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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소환수들-115화 (114/230)

115화. 영주의 명

샤론 주민들은 아주 높은 사다리를 만들었다.

가운데 사다리를 붙인 긴 나무 기둥이 있었고, 그 기둥을 다섯 방향에서 지탱하고 있었다.

사다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고 있는 사람만 스무 명이 넘었다.

높은 꼭대기에 올라간 사람이 도면을 보면서 크게 외쳤다.

“아니! 조금 더 왼쪽! 그래 거기서 쭉 아래로 내려와! 그래, 좋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과 아래에 있는 사람은 방향의 차이 때문에 바라보는 느낌이 달랐다.

“어이~ 여기는 어때? 괜찮아?”

“좋아!”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틀을 잡은 조각상이었다.

깡! 깡! 깡!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석공들이 달려들어 바위를 다듬었다.

영주님의 모습은 바위를 다듬어 조각상을 만들기로 했다.

아무래도 규모가 크고 오랫동안 변하지 않게 하려면 암석을 깎는 것이 좋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금속을 이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기왕이면 큰 게 좋다는 의견이 많아 암석을 깎기로 했다.

금속은 초대형으로 만들기 어려웠다.

영주님은 오시지 않지만, 영주 대리인 샤샤가 가끔 들르기 때문에 영주님의 모습을 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영주님의 무기, 영주님의 옷, 영주님의 사진을 구해 세밀한 부분까지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어이! 거기는 조금 더 입체적으로 해봐! 바지 주름이 접히는 부분이잖아.”

“알아! 그런데 굴곡이 너무 심하면 금방 부서질 수 있어서 그러지.”

“에이, 이 사람이 뭘 모르네. 이거 나중에 다 경화 마법 걸 거라서 괜찮아. 당장 자네도 장비에 마법 부여해서 쓰고 있으면서 왜 그래?”

“아! 경화 마법은 내가 안 써봐서 모르고 있었어. 알았어.”

사다리 위의 작업자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서서히 기본 틀을 잡아가는 영주님의 모습이 있었다.

행진을 준비하는 팀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행진은 마을 촌장이었던 다니엘과 원로 격인 갈리나 할머니가 직접 챙겼다.

“행진의 주제가 뭘까요?”

“어떤 복장으로 해야 할까요?”

“무엇을 보여드려야 할까요?”

여러 사람이 고민했다.

“우리의 모습을 보여드렸으면 좋겠어요. 과거 영주님을 만나기 전에 우리가 입었던 옷부터 점점 바뀌어서 샤샤 님, 카나 님, 제리 님이 입으시는 옷처럼 지구식 옷으로 샤론 풍이 바뀌는 모습을 담았으면 좋겠어요. 몬스터 역시 우리 삶의 일부분이니 행진에 포함되면 좋겠죠.”

다양하고 화려한 옷을 만들었다.

옷은 다양한 색으로 염색을 하고 조금은 과장된 듯 화려하게 꾸몄다.

장신구는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기 때문에 작은 것에 얽매이지 말고 조금 멀리서 봤을 때의 모습을 기준으로 꾸며졌다.

동물들도 연출의 일부분에 포함되었다.

전투마로 꾸민 말도 있고 농사용으로 쓰이는 모습도 보여드리려 했다.

몬스터 천국인 트란 산맥에 붙어있어서 그런지 몬스터 가죽은 아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오크는 가죽이 벗겨져 말린 후, 다시 하나하나 공들여 살아있을 때와 비슷한 얼굴이 되었다.

몸통 속에 사람이 들어가서 움직이면 정말 오크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우리의 강함을 보여드립시다. 영주님이 설치하신 장벽으로 인해 안전해진 우리의 모습, 곳곳에 세워진 발리스타와 대형 무기, 그리고 우리의 실력을 보여드립시다.”

수레를 만들어 그 위에 이동용 발리스타를 전시했다.

행진하며 수레가 이동하면 발리스타를 볼 수 있었다.

