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127화 (126/230)

127화. 성물

성 베드로 광장은 로마 교황청 앞마당에 있는 광장이었다.

광장은 매우 커서 수십만 명이 동시에 모여 교황의 미사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며, 교황청에서 내려다보이는 광장을 마치 두 팔로 둥글게 감싸듯 반원형의 회랑 건물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교황청 바로 앞에 도착하긴 했지만, 아직 약속 시간이 남아 있었다.

시간 여유가 있자 광장을 감싼 회랑 건물의 수많은 원기둥 대리석과 조각들에 눈길이 갔다.

이곳은 교황청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주 멋진 문화재였다.

우리뿐만 아니라 광장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누가 봐도 여행객인듯한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니, 이곳이 관광 핫플레이스임을 알 수 있었다.

아직 교황과의 약속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이왕 온 김에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을 구경했다.

“시간도 조금 남았는데 우리도 사진 찍을까요?”

“와, 여기도 멋지네요.”

힐러 연합에서 나온 분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샤샤와 카나는 당연한 듯 내 양 옆을 지키고 있었고, 어느새 고양이로 변한 제리가 내 어깨 위를 차지했다.

알타르, 르녹, 꾸얀도 모여 포즈를 취했다.

찰칵.

샤샤의 환한 미소, 카나의 모델같은 강렬한 눈빛, 시선 강탈 보라색 고양이, 근육맨 르녹 등이 사진 한 장에 포함되어 있었다.

“다들 개성이 넘치네요.”

“그러게요. 하하”

“알타르 님, 고마워요.”

“네? 뭐가 고맙다고 하십니까?”

“사진 찍는데 알타르 님도 전투형으로 차려입으셨으면 제 존재감이 더 희미해졌을 것 같아서요. 오늘 수수하게 입어주셔서 고맙다고요.”

“네, 전투가 없을 때는 수수하게 입겠습니다.”

“아니에요. 해본 말이에요. 편하게 입으세요.”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조각상을 살펴보는데, 내 눈에 르녹과 닮은 조각상 하나가 눈에 띄었다.

커다란 덩치, 산적 같은 얼굴, 두툼한 덩치에 커다란 대검을 든 모습이 영락없었다.

내가 르녹을 불렀다.

“르녹? 이리 와봐. 여기 모델 했었어?”

“아니요. 저는 여기가 어딘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평생 칼밥만 먹었지, 뭔가를 조각하는데 참여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 근데 너무 닮았는데?”

샤샤, 제리, 카나는 사진을 더 찍고 있었고 나와 알타르, 꾸얀은 르녹을 닮은 조각상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먼저 알타르가 진지하게 말했다.

“흠, 이 조각상을 보니 르녹의 조상이 지구에 소환되어 전투를 벌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르녹의 조상이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조각했을 수도 있지요.”

“그럼 대를 이어 지구에 소환되는 혈통을 타고났나 보군요!”

“그렇죠. 만약 그렇다면 르녹의 자식은 다시 지구로 소환될 수도 있겠죠.”

“정말요?”

“그럼요. 민준 님이 젊으시니 르녹이 자식을 낳아 길러도 소환해주실 만할 것 같은데요. 아닙니까?”

“그럼요. 저 조각상에서 르녹으로 이어지고, 다시 그런 유전자를 타고난 르녹의 아이라면 힘 스탯은 기본으로 깔고 갈 테니까요.”

그렇게 반은 농담, 반은 진담으로 르녹을 닮은 조각상을 토론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여성팀에게 누군가 접근했다.

“벨로.”

샤샤, 카나, 제리가 있는 곳으로 어떤 남자 두 명이 접근해 있었다.

나는 힐러 연합에서 나온 가이드에게 물었다.

“뭐라는 거예요?”

가이드가 그쪽이 하는 말을 통역해주었다.

“예쁘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헐. 헌팅이에요?”

샤샤, 카나 보라색 고양이는 언제 어느 때 헌팅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우리 남자들이 조각상에 정신 팔려있는 사이에 파리가 꼬인 것 같았다.

“헌팅이라기보다는… 이 동네 남자들은 다 저럽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한국인은 빨리빨리 하는 것이 종족 특성이라고들 하지요?”

“네, 그렇죠.”

“이탈리아 남자들은 저렇게 여자에게 친절한 것이 종특입니다.”

내가 보기엔 작업을 거는 것 같은데 그게 종특이라고?

