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핑퐁
후지산 정상에서 화룡이 솟아올랐다.
화룡은 우리를 보았는지 몸을 꿈틀거리며 곧장 우리 쪽을 향해 다가왔다.
화르르륵!
화룡이 지나는 길에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작전용 이어폰으로 지시가 떨어졌다.
―화룡이 다가옵니다. 모든 헌터들은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노승민 헌터가 소리쳤다.
“한국 공대원은 진형의 우익을 맡습니다. 섣부르게 다가가지 마시고 수비만 충실하게 하시면 됩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런 대형 레이드에 참여하긴 처음이었다.
마치 군부대처럼 진형을 갖춘 부대에 포함되어 다가오는 화룡을 보니, 뭔가 긴장되면서도 많은 헌터들과 함께하니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헌터들은 전투를 준비했다.
샤샤는 활과 화살을 걸고 화살통에 화살을 가득 준비했다.
사거리 증가 스킬을 새로 받았기 때문에 전보다 빠르게 전투에 돌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화살을 전보다 많이 준비한 것이다.
카나도 방패를 꺼내 휘휘 돌리고 있었다.
카나는 방패수의 역할과 나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
내가 카나에게 손을 내밀자 카나는 선물함에서 200ml 짜리 마나포션 하나를 꺼내주었다.
마나포션 옆에는 비닐 포장이 되어 있는 빨대가 붙어 있었다.
빨대를 떼어내고 톡톡 두드려 뚜껑에 빨대를 꽂았다.
“디바인 프로텍션.”
나, 샤샤, 카나부터 프로텍션을 걸었다.
저기 전방에 있는 헌터들도 보호막을 걸어주었다.
마나포션을 한 입 쪼옥 빨아 마셨다.
“아, 달달하네.”
카나가 나를 보더니 피식 웃길래 내가 말했다.
“왜, 이번 전투는 원거리에서 디펜스에 집중하라잖아. 그럼 이렇게 마나포션 빨면서 계속 실드 치는 게 맞는 거라고. 디바인 프로텍션.”
나뿐만 아니라 버퍼와 실드를 걸 수 있는 마법사들은 부랴부랴 마법을 걸고 있었다.
대단위 보호 마법과 개인별 방어 마법이 차곡차곡 걸리고 있었다.
최전방 탱커들의 경우 세 겹 이상의 보호막이 걸렸다.
우익의 최전방에는 노승민 헌터가 자리 잡았다.
오성의 자랑, 기갑 전사가 변신을 하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노승민 헌터도 아공간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긴 오성이 어떤 길드인데 노승민이 아공간 하나 없을까.
철컥. 철컥. 기이이이잉. 쿵.
아공간에서 나오는 거대한 쇳덩어리가 차곡차곡 쌓이더니 거대한 로봇이 되었다.
하체는 말과 같았고, 상체는 인간형인 거대 로봇.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의 켄타우르스와 닮았다.
하지만 차이점은 금속으로 이루어졌다는 것과 높이가 10m는 되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등 쪽에 다연발 로켓포 같은 모양의 뭔가가 있었다.
마나가 담기지 않은 로켓은 몬스터에게 별 의미가 없었지만, 그걸 모르진 않을 테니 마나를 담아 공격할 수 있는 다연발 무기 같아 보였다.
10m짜리 켄타우르스 로봇이 그 육중한 몸을 가릴 방패와 검을 꺼냈다.
잠깐만, 그런데 저 모습으로 던전에서 몬스터들을 사냥했다는 건가?
오크들은 덩치가 커봐야 2~3m이고 오우거라고 해봤자 5m 정도인데 저건 사기 아닌가?
원래 사기급 스킬이 있어야 S급이 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메카닉 마스터 노승민 헌터와 글로벌 기업인 오성의 자금력이 만난 결과물이 저 모습이었다.
“저거 얼마일까?”
내 물음에 샤샤가 답했다.
“꽤 비싸겠죠?”
