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126화 (125/230)

126화. 로마

유럽 바티칸에 있는 교황청의 예배당.

아아아~

예배당의 한쪽 면에서는 성가대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대부분이 허밍으로 이루어진 노래는 은은하게 퍼지며 공간 자체를 성스럽게 느끼도록 하였다.

예배당의 가운데에는 한눈에 보아도 교황임이 분명한 사람이 서 있었다.

교황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서 얼굴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얼굴이 아니더라도 화려한 노란색 옷과 노란색 모자, 자신의 키보다 큰 지팡이를 보면 누구라도 교황이라 생각할 것이다.

교황은 눈썹이 흰색이었고 주름진 얼굴로 나이가 지긋해 보였다.

교황 주변으로는 교황보다는 단정하지만 비슷한 스타일의 복장인 사람들이 수십 명 서 있었다.

뚜벅뚜벅.

그때, 이 공간과 어울리지 않은 가죽옷을 입은 여자가 교황 앞으로 걸어갔다.

아아아~

성가대의 한층 소리높여 노래를 불렀다.

여자는 교황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교황은 여자의 머리에 손을 대었다.

“당신을 축복합니다. 스킬 축복!”

화아악!

교황의 손에서 빛이 발생하고 그 빛은 여자에게로 전이되었다.

은은하게 여자의 몸 전체에 빛이 발생했다.

마치 몸 전체가 야광이 된 것 같았다.

“아!”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여자의 표정에 교황은 지긋이 미소를 지었다.

“좋은 깨달음을 얻으셨나요?”

“네!”

교황의 물음에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한 번 써 보시죠.”

고개를 끄덕인 여자가 주문을 외웠다.

“힐링 스플래쉬!”

여자의 주문에 맞추어 물방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물방울은 점점 커지면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휘리릭!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기 시작했다.

반경 5m 정도까지 날아가는 작은 물방울이었다.

회복의 물방울을 날려 일정 범위 내의 동료들을 회복시키는 스킬이었다.

“좋군요.”

교황의 말에 여자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교황은 나이가 많았지만 그래도 고위급 각성자로서 여러 스케줄을 소화했다.

교황이 축복 행사를 하고 집무실로 돌아오자 아시아 담당 비서관이 보고했다.

“책상 위에 올려둔 보고서는 아시아 지역 유망 힐러 목록입니다. 축복을 통한 사제로 임명하면 좋을 추천 목록입니다.”

교황이 명단을 보며 물었다.

“그렇군요. 특이한 사제라도 있나요?”

“지난번 중국에서 S급 브레이크가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들어봤어요.”

“그때 S급 몬스터에게 충분히 통한 신성력을 발휘한 한국 헌터가 있습니다.”

“호오, 어떤 신을 믿던가요?”

“그게 딱히 믿는 신은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고위급 신성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요?”

“네, 그렇게 조사 되었습니다.”

교황이 미소를 지었다.

“네, 그리고 일본에서 S급 몬스터 화룡을 해결하는 데 이 헌터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계약을 맺은 상대와는 초장거리 힐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호오, 특이한 경우군요. 한번 만나보고 싶군요.”

“네, 교황님께서 만나고 싶어 하신다고 전하겠습니다.”

* * *

나는 한국 힐러 연합 대표의 명함과 쪽지를 보며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검색어에 교황이라고만 쳐도 어마어마한 양의 자료들이 검색되었다.

교황은 크게 두 가지 역할을 담당했다.

하나는 종교의 지도자 역할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세계 힐러 연합의 수장이었다.

종교 지도자의 역할은 크게 관심이 없어서 힐러 연합 수장의 역할을 집중적으로 찾아보았다.

[교황이 힐러 연합 수장으로서 하는 일이 뭔가요?]

└힐러들 뭉치게 하지. 뭉쳐도 그렇게 뭉칠 수가 없어.

└왜? 스킬도 주잖아.

└그거 아무나 주는 거 아님. 힐러 중에서도 상위 몇 프로밖에 못 받을걸? 탱커나 딜러에게는 스킬을 줄 수도 없어.

└다 받는 거 아니었음?

└응, 아니야. 스킬을 준다기보다는 잠재력을 발현시켜 준다고나 할까? 일단 기본 자격이 힐러여야 해. 그리고 힐러가 몇 년 더 노력하면 얻게 될 스킬을 미리 얻게 해주는 정도?

└그래도 그게 어디임?

└교황은 확실히 힐러들의 구심점이지. 힐러들이 귀족으로 불리는 것은 단합이 잘 돼서 그런 거임.

└탱커 연합, 딜러 연합 본 적 있음? 힐러들은 길드보다 연합이 우선이야. 길드에서 결정한 것도 연합에서 안 된다고 하고 빠져버림. 완전 짜증 남.

└다 살기 위해 하는 거지. 던전에 들어가 봐. 탱커, 딜러 다 도망가면 힐러들은 죽는다고. 도망가지 못하게 갑의 위치에 서는 게 힐러들의 생존 전략이지.

