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112화 (111/230)

112화. 섬뜩함

다그닥, 다그닥.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을 태운 말이 빠르게 달렸다.

말은 오랜 시간을 달린 듯 온몸이 땀이었지만 그래도 크게 힘들어 보이지는 않는 듯 열심히 달렸다.

저 멀리 기다란 장벽과 그 너머에 뾰족한 첨탑을 지닌 건물이 보였다.

프란시아 왕국의 왕성이었다.

말 위에 탄 사람이 로브를 벗었다.

마법사 알타르였다.

알타르는 며칠간 말을 달려 수도에 도착했다.

말에게 계속 포션을 먹이고, 자신도 포션을 마셔가며 최대한 빨리 수도에 도착했다.

수도에 도착한 알타르는 왕국의 수석 마법사인 스피오크를 찾았다.

알타르는 스피오크가 같은 마법사라서 말하기도 편하고, 영주님과도 인연이 있어서 도와줄 희망을 가졌다.

목에는 밍크 목도리처럼 고운 털이 둘려진 붉은 망토를 걸친 스피오크가 알타르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래, 알타르 마법사, 어쩐 일로 여기까지 왔는가?”

“스피오크 님도 저희 샤론 영지의 영주님이 이곳 글리제인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죠?”

“허허, 내가 샤론에도 갔었고, 나름 용병이란 것도 경험해봤는데 그걸 왜 모르겠는가?”

“그러면 이야기가 쉽군요. 영주님의 세상에 하프 악마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하프 악마?”

“예, 얼굴과 몸체는 인간형인데, 눈동자는 세로로 찢어졌으며 등에 검은 날개를 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검은 구름과 같은 것으로 방어를 하며 소드마스터 급의 무력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말을 통해 일정 범위를 공격하는데 방어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언령계 공격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을 생각해보면 하프 악마가 아닐까 유추하고 있습니다.”

스피오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리 있는 말이야. 그러면 사제가 필요할 텐데, 신성 교국을 가볼 셈인가?”

“그러기엔 시간이 많이 없습니다. 수도에서는 성물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도와주시겠습니까? 여기 디아론 백작님의 연대 보증서도 있습니다.”

스피오크는 알타르가 내민 보증서를 보았다.

“보증은 함부로 서는 게 아니라던데 디아론 백작이 샤론 영지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먼.”

“예, 그렇습니다.”

“좋소, 내 연결을 해드리지. 하지만 확답할 수는 없다오. 따라오시오.”

알타르는 스피오크와 함께 궁궐 바로 옆으로 이동했다.

조금 걸어가니 건물의 대부분이 연한 노란색으로 칠해진 건물이 있었다.

지붕도 노란색, 기둥도 노란색, 바닥도 노란색이었다.

그곳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연한 노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알타르가 스피오크와 함께 길을 걸으니 연한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은 스피오크를 알아보았는지 차분하게 목례를 건넸다.

스피오크도 차분하게 마주 목례를 건네주었다.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는가?”

“아니요. 없습니다.”

“이곳은 용맹과 풍요의 신을 모시는 수도원이라네.”

“아, 그렇군요.”

“이쪽으로 오게나.”

스피오크는 익숙한 듯 어느 방 앞에서 노크했다.

방안에서는 지긋한 나이의 사제가 있었다.

“수석 마법사님이시군요.”

“잘 있었는가?”

스피오크는 사제와 서로 잘 알고 있었다.

한참 대화를 주고받고 나서 스피오크가 알타르에게 말했다.

“대여 가능한 성물이 있기는 있다고 하네. 그런데 문제는 사제가 아닌 사람은 가져가도 의미가 없다고 하는데, 샤론 영주께서 신성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가?”

“네, 영주님께서는 홀리 큐어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신성력이 포함된 회복 마법입니다.”

“그래? 그럼 가능하겠군. 그리고… 말야… 잠시 이쪽으로 오게나.”

스피오크는 다른 사제가 없는 조용한 곳으로 알타르를 데려갔다.

“수도원 쪽에서도 소문을 들은 모양이네.”

“소문이요?”

“샤론 영지에 관한 소문이지. 헬른성에 대량의 식량을 판매했다는 소식을 들은 모양이야.”

“아, 그렇군요.”

“그래서 말야. 제법 들 것 같아.”

“들다니요?”

“임대 형식이라고 하는데, 두 개의 달이 한번 뜨는 기간 동안 성인 무게의 3천 포대를 달라고 하는군.”

