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B급
샤샤가 차분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민준 님, 저 까밀로 님의 연합으로 들어가고 싶어요. 소환수는 민준 님과 저의 상호 계약이잖아요. 민준 님이 계약을 해지하면 제가 까밀로 님에게 갈 수 있어요. 계약을 해지해 주세요.”
“샤샤야, 잠깐만. 갑자기 왜 그래? 이러는 법이 어디 있어?”
샤샤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말했잖아요. 이제 민준 님을 벗어나 까밀로 님에게 가고 싶다고요. 계약을 해지한다고 말하세요.”
저쪽에서 까밀로가 천천히 걸어왔다.
키가 크고, 조금 느끼해 보였지만, 모델처럼 보이는 얼굴이었다.
“뭐가 문제가 있나?”
나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샤샤가 싫다는데,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건가?”
나는 까밀로를 바라보지 않고 샤샤를 보며 물었다.
“샤샤, 진심이야? 이제 나의 소환수를 하고 싶지 않다는 거야?”
샤샤와 눈이 마주쳤다.
투명한 에메랄드 빛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요.”
“하아, 알았어. 네가 그러고 싶다면 그래야지.”
순간, 샤샤와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트란 산맥에서 처음 다리를 다친 샤샤를 발견했던 순간, 샤샤와 계약을 하고 지구로 소환을 했을 때 샤샤를 직접 보며 나도 모르게 당황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내가 생각해도 어리바리하던 각성자 초기시절, 샤샤는 나의 첫 번째 소환수가 되어주었다.
각성자와 헌터의 차이조차 모르던 시절, 함께 던전을 돌며 F급 비선공 몬스터들을 잡으며 기뻐했다.
던전을 돌고 나면 뒤풀이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종구, 동서 형님 등과 던전을 돌던 쪼렙 시절 때 숙취에 고생할 때면 함께 해장국을 먹었다.
나는 샤샤를 단지 나를 위해 싸워주는 대상으로 대하지는 않았다.
함께 몬스터와 싸우는 전우이며, 함께 먹고 마시고 여행을 다니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계약을 취소해달라고 말하는 샤샤를 보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하아… 알았어. 샤샤야. 네가 원한다면 그래야지. 그게 맞는 거겠지…….”
푸우욱!
그때 샤샤의 가슴을 뚫고 화살 한 대가 삐져나왔다.
화살을 맞은 샤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크아아아아!”
나는 놀라서 샤샤에게 다가갔다.
샤샤를 치료하려 했다.
“디바인 홀리…….”
“하지 마!”
샤샤가 내 입을 막으려 했다.
“왜?”
“운이 좋구나, 크크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일그러지고, 공간도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 일그러짐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준 님! 괜찮으세요?”
눈앞에 샤샤가 있었다.
“샤샤?”
“네! 저예요.”
샤샤와 함께 주변을 돌아보니 수십 명의 헌터가 모두 쓰러져 있었다.
다들 뭔가 잠꼬대를 하는 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도 저러고 있었던 건가?
나는 얼른 스킬을 외쳤다.
“디바인 필드, 디바인 홀리 큐어!”
신성력을 공간상에 흩뿌리고 쓰러져 있던 사람들에게 신성력이 담긴 치유 스킬을 걸어주었다.
“으음…….”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윽, 머리 아파.”
나는 샤샤를 보며 물었다.
“샤샤도 깨어난 거야? 잠들지 않았어?”
“사실 저도 악몽을 꾸고 있었어요.”
“무슨 악몽?”
“샤론 영지에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해 모두가 죽어가는 꿈이었어요.”
“무서웠겠네.”
“네, 그런데 그러다 문득 민준 님에게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에게?”
“네, 그냥 갑자기 민준 님에게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눈이 번쩍 떠졌어요. 그리고 무언가가 민준 님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화살을 날렸죠.”
이런 샤샤를 의심하다니 내가 잘못했다.
“샤샤야, 미안해.”
“네? 뭐가요?”
“그냥 다.”
“아니에요. 저희가 보스 룸에 들어서서 보스를 찾지 못한 게 아니라 보스의 정신 공격에 당한 것 같아요.”
어느덧 모두가 일어났다.
하지만 아직도 보스는 찾지 못했다.
카나가 머리를 꾹꾹 눌렀다.
“민준 님, 저는 아직도 머리가 아프네요. 이제 어떡하죠? 저쪽 제단이 있는 곳에 뭔가 있을 것 같은데, 가볼까요?”