수레에는 장벽 모형, 함정 모형, 창, 검, 도를 든 영지의 경비병들이 걸음걸이를 맞추며 걸었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

갈리나 할머니가 함께 행진에 대해 기획을 하고 있던 다니엘에게 말했다.

“어쩐지 샤샤 님과 카나 님도 예전보다 영지에 뜸하신 것 같지 않아?”

“어허,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아.”

“물어보는 거잖아요. 물어보는 거. 나도 눈치가 있는데, 애들한테는 이런 말 안 하지.”

다니엘이 수심 깊은 얼굴로 말했다.

“샤샤 님께서 그러시는데 영주님께서 최근에 영주님의 세상일이 바빠지셨다고 해. 그래서 소환수인 샤샤 님, 카나 님도 마찬가지로 바빠지셨다고 해.”

“그래도 제리아나마스 님께서는 의외지 않으셔?”

“그러게. 나도 제리아나마스 님께서 와주실 줄은 몰랐어.”

그 시각, 한 무리의 인원이 트란 산맥을 오르고 있었다.

덩치 큰 르녹, 잘생긴 꾸얀, 보라색 냥이 한 마리가 사냥꾼 쟝을 포함한 열 명의 주민을 이끌고 트란 산맥을 오르고 있었다.

“냥, 잠시 멈춰봐랑.”

제리가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잠시 기다려봐랑.”

스르륵.

제리의 모습이 사라졌다.

꿀꺽.

주민들은 조용히 기다렸다.

르녹과 꾸얀은 주위를 살피며 경계했다.

사냥꾼 쟝도 숨소리 하나 내지 않았지만, 열심히 두 눈을 굴리며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크악!”

푸드드득! 슈칵!

잠시 후, 수풀이 열리며 제리가 손톱에 묻은 피를 털며 조용히 걸어왔다.

“됐당, 가장.”

한때 트란 산맥에서 살았던 제리가 없었다면, 어떻게 마나초를 구하러 갔을지 앞이 깜깜했다.

함께 등반하는 인원들은 저 평범한 크기의 보라색 등이 그렇게 든든해 보일 수가 없었다.

마나의 맥을 찾는 데만 열흘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제리는 낮에는 지구에서 천마 길드원과 훈련하고, 훈련이 끝나면 트란 산맥에 오르는 인원들을 보호해주었다.

제리가 없을 때도 사냥꾼 쟝, 르녹, 꾸얀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등반을 했는데, 이들을 따라잡는 것은 제리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마나의 맥은 비교적 샤론 영지에서 아주 먼 곳은 아니었다.

가장 멀리 있는 곳이었다면 한 달은 더 걸렸을 텐데 다행이었다.

“이곳입니다!”

“잠깐만 기다려랑.”

마나를 머금은 풀 마나초.

이 마나초를 먹으면 마나 수치가 영구적으로 늘어난다.

그래서 귀족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리고, 민준도 디아론 백작과 알타르로부터 선물로 받았을 뿐이었다.

트란 산맥의 깊은 마나의 맥에서 자라는 마나초 자생지.

그런데 이 영초들에 관심을 두고 있는 존재가 과연 없을까?

펄럭! 펄럭!

만티코어 한 마리가 일행 앞에 착륙했다.

수사자처럼 머리에 갈기 나 있고, 사자처럼 생긴 몸의 등에는 마치 커다란 박쥐 날개처럼 생긴 날개가 달렸다.

꼬리에는 뾰족한 독침이 달려 있었다.

그런데 얼굴 한가운데는 마치 인간 노인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노인의 얼굴이 말했다.

“수인족인가?”

만티코어는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었다.

제리가 나섰다.

“싸울 생각은 없다. 이곳에 약초를 채집하러 왔을 뿐이다.”

“이곳은 나의 영역이다. 물러가라.”

제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째서 너의 영역이지? 지난번에 여러 인간들과 이곳에 왔을 때는 네가 없었는데?”

