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화룡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서울로 가고 있는 와중에도 중간중간 일본의 지진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어로 된 방송에서도 일본 해안가의 처참한 모습이 드러났다.
대형 쓰나미에 자동차는 물론이고 집이 둥둥 떠서 처박히는 모습이 연신 재방송되었다.
헬리콥터로 쓰나미가 상륙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 화면에는 쓰나미를 피해 최선을 다해 달아나다가 결국 따라잡히는 어느 자동차의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한국 자료는 자꾸 재방송을 보여줘서 아예 일본 방송을 틀었다.
비행기에서는 일본 위성TV를 볼 수 있었고, 협회장과 함께 가는 스텝 중에서 일어 통역이 있어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지속적인 지진이 왜 일어나는 건지 의아했다.
“저긴 왜 저런 건가요?”
“일단 NHK 방송에서는 자연적인 지진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걸 어떻게 알죠?”
“방송에서는 지진파의 패턴이 일반적인 지진과 다르다고 합니다. 지진파의 모양이 뭔가 폭발한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요?”
“네, 우리나라에서도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바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지하에서 핵폭발이 일어나면 한 점에서 사방을 밀어내니까 P파만 발생한다고 합니다. 지진은 뭔가 부러진 듯한 흔들림으로 폭발과는 다르답니다. 이번 지진이 폭발과 꽤 비슷한 모양이랍니다.”
“일본이 핵실험을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 위치가 일본 먼바다에서 점점 일본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 보시면 지진이 발생한 위치가 점점 다가오고 있죠.”
그림에는 일본 지도에 지진이 발생한 시간과 장소가 그려져 있었다.
먼바다에서부터 무언가가 다가오듯 지진이 발생하고 있었다.
“이게 뭐죠?”
“모르죠. 지하에서 이렇게 지하에서 폭발을 일으키며 무언가가 다가온 적은 없습니다.”
나는 통역의 모른다는 답변에 자연스레 협회장을 바라보았다.
경험이 많은 협회장이라면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협회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몬스터겠죠.”
“이렇게 땅속을 다니며 지진을 일으키는 몬스터가 있나요?”
“아직 보고된 바 없습니다. 하지만 던전의 수준이 오르고 있다는 국제회의를 다녀오는 길 아닙니까?”
협회장은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뭔지 몰라도 아마도 우리가 처음 보는 몬스터일 겁니다. 그리고 육지로 점점 다가오는 것을 보니 곧 모습을 드러내겠죠.”
우리는 뉴욕으로 날아갈 때보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뉴스를 보며 한국으로 날아왔다.
* * *
전 세계 지진의 약 20%가 발생한다는 일본은 지진에 대한 준비가 늘 진심이었다.
벽에 작은 못 하나도 그냥 박지 않고 못을 위쪽으로 구부려 지진이 발생할 때 물건이 떨어지지 않게 하곤 했다.
그렇게 지진에 만반의 준비를 해도 자연 앞에서 인간은 작은 존재였다.
이미 쓰나미에 큰 피해를 보았으며 그 쓰나미의 원인이 몬스터로 추정되자, 일본 헌터 협회장 렌과 일행은 최대한 빠르게 일본으로 돌아왔다.
일본 헌터 협회 대책실에서는 이미 지진을 일으킨 몬스터에 대한 분석이 한창이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전화기, 수많은 컴퓨터와 각종 그래프, 헌터들과 기상청 관계자들이 얽혀 놈의 정보를 알아내려 했다.
급하게 돌아온 협회장 렌이 물었다.
“놈은 뭔가? 보고하시오.”
협회장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여러 헌터들에게도 정보를 제공하는 보고가 준비되었다.
보고는 기상청 지진 담당 실장과 헌터 협회 임원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우선 저희는 지진의 원인을 몬스터라고 가정하고 놈을 ‘지진 몬스터’라고 부르겠습니다.”
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놈은 지하에서 마그마 챔버를 따라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마그마 챔버?”
“네, 열도 아래에는 단단한 암석이 아니라 거대한 마그마가 존재하는데 이곳을 따라 지진 몬스터가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마그마라면 뜨겁지 않은가?”
“네, 온도는 섭씨 약 1,000도에서 1,600도까지 이릅니다. 지진 몬스터는 마치 수영을 하듯 헤엄치며 그 길을 따라 일본 열도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음…….”
“그리고 중간중간 폭발을 일으키는 위치도 절묘했습니다. 폭발을 일으키는 위치가 활성 단층대라서 큰 지진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땅속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렌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인상을 썼다.
“놈이 어디로 나올 것 같은가?”
