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128화 (127/230)

128화. 오예

숙소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 가슴 중앙에 손바닥 한 개만 한 크기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뭐지?”

거울에 자세히 비춰보니 어떤 동물 같았다.

뭔가 기다란 동물이었다.

“일단 용은 아닌 것 같고, 뱀인가? 지렁이? 안 되겠다. 알파야, 알타르 님 소환!”

곧 알타르가 소환되었다.

“헉, 민준 님 왜 옷을…….”

“아, 알타르 님, 제 몸에 이런 문신이 생겼는데 뭔지 궁금해서요.”

알타르는 내 몸의 문신을 보았다.

“아! 코토풀요군요.”

“코토풀요라구요?”

“네, 풍요와 대지의 신을 따르는 동물입니다.”

“그래요? 어떤 동물인데요?”

“저도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땅속에서 살며 그것이 사는 곳에서는 땅이 비옥해져 어떤 식물이든 잘 자라게 된다고 합니다.”

“아, 그런가요.”

“그런데 왜 그게 민준 님 몸에 생겼을까요?”

“저, 사실은 알타르 님이 성물을 가져오셨잖아요.”

“그렇죠, 렌탈하기로 했잖아요.”

“그거 제가 흡수한 것 같아요.”

알타르는 잠시 나를 보며 멍해 있다가 성물을 흡수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물었다.

“네?”

“그걸 흡수하고 문신이 생겼어요.”

“아…….”

“흠, 어쩌죠?”

“얘기는 해야겠지만 렌탈 약정 기간 동안은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요? 민준 님 자체가 성물화 된 것일 수도 있으니 어쩌면 수도원에서 민준 님을 더 귀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아, 제가 곧 성물?”

“그렇죠.”

렌탈 해놓고 먹어버렸으니 배를 째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내가 곧 성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왠지 물건 취급받는 것 같았지만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민준 님, 나름 배에 왕자가 있으셨군요!”

“하하하, 알타르 님.”

“네?”

나는 얼른 배를 가리며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소환취소.”

다음날.

로마의 휴일은 아름답다고 하던가?

멀리까지 왔으니 여행을 즐겼다.

내가 괜히 온 것도 아니고 무려 교황이 부르는데 안 올 수도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왔는데 힐러 연합에서 숙소까지 다 지원해주고 통역도 붙여주는데 며칠 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혼자 놀 이유도 없었다.

언제든지 소환수와 용병들을 부를 수 있었다.

물론 소환수와 용병들은 여권이 없긴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하면 돌려보내면 그만이었다.

점심 무렵 샤론팀과 함께 푸른 로마의 하늘이 보이는 야외 테라스의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음식이 나오는 시간은 조금 늦었지만, 나는 얼마든지 기다릴 여유가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식사가 나왔다.

바로 내 앞쪽에는 부드럽고 진한 크림소스에 양송이버섯이 송송 올려져 있고, 초록색 파슬리가 비주얼의 심심함을 달래고 있는 이태리 정통 버섯크림 파스타가 놓여 있었다.

포크로 찍어서 돌돌 말았다.

그렇게 말은 파스타를 숟가락으로 받쳐 내 앞접시로 가져왔다.

“후루루룩.”

으음, 고소하고 부드러운 식감에 향긋한 향까지 완벽했다.

내가 다시 파스타를 포크로 돌돌 말자 다들 내 포크질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먹는 건가?”

카나가 포크를 내밀었다.

파스타를 돌돌 말아서 숟가락으로 받친 후 후루루룩!

“음, 먹을 만하군.”

그 딱딱한 모습에 내가 말했다.

“아니야. 부족해.”

다들 뭐가 부족한지 의아해하는 모습이었다.

“자, 다들 봐봐.”

나는 다시 파스타 한 포크를 만든 다음 입에 넣었다.

그리고 만족한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이런 표정이 있어야지. 취향에 안 맞아서 맛이 없으면 모르지만, 이런 곳에 와서 이런 음식을 먹어주는데 리액션, 응? 맛있으면 음식에 대한 반응이 있어 줘야지 않겠어?”

“맞습니다!”

르녹이 굵은 팔뚝을 쑥 내밀며 말했다.

휘리리릭.

르녹이 손목 스냅을 이용해서 파스타를 휘감았다.

어라? 르녹아, 포크를 제자리에서 돌려야지 포크를 그렇게 크게 원을 그리면 어떡하니.