└탱커, 딜러가 갑질했냐고. 갑질 맛 들이는 게 문제라고.

└몇 년 전 힐노예 사건 몰라? 육체적인 힘이 안 되니까 뭉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거잖아.

나는 교황이 하는 일을 물었는데, 힐러 연합에 대한 찬반으로 댓글이 흘러갔다.

힐노예 사건이라는 단어가 인상적이라서 검색해봤다.

몇 년 전, 어느 길드에서 던전을 소유했는데, 던전 안에 힐러들을 감금시켜둔 후 계속 힐을 쓰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신 금제를 가해서 거의 백치 상태가 된 힐러들을 데리고 다니며 힐을 쓰게 했다는 것이었다.

백치 상태에서 조금 회복된 힐러 한 명이 던전 청소부에게 전한 쪽지 한 장이 던전 밖으로 전해지면서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었다.

해당 길드는 힐러 연합의 강력한 보복을 당해 아직도 살아있다고 한다.

그들의 소원이 죽는 것이라고 하는데 힐러 연합으로 끌려가면 주위에 있는 헌터는 죄다 힐러라서 죽는 것도 쉽지 않다고 했다.

나는 한국 힐러 연합 대표라는 사람의 명함을 만지작거리다가 전화를 걸었다.

―라라라라라~

누가 힐러 연합장 아니라고 할까 봐 전화 연결음이 성가였다.

―네, 힐러 홍경원입니다.

“안녕하세요. 명함을 주고 가셔서요. 저는 샤론의 김민준이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전화기 너머로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쪽지에 무려 교황님이라고 적혀 있어서요. 무슨 일이죠?”

―사실 제가 몇 번 연락을 드리긴 했었습니다. 힐러 연합에 가입 제안을 하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연락이 잘 안 되었어요.

하긴 내가 잘 모르는 곳에서 온 연락이 하도 많아서 씹은 연락이 상당했다.

그중 한 명이었나 보다.

―그런데 교황님께서 김민준 헌터님을 뵙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갔었던 것이고요. 일본에 계신다고 해서 쪽지만 드리고 왔습니다. 연락 안 주셨으면 계속 찾아갔을 겁니다. 하하하.

“그런데 혹시 교황님께서 어떤 일로 오라고 하시는지 알고 계실까요?”

―저도 특정 내용을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교황님께서 콕 집어서 부르셨으니 스킬을 주시려 하지 않을까요?

나는 수화기를 잡지 않은 손을 움켜쥐었다.

스킬을 얻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었다.

“크음, 스킬은 그냥 주시는 건가요? 언제 가면 되나요?”

―교황님께서는 특별한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다만, 무려 교황님을 뵙는다면 당연히 힐러 연합을 가입하셔야겠죠. 가입은 일반 가입과 정식 가입 두 종류가 있는데, 교황님이 부르실 정도면 당연히 정식 가입을 하셔야 하고요. 연회비가 있습니다. 소득의 3%, 예전에는 10%를 걷었는데 파격 할인해서 3%로 낮췄습니다.

“아… 3%요.”

―네, 하지만 교황님께 스킬도 얻고 연합의 보호를 받으신다면 3%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네, 일단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릴게요.”

무려 교황이 만나자고 하는데, 가긴 해야 할 것 같긴 하지만 3%라는 말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잠시 고민하다가 차동서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건 또 동서 형님이 빠삭했다.

“동서 형님.”

―어, 우리 길드장님 어쩐 일이야?

“제가 스킬을 얻을 데가 생겼는데 소득의 3%를 내야 한다고 해서요.”

―그래? 무슨 스킬이길래 소득세로 걷어?

“아, 가입비 비슷한 거예요. 교황님이 스킬을 주시고 힐러 연합 가입하는 데 소득의 3%를 내래요.”

―오호, 교황님~ 내가 힐러 쪽은 잘 모르지만, 교황님 뵈러 가서 스킬 얻고 힐러 연합 가입하는데 3%면 괜찮은 것 같은데?

“그래도 평생 3%면 좀 많지 않을까요? 약정 기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음, 우선 힐러들에게 중요한 건 스킬이 아니라 연합의 보호야. 내가 듣기로는 힐러들이 무난하게 던전 돌면 5년 정도 후에 얻게 될 스킬을 바로 얻을 수 있게 하는 것 같다라.

“그래요?”

―그런데 네가 소환술사니까 다른 힐러랑 생각하는 게 조금 다를 거야. 힐러들은 무력이 약하니까 연합에서 철저하게 챙겨주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껴. 막말로 던전에 가서 사이가 안 좋은 헌터들이 있다고 하자. 탱커, 딜러, 힐러가 있다고 하자고. 탱커는 딜러를 죽일 수 없어. 왜냐고? 딜러가 더 빠르니까. 딜러도 탱커를 죽일 수 없지. 그런데 힐러는?

