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118화 (117/230)

118화. 할머니

샤샤의 소원을 읽어 보았다.

[민준 님께서 더욱 평안하셨으면 좋겠고, 제가 민준 님의 평안을 지킬 수 있는 소환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샤샤의 소원이 나의 평안함이라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소원이었다.

카나의 소원은 카나 다웠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기.]

그래 그 소원 꼭 이뤘으면 좋겠다.

지금도 A급이니 조금만 더 하면 된다.

물론 그 조금이 쉽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학창 시절 때 시험 성적을 평균 60점 맞던 친구가 평균 70점 맞기는 조금만 더 공부하면 되지만, 평균 95점에서 평균 100점 되는 건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아니, 중고등학교 시절 평균 100점이란 점수를 맞은 친구를 본 적도 없었다.

그런 상상 속의 점수가 생각나는 경지일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수능을 만점 맞듯, 누군가는 S급이 되고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다.

카나 파이팅!

딱히 그 소원을 이뤄줄 수는 없지만, 멀리서나마 응원했다.

카나가 마스터가 되면 나도 마스터급이나 마찬가지였다.

소환술사의 소환수가 S급이면 소환술사도 S급인 것이지.

소원을 붙여둔 종이들을 더 읽어보았다.

어린 아이들의 귀여운 소원들도 있었다.

[장난감 사주세요.]

[아빠가 많이 놀아줬으면 좋겠어요.]

또, 소원을 적다 보니 가족의 아픔을 낫게 하고자 하는 소원들이 눈에 띄었다.

[엄마가 손목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동생이 어제 넘어져서 무릎이 많이 아파요. 동생의 무릎이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힐 한 방이면 될만한 것들이었다.

그래도 포션도 있고, 가끔씩 힐이나 큐어를 넣어주는 시간을 가졌으니 크게 아픈 영지민은 없을 것 같았다.

가장 눈에 띄는 소원은 제리의 소원이었다.

[민준, 샤샤, 카나, 할머니, 르녹, 꾸얀, 알타르, 상일, 홍민 등 모두 건강하기.]

다른 이름들은 넘어가겠는데 눈에 밟히는 이름이 있었다.

“할머니?”

여기서 말하는 할머니가 내 눈앞의 갈리나 할머니는 아닐 것이다.

이건 트란 산맥에 있는 제리의 할머니일 것이다.

아차!

내가 무심했다.

제리의 친밀도를 올리고 싶다는 생각하면서도 제리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놓치고 있다니, 소원의 나무가 한 건 한 것 같았다.

* * *

“알파야, 여기 맞아?”

―네, 지난번에 왔던 곳이 여기입니다. 저기 바위를 보시면 아시지 않습니까?

알파가 말한 곳을 보니 커다란 바위벽이 있었다.

그 바위벽에는 여러 개의 발톱 자국이 있었다.

바위의 제일 위쪽에는 진한 엑스자 형태의 발톱 자국이 있었다.

저 자국이 제리의 자국이었다.

“그러게, 여기가 맞네. 그런데 다들 어디 있는 거야?”

분명히 여기가 드리마스들이 살던 곳이 맞는데 드리마스들이 보이지 않았다.

더 수색해보았다.

내가 트란 산맥에서의 수색이라면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드리마스들은 아주 교묘히 숨어있어서 찾기 어려웠던 기억이 났다.

나무와 드리마스가 하나가 되어 있으니 나무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는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있다고 확신하고 찾다 보면 찾아지는 법이다.

그렇게 수색하다 보니 어디선가 몬스터들 간의 싸움이 벌어진 것을 발견했다.

“캬아아아!”

“크아아앙!”

한쪽에는 드리마스가 줄지어 있었고, 다른 쪽에는 라이칸스롭이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 다 있었구나.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드리마스의 뒤쪽에는 부상을 입은 드리마스가 있었고 또 반대편 뒤쪽에는 부상을 입은 라이칸스롭이 있었다.

서로 패싸움을 하는 듯했다.

십여 마리 정도가 맞붙었다.

“캬아아아!”

“크아아앙!”

