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일본으로
나는 비행기에서 내려 협회장, 차지율 헌터와 함께 곧바로 헌터 협회로 이동했다.
협회의 발표실로 들어서자 이미 마흔 명 정도의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먼저 협회장의 이름으로 소집령을 보냈다고 한다.
얼핏 보아도 익숙한 얼굴의 헌터들이 보였다.
물론 내가 그들의 얼굴을 TV에서 보아 익숙하다는 것이었고 그들이 내 얼굴이 익숙하다는 건 아니었다.
저기는 TV 광고에서도 나오는 오성 길드의 자랑, S급 기갑 전사인 노승민 헌터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공간에는 협회장을 포함해서 S급만 세 명이었다.
한국의 S급은 총 다섯 명이었다.
이곳에 있는 협회장, 차지율, 노승민을 빼면 두 명인데, 두 명 중 한 명은 마녀라 불리는 기예라 헌터였다.
그런데 기예라 헌터는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인데, 2년 전 북극의 초대형 빙하 하나를 깨 먹고 남극으로 잠수를 탔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은둔자라 불렸다.
은둔자는 얼굴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다.
이십여 년 전에 활동했다고 하는데, 그때도 철저히 얼굴과 이름을 가렸으며 어디 이름 모를 던전에서 농사를 지으러 간다는 말을 전하고 사라졌다고 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늘 농사짓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은둔자를 지칭하는 마크가 되곤 했다.
2년간 잠수 중인 기예라와 20년째 잠수 중인 은둔자를 빼면 올 수 있는 S급은 다 온 셈이었다.
사실 나는 무려 S급이 되어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는 은둔자에게 제발 돌아오라, 책임감을 가지라는 말이 20년째 지치지도 않고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던전 브레이크를 접하고 또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아보니 훌쩍 떠나버린 그 사람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또 저쪽에는 왕의 던전 여주인공인 크리스털 길드의 민지혜 헌터까지 있었다.
와, 역시 연예인은 연예인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생겼지?
내가 샤샤와 카나에게 면역이 생겨서 괜찮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정신줄을 놓을 뻔했다.
설마 일본의 붉은 용을 잡으러 민지혜도 가는 건가?
그렇다면 왕의 던전 실사판이 따로 없을 듯했다.
협회장이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띄웠다.
대형 화면의 중앙에는 후지산을 배경으로 거대한 붉은 용의 모습이 보였다.
“약 한 시간 전, 일본 후지산 정상에서 대형 몬스터가 나왔습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이 몬스터를 화룡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일단, 이 몬스터의 이름을 화룡으로 부르겠습니다. 먼저 영상을 보시죠.”
동영상이 흘러나왔다.
거대한 나무를 소환하는 헌터, 대형 암석 벽을 생성하는 헌터, 그리고 수많은 헌터들이 화룡과 대치했다.
화룡은 몹시 뜨거워 보였는데 온몸에서 뜨거워 보이는 뭔가가 뚝뚝 흘렀고 특히 입에서 내뿜는 불길은 분화구 자체로 보였다.
“화룡은 지하 마그마를 잠수해서 헤엄치듯 이동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그마가 통하는 길을 따라 후지산을 통해 나왔다고 합니다. 전투 방식도 뜨거운 용암과 불길을 쏟아내는 방식입니다. 또한 화면에서 보듯이 몸놀림도 빠르고 이동 방식이 발이 땅에 닿기는 하지만 거의 공중에 떠 있는 채로 이동을 합니다.”
동영상은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되었으며 이미 하나하나 세심하게 분석되었다.
특히 화룡이 화염 브레스를 쏠 때의 특징이나 전조 증상 등은 헌터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부분이라서 자세하게 비교 분석되었다.
협회장은 화룡의 특징을 설명한 후 헌터들을 둘러보았다.
“일본으로부터 정식으로 도움 요청이 왔습니다.”
모두 협회장을 바라보았다.
“가야 합니다. 한 번의 사태로 끝날 일이라면 모른 체 할 수도 있고, 조건을 걸며 시간을 끌 수도 있지만 아시다시피 이건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다.
“인원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출발 시간은 언제인가요?”
“그래도 국외로 던전 밖의 몬스터를 레이드 하러 가는 건데 조건을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일본 헌터들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한참을 토론한 후, S급인 오성 길드 기갑 전사 노승민을 대표로 팀을 꾸리기로 결론을 내렸다.
나는 천마 차지율에게 물었다.
“차지율 헌터님은 일본에 안 가세요?”
차지율 헌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함께 미국도 다녀오고 나를 그렇게 빡세게 훈련시킬 때는 언제고, 자기는 안 간단다.
“왜 안 가세요?”
차지율 헌터는 씨익 웃었다.
“민준 헌터님, 너무 억울해하지 마세요. 협회장님, 저, 노승민 헌터 이렇게 셋이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한 S급이잖아요.”
“그렇죠.”
