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116화 (115/230)

116화. 내 것

심판의 시간이었다.

주민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두 손을 꼭 쥐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지, 아니면 영주님과 함께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샤론의 미래를 함께 그려갈지 그것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화려한 공연복을 입은 주민들은 정지한 것처럼 가만히 멈췄다.

아직 샤샤가 단상 위에 올라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눈시울이 빨개지는 주민들도 있었다.

“영주의 명이다.”

그렇게 말을 하고 난 샤샤가 살짝 놀라며 눈동자가 커졌다.

영주의 명을 먼저 듣고 반응한 것 같았다.

그런 샤샤의 아주 짧은 반응도 집중하던 주민들은 놓치지 않았다.

샤샤가 잠시 한 호흡 쉬더니 마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제 샤샤도 마나를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실력자가 되었다.

웅웅웅.

진동하는 마나를 목과 입으로 올려 목소리에 마나를 가득 담았다.

샤샤의 목소리가 수백 명이 모인 영지민들의 귓가에 또렷하게 들렸다.

“모든 샤론의 주민들은 스스로를 위하는 축제를 열어라!”

축제? 축제라고?

갑작스러운 축제 명령에 주민들은 멀뚱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잠시 그렇게 있다가 서로를 보며 물었다.

“잘 된 거지?”

“그런 것 같은데?”

“영주님께서 축제를 명하신 거라면 즐겁게 지내라는 뜻 아니신가?”

“그래? 그러면 앞으로도 우리의 영주님으로 남으신다는 뜻 같지?”

“그런 것 같아.”

“크윽, 그럼 앞으로도 우리를 이끌어주신다는 것이지?”

“그래, 그런 것 같아.”

마을 주민들은 영주의 마음을 붙잡은 것 같다는 생각에 감격했고, 축제를 열라는 영주의 아량에 감복했다.

나는 샤샤에게 영주의 명을 전한 뒤 스마트폰을 열었다.

따르르릉.

“네, 거기 출장 뷔페죠?”

몇 군데 검색하고 전화해 보니 당일 가능한 출장 뷔페가 있었다.

당일로 주문을 하면 많이는 못 오고 100인분 정도는 가능하다고 했다.

그곳을 포함해 몇 군데 연락해 수백 명이 먹을 음식을 시켰다.

음식값이 제법 들었지만 아깝지 않았다.

원래도 음식값 정도는 금액을 묻지 않을 정도는 벌었는데, S급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낸 비용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을 받기로 해서 이제는 음식값이 아니라 집값도 금액을 묻지 않고 구매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여태까지 샤론 주민들에게 그동안 너무 적은 비용으로 일하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컸다.

물론 내가 강제로 착취한 것은 아니었다.

글리제에는 그곳 나름대로의 경제가 정해져 있었고 내가 그 경제 수준을 억지로 바꾸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인건비로 하루에 닭 한 마리를 준다는 것은 경찰에 신고당할 이야기였고, 그 노동을 하는 사람이 2서클 마법사 집단이라면 코웃음을 치며 신고조차 하지 않을 이야기였다.

음식을 주문하고 잠시 시간이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지식 보물창고인 인터넷에 들어가 글을 올려 보았다.

[조직의 결속력을 높이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 대신 일할 조직 체계를 갖춰야지. 완장을 채워줄 사람은 채워주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역할과 책임을 부여해야지.

└ 리더가 비전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지.

└ 대화가 통해야지. 나만 옳다고 그러면 꼰대임.

└ 남의 성과 가로채지 않도록 평가를 잘해야지.

나는 댓글들을 읽으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동안 너무 샤샤에게 맡겨둔 것 같았다.

나는 샤론 영지를 바라보며 즐거워했지만, 그래서 영지를 운영했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단 대화, 역할 부여 정도는 바로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역할을 부여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 사이, 음식을 실은 트럭이 도착했다.

사무실 직원들도 놀라며 나를 도왔다.

[샤샤야, 선물함으로 음식들 보낼게. 바로바로 빼서 깔아줘.]

음식은 그릇 채로 샤샤의 선물함으로 넣어주었다.

그러면 샤샤는 영지에서 선물함의 음식을 꺼내 세팅했다.

이렇게 내가 선물함으로 보내고 샤샤가 순서대로 꺼내는 것은 한두 번 해보는 작업이 아니라 손발이 척척 맞았다.

[샤샤, 음식 착착 잘 빼네.]

[예전에는 컨베이어 벨트로 넣어주시던 때도 있는데 이 정도 속도는 우습죠.]