일본 헌터들도 대형 나무와 석판을 소환했다.
동화 속 잭와 콩나무의 나무처럼 무럭무럭 나무가 솟아났다.
좌익에 있는 동남아 헌터들 중에도 S급이 있었는지 푸르스름한 대형 장벽을 세웠다.
어느새 화룡이 가까이 다가왔다.
커다란 눈은 마치 유리처럼 평평하며 광택이 났지만, 그 속의 눈동자가 보이지는 않았다.
커다란 이빨은 수십 개가 드러나 있었고, 머리 주변에는 붉은 갈기가 흩날리고 있었다.
코와 입 주변에서도 용의 수염이 길게 흘러내렸다.
붉고 긴 뱀과 같은 몸에 네 개의 다리가 달려 있었으며, 다리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박혀 있었다.
화르르르륵!
화룡이 다짜고짜 마그마를 쏟아부었다.
녀석의 몸은 붉은색에서 노란색을 빛을 띠고 있었다.
원래 노란색이라기보다는 너무 뜨거워서 노란 빛을 방출하는 모습이었다.
출렁.
부대 전체를 휘감고 있던 대형 실드가 화룡의 브레스에 출렁거렸다.
화르르륵!
화룡의 입에서는 용암이 계속 쏟아져나왔다.
화룡의 긴 몸은 날씬한 느낌보다는 굵은 느낌을 주었는데, 그 몸통 안에 용암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꾸우우욱.
챙그랑!
가장 겉면에서 은은한 빛을 내며 부대 전체를 감싸던 대형 실드가 깨져 버렸다.
“익!”
실드를 담당하던 마법사들 쪽에서 당황하는 소리가 들렸다.
―원거리 딜러들 공격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이스 계열이 상성이 가장 좋고, 순수 마나도 나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화염이나 독 계열은 거의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내가 샤샤를 바라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샤샤는 싱긋 미소를 지어주더니 활에 화살을 걸고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슈슈슉!
샤샤는 한 번에 세 대의 화살을 걸어서 날렸다.
화살은 모두 아이스 계열 마법이 인챈트 되어 있는 화살이었다.
화룡은 덩치가 컸고, 모든 화살은 당연하다는 듯 정확히 화룡을 향해 날아갔다.
지금은 화룡과 헌터 양쪽이 풀로 방어력이 가득 찬 상태였다.
본격적인 데미지를 주기에는 약간 시간이 걸릴 듯했다.
그 시각 한국으로도 일본의 화룡 레이드가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땅속에서 지진과 쓰나미를 일으킨 몬스터, 후지산 분화구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 그리고 현재 수백의 헌터들과 대결을 벌이고 있는 몬스터.
화룡은 용의 현신이라는 빛나는 비주얼로 사람들의 이목을 붙들었다.
“안녕하십니까?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면 어디라도 간다. 던전 브레이크 전문기자 조금만입니다. 저는 지금 일본 후지산 인근에 나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수백의 헌터와 불의 몬스터가 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민준의 여동생 민아와 친구 가영이도 함께 일본에서의 레이드를 보고 있었다.
“민아야, 너네 오빠 아니야?”
“뭐?”
조금만 기자의 영상을 뚫어져라 보던 가영이가 영상을 10초 전으로 돌렸다.
헬리콥터로 멀리서 잡은 화면에는 수백의 헌터들이 화룡과 대치하고 있었다.
다수의 마법이 화룡으로 날아갔고 화룡은 이에 답하듯 입에서 불길을 쏟아 헌터들을 향해 뿌렸다.
그때 화면이 헌터들을 향해 화면을 확대했는데, 살짝 스쳐 가는 헌터의 모습 중에 오빠와 닮은 모습이 있었다.
가영이가 화면을 정지시키며 말했다.
“어? 맞는 것 같은데?”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그 옆에 화살을 든 헌터를 봐. 딱 봐도 샤샤 언니네.”