종특이라는데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잠시 지켜보니 말을 걸던 남자들은 몇 마디 더 하곤 자기 갈 길을 갔다.

신기해서 조금 지켜보니 아주 지나가는 남자들마다 야단이었다.

심지어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휘파람은 선을 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휘파람을 분 사람 바로 옆에 광장을 순찰하는 경찰이 있었다.

경찰 옆에서도 당당하게 여자에게 휘파람을 분 것이었다.

내가 경찰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저 경찰…….”

내가 경찰에게 집중하자 알타르 등도 경찰에게 집중했다.

“얼굴이 아주 모델인데요? 그러고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렇고 여기 경찰도 그렇고 아주 훈남들이 많네요.”

가이드가 내 말을 듣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이곳은 여자들이 유럽에서 꼭 여행해야 하는 도시라고도 불린답니다.”

그렇게 새로운 종족 특성이 있음을 배우며 광장을 가로질러 교황청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되자 교황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교황은 나이가 지긋한 백인 할아버지였다.

S급 힐러라고 하는데 S급이면 나이보다 한참 젊어 보일 것인데 겉보기에도 할아버지라면 도대체 나이가 얼마인지 궁금했다.

교황은 맑고 깊고 순해 보이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데 저 나이에 저런 눈빛이라니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역이 옆에서 열심히 통역해주었다.

“김민준 헌터님이신가요?”

“네, 교황님.”

“중국의 데빌 페어리와 일본의 화룡 레이드에서의 활약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소환술사이면서 힐러라고 들었습니다.”

“네.”

“게다가 신성력이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신을 믿고 계신가요?”

신? 나는 무신론자인데.

“특별히 믿고 있는 신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믿는 신도 없는데 신성력을 사용한다고 말하고 보니 내가 말해놓고도 조금 이상하긴 했다.

“민준 헌터님이 사용하는 신성력을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교황 앞에서 신성력 스킬 시연이라니, 원포인트 레슨을 받는 기분이었다.

나는 뒤쪽에 있는 샤론팀에게 차례로 스킬을 걸어주었다.

“디바인 홀리 큐어, 디바인 프로텍션.”

교황이 유심히 관찰할 수 있도록 스킬을 여러 번 사용하였다.

“민준 헌터님도 아시다시피 신성력은 신의 힘을 빌려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민준 헌터님의 신성력은 아주 순수하고 큽니다. 그래서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 의아할 수준입니다.”

“그런가요?”

“네, 지금도 이 정도인데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진다면 신성력의 크기가 더욱 커질 것 같습니다.”

오오! 원포인트 레슨이 맞았다.

그렇게 강해지는 방법이 있음은 생각지도 못했다.

내 목에는 프란시아에서 가져온 성물이 걸려 있었다.

내가 사용하는 신성력은 신에 대한 믿음으로 받아온 신성력이 아니라 성물을 매개로 사용하는 신성력이었다.

이미 신성력을 사용하고 있으니 신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면 성물 매개 신성력과 믿음 매개 신성력이 더해져 신성력의 크기가 더욱 커질 것 같긴 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어떤 신인지도 몰랐다.

“민준 헌터님, 제가 축복을 내려드려도 될까요?”

“네? 저에게 축복이요? 와, 감사합니다.”

사실 그거 받으러 온 것인데, 안 해주면 섭섭할 뻔했다.

힐러가 적어도 5년은 열심히 던전을 다녀야 할만한 스킬 업그레이드를 바로 완료시켜준다는 교황의 스킬이었다.

교황이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스킬 축복!”

따뜻하고 포근한 뭔가가 몸을 감쌌다.

눈앞이 환해졌다.

나는 앞이 너무 환해서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새로운 느낌이었다.

이 느낌이 지나면 스킬을 얻거나 업그레이드되었다는 알파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잠시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있는 교황의 모습을 상상하며 눈을 살짝 떴다.

잉?

눈앞이 아직도 하얀색이었다.

아직 안 끝났나?

조금 더 기다려봐도 계속 흰 공간이었다.

헐, 여긴 뭐지? 그저 마냥 흰 공간에 아무도 없었다.

마치 다른 공간으로 순간이동 아니 소환된 것 같았다.

그때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린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듯한 소리.

하지만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아무도 없었다.

“샤샤 소환!”

샤샤가 소환되지 않았다.

“카나 소환! 다 소환! 알파야?”

알파도 대답하지 않았다.