인간형으로 변한 노란 드리마스가 발톱을 길게 꺼냈다.

쌍검을 쓰는 검사처럼… 아니, 기다란 양손 클로를 쓰는 전사처럼 발톱을 연신 휘둘렀다.

발톱에는 은은한 마나가 담겨있어서 한눈에 보아도 수준급 실력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라이칸스롭도 만만치 않았다.

기본적인 덩치가 드리마스보다 라이칸스롭이 더 컸다.

빠른 스피드와 긴 발톱의 드리마스, 큰 덩치와 힘을 자랑하는 라이칸스롭의 대결이었다.

라이칸스롭이 접근을 하면 드리마스는 조금씩 빠지거나 빙빙 돌면서 날카로운 칼질을 해댔다.

나는 뒤쪽에 쓰러져 있는 드리마스에게로 화면을 이동했다.

드리마스 진형의 뒤쪽에는 세 마리의 드리마스가 상처 입은 채로 있었는데, 그중에 한 마리는 얼핏 낯이 익었다.

“알파야, 저기 갈색 드리마스에게 말을 걸어볼까?”

[얘, 너 제리 알아?]

갑자기 들리는 귓말에 다친 드리마스가 당황해했다.

[나는 제리의 소환술사. 그러니까 제리의 동료야. 제리의 할머니를 찾으러 왔다가 너희들이 싸우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어. 용병 제안을 받아주면 치료해줄게.]

“알파야, 저기 다친 갈색 드리마스에게 용병 제안을 해줘.”

[용병 계약을 수락하였습니다.]

오케이.

“홀리 큐어.”

“홀리 큐어.”

넉넉하게 홀리 큐어를 두 번 걸어주니 체력이 모두 회복한 듯 보였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낯이 익었다.

[나는 제리의 소환술사 민준이라고 해. 그런데 넌 이름이 뭐니?]

[샬롯이다.]

“아…….”

샬롯은 제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드리마스였다.

어째 낯이 익어서 말을 걸고 치료해 주었는데, 제리와 사이가 안 좋아서 기억에 남았던 드리마스였다.

내가 잠시 말이 없자 샬롯이 내 마음을 눈치를 챘는지 말을 했다.

[제리에게 악감정은 더는 없다. 제리가 내 동생을 구해주기도 했고, 제리는 대전사다. 대전사를 인정해주는 것은 드리마스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게 그렇게 되나?

드리마스족은 힘센 대전사를 인정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치료해주어 고맙다. 지금 상황이 급박하니, 나는 다시 전투에 참여하도록 하겠다.]

샬롯이 전투에 참여하는 게 화면으로 보였다.

거칠게 달려가는 갈색 암사자의 모습이었다.

나는 드리마스들과 라이칸스롭 무리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저게 뭔가?

죄다 맨몸의 딜러들뿐이었다.

무릇 딜러라면 앞에 탱커를 세우고, 뒤에는 법사를 세워야 했다.

그래야 딜러의 충분한 공격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저렇게 다양성이 부족해서야 상성이 안 좋은 적과 만나면 한순간에 전멸할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상대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점이었다.

“디바인 프로텍션.”

나는 샬롯에게 디바인 프로텍션을 걸어주었다.

이게 악 성향 전문 보호막이긴 하지만 일반 물리 방어도 그럭저럭 괜찮은 실드 수준은 되었다.

[샬롯, 방어와 치료는 내가 할 테니까 너는 공격만 해.]

몇 합 주고 받으며 디바인 프로텍션의 성능을 눈치챈 샬롯이 날뛰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아!”

방어를 무시하고 오직 공격만 하는 상대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더러워서라도 피하는 것이었다.

[샬롯, 노란 드리마스분에게도 용병 수락해달라고 말해줄래?]

샬롯에 대장에게 말했다.

“대장님. 제리, 기억하시죠? 걔의 동료라는 분이 용병 계약을 수락해달라고 합니다.”

곧이어 샬롯의 말에 노란 대장 드리마스도 용병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원래도 강했던 노란 대장 드리마스가 디바인 프로텍션을 걸고 날뛰기 시작하자 전세는 급격히 드리마스 쪽으로 넘어왔다.

