그래? 그렇구나. 오오, 좋은 영주네.”
활짝 미소 짓는 카나였다.
“그렇지? 내가 좀 좋은 영주지.”
“그래. 민준은 좋은 영주야. 그런데 민준, 아빠가 말을 전해달래.”
“디아론 백작님이?”
“응, 아빠가 트란 산맥으로 몬스터 토벌대를 보냈었나 봐. 그런데 기사단의 피해가 제법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샤론 영지와 함께 토벌했으면 하시나 봐.”
“뭐 몬스터 토벌이야, 꾸준히 해야 하는 거니까 거절할 이유는 없지.”
“그래? 그럼 같이한다고 말한다.”
“그래, 오케이.”
* * *
트란 산맥의 깊은 숲속 어딘가에 커다란 동굴이 있었다.
상처 입은 드레이크 한 마리가 피를 흘리며 동굴에 도착했다.
드레이크는 동굴 안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크에에에엑.”
동굴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크에에에엑.”
“크에에에엑.”
몇 번을 외치자 동굴 전체에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릉!
동굴 깊은 곳 거대한 무언가의 눈이 떠졌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