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S급 던전 브레이크 (2)
저녁 무렵 넓은 비행장에 도착했다.
원래 비행장은 크지만, 중국이라서 그런지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승무원들이 일렬로 서서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짜이찌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인사말이었다.
그들의 깍듯함은 원래 그런가보다 싶기도 했지만, 그들의 눈빛에 담겨진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우리가 누구인지 왜 지금 중국에 온 것인지 아는 것 같았다.
휘이잉.
비행기에서 계단으로 내려간 후, 다시 공항 건물로 이동해야 했는데, 비행기 문을 열자마자 칼바람이 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산 하나 없는 넓은 벌판이었고, 해안가의 해륙풍을 막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이곳은 칭다오시보다 북쪽에 있는 도시라고 했다.
“안녕하세요. 국가안전부에서 나왔습니다.”
황토색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리를 마중 나왔다.
그중에는 통역도 있었고, 우리에게 이곳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현재 칭다오시는 비행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킨 몬스터가 비행 능력이 있어서 비행기로 날아갔다가 혹시 공중에서 공격당할 위험이 있으니까요. 우선 차량으로 칭다오시로 이동하신 후 브리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토바이 두 대가 우리를 에스코트했다.
우리는 멋진 검은색 자동차를 타고 한참을 이동했다.
자동차 앞에는 펄럭이는 붉은 깃발이 달려있었다.
한참을 달려가니 멀리 커다란 광고판이 보였다.
나는 옆에 있는 차지율에게 말했다.
“차 헌터님.”
“네?”
“저희 끝나고 저거 먹으러 가요.”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맥주 오크통을 들고 있는 커다란 광고판이 있었다.
맥주의 도시에 도착한 듯했다.
차지율 헌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십니다.”
어느덧 차량이 멈추고 국가안전부 인원들은 우리를 어느 건물의 지하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이런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 만든 비상 안가입니다.”
지하 안가라 불린 곳에는 황토색 복장의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이쪽으로 오시죠.”
나는 두 명의 S급 헌터를 소개받았다.
“이분은 피통커 씨라는 분이십니다. 중국에서는 S급 탱커로 유명한 분이십니다.”
둥근 얼굴에 작은 눈, 두툼한 뱃살이 후덕해 보였다.
머리카락은 뒷머리를 땋아서 짧은 댕기머리를 하고 있었다.
왠지 왕서방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워쓰~”
“본인 성함은 피통커이며 통커라고 불러주면 된다고 하십니다.”
“아… 네, 통이 커 보이긴 하네요. 반가워요. 니하오, 통커.”
피통커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분은 염화라는 분이십니다.”
염화라는 사람은 7서클 마법사라고 했다.
흰색 머리에 딸기코를 한 도사처럼 생긴 모습이었는데, 굵은 염주 비슷한 구슬 목걸이가 인상적이었다.
“니하오, 염화.”
“쎄쎄~”
원어민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니하오가 입에 쫙쫙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통역은 중국어로 우리를 소개했다.
중국 측과의 협상은 차 헌터님이 진행을 했다.
차 헌터님이 나의 스킬을 소개하며 중국의 두 헌터에게 용병 계약을 받아들일 것을 제안했다.
사전에 이야기가 되어있는지 두 헌터는 흔쾌히 용병 계약을 받아들인다고 했다.
“알파야, 두 분에게 용병 계약을 제안해줘.”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두 중국 헌터가 나의 용병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오, 말이 통하네요.”
“네, 용병 계약을 하면 소환술사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어요. 언어는 기본 패시브라고나 할까요?”
“와, 이거 좋네요. 저 다음에 한국으로 여행 갈 때 용병 계약을 걸어주시면 안 될까요?”
오호라, 그런 방법도 있구나.
전체적으로 이곳은 전시와 비슷한 엄중한 상황이라 분위기가 묵직했지만, 그래도 S급들이라서 그런지 분위기에 눌리지 않고 나름 밝은 모습을 보였다.
“이번 일이 잘 해결된다면 한국에 놀러 오세요. 제가 가이드해 드릴게요. 제가 시간이 안 되면 용병이라도 걸어드릴게요.”
말이 통하자 더욱 좋아진 분위기였다.
국가안전부 간부가 몬스터에 대해 브리핑이 준비되었다고 했다.
브리핑은 두 개의 언어로 모두 준비되어 있었지만, 중국 헌터들 역시 한국어를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 브리핑은 우리말로 진행되었다.
“잠시만요. 저의 소환수들도 이번 작전에 투입될 거죠?”
차지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소환수들도 함께 내용을 들어야 할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럼 소환해주세요.”
나는 샤샤, 제리, 카나를 소환했다.
화아악.
소환수 셋, S급 용병 셋. 그리고 내가 브리핑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
“먼저 화면을 보시죠.”
