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S급 던전 브레이크 (3)
비상 안가의 상황실이 다급해졌다.
제복을 입은 중국의 국가안전부 직원들은 정신없이 움직이며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빠르게 말했다.
따르르릉.
“저쓰~”
“XX.”
여기저기 전화가 울리고 원래도 리드미컬한 성조가 있었던 중국어는 상황이 심각해짐을 그 높낮이의 변화로도 표현하고 있었다.
통역이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데빌 페어리가 움직였다고 합니다. 칭다오시의 중심 부근에 있었는데 현재 서쪽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저궤도 인공위성, 드론, CCTV를 통해 데빌 페어리의 위치를 주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CCTV는 파괴된 것이 많아서 드론을 이용해 임시로 주변에 천 개 이상 놓아두었다고 하네요.”
위성에, 임시 CCTV에 드론까지 이쪽도 총력을 펼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우리나라보다 더 넓은 면적을 몬스터에게 내주었으니 열받겠지.
중국에 왔을 때 처음 우리를 마중 나왔던 직원이 다가와 말했고 다시 통역이 말을 전했다.
“데빌 페어리와의 결전을 부탁한다고 합니다.”
꿀꺽.
이제 한판 뜰 때가 왔다.
긴장한 마음과 다르게 내가 호기롭게 말했다.
“자, 한판 뜨러 갑시다.”
내 말에 내 소환수들과 용병들이 반응해주었다.
“네, 민준 님.”
“그래, 구석에서 쭈그려만 있으니까 좀이 쑤셨는데 잘됐네. 언제 싸우러 가는가 했어.”
“좋아요. 갑시다.”
지하 안가에서 다시 지상으로 올라갔다.
아파치처럼 생긴 전투용 헬리콥터가 가득 있었다.
우리 팀은 헬리콥터 다섯 대로 나누어서 이동했다.
일단 나는 드론팀, 상황팀, 회복전담팀과 함께 데빌 페어리가 있는 곳에서 50km 떨어진 곳까지만 이동한다고 했다.
회복전담팀은 이틀 전부터 볼 수 있었는데, 전문 힐러만 마흔 명이 모였다.
소환수와 용병은 한 명씩 조를 짜서 데빌 페어리가 있는 장소 10km 전까지 이동한다고 했다.
그렇게 출동을 하려고 헬리콥터로 이동하는데 웬 카메라가 우리를 찍고 있었다.
며칠 전 영상을 통해 S급 6명이 싸우러 나갔을 때의 장면이 떠올랐다.
우리 역시 승리한다면 승리의 기록으로, 패배한다면 누군가의 교보재가 될 영상일 것 같았다.
헬리콥터 근처로 가니 헬리콥터의 바람이 심하게 몰아쳤다.
하지만 다들 이 정도 바람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인물들이었다.
나는 각자의 헬리콥터로 향하는 소환수들에게 주먹을 들어 파이팅을 표현해주었다.
헬기에 올라타서 위성을 통한 통신을 테스트해 보았다.
“아아, 잘들 들리십니까?”
―네, 잘 들립니다.
―저도 깨끗하게 잘 드려요.
통신 방법은 위성 통신뿐 아니라 소환수와 용병의 쪽지도 가능했다.
[자, 쪽지도 이상 없죠?]
[그럼요.]
[이상 없어요.]
타다다다다다다!
하늘에서 뒤쪽을 보니 헬리콥터가 줄지어 우리를 쫓고 있었다.
가장 먼저 나와 상황팀, 회복전담팀이 학교의 운동장으로 보이는 곳에 착륙했다.
교실 몇 군데가 순식간에 상황실로 변신을 했다.
상황실에 여러 대의 모니터 화면이 준비되었다.
모니터의 화면이 차례차례 켜졌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소환수들의 연락이 왔다.
[저 샤샤에요. 착륙했어요.]
[카나도 착륙.]
[나도 착륙했당.]
내가 보는 모니터에는 차지율 헌터, 피통커, 염화의 옷에 달린 카메라의 1인칭 화면도 있었다.
“자, 용병들 준비되었으면 갑시다.”
“고고!”