르녹의 포크에 접시에 남아 있던 파스타가 모두 한 덩어리가 됐다.

하지만 르녹은 남자!

그 덩어리를 통째로 자신의 접시에 가져왔다.

순간, 모두가 그 덩어리에 집중했다.

먹나? 진짜 다 한입에 넣나?

다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르녹이 과감하게 덩어리를 입에 넣기 시작했다.

“후루루룩, 후루룩, 켁, 후루루루룩.”

중간에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르녹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마치 어린아이가 우유를 마신 것처럼 르녹의 입 주변에도 흰 크림소스가 묻어있었다.

하지만 르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눈빛이었다.

그래, 어서 하렴.

“음~ 이건 마치 샤벨 타이거 눈알을 으깬 흰죽에 타란튤라 애벌레 고치를 잘라 넣은 맛입니다!”

알타르가 살짝 귓말을 했다.

“샤벨 타이거 눈알을 으깨면 잠시 후, 흰색 액체로 변합니다. 그리고 타란튤라 애벌레 고치는 미식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요리입니다.”

그렇구나.

르녹, 애썼다.

음식은 파스타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탈리아에 왔는데 피자를 안 먹어 볼 수도 없었고 피자, 파스타 등에는 와인도 한잔 곁들여야 했다.

한참 음식을 음미하고 있던 중 르녹이 말했다.

“영주님, 그런데 전투는 없는 겁니까?”

“왜? 전투하고 싶어서 몸이 간질해?”

“아뇨, 그런 것이 아니라 왠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냥 이렇게 먹고만 있으니까 좀 그래서요.”

“에이, 걱정 마. 이렇게 쉴 때도 있어야지, 사람이 어떻게 매일 전투만 하고 사냐. 이러다 곧 전투하겠지.”

그때 가이드를 맡은 힐러 연합 직원이 전화를 들고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저, 민준 헌터님.”

“네?”

“죄송한데 교황청 광장에 포탈이 열렸답니다.”

“그런데요?”

“그게 포탈 안으로 들어가 봤는데 악마들이 많다고 합니다. 교황님께서 민준 헌터님 아직 출국 안 하셨으면 말해보라고 하셔서요. 민준 님 스킬과 상성이 아주 좋을 거라고 하십니다.”

내가 르녹을 보며 말했다.

“거봐. 르녹 실컷 먹어둬.”

“넵, 안 그래도 많이 먹고 있습니다. 이거 피자라는 음식이 제 입맛에 딱이네요.”

조각 피자 세 개를 쌓아서 조각 케이크처럼 만든 후, 크게 한입 베어 무는 르녹이었다.

그래, 많이 먹어라.

우리는 다시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제리가 말했다.

“너희들 술 먹지 않았나? 음주 던전 뛰면 안 된당”

샤샤와 카나도 와인을 한 잔씩 해서 그런지 눈 밑이 벌겋다.

그럼, 음주 던전이라니 절대로 하면 안 된다.

“음주 던전은 절대로 안 되지. 하지만 방법이 있어. 디바인 홀리 큐어!”

큐어는 독을 해독한다.

독도 해독하는데 와인 정도야 일도 아니다.

화아악!

모두 언제 알코올을 마셨냐는 듯 말짱한 얼굴이 되었다.

다시 도착한 광장엔 관광객은 없었다.

광장에는 이미 폴리스라인이 설치되어 있었고, 군부대와 경찰 등이 외부를 통제하고 있었다.

우리를 태운 차량의 운전석에서는 연신 힐러 연합이라고 외치며 광장 중심으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검은 포탈을 볼 수 있었다.

보통 포탈은 청색에서 하늘색이며 포탈의 테두리는 흰색 아지랑이가 어른거리곤 했다.

그런데 얘는 뭔가 색이 어두침침하다.

“쟨 뭔가 색이 이상한데?”

“그러게요. 여태까지 들어갔던 포탈들과는 색이 완전히 달라요.”

“거무튀튀한 게 영 별로인걸.”

그렇게 포탈을 품평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가이드가 열심히 통역했다.

키가 크고 턱 전체에 까슬까슬한 턱수염이 가득 난 남자가 인사를 했다.

“힐러 연합 교황 직속 친위대입니다. 저는 까밀로라고 합니다.”

와,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이렇게 생겼나?

순간 리즈 시절의 디카프리오를 보는 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머리카락은 왁스를 발랐는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세워서 옆으로 넘겼다.