삼 일 전, S급 브레이크가 터지고 이틀 후에 중국 S급 헌터 6명이 모였다.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인명과 재산 피해가 엄청났지만, 중국은 워낙 넓어서 이에 대응할 고위급 헌터가 모이는 데 이틀의 시간이 걸렸다.
화면상에서는 푸른 도복을 입은 헌터, 땋은 머리를 길게 내린 헌터, 마치 관우처럼 청룡언월도를 들고 있는 헌터 등 여러 헌터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피통커 씨의 모습도 보였다.
영상에서 누군가 중국어로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통역사가 잽싸게 설명을 해주었다.
“국가를 위해 충성하자는 의미입니다.”
화면은 하나의 카메라로 찍은 것이 아닌 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영상이 합쳐져 있었다.
뭔가 구호를 외치더니 여섯 헌터가 앞장섰다.
마치 영화처럼 보스를 향해 걸어 나가는 그들을 뒤에서 한 화면으로 잡은 것이, 만약 이들이 승리했다면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는 홍보 영상이 되었을 것 같았다.
보스가 보였다.
“데빌 페어리입니다.”
여성미가 느껴지는 얼굴, 검은 가죽옷과 검은색 날개가 보였다.
잠시 화면이 멈추며 데빌 페어리의 물리적 정보들이 설명되었다.
“일단 이름은 데빌 페어리로 정해졌습니다. 데빌 페어리는 보시는 바와 같이 전체적인 외형은 인간형이며 등에는 날개가 있습니다. 키는 2m로 보스치고는 크지는 않으며 양팔을 벌렸을 때의 리치도 약 2m로 측정되었습니다. 등 뒤의 날개는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날 때 반짝이는 가루가 떨어집니다. 이동 속도는 측정된 속도는 순간속도가 시속 100km까지 측정되었지만, 지구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주요 무기는 손으로 할퀴는 조법을 사용하며, 완력이 상당해서 잡아서 찢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궁극기는 어떤가?”
“네, 이 보스의 궁극기 영상을 보겠습니다.”
먼저 중국 헌터들의 공격이 날아갔다.
푸른 도복을 입은 헌터는 마치 용을 소환한 듯 커다란 용을 데빌 페어리에게 쏘아 보냈다.
용은 살아있는 것처럼 입과 손을 움직이며 구불거리며 데빌에게 날아갔다.
데빌 페어리는 방어기가 있는 듯 검은 구름을 둘러 용을 막아냈다.
용은 검은 구름과 싸우며 이리저리 회피하여 데빌 페어리를 물려고 했다.
하지만 데빌 페어리는 용 이상으로 공중에서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이며 용을 상대했다.
계속해서 중국 헌터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지표면은 용암이 넘실거렸고, 대기가 요동치며 번개가 내리쳤다.
하늘에서는 낙뢰가 내리꽂아 데빌 페어리를 요격했다.
중국 헌터들은 S급 이외에도 주변에 많은 수가 있었다.
중국 헌터들의 물량 공세에 데빌 페어리가 밀리는 듯해 보였다.
그런데 한참 공격을 받던 데빌 페어리가 두 손을 양쪽 아래로 내리며 뭔가 외치자, S급 헌터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헌터들이 쓰러졌다.
“궁극기 영상을 다시 보겠습니다.”
보스가 궁극기를 쓰는 영상이 반복되었다.
두 손을 내리며 뭔가를 말하는 듯했다.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모습이 반복적으로 보여졌다.
“영상은 실시간으로 전송되기 때문에 여기까지는 여러 헌터들이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헌터들이 궁극기 한방에 당했으니, 그 후로는 다양하게는 못 찍었다는 소리였다.
“상당히 강력한 범위 공격이었습니다. 일격에 범위 내의 대부분의 A급 헌터들을 쓰러트렸습니다. 일격을 버텨낸 헌터는 S급이거나 A급 중에서도 탱커형인 경우였습니다. 그 후로는 데빌 페어리의 반격이었습니다. S급 헌터들도 크게 데미지를 입어서 초반만큼의 공격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보스가 궁극기를 썼다.
세 명의 S급 헌터가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첫 번째 궁극기를 사용하고, 7분 30초 후에 두 번째 궁극기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쿨타임이 이 정도 필요한 건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전투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다시 11분 20초 후에 세 번째 궁극기라 발동되었고, 서 있는 이는 피통커 헌터뿐이었습니다. 이후에는 피통커 헌터는 후퇴하였습니다.”
“어떻게 후퇴를 하였나요? 날개가 있어서 빨리 날아왔을 텐데요?”
“네, 작전이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대규모 폭격이 있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폭격이요?”
“네, 초대형 미사일을 여러 발 발사해 일대를 융단폭격했습니다.”
“아…….”
피통커 헌터가 당시를 설명했다.