“무운을 빕니다.”
“아자아자!”
용병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용병의 몸에 달린 캠으로 보이는 1인칭 화면에서는 주변 배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위성을 통해 잡은 데빌 페어리가 한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저 몬스터의 위치는 실시간으로 모두에게 전송되고 있었다.
1인칭 화면들에는 한문으로 적혀 있었지만, 천마, 염화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세 글자짜리가 피통커 헌터의 화면이었다.
통역도 옆에서 긴장하며 나에게 열심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후우.”
빠르게 달려 나가는 용병들의 모습을 보며 심호흡을 했다.
나는 알파를 부르듯 상황팀을 불렀다.
“상황팀?”
“싀더!”
“‘네’라는 뜻입니다.”
“1번 카메라 확대해주세요, 이제 축소해주세요. 그다음 2번 카메라 줌인, 줌아웃.”
내가 어리바리하면 S급들이 죽는다.
소환수들도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위험할 수 있었다.
나는 상황팀의 화면을 알파 다루듯 나의 통제 아래에 두었다.
“2번 카메라 제일 큰 메인 화면으로 걸어주세요.”
메인 화면에 데빌 페어리의 모습과 천마의 모습이 멀리서 한 화면으로 보였다.
천마는 거의 날 듯이 뛰었는데 뛰는 모습이 마치 한 마리의 매와 같았다.
S급 헌터가 마음먹으면 10km 정도의 거리는 불과 몇 분이면 도달하는 거리였다.
천마가 검을 꺼냈다.
훈련하며 천마가 적이었을 때는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는데 이제 천마를 용병으로 부리니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부우웅.
천마가 달려가며 그대로 검을 휘두르니 검에 맺힌 강기가 그대로 데빌 페어리를 향해 날아갔다.
“캬아아악!”
데빌 페어리는 괴성을 지르며 천마와 마주 달려갔다.
쾅!
왼손을 바깥으로 휘둘러 강기를 물건 치우듯 때리자, 강기가 바깥쪽으로 꺾여 바닥에 충돌했다.
하지만 그런 공격은 그저 가벼운 견제용일 뿐이었다는 듯 천마의 검이 세로로 쪼개지듯 내리찍었다.
천마가 검을 세로로 긋자 순간 세상이 절반으로 잘린 듯 잔상이 남았다.
“우와.”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아무래도 나와 연습할 때는 본 실력을 모두 꺼내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때 몇 개의 모니터가 하얗게 변했다.
멀리서 관찰하는 화면을 보니 하늘에 새로운 태양이 떠 있었다.
태양처럼 거대한 불꽃, 염화 헌터의 작품인 것 같았다.
콰과과과광!
태양이 지면에 떨어지자 낙하지점을 중심으로 동그란 파형이 주욱 퍼져나갔다.
팟, 팟, 팟!
그와 함께 여러 대의 화면이 먹통이 되었다.
상황실에서는 다시 화면을 잡기 위해 진땀을 흘렸다.
불쑥!
데빌 페어리가 이글거리는 지면 위에서 솟아 나왔다.
몸을 가리는 검은 연기가 열기를 방어를 하는 것 같았다.
화가 났음을 표현하는 듯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가 더욱 크게 드러났다.
페어리가 날갯짓을 하며 염화를 향해 날아갔다.
뾰족한 손가락을 사람 머리통 쥐듯 구부린 채 염화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쾅!
언제 왔는지 우리의 왕 서방 아니, 피 서방이 도착했다.
데빌 페어리는 팔을 빠르게 휘저으며 피통커 헌터를 공격했다.
피통커 헌터의 팔은 흰색으로 물들었는데 데빌 페어리의 공격을 차분하게 막아내었다.
너는 때려라. 나는 막는다는 듯 통커 헌터는 마냥 방어했다.
하지만 데빌 페어리도 만만치 않았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데 등 뒤의 날개가 마치 나비 같았으며, 뾰족한 손은 벌의 침에 비유할 수 있었다.
한방 한방의 강력함은 용병들보다 윗줄인 것 같았다.
하지만 용병들은 탱커, 딜러, 법사의 안정적인 조합이었다.