“그래, 가보자.”
일행은 제단을 이미 수색했었지만, 지금 당장 특별한 뭔가 보이지도 않고 뭔가 특이해 보이는 것이 있는 제단으로 다시 향했다.
제단에 빈 그릇들이 여러 개 있기에 내가 카나에게 말했다
“카나야, 너 숟가락 있지? 숟가락 좀 줘.”
“죄송해요. 숟가락을 가지고 오지 않았어요. 지금은 없어요.”
“그래?”
내가 제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제리가 발톱을 길게 뽑아 카나의 배를 찔렀다.
푹!
“으윽! 왜 그래요! 나, 나는 적이 아니에요!”
카나는 몹시 놀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천천히 카나에게 다가갔다.
“있잖아. 카나는 나랑 동갑이라서 서로 말 텄어. 바인드!”
제리의 발톱에 꿰이고 나의 바인드에 묶였다.
“그리고 말야.”
나는 카나의 오른손을 잡은 뒤 손가락을 뒤로 꺾었다.
우두둑.
“카나의 오른손은 의수야. 손가락 꺾으면 숟가락 나와. 그리고 그 숟가락 고정식이라서 빠지지도 않지.”
나는 카나를 향해 스킬을 사용했다.
“디바인 홀리 큐어!”
“크아아아악!”
카나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변신한 형태는 인간과 비슷한 초록색 덩어리였다.
“카나 소환!”
화아악, 숲속의 잠자는 공주처럼 자고 있는 카나가 소환되었다.
혹시나 해서 소환수 상태창을 열어보니 체력은 가득이었다.
내가 그 초록색 덩어리에게 말했다.
“그런 꿈을 꾸게 해서 샤샤와의 계약을 취소하게 만들려고 하다니. 너 악마라더니, 정말 악마 같다.”
나는 초록색 덩어리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부디 다음 생에는 회개하길 바래. 디바인 필드.”
쏴아아악!
신성력이 초록색 덩어리에 제대로 쏟아지자 그것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녹아내렸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좋구나!
카나가 계속 잠을 자고 있자 나는 디바인 홀리 큐어를 걸어주었다.
그러자 카나가 잠에서 깨어났다.
“좋은 꿈 꾸었어?”
카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보더니 확 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너, 왜 얼굴이 빨개져?”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도대체 무슨 꿈을 꾸었길래 얼굴이 빨개지냐고?”
“알 필요 없다.”
“어허, 수상해.”
카나는 벌떡 일어나서 혼자 휘적휘적 앞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보스몹을 잡고 던전을 나왔다.
던전을 나오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여동생 민아에게 연락이 왔었다.
핸드폰을 확인하면 연락을 달라는 문자도 와 있었다.
무슨 문제가 생겼나 싶어서 바로 전화를 했다.
민아가 전화를 받았다.
―어. 오빠, 괜찮아?
“나? 괜찮지. 무슨 일이야?”
―아, 그랬구나. 그럼 다행이고. 아니 내 팔찌에 큐빅이 있잖아. 그게 깨졌어.
“큐빅이 깨졌다고?”
―응, 이거 오빠와 연결된 팔찌라고 했잖아. 오빠가 이거 꽤 강력한 것이고, 오빠랑 연결되어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나에게는 문제가 없는데 깨져서 혹시나 오빠에게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걱정이 들었어.
나는 속으로 악마에게 홀렸을 때가 떠올랐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오빠는 괜찮아. 그리고 이제 한국 가는 비행기 타려고. 팔찌는 가서 바꿔줄게.”
―어, 그래. 잘 들어와.
“응.”
로마 구경도 할 만큼 하고 던전까지 돌고 났으니 이제 다시 돌아갈 시간이었다.
시간에 맞추어 공항에 도착하니 까밀로가 나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까밀로, 고마워요. 이렇게 배웅도 해주시고.”
“하하, 배웅 아니에요.”
“네?”
“저도 한국에 가기로 했어요.”
“아, 한국에 볼일이 있으신가 봐요?”
“네, 이번에 한국 힐러 연합에 다녀오기로 했어요.”
“그렇군요.”
비행기가 곧 도착했고 나와 까밀로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안에서도 까밀로는 까밀로스러운 행동을 계속했다.
“눈동자에 마정석을 담으신 것 같군요.”
“혹시 엘프신가 했어요.”
“미의 여신의 가호를 받으셨나 보군요.”