가영이가 가리킨 남자 헌터는 화질이 조금 별로라서 구분하기가 어려웠지만, 옆에서 활을 들고 있는 헌터와 함께 보니 샤샤와 민준 오빠가 맞는 것 같았다.
하늘색 머리카락에 활을 들고 있는 헌터가 흔한 건 아니었다.
가영이가 영상을 다시 1초 지나게 하자 그 옆에는 대형 방패를 든 여자 헌터가 있었다.
하늘색 긴머리의 궁수와 밝은색 머리에 방패를 든 헌터 사이의 남자 헌터.
그 모습에 민아도 확신했다.
“카나 언니네. 오빠는 저긴 또 왜 갔어.”
화면은 어느새 대형 켄타우로스 로봇으로 변신한 노승민 헌터를 비추고 있었다.
“이번에는 오성이랑 같이 간 모양인데?”
“그래, 저건 오성의 노승민 헌터니까 같이 간 모양이네.”
화면에서는 한 여성 헌터가 공중으로 높이 날아오르더니 얼음 마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뜨겁던 화룡의 열기를 막는 눈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마름모 모양으로 생긴 얼음 결정들은 수백, 수천 개가 생겨 허공에 멈춰 있었다.
얼음 결정들은 화룡의 열기에 터져 나갔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새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불과 빛과 얼음이 허공에서 빛나고 있었다.
“와, 예쁘다.”
공중에서 멈춰 얼음 결정을 만드는 헌터의 몸 주변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민지혜인가 봐.”
“그러게.”
전투는 실시간으로 제공되고 있었고 인터넷에서는 그 모습을 보며 난리가 나고 있었다.
└ 지혜님 왜? 왜? 거기까지 가셨어요 ㅠㅠ.
└ 울 지혜 님, 다치면 안 됨 ㅠㅠ.
└ 왕의 던전 실사판.
└ 그러게, 왕의 던전이랑 어떻게 이렇게 비슷하냐.
└ 그럼 서브 남주 여기서 죽는 거임?
└ 맞아, 여기서 최민상 죽었잖아.
└ 그건 드라마고 이건 현실이잖아 죽긴 왜 죽어! 그런 말 하지 마!
└ 노승민이 있잖아. 일본 애들도 S급 셋이나 있는 것 같은데? 동남아 애들도 정예인 듯해. 이거 제대로 에이스들만 모였는데 질 수가 없지.
└ 이거 두 번째 레이드임. 첫 번째에 일본 애들 많이 죽었다고 그러던데.
└ 두 번째이면 두 괜찮음. 원래 뭐든 처음이 어려운 거임.
많은 이들이 왕의 던전 여주인공인 민지혜를 걱정했다.
민지혜에게 어그로가 끌렸는지 화룡이 한국 헌터들이 몰린 곳으로 다가갔다.
“어!”
“안 돼!”
먼 한국에서의 외침은 들리지 않는지 화룡이 민지혜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 앞에는 노승민 헌터가 있었다.
└ 예! 역시 노승민!
└ 로봇 넘 멋짐.
└ 오성이 만들면 다르다!
민지혜를 공격하러 가는 화룡과 그 앞을 가로막는 로봇에 댓글이 난리가 났다.
그때, 화면 속의 한국 헌터들은 화룡과 대치를 하지 않고 재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민지혜와 노승민을 남겨두고, 나머지 헌터들은 중앙의 일본 헌터들을 돌아서 가장 좌측으로 이동했다.
달랑 민지혜와 노승민만 외롭게 화룡과 대치를 하는듯한 상황에서 순식간에 민지혜와 노승민이 부대의 좌측으로 이동했다.
화룡의 입장에선 어그로가 끌린 민지혜가 부대의 가장 뒤쪽으로 이동한 형국이었다.
화룡은 본의 아니게 눈앞에는 S급 일본 세 헌터와 마주해야 했다.
└ 오오!
└ 봤어?
└ 방금 뭐임? 순간이동임?