이런 안정적인 조합이면 셋이서 3의 전투력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큰 전투력을 낼 수 있었다.
“힐, 힐, 힐.”
게다가 여기 힐러도 있었다.
이곳 상황실에는 수십 명의 힐러가 대기 중이지만 도망을 와서 회복하는 것과 전투 중간에 힐을 받는 것은 효율 면에서 비교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마나포션 2리터 들이에 빨대를 꽂아 마시며 힐을 날려주었다.
다시금 천마의 찌르기 공격이 들어갔다.
푸우우욱.
보는 내가 다 아플 정도의 찌르기였다.
천마의 찌르기는 데빌 페어리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 연기를 뚫고 본체에 닿았다.
“오오, 좋아. 데미지 들어가는 것 같아!”
피통커 헌터가 막으면서 버티고 있는 사이, 천마와 염화는 중간중간 묵직한 검술과 마법을 보여주었다.
이대로만 진행되면 좋을 것 같았지만, 지난번 영상에서 6명의 S급 헌터들도 처음에는 데빌 페어리를 다 잡을 것처럼 몰아붙였었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언제 궁극기가 들어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소환 연습을 할 때 내가 소환을 명령한 후, 용병들이 승낙하고 원래 장소에서 사라지기까지의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도록 훈련했다.
거의 내가 ‘소환’이라고 외치면 ‘네’라고 연속으로 외쳐서 마치 ‘소환네’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나는 미국 서부 시대의 권총 대결을 기다리면서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을 보며 충분히 연습해두었다.
저 데빌 페어리가 지난번 영상에서 본 것처럼만 행동해준다면 충분히 여유 있게 소환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소환 최단 시간은 0.3초까지 나왔었다.
자, 궁극기는 언제 쓸 테냐?
나는 화면을 뚫어지게 보며 데빌 페어리의 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 * *
중국 칭다오시의 어느 건물 안에서 천체 망원경과 새 관찰용 쌍안경을 가지고 바깥을 열심히 살피고 있는 두 인물이 있었다.
“땡철아.”
“왜요?”
“조금만 더 가까이 갈까?”
“어휴, 조금만 형님, 조금만 일찍 죽고 싶으세요?”
던전 전문기자인 조금만 기자와 그의 동료인 카메라맨이었다.
“아, 놔 이거 여기까지 왔는데 보스는 어디 있는 거야?”
“에이 없으면 말죠. 여기 파괴된 흔적만 찍어도 분량은 충분히 나와요.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우린 할 만큼 한 거라고요. S급이 장난이에요? 제목을 유령도시라고 해서 올리면 돼요.”
그때 쌍안경으로 뭔가가 보였다.
“어? 저기 뭔가 있어!”
조 기자의 쌍안경에 세상이 둘로 쪼개지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야야, 저쪽 찍어봐!”
“가만있어 봐요! 하고 있잖아요!”
스쿵!
쪼개지는 모습이 보인 후 몇 초 후에 파공음이 들렸다.
“찍어! 일단 카메라 돌려!”
“이미 돌리고 있어요!”
망원경으로 확대한 곳에서는 누군가 싸우고 있었다.
화질이 아주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날개 달린 어떤 몬스터가 있었고 검을 든 인원을 포함해 세 명의 헌터가 몬스터와 대결을 하는 모습이 찍혔다.
* * *
민아와 가영이는 오늘도 스터디카페에서 열심히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이곳 카페는 스터디 중심이긴 하지만, 도서관처럼 아예 말을 하지 못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음료와 간식을 먹고 작게 대화하는 정도는 가능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민아와 가영이도 그런 분위기가 좋아서 이곳에 함께 수업을 듣곤 했다.
지이이잉.
가영이의 스마트폰에 진동이 울렸다.
가영이는 잠시 수업 영상을 멈추고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조 기자의 모습이 보였다.
가영이는 영상을 볼까 하다가 그래도 보던 수업 영상을 마저 보려 했다.
수업 영상을 마저 틀려는 순간, 옆 테이블에서 작게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민준이 누구야?”