“기상청의 분석에 의하면 마그마 챔버가 연결된 통로를 따라 나올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곳이 어딘가?”
발표자가 청중들을 훑어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마그마가 자연적으로 분출되는 길, 후지산입니다.”
* * *
후지산은 입산이 통제되었다.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공무원들이 바쁘게 뛰어다니며 후지산에 있을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헬리콥터가 날아다니며 방송을 했다.
타다다다다.
“지금은 대피령이 발령되었습니다. 지금 즉시 하산하시기 바랍니다. 후지산 전체에 대피령이 발령되었습니다. 지금 즉시 하산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여러 번의 지진에 의해 등산객도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산의 곳곳에 휴게소도 있고 필수적인 인원, 등산 매니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피령이라는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얼른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등산 매니아들도 주저앉을 정도로 큰 흔들림이 발생했다.
쿠우우우우웅.
넘어진 사람들은 아파할 새도 없이 홀린 듯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아래쪽이 넓은 삼각형 모양인 후지산은 정상부는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늘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하얀 눈이 쌓인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검은 연기와 붉은 화염이 솟구치고 있었다.
콰아앙!
그런 후지산을 보며 많은 사람은 후지산이 화산 폭발한다고 생각했다.
원래 후지산은 활화산이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터질 것이고 사람들은 그게 언제일지, 얼마나 파괴적일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예상과 전혀 다른 무언가가 후지산 정상에서 올라왔다.
그것은 거대하고 길쭉했다.
마치 붉은 뱀… 아니, 뱀이라기보다는 동양에서 생각하는 용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온몸에서 뚝뚝 용암을 흘리는 용은 몸 전체가 붉은 화염처럼 보였다.
“콰우우우!”
붉은 용이 소리를 지르자 그 입에서 불기둥이 흘러나왔다.
아직 산에서 미처 다 대피하지 못했던 인원들은 그 모습을 보며 너무 놀라 주저앉아 버렸다.
“불… 불의 신!”
여러 가지 신을 믿는 일본인의 모습에 마치 신의 강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바람과 상관없이 붉은 용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 자연적이지 않은, 붉은 용이 보기에 일반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많은 장소가 보였다.
도쿄였다.
붉은 용은 도쿄를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용이 지나는 길에는 화염이 휩싸였다.
붉은 용은 네 개의 발이 있었지만, 거의 허공을 떠서 날아왔다.
붉은 용은 그 자체로 온도가 매우 높은지, 지나는 주변에서는 직접 닿지 않아도 불이 붙었다.
타다다다!
멀리서 붉은 용을 촬영하는 헬리콥터가 맴돌고 있었다.
헬리콥터의 영상은 실시간으로 일본 시민들에게 제공되고 있었다.
가정에서, 거리에서 시민들은 TV화면을 보며 넋이 나가 있었고, 횡단보도에서 스마트폰을 보던 사람들은 길을 건너야 하는 것도 잊은 채 붉은 용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신성시되는 후지산에서 나온 붉은 용 모양의 무언가였다.
후르르륵!
붉은 용과 헬리콥터는 분명히 제법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붉은 용은 마치 귀찮은 벌레를 입바람으로 불어서 날리듯 불길을 날렸다.
그리고 헬리콥터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방송국에서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헬리콥터가 불길에 휩싸였다.
많은 가정에서 TV로 붉은 용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화면으로 날아오는 불기둥과 곧이어 바뀌어버린 화면에 놀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은 불길에 휩싸였을 헬리콥터 앵커를 상상했다.
붉은 용이 숨이라도 쉴 모양이면 그 숨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이 마치 지옥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붉은 용이 얼마쯤 산에서 내려와 민가를 덮칠 무렵 그 앞을 막아서는 무리가 있었다.
일본의 S급 헌터인 이츠키, 다이치, 다케루를 포함한 수백의 헌터였다.
선이 굵은 얼굴의 이츠키는 나무의 마법사였다.
그는 식물을 급속도로 성장시키고 뿌리가 상대를 휘감게 만드는 식물계 마법의 달인이었다.
폭발계, 검사, 무투가 등의 딜러는 데미지를 크게 주기 쉬웠다.
그리고 원소계 혹은 특정 속성 마법사들은 데미지를 주기 쉬운 화염, 폭발, 전기, 독 등의 마법을 주 무기로 하기 쉬웠다.
식물계 마법사라 하여도 공격용 마법은 따로 키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츠키는 오직 나무마법 한 길만 팠다.
나무를 이용해 적을 공격하면서 S급에 올랐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나무 속성의 달인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빠이 소다쓰!”