“그건 중요치 않다. 강한 자가 영역을 차지한다는 것이 이곳 트란 산맥의 법칙임을 모르는가?”

그러면서 만티코어는 꼬리에 달린 뾰족한 침을 세우기 시작했다.

“선물함.”

제리가 선물함에서 발리스타를 꺼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르녹과 꾸얀이 착착 조립하여 준비를 마쳤다.

르녹과 꾸얀이 준비하는 동안 만티코어는 제리가 맡고 있었다.

“강한 자가 영역을 차지한다고? 그 말 나도 동의한당. 발사!”

쇄애애액!

쾅! 지지지직!

원래 디아론 백작가의 이동용 발리스타는 만티코어와 같은 트란 산맥의 중대형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대형 화살에 마법이 떡칠되어 있었다.

만티코어는 화살을 피하려 했지만, 유도 기능이 있어서 피하지 못했고, 전기계열의 마법이 포함되어 있어서 짜릿한 맛을 경험하게 되었다.

순간 기절했다가 깨어난 만티코어의 노인 얼굴이 더욱 늙어 보였다.

제리가 슬쩍 물어보았다.

“아직 안 갔냥?”

후다닥 뒤돌아 뛰어가는 만티코어였다.

그 후로는 숨은 마나초 찾기였다.

“여기 한 뿌리 찾았습니다!”

“여기도 한 뿌리!”

원래 보물찾기는 찾는 순간이 가장 재미있는 것이었다.

다 찾았으면?

이제는 내려가야 할 시간이었다.

* * *

나는 오랜만에 샤론을 돌아보는 루틴을 시행했다.

S급을 잡는 중국 출장길은 생존을 걱정해야 해서 다른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그 후로도 이어진 훈련은 몸이 힘든 만큼 머리를 비우도록 했다.

그런데 샤론에 이렇게 나의 조각상이 세워질 줄은 몰랐다.

“흠… 알파야, 다니엘에게 가보자.”

슈우욱.

화면이 다니엘에게 날아갔다.

다니엘은 갈리나 할머니와 함께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화려한 옷들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파야, 다니엘에게 용병 제안을 해줘.”

―네, 제안하겠습니다.

다니엘이 깜짝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수락하였습니다.

[다니엘, 오다가 봤는데 커다란 조각상? 바위를 깎은 것 같은데, 그거 뭐예요?]

다니엘은 평소와 다르게 정성스럽게 누워서 인사를 했다.

[아, 영주님. 먼저 영주님께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영주님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영주님을 기쁘게 해드릴지 고민하여 준비한 것입니다.]

[저를 기쁘게요?]

[예, 우선 저희 영지에 영주님의 동상이 있지만, 아무래도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는 영주님의 관점을 저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보시기 좋게 만들기로 했습니다. 또한, 영주님께 보여드릴 행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행진이요?]

[예, 혹시 시간이 되시면 지켜봐 주시겠습니까?]

이 사람들이 뭔가 거창한 걸 준비한 것 같았다.

[그러죠.]

다니엘이 분주해졌다.

잠시 기다리자 준비가 다 되었다는 쪽지가 왔다.

[행진의 주제는 영주님을 만나서 변해가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경비를 서는 인원과 아주 어린 아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영지민이 나온 것 같았다.

[영주님, 관람은 영주관 앞쪽에서 하시면 좋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영지민들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행진의 맨 앞에는 나물을 한 바구니 들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샤샤였다.

하긴 샤샤가 허락하지 않고 이런 대형 행사가 진행될 리 없었다.

아주 다들 나만 빼놓고 이런 꿍꿍이를 펼치다니 황당하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행진은 화려했다.

샤론의 역사를 보여주었고, 진짜 같은 몬스터도 등장했다.

오크도 있었고, 샤벨타이거도 있었다.

몬스터는 진짜인지 아닌지 가까이 다가가 보았을 정도로 생생했다.