하긴, 컨베이어 벨트로 식량을 넣어주면 달리면서 식량을 빼내던 군사 작전도 했는데, 이 정도 음식 운반쯤이야 쉬운 일이었다.

영지민들은 샤샤가 음식을 계속 꺼내자 이게 뭔 일인지 당황했다.

“아니, 이게 다 무슨 음식입니까?”

“영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한 음식이에요. 맛있게 드시면 된답니다.”

“영주님께서…….”

“여러분, 영주님을 향해 감사 인사를 드립시다.”

누군가 외친 목소리에 모두들 하늘을 보며 인사를 했다.

영지민들은 처음엔 영주가 음식을 내려준다고 해서 감동하고, 두 번째로 음식의 모양과 식기의 깔끔함에 놀랐다.

그리고 마지막엔 맛에 놀랐다.

아직도 공연복과 분장을 지우지 않은 주민들이 많아서 그들이 음식과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은 한편의 가면무도회나 할로윈 파티를 보는 것 같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오크 가죽을 뒤집어쓴 주민이 장난을 치며 아이들을 놀렸다.

“크왕, 다 먹어버리겠다.”

“꺅~ 살려줘.”

아이들이 도망쳤다.

“크왕, 너네 말고 음식 말이다.”

나는 마을 주민들을 용병으로 소환하여 한 명씩 만나보았다.

우선 전직 촌장이며, 가끔씩 영지의 일을 묻곤 했던 다니엘을 불렀다.

“영주님, 이렇게 영주님께서 소환을 해주셔서 영광입니다.”

“다니엘이 고생이 많아요. 영지를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하시는 것 같아요. 다니엘, 제 앞에 서세요.”

다니엘이 내 앞에 섰다.

나는 준비해둔 임명장을 꺼냈다.

“오늘부터는 다니엘을 정식으로 행정관으로 임명할게요. 잘 부탁드려요.”

내가 다니엘을 정식 행정관으로 임명한다는 임명장을 주자 다니엘은 감동했는지 살짝 눈시울을 붉히며 넙죽 엎드려 감사를 표했다.

“다니엘 행정관님?”

“네, 영주님.”

“이번 일을 통해 영주인 제가 영지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보니 영지민들이 불안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이고, 아닙니다. 영주님께서 이렇게 저희를 아껴주시니 그 감사함에 몸 둘 바를 몰라서 그랬던 것입니다.”

“여길 한번 봐주실래요?”

나는 다니엘에게 사무실 벽에 띄운 화면을 보여주었다.

사무실 벽 전체를 가득 채운 화면에는 샤론 영지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천천히 날아가는 종이비행기의 시선으로 샤론 영지가 나타나고 있었다.

“어때요? 예쁘죠?”

“네,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게 제가 보는 샤론이에요. 제가 늘 샤론에 있지는 않지만, 항상 샤론을 지켜보고 있음을 기억하세요.”

“네, 뼈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기사급 인원들을 불렀다.

마법사 알타르, 르녹, 꾸얀이었다.

“그동안 제가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요.”

뜬금없는 나의 말에 의아함을 보였다.

“세 분은 어느 영지에 가도 고위 마법사 아니면 기사급 대우를 받으실 텐데, 제가 정식으로 직책을 드리지도 않고 그저 용병으로 부르기나 하면서 애매한 대우를 해드렸던 것 같아요.”

세 사람은 펄쩍 뛰며 내 말을 부정했다.

“스승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애매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충분히 감사하면서 지냅니다.”

나는 임명장 세 장을 꺼냈다.

“알타르 님, 제 앞에 서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알타르를 세워두고 그 앞에서 임명장을 낭독했다.

“자, 읽겠습니다. 임명장, 알타르 님을 앞으로 샤론 영지의 수석 마법사로 임명합니다.”

내 임명장을 받은 알타르가 감격에 겨워했다.

짝짝짝!

뒤에서 샤샤, 카나, 제리가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알타르님은 나중에 디아론 영지로 가셔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은 르녹과 꾸얀이었다.

“기사 임명은 검으로 한다고 들었지만, 저는 지구식으로 할게요. 지구에서는 누군가를 어떤 자격으로 임명할 때 이렇게 임명장을 준답니다. 르녹.”

“네!”

“르녹을 샤론 영지의 기사로 임명합니다. 잘 부탁해요.”

“충! 영주님의 검이 되겠습니다.”

“고마워요.”

다음은 꾸얀.

“꾸얀도 기사로 임명합니다. 잘 부탁해요.”

“충! 영주님의 검이 되겠습니다.”

칼각으로 경례를 하는 꾸얀이었다.