식물 마법사 이츠키의 주문에 거대한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나무는 마치 순식간에 빌딩이 솟아나듯 거대하게 자랐다.
일반적으로 전투에 취약하고 생산계 쪽으로 빠지기 쉬운 식물계 마법사가 어떻게 S급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S급 마법사는 이츠키 혼자가 아니었다.
약간은 긴 듯한 삐죽머리를 한 대지의 마법사 다이치는,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가죽 부츠를 신은 오른발로 땅바닥을 굴렀다.
쿵!
그의 발구름과 함께 비석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쪽도 자신이 왜 S급인지 비석의 크기로 증명했다.
순식간에 비석이 건물 크기로 자랐다.
“화룡이 가까이 다가온다!”
일본인들은 붉은 용과 같은 몬스터를 화룡으로 부르기로 했다.
화룡이 날 듯이 뛰어오다가 입으로 불길을 내뿜었다.
화르르륵!
헌터들이 가까이서 당해보니 단순한 불길이 아니라 점성이 있는 용암 덩어리가 포함된 불길이었다.
치이이익!
우선 나무 마법사의 나무가 거대하긴 했지만, 상성이 좋지 못했다.
불과 나무.
화염 마법처럼 흔한 마법도 없기에 식물 마법사 이츠키는 나무에 불에 대한 내성을 키웠다.
그리고 실제 나무는 생각보다 쉽게 불이 붙지 않았다.
그리고 그 크기가 거대해서 어지간한 불로는 어떻게 해볼 엄두가 나지 않는 나무였지만, 상대도 마그마를 헤엄치고 입에서 용암이 흘러나오는 몬스터였다.
거대나무가 용암에 못 이겨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츠키가 이빨을 깨물더니 다시 주문을 외웠다.
“타오레루!”
끼기기긱!
거대나무가 스스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정면에서 막지 못하면 그 무게로 눌러버리겠다는 작전인 듯했다.
실제로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수백의 헌터들은 화룡이 도쿄로 가지 못하도록 막자는 목표를 갖고 모였다.
헌터들은 처음 보는 종류의 화염 몬스터를 보며, 이기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수도인 도쿄로 가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고 싶어 했다.
빌딩만 한 나무가 쓰러지고, 대지 마법사 다이치의 거대 암벽이 화룡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화룡은 보기보다 움직임이 빨랐다.
화룡은 뱀처럼 휘리릭 하더니 쓰러지는 나무를 피하고, 거대 암벽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냐는 듯 너무도 쉽게 방향을 틀었다.
이에 S급 탱커 다케루가 화룡의 앞길을 막았다.
후우욱.
탱커 다케루는 화룡의 근처에만 가도 몸이 익을 것 같은 열기가 느껴졌다.
S급 탱커가 뜨거움을 느낀다면 다른 헌터들은 볼 필요도 없었다.
다케루는 이정도 열기라면 B급 이하는 접근 자체도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S급이 셋이나 뭉쳐서 화룡의 이동 경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 셋을 믿으며 수백의 헌터들이 딜을 넣기 시작했다.
헌터들은 나무 마법사 이츠키가 만든 지금은 재가 되는 거대나무 뒤편, 대지의 마법사 다이치가 만든 거대 암벽의 뒤편, 그리고 탱커 다케루의 뒤에 몸을 숨기며 스킬을 쏟아냈다.
S급 세 명이 탱킹을 하며 수백의 딜러가 딜을 넣는 모양새였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근접 딜러들은 빠져! 원거리 딜만 넣고, 화염에 적합한 상성의 스킬 위주로 공격해!”
화룡은 딜을 고스란히 받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화룡은 몸의 온도를 더욱 높였는지 어지간한 공격기는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타버렸다.
화룡이 몸을 꿈틀거리며 앞발로 거대 나무, 암벽을 긁어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가 재가되어 흩날렸고 거대 암벽도 서서히 녹아 바닥에 눌어붙은 암석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장면을 놓칠 수 없는 기자들이 목숨을 걸고 화룡과 일본 헌터들의 접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 헬리콥터와 기자가 불길에 휩싸였지만, 그러한 죽음으로도 기자들의 취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일본 기자들의 열띤 촬영 덕분에 한국에서도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나는 일본 기자들이 화룡을 배경으로 설명을 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만 기자는 일본으로 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나저나 참 신기하네.”
나는 TV 화면에 나오는 화룡과 일본 헌터들의 접전을 보며 말했다.
“왕의 던전이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였구나.”
뉴스 채널의 TV화면에서는 내가 뉴욕 가는 비행기에서 보았던 왕의 던전 시리즈와 아주 유사한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