스피오크는 말을 하면서도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지 미안해 보이는 목소리였다.

“일단 영주님께서 한 번 써보시고 결정하면 안 될까요? 3천 포대라면 제가 결정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럼, 당연히 그리해야지. 어서 샤론 영주께 연락을 넣어보게나.”

“저… 제가 지금 용병 상태가 아니라 먼저 연락을 넣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샤론 영지에 가서 늘 연락이 가능한 샤샤나 카나 양에게 이야기를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피오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알타르, 이건 서비스라네.”

“네?”

* * *

띠링!

알람이 울렸다.

―민준 님?

“알파야 왜?”

―글리제에서 신호가 잡힙니다.

글리제에서 신호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그게 무슨 말이야? 글리제에서 무슨 신호가 잡혀?”

―예전에 용병 계약을 했던 이가 다시 자신을 불러달라는 것 같습니다.

지금 소환수들과 용병 모두가 여기 있어서 글리제에서 나에게 먼저 연락할 수단이 없었다.

누가 연락을 했을까?

아니, 연락할 능력이 있을까?

“연결해봐. 화면으로 보여줄 수 있어?”

헬리콥터 안에 화면이 나타났다.

글리제를 비추던 화면이 쭉 확대되더니 프란시아 성의 수도에 도착했다.

화려한 마법사 옷을 입은 프란시아 왕국의 수석 마법사인 스피오크였다.

그 옆에는 알타르도 있었다.

스피오크 쯤 되는 실력자가 나의 용병을 해본 적이 있으니, 먼저 신호를 보낼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상황팀에게 문의했다.

“상황팀, 뒤쪽의 상황은 어때요?”

“지금 비상 추진체까지 사용하여 전속력으로 헬리콥터가 날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5분 안에 따라잡힐 것 같습니다. 5분 안에 탈출 작전 3번을 사용해야 합니다.”

5분이 남았다.

나는 염화에게 사정을 말하고 용병을 취소했다.

“알파, 스피오크 님에게 용병 제안을 해줘.”

―수락하였습니다.

스피오크에게 쪽지를 날렸다.

[스피오크 님, 제가 지금 몬스터와 싸우고 있습니다. 혹시 이 몬스터 때문에 연락하셨나요?]

[그래요. 바로 그 몬스터 때문이라오. 악성향 몬스터에게 알맞은 성물을 준비했으니 나를 소환해주시오.]

그래? 옆에 알타르가 있는 걸로 봐서, 지난번 카나가 글리제에서도 이 몬스터를 대응할 방법을 찾아본다고 했는데 알타르가 성과를 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스피오크 소환!”

화아악.

헬리콥터 안에 붉은 망토에 털목도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스피오크가 나타났다.

“여기 있소. 목걸이 타입인데 착용해 보시오.”

스피오크에게 목걸이를 넘겨받았다.

금색 사슬 목걸이에 가운데 달걀 크기의 둥근 마정석이 박혀 있었다.

마정석 주위로는 얇은 금속이 마정석을 이리저리 감싸고 있었다.

“사제만이 쓸 수 있는 물건인데 신성력을 일으켜보시오. 듣기로는 신성 치유마법을 하실 수 있다고 들었소.”

아, 홀리 큐어를 말하는 건가?

“홀리 큐어!”

휘리링!

목걸이에서 따스한 느낌이 났다.

홀리 큐어를 사용할 때 느껴지는 느낌이 훨씬 크게 부푸는 듯했다.

띠링!

[홀리 큐어 스킬이 디바인 홀리 큐어로 업그레이드됩니다.]

띠링!

[성물에 디바인 프로텍션 스킬이 내재 되어 있습니다.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알파야, 디바인 프로텍션이 뭐야?”

―디바인 프로텍션은 신성력의 가호를 받아 악성향 공격에 대해 보호를 하는 스킬입니다. 일반 물리, 마법 방어에는 평범한 실드 수준이지만 악성향의 공격에 대한 방어력이 뛰어납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좋은 스킬을 얻었다.

이제는 싸워야 할 때였다.

“스피오크 님, 전투해야 할 때라서 이제 용병을 취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피오크가 의아한 듯 물었다.

“굳이 그럴 필요 있소? 성물을 구하러 온 것을 보니 이쪽 세상에서 악마계열에 대한 대비가 그리 잘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데, 내가 이렇게 보여도 나름 경험이 있다오.”