통역이 살짝 까밀로가 S급이라고 말했다.

요즘 내가 만나는 헌터들이 다들 S급이라서 그런지 이제는 S급이라고 해도 감흥이 없었다.

차라리 저 얼굴이 더 놀라웠다.

“안녕하세요. 김민준이라고 합니다.”

“교황님께서 민준 헌터님께서 큰 도움이 되실 거라고 했습니다. 던전 레이드 팀에 합류해 주시겠습니까?”

“뭐, 그럽시다. 조건은요?”

“레이드를 통해 얻는 수익의 40%를 드리죠.”

오호라, 생각보다 많이 줬다.

저쪽 멤버들을 보면 우리보다 수가 많고 S급도 있는데 이렇게 많이 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던전에 들어갈 때 처음 보는 공대장이 지나치게 높을 비율을 준다고 하면 던전 사기일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에이, 설마 교황이 사기를 치겠어?

“좋습니다. 갑시다.”

우리 팀은 나와 소환수는 고정으로 참여하고 알타르, 르녹, 꾸얀은 번갈아 가면서 레이드에 합류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내가 용병은 세 명밖에 운용할 수 없는데 의사소통의 문제도 있고 하니 공대장인 까밀로를 용병으로 계약해두고 레이드를 진행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까밀로가 공대장을 맡기로 하고 힐러 연합 쪽에서 스무 명이 참가하기로 했다.

포탈을 들어가려는데 샤샤와 카나가 들어가려는 찰나에 까밀로가 마치 문을 열어주는 듯한 포즈로 말했다.

“꽃처럼 아름다운 레이디와 함께 던전에 들어가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대의 두 눈에 마정석을~ 들어가시죠.”

헐, 그러면서 눈을 뚫어지게 보는 게 아닌가.

그냥 확 저걸 묻어버려?

던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그냥 흐지부지 묻히는 경우가 많았다.

던전 내에서는 목숨을 걸고 몬스터를 사냥을 하는 것이었고, 그러다 보면 죽는 경우도 많았다.

딱히 증거가 없을 때는 몬스터에게 죽었다고 하면 솔직히 할 말 없는 거였다.

그래서 몸에 부착하는 바디캠을 달곤 하지만, 그것도 몬스터가 먹었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에효, 잠시 이탈리아 남자들의 종특이 저렇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상념을 털어버리고 나도 포탈을 넘었다.

검은 포탈은 꿉꿉한 느낌이었다.

포탈을 넘은 나는 슬쩍 샤샤와 카나의 얼굴을 보았다.

저런 멘트들을 날리니 혹시 기분이 나쁜지 아니면 잘생긴 애가 멘트를 날려서 기분이 좋은지 궁금했다.

하지만 샤샤와 카나는 내가 넘어오자마자 내 양옆에서 호위하며 주위를 경계할 뿐이었다.

그런 진중한 표정을 보니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샤샤는 뭐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카나에게 물어보았다.

“카나는 저 까밀로라는 헌터가 저렇게 말하면 어때?”

“무슨 말을 뜻하는 것이지?”

“막 꽃처럼 예쁜 레이디 어쩌구 했잖아.”

“그게 왜?”

“아니, 그렇게 말해주면 기분이 좋거나 나쁜지 궁금해서.”

“꽃처럼 예쁘다는 건 관용적인 표현 아닌가? 큰 의미는 없을 텐데?”

“그래? 그럼 다행이고.”

카나가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여자는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다 좋아하는 줄 아나?”

내가 봐도 연예인처럼 생긴 남자가 예쁘다고 말해준 상황이었다.

“아니야?”

“아니다. 여자는 아무나 예쁘다고 말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호감이 있는 사람이 예쁘다고 말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아…….”

“쟤들 종특이라며? 샤샤와 나는 걱정 말아라.”

꿉꿉한 던전에 들어와서 기분이 별로였는데, 왠지 디카프리오를 꺾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제서야 주위를 돌아보니 동굴형 던전이었다.

동굴의 천장은 10m는 될 정도로 높았다.

바닥에는 미세하게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 꼭 석회암 동굴 같았다.

하지만 주위의 암석은 석회암 동굴보다는 더 검고 거칠었다.

그때 저쪽에서 인간만 한 박쥐들이 떼지어 몰려왔다.

내가 외쳤다.

“오예! 느그들 다 죽었으!”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게 오예가 나왔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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