각종 무기가 수레에 실려서 이동했다.

검, 도끼, 활, 메이스, 이동용 발리스타까지 등장했다.

놀이동산에서 스토리가 있는 행진 공연과 군부대의 열병식이 섞인 듯한 느낌이었다.

“어라?”

행진은 순환식이었는지 다시 샤샤가 등장했다.

이번에는 순박한 산골 소녀의 모습이 아니라 지구식으로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제리와 카나도 자기 순서에 맞게 등장했다.

이제 수백 명의 인원이 박자를 맞춰가며 라이트 마법까지 켜고 있었다.

나 혼자 보고 있다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공연이었다.

행진의 마지막은 샤샤가 아까 처음 시작할 때 들고 있던 약초 바구니로 끝났다.

샤샤가 쪽지를 날렸다.

[민준 님, 이거 마나초에요. 제리와 영지민들이 트란 산맥에 올라 캐온 거라고 해요.]

와, 마나초라니.

마나초는 얼마 없어서 알뜰하게 먹었었는데 영지민들이 가져오다니 감사했다.

그런데 감사한 건 감사한 것이고, 나는 뭔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일이기라도 했으면 이해했을 텐데 뜬금없는 공연에 조각상에 마나초까지 나왔다.

얼핏 생각해도 마나초가 보통 물건이 아니다.

디아론 백작가 또는 5서클의 희망을 품던 알타르한테서나 나온 물건이었다.

나는 용병인 다니엘에게 물었다.

[고마워요. 그런데 왜 이런 공연을 준비한 거예요?]

[저희 샤론 영지의 주민들이 영주님을 위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저 기쁘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음… 다니엘의 대답은 뭔가 시원하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에게 용병을 걸어 물어보았지만 그들의 대답도 비슷했다.

저쪽에 꼬마 마법사 길리언이 있었다.

길리언에게 용병을 제안했다.

[영주님?]

[그래, 길리언. 잘 있었니?]

[네. 잘 이써써요.]

왜 그런지 몰랐지만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혹시 길리언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니?]

[음…….]

[솔직하게 말해도 돼.]

길리언은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고민했다.

[안 가시면 안 대여?]

[내가 어딜 가?]

[이제 영주님이 안 오신다고 해써요.]

[내가?]

[음, 영주님이 다른 데 가면 이제 우리를 보러 안 오실 수도 있다고 해써요.]

아! 뭔가 알 것 같았다.

영지민들의 행진은 화려하고, 다채롭고 훌륭했지만, 뭔가 마음 한구석에 찝찝한 느낌이 있었다.

그것은 긴장감 혹은 두려움이었다.

내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산골 영지에서 영주가 떠나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잠시 화면을 움직여 영지민들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후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샤샤야, 내 말을 전달해줘.]

[네, 민준 님.]

나는 영주로서의 명령을 내렸다.

꿀꺽.

샤샤도 긴장했다.

샤샤가 행진을 마친 주민들에게 외쳤다.

“지금 영주님께서 저에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지금부터 제가 영주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겠습니다.”

샤샤는 주민들이 잘 볼 수 있게 약간 높은 단상 위에 올라가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주민들은 샤샤가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과 함께 살짝 긴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마을 주민들도 긴장한 채 결과를 기다렸다.

옛 밤나무 마을에서부터 샤론 마을로 따라왔던 플레닉은 조각상을 다듬는 일에 참여했고, 행진 때는 동물 분장을 했다.

손끝에는 처음 해보는 조각상 다듬는 일로 인해 물집이 잡혀 있었고, 분장으로 얼굴에 알록달록 물감을 묻어 있었다.

플레닉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모두가 긴장하는 와중에 영주 대리인 샤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인간은 최선을 다할 뿐 결과는 하늘에 맡기라지 않는가?

주민들은 하늘에서 바라본 영주님의 판단을 기다릴 뿐이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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