오오! 이런 몬스터에 경험이 있는 7서클이라면 엎드려 모셔야 할 판이었다.

“그럼 스피오크 님께서 전투에 참여해주시겠습니까?”

스피오크가 미소를 지었다.

“그거 반가운 소리요.”

나는 염화의 동의를 구했다.

“염화 님, 괜찮으실까요? 이분도 7서클 마법사이며, 지구로 따지면 S급이세요. 게다가 데빌 페어리와 비슷한 타입의 몬스터에 대한 경험이 있으시대요.”

7서클 마법사라는 말에 염화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면 이제 천마, 통커, 스피오크 님 이렇게 세 분이 용병이십니다.”

나는 세 용병에게 디바인 프로텍션을 걸어주었다.

“디바인 프로텍션.”

용병들의 몸에 은은한 신성력이 깔리는 듯했다.

“어때요? 괜찮나요?”

천마가 몸을 움직여보더니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없습니다. 최후미 헬리콥터에 거의 근접했습니다. S급 헌터님들은 출동하시고, 탈출 작전 3번을 실시하겠습니다.”

내가 용병들에게 말했다.

“그러면 천마, 통커, 스피오크 님 부탁드립니다!”

드르르륵.

천마가 헬리콥터 문을 열었다.

휙, 휙, 사뿐.

S급인 천마와 통커는 날아가는 헬리콥터에서도 당연하다는 듯 뛰어내렸고 심지어 스피오크는 전속력으로 날아가는 헬리콥터에서도 사뿐하게 내렸다.

타다다다다.

헬리콥터는 그 생김새가 누가 봐도 군용답게 생겼다.

그리고 전투용 헬리콥터답게 긴급 추진 장치가 있었다.

하지만 긴급 추진 장치는 말 그대로 긴급일 뿐 오래 쓸 수 없었다.

최후미의 헬리콥터에 탑승한 부사수는 이제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진 데빌 페어리에게 뭐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총탄을 발사했다.

두두두두.

데빌 페어리는 천마의 검강이 자신에게 날아왔을 때는 손으로 막고 튕겨내기라도 했다.

하지만 데빌 페어리는 어지간한 건물도 벌집으로 만들었을 기관총 탄환이 발사되었지만, 손짓조차 하지 않고 날아왔다.

부사수의 눈에 데빌 페어리의 눈동자 모양이 보일 무렵, 갑자기 데빌 페어리가 멈추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쾅!

천마의 강기였다.

그 틈을 타서 헬리콥터는 쉬지 않고 달아났다.

쾅! 쾅! 쾅!

데빌 페어리는 한 명이 바뀐 것 같았지만, 여전히 세 명의 인간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자 짜증이 났다.

분명 저 날아가는 것 속 안에 저들이 보호하고자 하는 무언가, 저들을 치료했던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필사적으로 막을 것이었다.

데빌 페어리는 궁극기를 사용했다.

“ζάρια”

데빌 페어리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세 인간이 쓰러지고 나서 사라지면 자신은 저 잠자리처럼 날아가는 것을 추격하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세 용병의 몸을 감싸고 있던 디바인 프로텍션이 데빌 페어리의 궁극기에 저항했다.

우우우우웅.

챙그랑.

디바인 프로텍션은 데빌 페어리의 궁극기를 완벽히 막아내지 못하고 깨져 버렸다.

“큭!”

천마는 자신이 데미지를 입었음을 느꼈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맞을 만했다.

아까는 궁극기 한 방에 체력이 절반 이상 깎여나가며 무릎이 푹 꺾여서 주저앉았지만, 지금은 묵직한 펀치가 복부에 꽂힌 정도였다.

칼끝 위에서 살아가는 헌터에게 이 정도 데미지는 일상이었다.

사라락.

세 용병의 몸에 따스한 기운이 깃들었다.

민준이 걸어준 디바인 홀리 큐어였다.

천마가 미소를 지었다.

“하하, 이거 할 만한데? 통커 씨 어떠세요?”

“셰셰, 나 체력 가득이다.”

스피오크가 경험이 많다는 듯 말했다.

“처음 손을 맞춰보오. 초면에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싶지만, 내가 악마를 좀 잘라봐서 아는데, 이럴 때는 먼저 날개를 잘라 놔야 하지요.”

“왜죠?”

“그야 못 도망가게 하기 위해서라네.”

세 용병이 서로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을 머금은 채 데빌 페어리를 바라보았다.

뭔가 섬뜩함을 느낀 데빌 페어리였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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