“힐러는 아무나 죽일 수 있죠.”

―그래, 힐러는 남은 살려도 자신은 못살려. 그래서 가입비 3%로 보호받는 느낌이 들면 얼마든지 낼 거야. 힐러 연합이 힐러들 챙기는 거 아주 유명해. 그런데 넌 순수 힐러가 아니라서 체력도 많고 마법도 쓰잖아. 게다가 널 죽이려면 A급 탱커인 카나, A급 딜러인 샤샤, 어새신 제리, 마법사, 기사들을 다 뚫고 가야 하잖아. 그래서 너는 이미 충분히 보호받고 있으니까 순수 스킬 값만 생각해서 3%가 비싸다고 느끼는 걸 거야.

“그랬군요. 잘 알겠어요. 고마워요.”

―그래.

나는 스킬만 생각했는데 동서 형님의 말을 들어보니 스킬 값이라기보다는 보호받으면서 꾸준히 돈을 내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다른 힐러들은 평생 보호받아야 하니까 평생 보호비를 내는 것이었다.

보호 안 받아도 되면 나는 조금 깎아달라고 할까?

나는 다시 힐러 연합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생각해보니까 제가 순수 힐러가 아니고 소환술사가 메인이거든요. 그래서 힐러 연합의 보호가 크게 필요가 없어요. 어지간한 헌터들은 제 소환수를 뚫고 저에게 올 수 없거든요.”

―그러면 요인 보호의 중심을 가족으로 옮겨도 됩니다. 민준 님처럼 힐러이신데도 보호가 필요 없을 수준이거나 경호가 확실한 분들은 그렇게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아… 가족이라.

이분 대표라고 하시더니 사람 마음 흔드는 포인트를 제대로 짚는다.

처음에는 교황이라고 해서 정신을 쏙 빼더니 진정하고 깎으려고 하니 가족을 보호하란다.

하… 가족은 못 참지.

“그래요. 힐러 연합 가입할게요.”

힐러 연합 대표의 설명에 의하면 가족이 부모님과 여동생이 있다고 하니 셋 모두 24시간 경호를 붙여준다고 했다.

한국에 오고 며칠 후,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번 목적지는 이탈리아의 로마에 위치한 바티칸이었다.

이탈리아에 도착하자 힐러 연합에서 마중 나와 있었다.

연합에서 나온 분이 오늘은 관광 및 휴식을 취하고 교황은 내일 만나기로 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로마의 거리를 걸었다.

파는 곳마다 문화재가 나와서 지하철 공사를 할 수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도시 자체가 문화재 수준인 로마였다.

거리 곳곳에는 미술실기 재료로 쓰일법한 조각 같은 건물들이 있었다.

대형 박물관은 박물관 건물 자체만으로도 후덜덜한 조각미를 뿜어냈다.

“혼자만의 여행도 좋지만 역시 여행은 함께가 좋지? 알파야, 다 소환.”

―네, 알겠습니다.

화아악!

샤론팀이 다 소환되었다.

“어머, 여긴 또 어디예요?”

“오호, 건축물이 멋진데?”

“혹시 몬스터가 있나요?”

역시 여행은 함께가 좋았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인 식사 시간이었다.

로마의 맛집으로 소문난 곳에서 파스타에 간단한 와인 한잔을 곁들이고 있었다.

띠링!

동생 민아의 문자였다.

[오빠, 힐러 연합에서 경호원 왔어. 오빠가 보냈다고 하네. 언닌데?]

이번 여행은 던전 레이드가 아니라 위성 전화로 인터넷이 되게 해두었다.

당장 몬스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인터넷이 안 되면 답답해서 안 되었다.

민아는 그러면서 경호원과 함께 있는 사진을 보내주었다.

B급 탱커라고 하는데 가방 한가득 경호 용품을 항상 들고 다녀서 잠깐은 A급 탱커 수준으로 보호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엄마와 아빠에게도 각각 경호원이 붙었는데 원거리 경호로 생활에 불편함은 없을 거라고 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흐뭇해졌다.

나는 로마의 거리를 배경으로 샤론팀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헐. 거긴 또 어디임?]

[응, 로마.]

[부럽.]

문득 이렇게 샤론팀원들과 함께 있으니 내가 일반적인 힐러들처럼 두렵지 않아 한다는 동서 형님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내가 두려울 이유가 없지.”

“두렵다고요? 뭐가요?”

“아니, 어떤 적들이 있어도 여러분들 덕분에 두렵지 않다고요.”

“아잇, 민준 님.”

여행과 와인 한잔, 그리고 훈훈한 시간을 가진 다음 날, 교황을 보러 갔다.

높고 넓고 거대한 광장을 지나니 교황 건물이 우릴 반겼다.

신뢰할 수 있는 동료와의 여행도,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중세풍 건물도 모두 아름다웠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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