“오히려 나에게는 다행이었지. 폭탄이 터지면서 앞뒤 분간을 할 수가 없었거든. 아무 쪽이나 냅다 뛰었지. 아마 보스 역시 사방에 폭탄이 터져서 나를 찾지 못했을 거야. 보스가 나를 발견했었다면 쫓아와서 죽였겠지.”
“미사일 폭격 이후에도 원거리에서 보스를 발견했습니다. 현재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지만, 추가적으로 이동하지는 않고, 일대를 자신의 영역으로 인식한 듯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보스의 영역이 어느 정도인가요?”
“반경 100km 정도의 시민들은 모두 이동했으며 반경 200km까지 일차적인 인원소거작업이 끝났습니다.”
반경 100km면 우리나라의 절반은 되는 넓이고, 반경 200km이면 우리나라보다 더 컸다.
“보스가 이동할 가능성은 없나요?”
“삼 일 전 헌터들과의 접전 이후 크게 이동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어서 언제 다시 이동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언제 작전을 실행하나요?”
“우선 네 분이 호흡을 맞춰보시죠. 지금 함정을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일단 저희는 유인 후 함정 발동, 보스의 궁극기를 일 회 맞았을 시 소환으로 퇴각, 안전한 곳에서 충분히 회복 후 재투입. 이것을 반복하는 작전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대략적인 상황이 그려졌다.
일단 보스에게 ‘너 땅 가지고 싶은 만큼 가져, 우린 남은 땅 많으니까’ 이렇게 말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건 조금 부러웠다.
우리나라에서 터졌으면 반경 200km 이내의 인구가 대피할 수가 있었을까?
중국의 헌터들과 함께 소환 훈련을 했다.
소환 훈련이랄게 별 것 없는데 얼마나 멀리서, 얼마나 빠르게 소환되는지 측정하고, 용병들이 신호를 줄 때 빠르게 소환해 주는 연습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소환 한 번 해주고 마냥 기다리다가, 신호가 오면 소환해주는 일뿐이었다.
훈련이 끝나고 쉬고 있었는데 카나가 말을 걸었다.
“데빌 페어리에 대한 자료를 받을 수 있을까?”
“어, 물어볼게. 왜?”
“정확하지는 않지만, 데빌 페어리라는 몬스터는 악마 계열 몬스터인 것 같아.”
“악마 계열?”
악마 계열은 나도 잘 몰랐다.
“자료를 가지고 디아론에 가서 알아보면 좋을 것 같아.”
오호라, 디아론에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더욱 좋았다.
글리제 역시 다양한 몬스터의 천국이며, 그중 디아론은 몬스터와의 싸움에 이골이 난 국가이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알았어. 챙겨달라고 할게. 하지만 내가 소환하면 바로 와야 해.”
“알겠어.”
카나는 자료를 가지고 샤론 영지에 간 후, 다시 알타르와 함께 디아론성으로 이동했다.
디아론성에는 디아론 백작뿐 아니라 다양한 전투에 경험이 많은 인물들이 있었다.
데빌 페어리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졌다.
카나는 사진뿐만 아니라 영상까지도 가져와서 회의에 참여한 이들에게 보여주었다.
디아론 백작의 지략가인 라루스 자작이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이거 공격에 신격이 담긴 것 같아요. 언령 계열의 공격인 것 같아요.”
“언령이요?”
“보스가 뭔가를 외치고, 범위 내의 모든 인원들이 쓰러졌잖아요. 게다가 방어 무시라면서요. 그러면 이것은 외부의 타격이 아니라 스스로 쓰러지는 것일 거예요. 언령 계열 공격이면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요.”
알타르도 이런 의견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보스의 생김새도 얼굴은 인간인데 날개가 있고 날개에 반짝이는 가루가 보이는군요. 하프 악마라면 저런 아이가 태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하프 정도라면 불완전하더라도 언령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지요. 하급 마족이 아닌 고위 악마와 인간의 하프가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네요.”
꽤 구체적인 추론이 이루어졌다.
“그러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지금 저쪽 세상에서는 원거리 공격을 하다가 궁극기를 맞으면 민준 님이 소환해서 치료 후 재투입. 이것의 무한반복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잠시 생각하던 라루스가 이야기했다.
“그것도 아주 나쁜 방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대가 한곳에 가만히 있어 준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악성향 몬스터라면 신성 교국에 의뢰를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가능할까요?”
“가능은 하지만, 신성 교국은 북쪽의 제국 건너에 있습니다. 거리도 멀고, 그들이 저희의 제안을 받아준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신성력을 담은 교구는 어떨까요?”
“그게 어디 있어요?”
“여긴 없지만, 수도에 가면 있지 않을까요?”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알타르가 수도에 가서 신성력이 담긴 교구를 알아보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삼 일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열심히 함정을 만든다고 했고, 나는 매일 소환 훈련을 하며 용병들과 호흡을 맞춰가고 있었다.
그때, 중국의 국가안전부 직원이 다급히 달려왔다.
“보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