“고마워요. 잘 부탁할게요.”

일반 주민들도 차례로 내 얼굴을 보고 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밤나무 마을에서부터 이사를 왔다는 토이는 나를 보자마자 엎드려 감사를 표했다.

“저는 평생을 지게꾼을 살아서 어려운 것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좀비가 된 저희 어머니를 영주님께서 살려주시고 심지어 아픈 다리도 고쳐주셨습니다. 이런 영주님이 계신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영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그 진지한 눈빛에 내가 다 고마웠다.

“그리고 영주님, 다른 이들은 샤론 영지와 영주님을 똑같이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사실 이번 영지민들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해보면 영주님께서 샤론 영지를 돌봐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건 불충입니다. 저는 영주님께서 다른 곳으로 가신다면!”

토이는 굳건한 얼굴로 말했다.

“모든 영지민들이 영주님을 따라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충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주님께서 어느 곳에 가시든 저희가 따르겠습니다.”

같은 충성이라고 해도 그 충성심이 샤론 영지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샤론 영주에게 향하는 것인가를 따지는 듯했다.

“네,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고맙네요. 하지만 샤론을 떠날 생각은 없어요. 고마워요.”

처음에는 영지를 이끄는 주요 인물들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직접 내 얼굴을 보지 못한 영지민이 있다는 생각에 조금씩이라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보니 영지민을 모두 만나보는 데 3일이나 걸렸다.

영지의 아이들은 장난감이 아주 많은 창고형 장난감 가게에서 소환했다.

장난감을 200개 이상 구매한다고 하자 가게 사장님은 셔터문을 내리고 나에게 넓은 공간을 내주셨다.

선물 포장도 되냐는 물음에 사장님은 빛의 속도로 선물을 포장하는 신기를 보여주셨다.

아이들은 예쁜 포장지로 포장되어있는 선물을 받고 즐거움을 숨기지 않았다.

“꺅, 고맙습니다. 영주님!”

산타클로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영지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아이들에게 선물도 주고나니, 조금은 영지민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만약, 영지민 전체가 소환수였다면 띠링 하면서 영지민들의 친밀도가 높아졌다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영지민들과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나는 소환수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가벼운 티타임을 가졌다.

사무실 소파에 각자 편하게 앉아 간단한 음료를 마셨다.

호르륵.

나는 아아, 샤샤는 뜨아, 카나는 주스, 제리는 우유였다.

“제리야, 고양이에게 우유를 주면 안 된다는데?”

“그게 무슨 말이냥?”

“살찔까 봐 안 된대.”

“살? 그건 하루에 오크를 열 마리도 안 잡는 냥이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당.”

“어, 그래.”

그런데 하루에 오크를 열 마리 이상 잡을 수 있는 냥이가 너 말고 있나?

내가 영지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영지민들이 내가 떠날까 불안했었나 봐?”

카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꺼냈다.

“실제로 산골 마을의 경우 버려지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우리 아빠는 몬스터 웨이브 때 영지민들이 디아론성으로 피난을 하도록 했는데, 그 정도만 해도 영지민들은 아빠가 다른 영주에 비해 너그럽다고 생각했어.”

카나는 사무실 화면에서 보이는 샤론 영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내가 수도에 가보고 어떤 책을 읽어도 이런 영지는 없어. 샤론보다 크고, 인구가 많고, 강력한 곳은 많지만, 이렇게 작은 산골 영지가 이토록 정성 들여 가꾸어지는 일은 정말 드문 일이지. 그건 영지민들이 더 잘 알 거야. 그래서 영지민들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행복한 일상에 불안함을 느꼈을 거야.”

행복해서 느끼는 불안함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행복해서 느끼는 불안감이라면 내가 잘해준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내가 떠나갈까 봐 불안할까?”

“조금은 나아졌겠지.”

“그럼 불안하다는 말이네.”

“눈앞에 안 보이면 불안한 거야. 그건 어쩔 수 없지.”

떠날까 봐 불안해하는 사람의 불안감을 잠재우는 방법이 있을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럼, 이러는 건 어떨까?”

다음날, 샤샤는 다시 영지민들을 모아두고 공지를 전했다.

“열흘 후부터 2차 축제를 개최합니다. 2차 축제에는 여러 외부 인사들을 초대할 예정입니다. 영지민들은 지난번 영주님께 보여드렸던 행진을 2차 축제 때 다시 시연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세요.”

샤론이 내 것임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

그들이 나의 소속임을 여러 사람들이 알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

잘해준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강력하게 영지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나와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정말 자랑하고 싶기도 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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