└ 아니, 울 지혜짱과 승민이 형이 순간이동 할 줄 알음?
└ 나 빠돌인데, 지혜짱 스킬은 아님.
└ 민지혜가 상성이 좋으니까 데미지가 팍팍 먹히고 그래서 어그로가 끌리네.
└ 지혜짱 때찌하러 갔는데, 갑자기 사라지고 본진과 붙으니까 화룡 당황했쥬?
민지혜와 노승민이 나에게 쪽지를 보냈다.
[민준 헌터님, 소환 작전 괜찮은데요?]
[소환술사님, 제가 전방에 나가서 블리자드 쓰고 나면 다시 뒤쪽으로 빼주실 수 있나요?]
[네, 물론입니다.]
[그럼 다시 앞으로 나갈게요.]
소환맛을 본 두 헌터가 전방으로 나갔다.
나는 후방에 있어야 소환해서 저들을 불러올 수 있었고, 다른 한국 헌터들도 굳이 전방으로 나가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딜량이 가장 많은 두 헌터가 다시 화룡에게 다가갔다.
지금은 민지혜에게서 어그로가 풀리고 일본 S급들에게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었다.
한국 헌터들의 온갖 버퍼를 뒤집어쓴 민지혜가 하늘에 육망성을 그렸다.
“시린 바람은 얼음이 되고 푸른 빙하는 물결이 되리라. 블리자드!”
하늘에 그려진 대형 육망성에서는 푸른 눈보라가 토네이도처럼 내려오기 시작했다.
강력한 얼음 바위들이 휘몰아치며 화룡을 강타했다.
이에 질세라 켄타우로스 로봇은 수십m짜리 대검을 꺼내어 화룡에게 내려쳤다.
지금까지 검으로 화룡을 근접 강타하지 않았는데, 근접 딜로는 거의 처음인 공격이었다.
블리자드에 집중 공격을 받아 식어버린 화룡의 몸통 부분에 대형 검이 내려왔다.
퍽!
멀리서 봐도 아파 보였다.
한 방으로도 어지간한 건물을 부술 것 같은 검격이었다.
화룡도 제법 피해가 있었는지 이번에는 로봇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휘리릭, 콰직.
노승민 헌터를 물더니 몸통으로 휘감아 버렸다.
이렇게 화룡과 일 대 일이 되면 아무리 노승민 헌터라고 해도 위험하다.
팟!
하지만 노승민 헌터는 언제 화룡에게 휘감겼냐는 듯 사라지더니 헌터 부대의 뒤편에서 나타났다.
└ 오예!
└ 저거 뭔 스킬이냐?
└ 완전 좋은데?
└ 저거 샤론 길드의 김민준 아냐? 소환 스킬인 것 같은데?
└ 지금 저거 어그로 핑퐁 하고 있는 거 맞지?
└ 맞는 듯. 어그로를 끌었다가 사라지고, 다른 애가 패서 그쪽에 어그로 끌리면 다시 나타나서 패고, 그래서 또 어그로 끌면 사라져서 정신줄 놓게 만드는 거임.
└ 저 봐라. 화룡이 노승민 찾으러 가려는데 일본 애들한테 계속 맞잖아. 저러다 어그로 일본애들이 가져가면 다시 나타날 듯.
└ ㅋㅋㅋㅋ 어그로 핑퐁 넘 좋은데?
우리는 좋은 말로 양쪽에서 치고 빠지기, 이른바 어그로 핑퐁을 했다.
“스고이.”
“스바라시.”
우리의 치고 빠지기 전략을 본 일본 헌터들은 연신 최고라는 표현을 날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화룡의 체력이 제법 깎인 것 같았다.
화룡이 잠시 뒤로 물러났다.
고개를 흔들더니 네 발을 땅에 박았다.
뭐지? 뭔가 다른 것 같은데?
전술 이어폰의 소리가 들렸다.
―조심하십시오. 페이즈 2인 것 같습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