소환이 되지 않거나 알파가 대답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혹시 다른 스킬은 가능한가 싶어서 외쳐 보았다.

“바인드!”

아무 반응이 없었다.

바인드도 안된다니, 소환은 다른 장소의 존재를 불러오는 것이라서 외부와 차단되었다면 소환이 안 될 수도 있지만, 바인드는 내 몸 안의 마나를 손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그런 바인드조차 안된다는 것은 뭔가 상황이 더 안 좋다는 의미였다.

“디바인 프로텍션!”

뭐라도 해보자는 의도로 디바인 프로텍션을 나에게 걸 때였다.

누군가의 눈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눈앞은 여전히 흰색 공간뿐이었다.

“누구죠?”

누군가가 답했다.

“생각보다 일찍 왔구나.”

“네? 누구시죠? 여긴 어디죠?”

“나는 네가 가진 성물의 주인이란다.”

“성물? 아! 그럼 풍요와 대지의 신이십니까?”

“후후, 성물이 있다고 해도 이곳까지 오다니 기특하구나.”

누구인지 물었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힐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앞으로 네가 사는 곳에도, 그리고 네가 바라보는 곳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란다.”

지구와 글리제를 말하는 것인가?

“즐거운 여행이 되거라.”

화아악!

흰 공간이 더욱 눈이 부셨다.

나는 그 눈부심에 질끈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윽!”

눈은 부셨지만 따뜻했다.

뭔가가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띠링!

―성물을 흡수하였습니다.

―풍요와 대지의 신의 마크가 생겼습니다.

―스킬 디바인 필드가 생성되었습니다.

―악성향에 대한 공격력이 증가하였습니다.

―악성향 몬스터를 조우할 경우, 몬스터의 적개심이 증가합니다.

따뜻함이 사라지고 주변의 소음이 들렸다.

나는 눈을 떠 보았다.

교황이 인자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오래 걸렸나요?”

“5분 정도 걸렸습니다.”

“성물의 주인이라는 분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뭐라고 하시던가요?”

“제가 사는 곳에도, 제가 바라보는 곳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 말뜻은 지구에서도, 글리제라는 행성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다는 말이었을 거예요.”

교황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변화에 민준 헌터님이 큰 역할을 하실 겁니다.”

“제가 잘해 나갈지 모르겠어요.”

“잘하실 겁니다. 새로 얻은 스킬을 활용해 보시죠.”

“네, 디바인 필드!”

화아악!

나를 중심으로 반경 수십 미터의 원이 생성되었다.

“아아! 민준 헌터님, 이건 신의 가호가 땅에 이르는 모습이군요. 스킬의 특징이 뭔가요?”

“네, 일정 범위에 신성력이 펼쳐지는 것 같아요. 알파야? 디바인 필드의 특징은 뭐야?”

―네, 디바인 필드는 말씀하신 것처럼 일정 범위에 신성력을 흩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위 안에서는 디바인 홀리 큐어, 디바인 프로텍션이 더욱 강해지며 범위 안이 있는 악성향 몬스터에게는 직접 타격을 줍니다.

나는 교황에게 알파에게 들은 특징을 말해주었다.

“호오, 좋군요. 일정 범위에 신성력을 발휘하는 스킬이군요. 악성향 몬스터에게는 직접 타격이라니. 좋아요. 이런 종류의 스킬은 드뭅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교황과의 대화를 마치고 힐러 연합이 준비해둔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는 마치 박물관처럼 생긴 호텔이었다.

중세와 현대의 혼합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샤론 영지에 현대의 문물이 보급될 텐데 어떤 방식으로 샤론 영지를 개선하면 좋을지 그 모델이 되는 것 같았다.

디바인 필드는 힐 스킬은 아니지만, 디바인 필드를 건 상태에서 디바인 홀리 큐어를 걸면 더욱 강한 치료 효과를 보이는 스킬이었다.

결과적으로 디바인 홀리 큐어와 디바인 프로텍트가 모두 강해진 셈이 되었다.

그리고 성물이 흡수되고 신의 마크가 생겼다고 했었는데?

나는 숙소에 들어와서 몸을 더듬어 목걸이 형태의 성물을 찾아보았다.

목걸이가 없었다.

들렸던 목소리에 의하면 목걸이가 나에게 흡수되고 디바인 마크가 생겼다는 뜻인데, 일단 손이나 얼굴과 같이 보이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화장실에서 상의를 벗고 거울을 보았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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