그런데 가관은 저런 닭살 멘트가 먹힌다는 게 문제였다.
승무원, 승객 할 것 없이 무차별 난사하는 멘트를 받는 여성들의 표정은 딱히 나빠 보이지 않았다.
아니, 즐기는 듯하거나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나는 도대체 까밀로가 왜 저러나 싶었다.
종특도 종특이지만 이유를 듣고 싶었다.
“까밀로,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여성분들에게 왜 그렇게 예쁘다고 말을 하는 거예요?”
까밀로는 당당하게 말했다.
“저희는 가족 중심의 문화가 깊습니다. 다른 가치보다 가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그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모든 여성분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주어야 합니다.”
가족이 중요한데 왜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왜 모든 여성들에게 잘해주어야 하냐면, 그들 중 누군가는 저의 가족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여성들은 쉽게 말하면 가족 후보인 것이죠. 언제 어느 때 만난 누군가가 저의 가장 소중한 가족이 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모든 여성들에게 잘 대해주어야 하죠.”
가족이 된 다음에 가족에게 잘 대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가족 후보군에게 모두 잘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도 나름대로 논리가 있었다.
하지만 무차별적으로 추파를 던지는 것을 보니 그저 추파를 던지는 걸 즐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까밀로가 여성들에게 느끼한 멘트를 날리는 것에 대해 신경을 끄기로 했다.
종특이라고 하기도 했고, 멘트를 받는 여성분들 중에서 불쾌해 보이는 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꾸 신경 쓰다가 내가 옮기라도 하면 위험했다.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시간은 제법 길었다.
그런데 승무원분들이 매우 친절하게 우릴 챙기셨다.
왠지 이탈리아로 갈 때보다 훨씬 과한 친절을 받는 것 같았다.
심지어 와인도 병 채로 주셨다.
느끼한 멘트가 친절로 되돌아오는 건 기분 탓이라 생각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조금만 기자가 손을 흔들었다.
“민준 헌터님!”
“아, 조 기자님, 안녕하세요.”
“네, 민준 헌터님이 오신다는 정보를 얻고 오늘 하루 종일 기다렸습니다. 하하하”
“고생이시네요. 제가 뭐라고.”
“천마와 오성이 서로 데려가려고 하는 샤론의 길드장이시죠. 하하!”
그렇게 나와 이야기하던 중 조 기자가 까밀로를 힐끔거리다가 뭔가 깨달은 듯 말했다.
“아! 이탈리아의 망치의 신!”
조 기자는 대박을 건졌다는 듯 환한 얼굴을 지었다.
조 기자 옆의 카메라맨도 연신 카메라를 비추었다.
“Hello? Do you know Kimchi?”
조 기자님이 영어로 말을 걸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까밀로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한국어로 질문하셔도 됩니다.”
“아! 대박!”
멋들어지게 정장을 입은 모델처럼 생긴 외국 남자가 한국어를 유창하게 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망치의 신이라 불리는 외국의 S급 헌터였다.
“이탈리아의 망치의 신, 까밀로 헌터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한국어를 어떻게 이렇게 잘하시죠? 한국에는 어떤 일로 들어오셨나요?”
졸지에 까밀로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까밀로는 나의 용병 상태라서 고용주의 언어를 스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힐러 연합에 볼일이 있어서 왔으며, 한국 헌터 협회에도 방문할 일이 있어서 왔다는 대답을 했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까밀로와 헤어져 나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에서는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저 왔어요.”
“사장님, 오셨어요?”
“잘 다녀오셨어요? 안 그래도 지금 사장님 기사 보고 있었어요.”
내 기사?
설마 공항에서 인터뷰한 것이 벌써 나왔나?
한상일 직원이 나에게 기사를 보여주었다.
[S급 천둥의 신을 부리는 B급]
[저는 B급인데 S급이 너무 따라다녀요.]
[S급 헌터, 내 주인님은 B급]
까밀로의 잘생긴 얼굴로 썸네일을 만든 영상이 여럿이 있었다.
어떤 썸네일에는 까밀로가 나에게 주인님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기자분들도 참 일 처리가 빨랐다.
자극적인 제목 짓는 거야 그러려니 했다.
지이이잉.
문자가 왔다.
친구 동철이였다.
―여~ B급, 서울이냐?
지이이잉.
이번에는 동생 민아였다.
―B급 오빠, 그 잘생긴 헌터랑 같이 있어?
하아……
빨리 A급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