“컁!”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라이칸스롭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드리마스들은 적당히 쫓다가 이내 되돌아왔다.

나는 부상당한 드리마스들을 용병으로 계약해 모두 치료해줬다.

드리마스들은 마을로 돌아왔다.

샬롯은 제리의 할머니를 찾아갔다.

털이 드문드문 빠져있는 늙은 드리마스였다.

얼핏 움직임도 불편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그래, 샬롯이구나.”

“제리의 소환술사라는 분이 말을 거실 거예요. 그러면 용병 계약을 하시면 돼요.”

나는 제리의 할머니와 용병 계약을 했다.

“힐, 힐, 힐, 홀리 큐어, 디바인 홀리 큐어.”

일단 할머니의 몸 상태를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상으로 끌어올려 드렸다.

불편해 보였던 움직임은 이내 자연스러워졌고 한결 얼굴 표정이 좋아 보였다.

[어머나, 감사해요.]

* * *

축제가 끝난 후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소환수들의 일상에는 훈련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차지율 헌터는 소환수들도 함께 합동훈련을 할 것을 제안했고, 나와 소환수들은 천마길드에서 체계적으로 몸과 마나를 쓰는 방법을 배웠다.

나는 강해지는 방법이 레벨업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레벨업과 훈련이 균형을 이뤄야 함을 느끼고 있었다.

강 트레이너님이 물었다.

“S급 스킬이 있다면 무조건 이길까요? 무엇이든 자를 수 있는 광선검을 풋내기의 손에 쥐여주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 질문을 받으니 이해가 팍팍 되었다.

열심히 훈련하다 보면 소리가 들렸다.

띠링!

[민첩이 1 올랐습니다.]

훈련을 통한 기본 스텟 향상이었다.

“하아, 힘들었다.”

나는 천마 길드 훈련소에서 대자로 누웠다.

“뭐 하냥? 안 가냥?”

제리가 집에 안 가냐고 물었다.

“그래, 가자.”

수환수들을 모두 차에 태우고 사무실로 향했다.

“샤샤, 카나는 샤론으로 안 가냥?”

훈련이 끝나면 샤샤와 카나나 샤론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오늘은 돌아가지 않고 차로 함께 사무실로 가는 길이었다.

카나가 창밖을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어, 사무실에 뭐 할 일이 있어서.”

그렇게 샤샤와 카나가 비밀을 지킨 채 창고에 도착했다.

마당에 주차하고 차 문을 열었다.

드르륵.

“어?”

차 문이 열리자마자 제리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 소리를 냈다.

하여튼 눈치가 100단이다.

내가 제리를 보며 물었다.

“왜?”

“이 냄새.”

뭔가 냄새가 다른가 보다.

제리의 코를 속이는 건 불가능하지.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창고로 걸어갔다.

“자, 들어들 가자고.”

샤샤와 카나도 휘적휘적 창고로 들어왔다.

제리만 뭔가 수상하다는 듯 잔뜩 주위를 살피며 우리를 따라 들어왔다.

창고 안에는 여러 가지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제리가 마당에서부터 음식 냄새를 맡았던 것 같았다.

그리고 인간형으로 변한 제리의 할머니가 우리를 맞이했다.

“제리야, 어서 오렴.”

“아… 할머니…….”

제리가 조용히 다가가 할머니의 품에 안겼다.

“아이고, 이제 키가 커서 품에 안 들어가는구나.”

그 말에 고양이 형태로 변해서 할머니 품에 쏙 안기는 제리였다.

“그래, 제리야. 그동안 잘 지냈니? 동료들을 보니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구나.”

“그럼, 내가 좀 잘 지내지. 알잖아? 나 대전사인걸.”

대전사라고 말하면서도 제리는 부비적거리며 온갖 아양을 다 떨었다.

잠시 제리와 할머니에게 시간을 준 후 우리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는 제리의 소환술사인 김민준이라고 합니다.”

“저는 샤샤라고 해요.”

“카나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제리의 할머니예요. 이렇게 제리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돌보다니요. 제리는 저희의 동료예요. 대전사 제리잖아요?”