“우리나라에 큰 위기가 벌어진 것도 아니고 지구 전체의 문제라고는 하지만 타국의 문제를 돕는데 S급들이 둘 이상 작전에 투입되지 않아요. 만약, 저와 노승민 헌터가 일본에서 발이 묶였는데 한국에 위기가 터지면 어떻게 해요.”
“아…….”
“S급이 한 명 가주는 조건이면 우리나라로서도 할 만큼은 하는 것이죠. 그리고 아시다시피 오성 길드가 글로벌 기업이잖아요. 아마 일본과도 얽힌 것이 많을 거예요. 그래서 저보다는 노승민 헌터가 가는 게 더 이익일 겁니다.”
어른들의 사정이란 건가.
일본 원정단장은 오성의 기갑 전사 노승민 헌터가 맡고, 부단장으로는 크리스털의 민지혜가 맡기로 했다.
민지혜는 화룡과 극상성이라 다들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나를 포함해 20명의 헌터가 차출되었다.
각자 준비한 후 10시간 후에 다시 모이기로 했다.
나도 출발 전 만반의 준비를 하기로 했다.
화룡은 온도가 너무 높아서 근접 딜러는 최소로 가기로 했다.
수비를 위한 탱커와 공격을 위한 원거리 딜러 그리고 힐러, 버퍼로 조합을 짰다.
나도 어떤 조합으로 갈까 하다가 샤샤, 카나만 데려가기로 했다.
야수형이자 어쌔신 계열의 근접 딜러인 제리는 이번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르녹과 꾸얀도 마찬가지로 이번 전투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헌터 마켓을 들러서 아이템은 최대한 열기를 막을 수 있는 종류로 갖추었다.
【플레임 레더 아머】
▷ 등급 : 고급
▷ 방어력 : 150
▷ 내구도 : 170/170
▷ 화염 저항력 30%
【화염 요정의 목걸이】
▷ 등급 : 고급
▷ 내구도 : 50/50
▷ 화염 저항력 10%
샤샤, 카나, 내가 똑같은 아머에 똑같은 목걸이를 걸쳤다.
유니폼 같았다.
샤샤는 옷을 맞춰 입은 것이 유난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옷을 똑같이 맞춰 입으니까 더욱 한 팀이 된 것 같아요.”
“그래, 나도 그러네. 팀명이라도 외쳐야 할 듯.”
기본적인 옷을 입었으면 개인 스텟 관리를 해야 했다.
“알파야, 미분배 스텟이 얼마나 남았지?”
―55개가 남았습니다.
“와, 많네”
―지난번 데빌 페어리를 잡은 이후 잔여 스텟을 올리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흠… 아무래도 이번에는 체력이 중요하겠지?”
―원거리에서 열기에 버텨야 하므로 체력은 중요한 요소일 것입니다.
“그러면 힘, 민첩을 70까지 찍고 마나는 10만 더 올리고 나머지는 체력에 찍자.”
―알겠습니다.
“상태창 확인을 해볼까?”
[김민준]
직업: 소환술사
레벨 56
힘 70
민첩 70
체력 120
마나 130
미분배 스텟 0
소환수 3/3
거주 행성: 지구
연결된 행성: 글리제
스킬: 중하급 소환술, 용병, 디바인 홀리 큐어, 디바인 프로텍션, 바인드
스텟 다음은 스킬 관리였다.
“그다음으로 할 일이 있지?”
―스텟 뽑기도 두 번 남았습니다.
“자, 카드 띄워.”
눈앞에 여러 장의 카드가 떴다.
뒤집힌 카드 여러 장이 허공에서 나를 뽑아달라며 맴돌고 있었다.
뽑기란 게 참 그렇다.
뭐가 나올지 모르니 언제 해도 아슬아슬한 맛이 있었다.
슬쩍 카드 한 장을 건드렸다.
“아냐, 아냐.”
다른 카드 한 장을 건드렸다.
“이것도 촉이 별론데…….”
눈 딱 감고 한 장을 뽑았다.
―뒤집으시겠습니까?
“아니, 잠깐만! 한 번 더 하고 한 번에 까자.”
나는 다시 카드 한 장을 더 집었다.
“둘 다 까봐!”
―하나는 사거리 증가, 다른 하나는 도발입니다.
“사거리 증가와 도발?”
나는 옆에 있는 샤샤와 카나를 보았다.
사거리 증가는 샤샤, 도발은 탱커인 카나에게 딱인 스킬이었다.
“소환수 스킬이 곧 내 스킬이지, 안 그래?”
―맞습니다.
“자, 샤샤에게 사거리 증가, 카나에게 도발 스킬.”
“민준 님 것은 없어요?”
“이번에 나온 게 너희들에게 딱 맞는 거라서 주는 거야, 나도 지난번에 디바인 홀리큐어 얻었잖아.”
“그래도…….”
“괜찮아. 소환술사의 강함은 어디서 나온다?”
“소환수?”
“잘 아네.”
샤샤의 화살도 아이스 계열로 판매하는 것들은 싹 쓸어 담았다.
마켓 사장님에게 아이스 애로우를 있는 대로 다 달라고 했다.