가영이의 손길이 멈췄다.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을 빼고 옆 테이블의 소리에 집중했다.
“샤론 길드장이라던데? 천마가 데리고 다니는 헌터래.”
“용감하네. 중국까지 가서 S급이랑 싸우고.”
가영이가 서둘러 스마트폰의 영상을 열어보았다.
영상에는 라이브라는 문구가 띄워져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간다. 던전 브레이크 전문기자 조 기자입니다. 제가 지금 있는 곳은 중국의 칭다오시인데요. 중국에서 발생한 S급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이곳은 마치 유령도시로 변한 듯한 모습입니다.]
화면은 칭다오시의 텅 빈 거리를 보여주었다.
곳곳에 파괴된 흔적이 있었고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러분, 저희 촬영팀에서는 놀라운 영상을 촬영했는데요. S급 보스 몬스터를 헌터들이 레이드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다시 한번 보시죠.”
화면에서는 어느 헌터가 머리 위로 검을 들었다가 내리긋자 마치 세상이 둘로 갈라진 듯한 굴곡이 생겼다.
그리고 몇 초 후,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희 촬영팀은 보시다시피 망원경을 통해 레이드하는 모습을 촬영했는데요. 레이드 하는 헌터는 검을 든 채로 마치 세상을 둘로 갈라버리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모습에 대해서 한국대 헌터검술학과 교수님의 설명을 듣겠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며 한국대 교수라는 자막이 보였다.
[화면에서는 화질이 선명하지 않아서 어느 헌터라고 확실하게 칭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일단 저 검술은 검의 극의에 이르지 못하면 저렇게 세상을 둘로 가르는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없습니다. 지금 보시면 검 끝이 내려가는 속도와 세상이 둘로 갈라지는 속도 차이가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만큼 공간에 대한 지배력이 높은 것이죠. 마치 우리나라의 차지율 헌터의 하늘 베기와 유사하군요.]
[교수님께서는 화면 속 인물이 우리나라 천마 길드의 천마와 비슷하다고 하시는 건가요?]
[화질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보이는 검술은 천마와 유사합니다. 우리나라 헌터라는 단서라도 있다면 제가 천마가 맞다고 말씀드리겠지만, 중국 헌터일 수도 있으니 확정하기는 어렵네요. 또한, 지금 보시는 탱커는 손이 흰색이네요. 중국의 S급 피통커 헌터도 흰색 손으로 탱킹을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탱커는 그일 가능성이 있네요.]
[검사는 천마, 탱커는 중국의 피통커 헌터로 추정하신다는 것이시군요.]
[네, 개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지금 화염계 법사도 보이는데, 이분은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글쎄요. 화염계 마법은 고위 마법사들은 어지간하면 다 다룰 수 있어서 쉽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자막으로는 [중국 S급 몬스터와 우리나라 헌터가 교전 중으로 추정]이라는 문구가 자막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교전 중이던 헌터들이 화면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것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고, 그 모습은 전파를 타고 실시간으로 방영되었다.
“지금 헌터들이 사라졌습니다. 화면을 돌려볼까요? 네, 공중에서 서로 공격하다가 순간적으로 사라졌네요. 스킬일까요? 교수님,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스킬이겠죠. 지금 몬스터도 헌터를 찾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근거리 이동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원거리 이동인 텔레포트 같지도 않아 보입니다. 원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특별한 스킬이 발동한 것 같습니다.”
“아! 마치 얼마 전, 제가 인터뷰했던 헌터의 스킬과 비슷하네요.”
인터넷 댓글이 웅성거렸다.
└ 조 기자가 인터뷰했던 헌터가 누군데?
└ 샤론 길드의 김민준 같은데? 소환하는 거 보면 비슷해 보이긴 해.
└ 천마와 샤론이 지분교환했다고 하잖아.
└ 저기 천마가 싸우고 있고, 김민준이 소환해주고 있다고 하면 말이 되는데?
가영이가 민아를 툭툭 쳤다.
온라인 수업을 듣던 민아가 헤드셋을 벗고 가영이를 쳐다보았다.
“민아야, 너네 오빠 중국에 있는 것 같아.”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