“그럼요. 제리가 얼마나 센데요.”

제리의 할머니는 우리와 함께 지내는 제리를 보며 안심하신 듯했다.

제리는 할머니에게 그동안 우리와 함께 지냈던 이야기를 해드렸다.

“할머니, 이곳은 지구라고 해. 글리제가 아니야. 글리제처럼 자연적이진 않지만, 그 대신 맛있는 게 많아.”

제리는 이제는 집이 되어버린 지구에서의 삶을 이야기해드렸다.

“그리고 여기 말고도 샤론이라고 글리제에 영지도 있어. 나도 가끔 거기에 가곤 해.”

그리고 제리는 샤론 영지에 대해서도 말해드렸다.

제리는 최근에는 마나를 다루는 훈련을 받으며 새롭게 마나를 알아가고 있다는 말도 했다.

발톱을 한 개만 꺼내서 마나를 담고 나무토막 하나를 톱밥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여드렸다.

할머니는 그런 제리의 성장을 흐뭇하게 보아주셨다.

그 모습이 꼭 초등학생이 부모님에게 자랑하는 모습 같았다.

“할머니는 어떻게 지냈어요?”

“나? 나야 무리에서 늘 잘 지냈지. 네가 떠난 후로 샬롯이 바뀐 것 아니? 너를 대전사로 인정한다면서 나를 제일 잘 챙기는 드리마스가 되었지 뭐냐. 그리고 그 아이의 동생인 에벌린이라고 있어. 네가 구해준 아이. 그 아이도 나를 잘 따른단다.”

충분한 만남의 회포를 풀었을 무렵 내가 물었다.

“할머니께서도 제리와 함께 지내시면 안 되나요? 지구도 좋고 글리제의 샤론 영지도 괜찮고요. 제리의 할머니라면 마을 주민들도 정성스럽게 모실 거예요.”

제리의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드리마스에게는 무리가 곧 생명이랍니다. 말씀은 고맙지만 제리에게도 이렇게 훌륭한 무리가 있듯이, 저는 저의 무리에서 살아야 합니다.”

내가 모르는 종의 특성인 것 같았다.

그래도 바로 보내드리기는 아쉬운 법.

제리의 할머니는 닷새 동안 계신 후, 트란 산맥으로 돌아가셨다.

제리는 사흘 동안 할머니를 모시고 서울을 누볐다.

둘만 다니라고 하기 좀 그래서 한상일과 나홍민이 제리와 할머니를 모시고 다녔다.

그리고 이틀은 샤론 영지를 구경하셨다.

할머니가 트란 산맥으로 돌아가신 후, 제리가 나에게 말했다.

“고맙당.”

“제리에게 고맙다는 말도 들어보고 내가 잘하긴 잘했나 보네. 아무튼 부럽네.”

“너도 너의 가족이 있는데 뭐가 부럽냥.”

“아니. 너, 무려 닷새 동안 훈련 빼먹었잖아. 강 트레이너님이 작심했나 봐. 그저께부터는 플라스틱 총알이 아니라 쇠구슬을 쏘고 계셔. 그래서 너 부럽다고.”

“냥!”

제리가 나를 째려봤다.

하지만 눈빛과 다른 소리가 들렸다.

띠링!

[제리의 친밀도가 1 올랐습니다.]

아자아자! 이거지.

아, 물론 이 소리가 안 들렸다고 해도 제리의 할머니를 모셔온 걸 후회한다는 말은 아니다.

제리가 이토록 좋아하는데, 진작 신경 못 쓴 내가 잘못한 것이었다.

띠리리링!

어? 설마 친밀도가 더 오르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소리로 해두었던 스마트폰이 울리는 소리였다.

차지율 헌터의 전화였다.

“네, 김민준입니다.”

―안녕하세요. 차지율입니다. 민준 헌터님, 헌터 협회장님 아시죠? 그분이 보자고 하시는데 한번 같이 만나시죠.

헌터 협회장?

헌터 협회장이면 우리나라 최고 헌터라는 S급, 아니 S+급으로 알려진 그분?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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