“대형 레이드 가시나 봐요?”
“네, 초대형이죠.”
“샤샤야, 이거 다 담고 창고에도 있으니까, 모자라면 제리 보고 가져다 달라고 하면 돼.”
제리가 창고에 있다가 우리가 창고에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제리의 선물함에 담아서 일본으로 소환하면 되었다.
“그래도 일단 챙길 건 다 챙겨야지.”
샤샤의 선물함은 아이스 애로우로 가득 채우고, 샤샤의 선물함은 포션 종류로 가득 채웠다.
다시 시간이 흘러 노승민 헌터와 만났다.
“이번 공대장을 맡은 노승민입니다. 우선 이동하시죠. 브리핑은 비행기에서 하겠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노승민이 브리핑을 했다.
“화룡을 상대할 방법에 대해 회의를 많이 했는데요, 저희는 수비 위주로 진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불은 뜨겁지만 결국 식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시간이죠. 주변의 피해가 크겠지만 저희는 저희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며 주변 피해는 무시합니다.”
비행기에도 대형 전자칠판이 있어서 모식도를 그려가며 설명했다.
“주변 피해를 무시한다는 건 예를 들어 화룡이 저희를 무시하고 도쿄로 진출할 때, 악착같이 따라가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일본인과 우리는 입장의 차이가 있었다.
“눈앞의 피해보다는 헌터의 생존이 결국 장기적인 인간의 수를 보존하는 길이라는 것. 이것이 국제 헌터 협회의 제안이기도 했고 협회장님과 저의 생각도 같습니다. 거리를 두면서 디펜스에 치중합니다. 그리고 버퍼님들?”
“예.”
몇몇 헌터가 대답을 했다.
“민지혜 헌터가 화룡에 대한 상성이 좋아 보입니다. 버퍼는 민지혜 헌터에게 집중적으로 걸어주는 방향으로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김민준 헌터님?”
“네?”
“데빌 페어리 때는 원거리에서 용병을 소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화룡에 대한 데이터가 아직 충분히 모이지 않았지만, 극단적인 원거리 회피 전술은 일단 보류할까 합니다. 대신 전방의 화염에 휩싸인 헌터들을 용병 스킬을 이용해 뒤로 빼는 전술이 가능할까요?”
나는 대충 눈에 보이는 후방에서 싸우다가 전방의 헌터들이 위험해 보이면 뒤로 빼달라는 말이었다.
“음, 연습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네, 좋습니다. 연습이 비행기 안에서도 가능할까요?”
“물론이죠.”
비행기 안에서 간단하게나마 소환 연습이 이루어졌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황두칠입니다. 어라? 이거 따라 읽으라고요? 나 황두칠은 용병 계약에 동의한다? 어디 보자 그리고 예스?”
황두칠이 뒤쪽으로 소환되었다.
“이거 좀 복잡한데요?”
용병 계약 과정이 급박한 상황에서는 조금 복잡해 보였다.
지금까지는 소수의 인원을 계약한 후 긴 시간 동안 용병으로 활용해서 문제가 될 것이 없었는데 급박한 상황에서 여러 인원을 뒤로 빼기는 어려워 보였다.
“알파야, 이거 급박한 상황에서 여러 사람을 소환하려면 계약 과정이 복잡한데, 줄일 수 없을까? 미리 사전 계약을 한다거나 하면 되잖아.”
―네, 계약을 체결한 적이 있는 사람이 사전에 계약에 동의해 두면, 간단 계약으로도 소환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
간단 계약은 소환 대상 헌터의 예스 한 번에 소환이 가능했다.
전투 중에 화염에 휩싸이면 이름을 한 명씩 지정하기도 어려울 것 같았는데, 내 눈에 보이면 범위 지정으로 순차적으로 소환할 수 있다고 하였다.
비행기 안의 스무 명의 헌터들은 비행기의 앞쪽에서 뒤쪽으로 소환되었다.
“불길에 휩싸여 죽을 것 같은데 띠링 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예스라 이거지.”
“계속 예스라고 외치고 있으면 되는 거구만.”
곧 비행기가 도착하고 실전 배치되었다.
이미 우리뿐만 아니라 필리핀, 중국, 베트남 헌터들이 도착해 있었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도록 작전용 이어폰을 착용했다.
“화룡이 도쿄로 가는 것만은 막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주변을 파괴하고 다니는 것은 막지 못했고 데미지도 많이 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헌터들의 피해는 얼마나 되죠?”
“S급들도 체력이 많이 깎였고, A급 헌터 스물일곱 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놈이 도쿄로 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지금 놈은 뭘 하고 있죠?”
“후지산 분화구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일본 헌터들과 접전을 벌인 화룡은 분화구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고 했다.
마치 화룡이 재충전을 하기 위해 들어간 것 같았지만, 그동안 일본 헌터들도 재충전을 할 수 있었다.
“비상! 놈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저 멀리 후지산 정상에 기다란 뭔가가 튀어나왔다.
노승민 헌터가 말했다.
“한 번 붙어봅시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